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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질 권리, 어디까지 보장되어야 할까?

잊혀질 권리와 기억할 권리

등록|2014.06.10 10:55 수정|2014.06.10 10:55
지난 달 13일 유럽사법재판소(ECJ)는 구글 이용자들이 자신의 부적절한 개인정보를 담은 링크를 삭제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다며 잊혀질 권리(right to be forgotten)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논란이 되어왔던 잊혀질 권리에 대해 처음으로 사법적 판단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잊혀질 권리를 둘러싼 논쟁은 여전히 뜨겁다. 사생활을 포함한 자기정보를 개인이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견과 잊혀질 권리가 자유로운 정보의 공유라는 표현의 자유는 물론 대중의 알권리마저 침해할 수 있다는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것이다.

구글구글은 잊혀질 권리와 관련하여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 구글


잊혀질 권리와 관련한 논란은 사익과 공익의 관점으로도 바라볼 수 있다. 대립하는 두 입장이 각기 개인적 정보의 통제라는 사익과 자유로운 정보의 공유를 통한 알권리 충족이라는 공익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논란이 되는 잊혀질 권리는 그 중 전자에 해당하는 개념이다. 잊혀질 권리란 생산은 쉬우나 삭제가 용이하지 않은 인터넷 환경에서 개인이 자신과 관련한 특정한 기록을 영구적으로 삭제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하는데 무심코 남긴 기록이 온라인상에 남아 개인의 평판에 지속적인 영향을 주는 경우가 늘어남에 따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잊혀질 권리의 대척점에 있는 가치로는 흔히 표현의 자유와 알 권리가 거론된다. 잊혀질 권리를 보장한다는 건 곧 정보에 대한 통제가 이뤄져야 한다는 뜻이고 이로부터 표현의 자유와 알 권리라는 공익이 침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잊혀질 권리와 대립되는 개념으로 정보의 자유로운 공유와 알 권리를 통합한 '기억할 권리'라는 개념을 뽑아낼 수 있을 것이다.

사익을 침해하는 공익은 더이상 공익이 아니고 공익을 훼손하는 사익은 보호될 가치가 없다. 그러므로 문제의 해법은 잊혀질 권리와 기억할 권리, 어느 한 쪽에 있는 것은 아니다. 권리와 권리가 충돌하는 많은 경우에 그러하듯 이 문제 역시 두 권리 사이의 어느 지점에서 적절한 해법을 도출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해법은 공동체의 합의를 통해서만이 얻어질 수 있다.

상충하는 두 가치 사이에서 어느 하나의 가치도 훼손시키지 않는 조화로운 지점을 찾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잊혀질 권리에 대한 논의를 더는 뒤로만 미뤄둘 수 없다는 점이다. 밀양 집단성폭행 사건과 관련해 부적절한 댓글을 남겼던 학생이 자라 경찰이 된 것으로 알려지며 치르고 있는 곤욕, 몇몇 연예인들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과거의 잘못 등등. 잊혀질 권리와 기억할 권리의 충돌은 비단 서구사회만의 문제는 아닌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당사자인 시민사회가 중심이 된 공론화 작업이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개인의 정보를 통제할 권리가 당사자인 본인에게 주어져야 한다는 잊혀질 권리는 마땅히 정보처리의 원칙으로 도입되어야 한다. 그러나 잊혀질 권리가 보장되는 과정에서 공익과 반하는 사익의 추구가 이뤄질 위험성이 크기에 이를 방지할 수단이 필요하다. 기억할 권리는 바로 이 수단을 뒷받침하는 개념인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기억할 권리가 어디까지 보장되어야 하느냐다. 어떤 정보를 언제, 얼마나 공개할지가 관건인 것이다. 물론 그 정도는 사안에 따라 달라야 한다. 공인과 사인의 명확한 기준을 마련하고 공적인 영역에서 한 행동과 사적인 영역에서 한 행동을 구분하여 차등적으로 잊혀질 권리를 제한해야 하는 이유다. 정부와 검색포털, 시민이 함께 참여하여 어떤 정보가 잊혀질 권리에 앞서 공개되어야 하는지, 그 시기와 범위는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 심층적인 논의를 진행하여야 함은 물론이다.

어떠한 권리도 하루 아침에 얻어지지 않았다. 잊혀질 권리 역시 마찬가지다. 당장의 이해득실을 넘어 지금의 논의가 뒷사람들의 이정표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하고 조화로운 지점을 찾아내는데 아낌없이 노력을 쏟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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