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어드는 운전자 면상을..." 학교 때문입니다
[공모-출퇴근의 추억] 아침이 행복한 학교... 진정으로 바란다
"아빠 속이 안 좋아요. 밥 못 먹겠어요."
"정말 안 좋아?"
초등학교 3학년 큰딸이 식전부터 우는 소리다. 아침밥 안 먹으려는 핑계 같다. 나는 큰딸을 향해 눈을 가볍게 흘긴다. 말속에 가시가 있는 걸 눈치 챘을까. 큰딸도 눈을 살짝 흘기며 한마디를 내쏜다.
"정말 안 좋다니까요, 아빠."
아침밥은 결국 둘째와 막내만 먹는다. 여섯 살짜리 둘째가 볼멘소리 한마디를 내지른다.
"아빠, 왜 우리만 밥 먹어야 해요?"
목구멍까지 올라온 '밥 먹기 싫으면 먹지 마' 소리를 가까스로 내리누른다. 둘째는 그러면서도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운다.
제일 늦게 일어나 칭얼거리던 네 살짜리 막내는 두어 술만 뜬다. 된장 국물까지 다 마셔가며 "시원하다" "맛있는데"를 외치던 녀석이다. 그런데 요새 날이 무더워진 탓일까. 부쩍 입맛을 잃은 것 같다. 밥술 뜨는 게 시원찮을 때가 많다. 물론 이른 시각에 집을 나서는 탓이 가장 클 터이다.
급한 출근길... 그런데 딸 얼굴이 이상하다
밥을 다 먹고 나니 오전 7시 35분쯤 됐다. 출근 시각은 오전 8시 20분. 늦어도 오전 7시 50분에는 집에서 출발해야 한다. 10여 분 거리에 있는 어린이집에 들러 둘째와 막내를 내려주고, 다시 10여 분 더 가야 하는 길이다. 그렇게 하면, 별다른 상황이 없는 것을 전제로 출근 시각 5분 전쯤에 학교 정문에 들어선다.
"학교 가서 힘들면 보건실에 가서 약 좀 타서 먹어. 그래도 계속 힘들면 조퇴하든지. 알았지?"
신발을 신으며 큰딸에게 몇 마디 건넨다. 녀석은 아무런 대꾸도 없다. 정말 좋지 않은 모양이다. 집 현관문을 오전 7시 45분에 나섰다. 승강기 앞에서 기다리는데 큰딸 표정이 계속 죽을상이다. 아니나 다를까. 큰딸은 승강기에 올라서자마자 '우웩' 소리를 연달아 세 번씩이나 낸다. 큰딸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려버린다. "토, 토" 하며 코를 싸쥐는 둘째와 막내 얼굴도 사색이 되긴 마찬가지.
"가만히 열림 버튼 누르고 있어. 걸레 가지고 나올게."
그 와중에 휴대전화를 꺼내 시각을 본다. 출근이 걱정됐기 때문이다. 오전 7시 49분. 늦을 것 같다. 나는 신발을 신은 채 거실로 들어가 걸레를 들고 나온다. 딸이 게워 놓은 토사물을 걸레로 대충 훔친다. 큰딸은 그 사달 중에도 아래층에서 기다리고 있을 친구를 걱정한다.
"아람(가명)이가 기다리고 있을 텐데…, 어떻게 해요?"
"금방 닦고 가면 되니까 버튼 잘 누르고 있어."
그러나 친구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었을까. 큰딸은 승강기 열림 버튼을 놓아버렸다. 승강기는 내가 채 다 치우지도 않은 토사물을 싣고 아래층으로 휭하니 가버린다.
"잘 잡고 있으라니까 놔 버리면 어떻게 해."
순간 짜증이 일어 크게 소리를 지른다. 큰딸 표정이 더 굳어진다. 짠한 마음을 가질 새도 없이 후닥닥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수건을 꺼내왔다. 역시 신발을 신은 채였다. 입가를 닦아준 후 현관문 안쪽에 수건을 대충 던져 놓는다. 다시 시계를 본다. 오전 7시 54분.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 차 시동을 걸어 출발할 때 또다시 시계를 본다. 오전 7시 59분. 정시 출발 시각에서 무려(!) 9분이나 늦었다. 가속 페달을 힘껏 밟는다. 차는 요란한 굉음을 내면서 질주하기 시작한다. 아파트 정문을 빠져나오니 저만치 친구와 함께 걸어가는 큰딸 뒷모습이 보인다. 어깨가 축 처져 있고, 발걸음에 힘이 하나도 없다.
내 속 모르는 아이들 "아빠! 천천히 달려요"
둘째·막내와 함께하는 출근길은 제법 넓은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수변 도로 2킬로미터와 일명 '도깨비길'로 불리는 좁은 숲길로 이어져 있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고, 굽이진 모퉁이가 많은 길이다. 속도를 크게 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오늘 아침, 내 차는 그런 길을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여느 때와 다르게 질주하는 차가 무서웠을까. 뒷좌석에 앉아 있던 둘째가 한마디 내쏜다.
"아빠, 넘어지잖아요. 왜 그렇게 빨리 달려요. 천천히 달려요."
곧이어 "아빠아~"하며 울먹이는 목소리. 막내다. 모퉁이 길에서 한쪽으로 쏠리면서 넘어진 탓이다.
"알았어요. 그래도 잘 잡아요. 아빠 늦었어."
애써 달래듯 말하면서도 오른발은 가속 페달에서 떨어질 줄 모른다. 위험천만한 질주 덕분이었을까. 애들 어린이집을 6분여 만에 도착했다. 크게 '위험한' 시간은 아니었다. 그래도 이미 급해진 마음 탓이었을까. 아이들을 부라부랴 물건 던지듯 어린이집에 들여보냈다. 그리고 또다시 맹목의 질주.
그 한심스럽고 위험한 출근길은 긴 시곗바늘이 오전 8시 17분을 가리키는 지점에서 마무리됐다. 3분의 여유 시간이 있었다. 그렇다면 시간과의 싸움은 나의 판정승으로 끝난 것일까. 오늘 아침(9일), 5일 연휴 뒤끝의 첫 출근길 풍경이었다.
그나마 올해는 나은 편이다. 중학교에서 근무를 하게 되면서 아침 출근 시각이 30여 분이나 뒤로 늦춰졌기 때문이다. 지난해까지 근무하던 고등학교는 오전 7시 50분이 출근 시각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아이들 챙기는 일이 여간 곤욕이 아니었다.
하지만 더 심각한 어려움은 따로 있었다. 둘째와 막내가 다니는 어린이집은 오전 7시 40분에 문을 열었다. 이 정도면 내가 사는 군산에서는 제일 먼저 여는 축에 속한다. 오전 7시 40분은, 주번 선생님이 그 시각에 정확히 문을 열고, 또 내가 아이들을 서둘러 던져주듯 들여보내고 출발하면 그런대로 해볼 만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돌발 변수는 거의 항상 있었다. 아직도 어린 막내는 자주 칭얼거렸다. 그런 녀석을 안아주거나 업어주려다 보면 몇십 초(!)가 금방 가 버린다. 좁은 숲길을 지나다 맞은편에서 초보 운전자를 마주치기라도 하면 또 몇십 초를 까먹는다.
숲길을 지나면 나오는 어느 식당이 있다. 그 집 마당 가장자리에는 늘상 늦잠꾸러기인 개 세 마리가 있다. 이 녀석들이 난데없이 일찍 일어나 부지런을 떨고 있기라도 하면 1분이 우습게 가버린다. 털북숭이 말라뮤트 두 마리와 품종 불명의 황구 한 마리에게 아침 인사를 하려는 두 아이들의 성화 때문에 말이다.
지난해 출근길은 그래서 거의 항상 8~9분과의 숨 막히는 싸움이 이어졌다. 마치 불가항력과의 싸움 같았다. 어린이집을 출발하면 왕복 10차선 도로를 지난다. 그 도로 위에 설치돼 있는 과속 감시 카메라를 박살내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10차선 도로에서 4차선 도로로 좁아지는 병목 구간을 포클레인으로 몽땅 파 넓히고 싶을 때도 있었다. 몇십 초를 다투며 가는 내 애타는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곡예하듯 끼어드는 얌체 운전족들의 면상을 후려치고도 싶었다.
나를 진짜 화나게 하는 것... '일찍 등교하기'
그런데 나를 그 무엇보다도 진정으로 화나게 만든 것은 다른 데 있었다. 출근 시간을 그토록 일찍 정해 놓은 직장, 바로 학교였다. 그렇다. 나는 묻지마 식 '일찍 등교하기' 경쟁에 빠진 대한민국 중등학교를 직장으로 갖고 있다. 면학 분위기 조성과 학력 신장 명목이라는 그 고색창연한 논리가 지배하는 학교 말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그 '일찍 등교하기' 경쟁은 과녁이 잘못 맞춰진 것이다. 대다수의 초·중·고생이 속해 있는 10대에는 수면 패턴의 변화가 찾아온다. 수면 및 기상 주기가 바뀌어 10대들이 졸음을 느끼는 시간과 의식이 분명한 시간대가 보통 사람들이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시간대와 완전히 반대가 된다는 것.
예컨대 10대들은 보통 사람들이 피곤을 느끼는 오후 11시나 12시에 오히려 정신이 말똥말똥해진다. 반대로 일반인이 힘을 내기 시작하는 오전 8시에는 병든 닭처럼 녹초가 된다. 멜라토닌(수면을 조절하는 호르몬)이 점점 더 늦은 시간에 방출되고, 멜라토닌의 수준이 떨어지는 시간도 점점 늦춰지는 사춘기 수면 패턴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이러한 수면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1교시 시간을 바꾼 학교도 있다고 한다. 미국 미네소타 대학교 가족교육부 교수인 데이비드 월시의 책 <10대들의 사생활>(2013, 시공사)에 나오는 내용들이다.
대한민국에는 아직도 시대착오적인 0교시를 부활해 운영하는 학교가 꽤 된다. 0교시 수업은 아이들에게 공부 부지런히 시키는 '잘 나가는' 학교의 자랑거리로 홍보되기도 한다. 자녀들의 공부에만 관심 있는 대한민국 학부모들의 그릇된 열망 탓이다.
김승환 교육감의 공약에 눈길이 가는 이유
내가 다니는 학교 직장은 전라북도에 있다. 이번 6·4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진 전라북도 교육감 선거에서 김승환 후보가 당선했다. 직선제 1기 교육감으로 2010년부터 전북 교육을 이끈 분이다.
김 당선인은 이번 선거에서 '5대 공약'의 '공약번호 2'로 '학교폭력 없는 평화로운 학교'를 약속했다. 그 첫 번째 슬로건은 '아침이 행복한 학교, 저녁이 자유로운 학교'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 중에 아이들이 충분한 수면을 취하고 부모님과 함께 아침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등교시간을 늦추겠다는 안이 있다. 듣기만 해도 짜릿해지는 공약이다.
최근 지역 언론은 김 당선인 캠프가 등교시간 30분 늦추기와 같은 구체적인 안까지 고민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아침마다 '출근 전쟁'을 치르는 나에게 얼마나 큰 뉴스인지 모른다.
김 당선인은 등교시간 늦추기를 2015년부터 시행한다고 약속했다. 바라건대 전북 지역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아침이 행복한 학교'에 관한 소문이 널리 퍼지기를 고대한다. 일이든 공부든 몸과 머리에 힘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출근 시각이 늦춰져야 하는 이유다.
"정말 안 좋아?"
초등학교 3학년 큰딸이 식전부터 우는 소리다. 아침밥 안 먹으려는 핑계 같다. 나는 큰딸을 향해 눈을 가볍게 흘긴다. 말속에 가시가 있는 걸 눈치 챘을까. 큰딸도 눈을 살짝 흘기며 한마디를 내쏜다.
"정말 안 좋다니까요, 아빠."
아침밥은 결국 둘째와 막내만 먹는다. 여섯 살짜리 둘째가 볼멘소리 한마디를 내지른다.
"아빠, 왜 우리만 밥 먹어야 해요?"
목구멍까지 올라온 '밥 먹기 싫으면 먹지 마' 소리를 가까스로 내리누른다. 둘째는 그러면서도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운다.
제일 늦게 일어나 칭얼거리던 네 살짜리 막내는 두어 술만 뜬다. 된장 국물까지 다 마셔가며 "시원하다" "맛있는데"를 외치던 녀석이다. 그런데 요새 날이 무더워진 탓일까. 부쩍 입맛을 잃은 것 같다. 밥술 뜨는 게 시원찮을 때가 많다. 물론 이른 시각에 집을 나서는 탓이 가장 클 터이다.
급한 출근길... 그런데 딸 얼굴이 이상하다
▲ 신발을 신으며 큰딸에게 몇 마디 건넨다. 녀석은 아무런 대꾸도 없다. 정말 좋지 않은 모양이다. ⓒ free image
"학교 가서 힘들면 보건실에 가서 약 좀 타서 먹어. 그래도 계속 힘들면 조퇴하든지. 알았지?"
신발을 신으며 큰딸에게 몇 마디 건넨다. 녀석은 아무런 대꾸도 없다. 정말 좋지 않은 모양이다. 집 현관문을 오전 7시 45분에 나섰다. 승강기 앞에서 기다리는데 큰딸 표정이 계속 죽을상이다. 아니나 다를까. 큰딸은 승강기에 올라서자마자 '우웩' 소리를 연달아 세 번씩이나 낸다. 큰딸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려버린다. "토, 토" 하며 코를 싸쥐는 둘째와 막내 얼굴도 사색이 되긴 마찬가지.
"가만히 열림 버튼 누르고 있어. 걸레 가지고 나올게."
그 와중에 휴대전화를 꺼내 시각을 본다. 출근이 걱정됐기 때문이다. 오전 7시 49분. 늦을 것 같다. 나는 신발을 신은 채 거실로 들어가 걸레를 들고 나온다. 딸이 게워 놓은 토사물을 걸레로 대충 훔친다. 큰딸은 그 사달 중에도 아래층에서 기다리고 있을 친구를 걱정한다.
"아람(가명)이가 기다리고 있을 텐데…, 어떻게 해요?"
"금방 닦고 가면 되니까 버튼 잘 누르고 있어."
그러나 친구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었을까. 큰딸은 승강기 열림 버튼을 놓아버렸다. 승강기는 내가 채 다 치우지도 않은 토사물을 싣고 아래층으로 휭하니 가버린다.
"잘 잡고 있으라니까 놔 버리면 어떻게 해."
순간 짜증이 일어 크게 소리를 지른다. 큰딸 표정이 더 굳어진다. 짠한 마음을 가질 새도 없이 후닥닥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수건을 꺼내왔다. 역시 신발을 신은 채였다. 입가를 닦아준 후 현관문 안쪽에 수건을 대충 던져 놓는다. 다시 시계를 본다. 오전 7시 54분.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 차 시동을 걸어 출발할 때 또다시 시계를 본다. 오전 7시 59분. 정시 출발 시각에서 무려(!) 9분이나 늦었다. 가속 페달을 힘껏 밟는다. 차는 요란한 굉음을 내면서 질주하기 시작한다. 아파트 정문을 빠져나오니 저만치 친구와 함께 걸어가는 큰딸 뒷모습이 보인다. 어깨가 축 처져 있고, 발걸음에 힘이 하나도 없다.
내 속 모르는 아이들 "아빠! 천천히 달려요"
▲ 아침 출근시간. 아빠는 바쁘다. ⓒ 오마이뉴스
둘째·막내와 함께하는 출근길은 제법 넓은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수변 도로 2킬로미터와 일명 '도깨비길'로 불리는 좁은 숲길로 이어져 있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고, 굽이진 모퉁이가 많은 길이다. 속도를 크게 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오늘 아침, 내 차는 그런 길을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여느 때와 다르게 질주하는 차가 무서웠을까. 뒷좌석에 앉아 있던 둘째가 한마디 내쏜다.
"아빠, 넘어지잖아요. 왜 그렇게 빨리 달려요. 천천히 달려요."
곧이어 "아빠아~"하며 울먹이는 목소리. 막내다. 모퉁이 길에서 한쪽으로 쏠리면서 넘어진 탓이다.
"알았어요. 그래도 잘 잡아요. 아빠 늦었어."
애써 달래듯 말하면서도 오른발은 가속 페달에서 떨어질 줄 모른다. 위험천만한 질주 덕분이었을까. 애들 어린이집을 6분여 만에 도착했다. 크게 '위험한' 시간은 아니었다. 그래도 이미 급해진 마음 탓이었을까. 아이들을 부라부랴 물건 던지듯 어린이집에 들여보냈다. 그리고 또다시 맹목의 질주.
그 한심스럽고 위험한 출근길은 긴 시곗바늘이 오전 8시 17분을 가리키는 지점에서 마무리됐다. 3분의 여유 시간이 있었다. 그렇다면 시간과의 싸움은 나의 판정승으로 끝난 것일까. 오늘 아침(9일), 5일 연휴 뒤끝의 첫 출근길 풍경이었다.
그나마 올해는 나은 편이다. 중학교에서 근무를 하게 되면서 아침 출근 시각이 30여 분이나 뒤로 늦춰졌기 때문이다. 지난해까지 근무하던 고등학교는 오전 7시 50분이 출근 시각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아이들 챙기는 일이 여간 곤욕이 아니었다.
하지만 더 심각한 어려움은 따로 있었다. 둘째와 막내가 다니는 어린이집은 오전 7시 40분에 문을 열었다. 이 정도면 내가 사는 군산에서는 제일 먼저 여는 축에 속한다. 오전 7시 40분은, 주번 선생님이 그 시각에 정확히 문을 열고, 또 내가 아이들을 서둘러 던져주듯 들여보내고 출발하면 그런대로 해볼 만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돌발 변수는 거의 항상 있었다. 아직도 어린 막내는 자주 칭얼거렸다. 그런 녀석을 안아주거나 업어주려다 보면 몇십 초(!)가 금방 가 버린다. 좁은 숲길을 지나다 맞은편에서 초보 운전자를 마주치기라도 하면 또 몇십 초를 까먹는다.
숲길을 지나면 나오는 어느 식당이 있다. 그 집 마당 가장자리에는 늘상 늦잠꾸러기인 개 세 마리가 있다. 이 녀석들이 난데없이 일찍 일어나 부지런을 떨고 있기라도 하면 1분이 우습게 가버린다. 털북숭이 말라뮤트 두 마리와 품종 불명의 황구 한 마리에게 아침 인사를 하려는 두 아이들의 성화 때문에 말이다.
지난해 출근길은 그래서 거의 항상 8~9분과의 숨 막히는 싸움이 이어졌다. 마치 불가항력과의 싸움 같았다. 어린이집을 출발하면 왕복 10차선 도로를 지난다. 그 도로 위에 설치돼 있는 과속 감시 카메라를 박살내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10차선 도로에서 4차선 도로로 좁아지는 병목 구간을 포클레인으로 몽땅 파 넓히고 싶을 때도 있었다. 몇십 초를 다투며 가는 내 애타는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곡예하듯 끼어드는 얌체 운전족들의 면상을 후려치고도 싶었다.
나를 진짜 화나게 하는 것... '일찍 등교하기'
그런데 나를 그 무엇보다도 진정으로 화나게 만든 것은 다른 데 있었다. 출근 시간을 그토록 일찍 정해 놓은 직장, 바로 학교였다. 그렇다. 나는 묻지마 식 '일찍 등교하기' 경쟁에 빠진 대한민국 중등학교를 직장으로 갖고 있다. 면학 분위기 조성과 학력 신장 명목이라는 그 고색창연한 논리가 지배하는 학교 말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그 '일찍 등교하기' 경쟁은 과녁이 잘못 맞춰진 것이다. 대다수의 초·중·고생이 속해 있는 10대에는 수면 패턴의 변화가 찾아온다. 수면 및 기상 주기가 바뀌어 10대들이 졸음을 느끼는 시간과 의식이 분명한 시간대가 보통 사람들이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시간대와 완전히 반대가 된다는 것.
예컨대 10대들은 보통 사람들이 피곤을 느끼는 오후 11시나 12시에 오히려 정신이 말똥말똥해진다. 반대로 일반인이 힘을 내기 시작하는 오전 8시에는 병든 닭처럼 녹초가 된다. 멜라토닌(수면을 조절하는 호르몬)이 점점 더 늦은 시간에 방출되고, 멜라토닌의 수준이 떨어지는 시간도 점점 늦춰지는 사춘기 수면 패턴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이러한 수면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1교시 시간을 바꾼 학교도 있다고 한다. 미국 미네소타 대학교 가족교육부 교수인 데이비드 월시의 책 <10대들의 사생활>(2013, 시공사)에 나오는 내용들이다.
대한민국에는 아직도 시대착오적인 0교시를 부활해 운영하는 학교가 꽤 된다. 0교시 수업은 아이들에게 공부 부지런히 시키는 '잘 나가는' 학교의 자랑거리로 홍보되기도 한다. 자녀들의 공부에만 관심 있는 대한민국 학부모들의 그릇된 열망 탓이다.
김승환 교육감의 공약에 눈길이 가는 이유
▲ 김승환 전북교육감 당선자. 사진은 지난 4일 지방선거 개표 당시 모습. ⓒ 문주현
내가 다니는 학교 직장은 전라북도에 있다. 이번 6·4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진 전라북도 교육감 선거에서 김승환 후보가 당선했다. 직선제 1기 교육감으로 2010년부터 전북 교육을 이끈 분이다.
김 당선인은 이번 선거에서 '5대 공약'의 '공약번호 2'로 '학교폭력 없는 평화로운 학교'를 약속했다. 그 첫 번째 슬로건은 '아침이 행복한 학교, 저녁이 자유로운 학교'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 중에 아이들이 충분한 수면을 취하고 부모님과 함께 아침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등교시간을 늦추겠다는 안이 있다. 듣기만 해도 짜릿해지는 공약이다.
최근 지역 언론은 김 당선인 캠프가 등교시간 30분 늦추기와 같은 구체적인 안까지 고민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아침마다 '출근 전쟁'을 치르는 나에게 얼마나 큰 뉴스인지 모른다.
김 당선인은 등교시간 늦추기를 2015년부터 시행한다고 약속했다. 바라건대 전북 지역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아침이 행복한 학교'에 관한 소문이 널리 퍼지기를 고대한다. 일이든 공부든 몸과 머리에 힘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출근 시각이 늦춰져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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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길의 추억' 공모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