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거짓말' '무뢰한'...CGV, 커지는 독과점 논란
[집중취재] 영화 투자 활성화’와 대기업 수직계열화 놓고 엇갈린 시선
▲ CGV 무비꼴라쥬가 투자 배급에 나섰던 영화들 ⓒ CGV
최근 개봉한 영화 <도희야> <한공주> <우아한 거짓말>에는 공통점이 있다. 중·저예산으로 제작된 독립영화치고는 꽤 많은 스크린을 확보했다는 점이다. <도희야>는 개봉 첫날 300개의 스크린을 확보했고, 한공주 역시 259개로 출발했다. <우아한 거짓말>은 485개로 시작해 최대 573개의 스크린을 차지했다.
흥행 성적은 <도희야>를 제외하고는 두 작품 모두 양호했다. <한공주>는 손익분기점 10만을 넘어 22만 관객을 기록했고, <우아한 거짓말>은 31억 원을 투자해 개봉 10일 만에 손익분기점을 돌파했다. <도희야>는 10만 관객을 기록하며 투자사가 밝힌 손익분기점 25만에는 못 미친 상태다. 하지만 중·저예산 독립영화 역시 스크린을 제대로 확보하면 성공할 수 있는 사례로 조명되고 있다.
중·저예산 영화의 흥행이 쉽지 않은 현실에서 이들 영화가 최하 10만 이상 관객을 동원하고 선전할 수 있었던 바탕에는 CGV가 존재한다. 스크린 수가 적게 배정됐다면 성공하기 힘든 현실에서 극장 체인 CGV의 영향력이 흥행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것이다. 특히 <한공주>는 2억 원 미만의 저예산으로 제작됐으나 CGV 무비꼴라쥬가 배급을 맡았고, <우아한 거짓말>과 <도희야>는 독립예술영화 상영관인 CGV 무비꼴라쥬가 투자에 배급까지 맡은 작품이다.
하지만 이런 결과에 대한 영화계의 시선은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독립영화 투자 활성화 및 시장 확대라는 빛과, 대기업의 독과점 심화를 통한 수익 극대화라는 그림자가 공존하기 때문이다. CGV는 중·저예산 한국 영화 시장의 투자 활성화를 위해 나서는 것이라고 강변하지만, 대기업이 돈벌이를 위해 독립영화 시장까지 먹이로 삼으려 한다는 비판이 일면서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
비판하는 쪽은 대기업 수직계열화 심화에 초점을 맞추고, 찬성하는 쪽은 투자 환경이 좋아질 수 있다는 점에 무게를 두고 있다. CGV는 영화계의 여론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면서도 투자를 받으려는 감독들이 많다면서 여론 전환을 기대하는 분위기다.
대기업 돈벌이 수단으로 영화 틈새시장 공략
최근 온라인에서는 이에 대한 논쟁이 벌어져 많은 영화 관계자의 시선을 끌었다. 독립영화 진영의 대표적 정책 전문가로 통하는 원승환 민간독립영화관 확대를 위한 시민모임 이사가 지난 5월 자신의 SNS에 장문의 글을 올려 CGV의 행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기 때문이다.
원승환 이사는 "대기업의 돈벌이 수단으로 틈새시장 공략이 이뤄지는 것인데, 영화계가 투자를 기대하며 잠잠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다양성 영화의 성공 사례로 부각되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과 <한공주>는 중소규모의 배급사가 배급한 작품이 아니라 CGV와 이십세기폭스코리아의 것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면서 "CGV는 2013년 통계 기준으로 전극 극장 수의 36%, 스크린 수의 41%, 좌석 수 41%의 1위 기업이고, 이십세기폭스코리아는 4대 직배사 중 하나로 둘 다 메이저 사업자"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한공주>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성공은 틈새 콘텐츠로 성장을 도모하려는 CGV와 이십세기폭스코리아의 틈새시장 전략으로, 메이저 사업자라 가능한 기획이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원 이사는 "CGV의 투자·배급 전략이 자신의 성장을 위한 틈새 전략이 아니라 독립영화의 생태계를 풍족하게 만드는 지원이 진짜 목표라면, 지금과 같은 방식이어서는 곤란하다"고 지적하고, "CGV가 만든 장(場)에서 CGV가 직접 배급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독립영화 배급사에 기회를 주는 방식이 돼야 한다. 투자금이 부족한 상황에서 투자까지는 가능할 수 있겠지만 배급을 직접하는 것은 정말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는 CGV 서정 대표가 "중·저예산 영화에 대한 다양한 지원을 통해 영화 산업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를 기대"한다고 했던 말을 언급하며 "그렇다면 배급 수수료까지 챙기면 안 되고, 그렇지 않을 경우 CGV 대표의 말은 '우아한 거짓말'이 될 뿐"이라며 CGV의 이중적 행동을 겨냥했다.
지원하는 모양새로 포장, CGV 이익이 궁극적인 목적
▲ CJ CGV 극장 체인의 한 상영관 ⓒ 이승훈
원 이사의 주장에 대해 엣나인필름 정상진 대표는 "한국 저예산 독립영화를 배급하는 입장에서 우선 (CGV의) 배급 규모가 부럽고, 영화라는 것 자체가 의미만 가지고 움직일 수 없기에 여러 가지 부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며 다른 입장을 나타냈다. 정 대표는 제작·투자배급사와 극장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그는 "개인적으로 저예산 영화가 이런 구조에서라도 살아남을 수 있다면 1000명 중 한 명의 감독에게 기회를 부여한다고 해도 지금의 CGV 무비꼴라쥬의 배급을 지지할 듯하다"면서 "성공하는 저예산 영화가 많아지길 바라는 마음이 더 간절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정 대표는 외부에서 제작비를 지원받아 만들고 해외 영화제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으나 흥행에 실패한 한 작품을 사례로 들면서 "제대로 못 하는 것에 대해서는 왜 함구하느냐"고 지적했다. 대기업 배급사가 영화를 흥행시키려는 노력을 욕하기보다 제대로 흥행시키지 못하는 태도에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가 언급한 작품은 대기업 계열사인 롯데엔터테인먼트에서 배급했으나 20개 안팎의 적은 스크린으로 3천 명 정도의 저조한 관객 수를 기록했다.
정 대표의 반론에 원 이사는 "1000명의 감독 중 한 명에게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하지 않고 더 많은 독립영화가 기회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고 반박했다.
그는 "CGV가 틈새 콘텐츠로 성장하겠다는 전략을 가질 수 있지만 '지원'을 하는 그럴듯한 모양새를 내뿜는 것이 탐탁지 않다"면서 "기존 사업자나 영화에는 제대로 기회를 제공하지 않았으면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직접 배급도 불사하는 모습이 적절치 않아 보이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게다가 "직접 배급에 참여하는 것이 기존 사업자를 고사시키는 것이 될지도 모르는데도 상영관이라는 무기를 베이스로 직접 게임에 참여하는 행동은 생태계를 위해서 옳지 않다"고 비판했다.
또 "<한공주>의 개봉 첫주 259개 스크린은 자유로운 경쟁이 가능한 시장에서 소규모 사업자가 성취한 것이 아닌 상영업 1위가 틈새 전략의 성공을 위해 전력을 다했기 때문에 얻은 것일 뿐"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롯데(시네마·엔터테인먼트)는 '퍼스트 무버(선도자)' 전략을 취하지 않고 상영업에서 절대적으로 안정 지향적이며 천천히 따라가는 '슬로우 팔로우' 전략을 쓰고 있기 때문"이라며 "CGV와 같은 전략으로 시장에 진입한다면 역시나 비판을 받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이에 대해 한국감독조합 부대표인 정윤철 감독은 "작년 개봉 영화편수가 997편이라는데 어떻게 형평성을 맞출지 모르겠다"며 "모두가 퐁당퐁당(교차상영)이란 '빈곤 속의 평등'일지, 되는 건 소수나마 밀어줄지, 재래시장에 대형마트가 진출하는 것과는 좀 다르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그는 "온라인 개봉을 목표로 하는 영화가 일주일 치 표를 사가며 대거 개봉하는 마당에 독립영화의 정의 자체가 혼란스럽다. 고민이 많이 필요한 문제"라고 덧붙였다.
투자 못 받은 영화 살려낸 CGV, 독과점으로 보면 안 돼
▲ 지난 5월 전주국제영화제 폐막식에서 무비꼴라쥬 관계자가 한국경쟁부문 배급지원상 수상자를 발표하고 있다 ⓒ 전주국제영화제
영화계의 의견 역시 분분하다. 상대적으로 비판이 더 많지만, CGV의 투자를 긍정적으로 봐야 한다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독립영화에 대한 투자는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라며 "투자 활성화를 위한 노력은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늘고 있다. 한 푼의 제작비가 아쉬운 현실에서 투자를 못 받은 영화를 살려낸다는 CGV의 논리가 어느 정도 먹혀드는 모양새다.
<도희야>를 제작한 나우필름 이준동 대표는 "CJ의 수직계열화는 문제지만 CGV의 투자를 그 관점에서 보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도희야>는 상업성이 없다고 투자를 못 받은 것을 CGV가 살려냈다"면서 "이건 영화 산업 활성화 관점에서 봐야지, 독과점 규제 쪽으로 가서는 안 된다. 얼마든지 공개 토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CGV로부터 상영관 홀대를 받았던 <또 하나의 약속> 제작 관계자도 "제작 투자에 나서는 부분은 영화 산업을 돕는 것이기에 긍정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면서 "다만 저예산 영화를 대작 상업영화 방식으로 배급하려는 것은 지양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역시 비슷한 입장을 나타냈다. 그는 "제작 투자는 좋은 일이다. 다만 독점해서는 안 된다"며 "20억 영화를 50억, 100억대 영화처럼 배급해서 스크린을 200개 이상 배정하기보다는 100개 정도로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나친 밀어주기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CGV 무비꼴라쥬가 배급하는 영화가 스크린을 독점하면 피해를 입는 곳은 외국 영화 수입배급사"라면서 "몇몇 작품은 괜찮은 영화인데도 스크린을 확보하지 못해 손해를 봤다"고 덧붙였다.
영화평론가협회장인 민병록 동국대 교수는 "기본적으로 CGV의 투자에 찬성한다"면서 "제작이 어려운 영화에 기회를 주고 돕는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민 교수는 "국가가 진흥 정책을 마련해 지원해야 할 부분인데, 정부가 할 일을 못 하니 CGV가 나서는 것 아니겠느냐"면서 "무비꼴라쥬가 적자를 보고 있는 가운데도 창작자에게 도움을 주려는 것을 사안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영화평론가협회 곽영진 총무이사는 "투자가 어려운 작품을 살려내는 것은 바람직하나 CGV보다는 기존 투자사인 CJ E&M에서 맡는 게 모양이 좋을 것 같다"면서 "이중성이 많은 문제"라고 말했다.
한편 CGV는 지난 5월 영화평론가협회 임원들과 영화산업 현안에 대해 의견교환을 하는 자리에서 무비꼴라쥬 투자에 대한 부분을 언급하며 "제작 못 하는 영화에 투자했더니 돈 벌었다고 비판한다. 이런 식이면 독립영화에 대한 투자를 철회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영화 시장 확대는 CGV의 본질 호도
▲ CGV 극장 로고 ⓒ CGV
그러나 극장의 투자배급 진출을 수직계열화와 독과점 문제로 바라보는 쪽은 묵과할 수 없는 행동이라며 강력한 법적 규제를 주장하고 있다.
다수의 흥행 작품을 제작한 한 중견 제작자는 "극장에 투자배급을 허용하는 것은 원칙의 문제"라며 "기본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제작사와 투자사, 배급사, 극장은 분리된 상태에서 각자의 역할만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CGV가 아예 저예산 영화를 다 안고 가지 않을 거라면 손을 떼고, 그렇지 않으면 강력한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CGV가 유명 감독에게 제작비를 대주는 방식으로 호의적 여론을 조성하려는 것 같은데, 영화계가 이용당하면 안 된다"며 "<도희야>를 제작한 이창동 감독이나 이준동 대표도 CGV 돈을 받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해외영화제 수상 경력이 있는 한 감독은 "CGV의 행태는 폭력적"이라고 강하게 비판한 후 "동일한 출발선에서 다른 사람들의 다리를 묶어 놓고 혼자 달려나가는 것과 같다"고 자신의 경험을 토로했다.
"상영관이 적고 시간이 퐁당퐁당(교차상영)인데, 예매율이 적다고 스크린을 안 내줬다. 지금까지 내 영화가 다 그랬다. <한공주>나 다른 영화를 봐라. 상영관을 늘리니 당연히 예매율이 좋은 게 아닌가. 내 영화도 저런 도움을 받았으면 좋았겠지만 기껏해야 20~30개 얻어내기도 힘들었다. 그러면서 자기들 영화는 스크린을 독점해 이익을 극대화한다. 이런 불공정한 행태는 절대 용납하면 안 된다. 내가 해외에서 상도 받았지만 지금 남은 것은 빚밖에 없다."
영화평론가인 서울예대 강한섭 교수는 "수직계열화와 스크린 독과점에 대해서는 강력한 법적 규제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CGV의 수직계열화는 영화 산업을 하청 계열화시키는 전술로 자체적 해결이 불가능할 정도로 일상화돼 있다는 게 문제"라며 "정치권도 여야의 의견이 일치하는 부분으로 관객의 권리 확보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또한 "CGV가 한국영화 시장 확대와 활력을 이야기하는데 본질을 호도하는 것으로, 전혀 관계가 없다"면서 "상영관인 CGV가 무슨 한국영화를 발전시키나? 오직 돈벌이 수단을 포장하는 수사"라고 잘라 말했다.
이어 강 교수는 "대통령이 나서서 수직계열화 문제를 지적하는 데도 관료들이 전혀 안 움직이고 있다. 관피아(관료+마피아)를 척결한다고 했으니 지켜봐야겠다"며 "CJ가 회장이 구속된 상태에서도 자숙할 줄 모르는 것 같다"고 일침을 가했다.
상업영화 제작 통한 수익 창출이 숨겨진 의도?
▲ CGV가 투자 배급하는 <무뢰한>에 캐스팅 된 배우 김남길, 전도연 ⓒ 오마이스타
CGV가 투자 배급하기로 한 <무뢰한>도 논란거리다. <무뢰한>은 김남길과 전도연이 출연을 확정한 작품으로, CGV에 따르면 20억 원대 중반의 제작비를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톱스타를 캐스팅하면서 중·저예산 영화로 포장한다는 것이 CGV를 비판하는 쪽의 의구심이다. 실제적으로는 상업영화 제작을 통한 수익 창출이 숨겨진 의도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CGV 관계자는 "캐스팅 과정에서 예산이 늘어났다"며, "<무뢰한>은 10년 동안 시나리오가 돌았던 작품으로 CGV의 투자를 통해 제작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이 관계자는 "외부에서 오해하는 시선이 많다"면서 "우리는 한국영화 상생 역할의 모델을 만들기 위해 실험적으로 하는 것이고, 수익보다는 한국영화에 도움을 주려는 것이 우선인데 우리의 진심을 몰라준다"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CGV 측은 "중·저예산 영화가 투자를 못 받거나 흥행을 못 해 하향평준화가 될 수 있는 현실에서, 극장을 가진 장점을 살려 영화산업에 기여하려 하는 것"이라며 너무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기를 요청했다.
아울러 CGV 측은 중·저예산 영화에 스크린을 많이 배정하면 안 된다는 일부 지적에 대해 "그런 논리라면 스크린의 수가 예산에 따라 정해져야 하는데, 해외 독립예술영화들은 보통 수입가가 수천 만 원 정도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이어 자사 배급 작품을 지나치게 밀어준다는 시선에 대해서도 "CGV가 전체 스크린의 50% 가까이 점유하고 있음을 감안해 살펴봐야 한다"며 "밀어준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고 말했다. 최근 개봉했던 <표적>은 CJ에서 배급하는 영화지만, 초반에 CGV는 롯데가 배급하는 <역린>에 더 많은 상영관을 배정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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