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의 '다독거림의 리더십'이 주목받는 이유
[주장] 6.4 지방선거에서 확인된 시대변화에 주목해야 한다
정치도 마찬가지겠지만 산업 부분에서도 기본 프레임의 전환은 단순한 변화를 넘어서는 격변의 소용돌이를 만들어 낸다. 90년대 컴퓨터 산업에서 마이크로 소프트가 보여준 기록적인 성장에서도 우리는 프레임의 변화가 가져다 준 놀라움을 경험했었다.
컴퓨터 운영체제 분야에서 독보적인 영향력을 가진 MS사는 MS-DOS 를 내어 놓음으로써 일상적인 언어로 기계와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했다. 이후 WINDOWS 3.1 버전에서는 멀티테스킹을 구현하였으며, WINDOWS 95 에서는 기존의 창을 모두 집어 던지고 멀티미디어와 네트워크를 정보통신 시대의 새로운 화두로 끄집어 내었다.
도스 환경 내에서도 변화는 늘 있어 왔던 것이지만, 윈도 환경으로 전환되는 것 같은 급변에 비할 바는 아니다. 이처럼 프레임은 늘 급변과 정체를 반복하며, 내실을 다지고 다음단계로 나아가게 된다.
정치에서도 시대정신의 프레임이 존재한다
정치에서도 시대정신을 담아내는 프레임의 변화는 존재한다.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어떤 절박함을 담아 낼 수 있는, 또 가슴을 울리는 주제가 반드시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더 이상 산업화, 민주화라는 것이 가슴을 설레게 하는 말이 아닌 시대가 되었다. 정의하기 쉽지는 않지만, 새로운 것에 대하여 그 무엇인가의 열망이 존재한다는 것은 분명히 여러 차례 확인이 되었다. 그리고 가장 크게 대중의 의사가 표출된 것이 이런바, 안철수 현상이었다.
이러한 열망이 이번 6·4 지방선거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을 최대의 승리자로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불과 3년 전 5% 지지율로 안철수 의원의 양보를 얻어 어렵게 서울 시장에 당선되었던 그가, 이번 선거에서는 유력한 차기 지도자급으로 부상했다. 길지 않는 시간에, 그는 어떻게 이렇게 깊은 인상을 국민들에게 심을 수 있었을까. 단순히 한 개인의 역량으로 생각하기에는 위상의 변화가 너무 커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상대와의 대립구도를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해 왔던 정치권에 대해서 국민들은 끊임없는 질타를 해 왔었지만, 국민들 스스로도 그 대안을 쉽게 찾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국민들은 안철수 의원을 통해서 가능성을 보았고, 그 기대는 박원순 시장에게로 옮겨가고 있다. 박원순 리더십의 특징은 부드러움과 다독거림이다. 화합을 중시하며, 적을 만들지 않는다. 보궐선거를 통해 서울시에 입성하였을 때, 전임 시장의 정무직 공무원을 상당수 포용함으로써 기존 정치권에는 새로운 메시지를 던져놓았다.
민주화 시대를 거쳐 온 정치는, 각 세력들 간의 투쟁과 출구 없는 정쟁의 연속이었다. 타협 보다는 다수의 힘의 논리가 늘 국회를 지배했었다. 고착화 된 지역구도 하에서 새로운 인물의 등장도 어렵고, 어렵사리 정치에 입문한 정치신인도 기존의 관행을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의원활동을 열심히 한 사람보다는 지도부에 충성한 사람이 늘 중용되는 시대의 반복이었다. 대책 없는 양당 구도의 한 모퉁이에서 박원순 리더쉽이 출현하게 된 것이다.
정치에 있어 정당은 여러모로 편리한 기능이 많다. 국민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도록,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고, 인재를 발굴하여 체계적으로 육성할 수 있는 풍부한 자원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정당의 역활이 선순환 해야 한다는 가정하에서 가능한 것이다. 악순환의 고리에 접어들면, 함께 모여 집단의 이익만을 대변하며, 견고한 기득권의 형성으로 변화에 저항한다. 특정 지역을 거점으로 삼아, 네편 내편으로 분리함으로써 국민의 통합을 심각하게 방해하게 된다.
민주화 시대 이후, 양분 된 투쟁의 정치에 희생되어 온 국민들의 시선에 이런 것들이 곱게 비쳤을리 있겠는가. 지도자 적인 인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임에도, 어쩔 수 없이 자기 진영이기 때문에 표를 던져야 했을 땐, 극심한 무력감과 함께 정치 혐오증에 빠지기도 했었다.
6·4 지방선거를 전후해 박원순을 통해 실려온 새로운 시대의 프레임은, 여·야의 경계를 허물고, 더 이상 이념이 국가의 발목을 잡지 않는 정치, 화합하고 화해하고 위로해 주는 정치, 상처를 보듬고 다독거려 주는 정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대표적 보수 진영인 강남3구의 지지율, 지방 선거 후, 광주와 경상도에서의 박원순 시장의 지지율엔 많은 것이 담겨있다.
박근혜 대통령 이후에는 더 이상 지역을 대표하는 맹주가 나타나기 어려운 환경도 새로운 정치 프레임의 등장을 가능하게 한다. 의회 권력은 상당 기간 동안 지역 분할 구도가 지속될 수 밖에 없겠지만, 정권만은 다독거림의 리더십을 가진 사람에게서 탄생할 것이다. 정당을 통해 국민화합의 여망을 실현하겠다는 안철수 의원에게 던지는 냉랭한 시선이 그 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한국사회는 이미 오래전에 민주화를 넘어서는 보편적 가치를 담은 새로운 시대정신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었다. 다만, 정치 권력이 과거의 산업화와 민주화의 틀 속에서 거의 진전을 이루어내지 못했을 뿐이다.
프레임을 무시하고는 어떠한 것도 생존할 수 없다. 윈도 환경에서 도스용 응용프로그램이 생존할 수 없듯이, 화합과 상생과 다독거림의 시대정신을 외면하고는, 어떠한 정치 세력도 생존이 불가능한 시대가 오고 있다. 박원순 시장의 등장이 반갑기도 하지만, 그를 통해 실려온 이번 지방선거의 새로운 메시지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컴퓨터 운영체제 분야에서 독보적인 영향력을 가진 MS사는 MS-DOS 를 내어 놓음으로써 일상적인 언어로 기계와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했다. 이후 WINDOWS 3.1 버전에서는 멀티테스킹을 구현하였으며, WINDOWS 95 에서는 기존의 창을 모두 집어 던지고 멀티미디어와 네트워크를 정보통신 시대의 새로운 화두로 끄집어 내었다.
도스 환경 내에서도 변화는 늘 있어 왔던 것이지만, 윈도 환경으로 전환되는 것 같은 급변에 비할 바는 아니다. 이처럼 프레임은 늘 급변과 정체를 반복하며, 내실을 다지고 다음단계로 나아가게 된다.
정치에서도 시대정신의 프레임이 존재한다
정치에서도 시대정신을 담아내는 프레임의 변화는 존재한다.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어떤 절박함을 담아 낼 수 있는, 또 가슴을 울리는 주제가 반드시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더 이상 산업화, 민주화라는 것이 가슴을 설레게 하는 말이 아닌 시대가 되었다. 정의하기 쉽지는 않지만, 새로운 것에 대하여 그 무엇인가의 열망이 존재한다는 것은 분명히 여러 차례 확인이 되었다. 그리고 가장 크게 대중의 의사가 표출된 것이 이런바, 안철수 현상이었다.
이러한 열망이 이번 6·4 지방선거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을 최대의 승리자로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불과 3년 전 5% 지지율로 안철수 의원의 양보를 얻어 어렵게 서울 시장에 당선되었던 그가, 이번 선거에서는 유력한 차기 지도자급으로 부상했다. 길지 않는 시간에, 그는 어떻게 이렇게 깊은 인상을 국민들에게 심을 수 있었을까. 단순히 한 개인의 역량으로 생각하기에는 위상의 변화가 너무 커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상대와의 대립구도를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해 왔던 정치권에 대해서 국민들은 끊임없는 질타를 해 왔었지만, 국민들 스스로도 그 대안을 쉽게 찾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국민들은 안철수 의원을 통해서 가능성을 보았고, 그 기대는 박원순 시장에게로 옮겨가고 있다. 박원순 리더십의 특징은 부드러움과 다독거림이다. 화합을 중시하며, 적을 만들지 않는다. 보궐선거를 통해 서울시에 입성하였을 때, 전임 시장의 정무직 공무원을 상당수 포용함으로써 기존 정치권에는 새로운 메시지를 던져놓았다.
민주화 시대를 거쳐 온 정치는, 각 세력들 간의 투쟁과 출구 없는 정쟁의 연속이었다. 타협 보다는 다수의 힘의 논리가 늘 국회를 지배했었다. 고착화 된 지역구도 하에서 새로운 인물의 등장도 어렵고, 어렵사리 정치에 입문한 정치신인도 기존의 관행을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의원활동을 열심히 한 사람보다는 지도부에 충성한 사람이 늘 중용되는 시대의 반복이었다. 대책 없는 양당 구도의 한 모퉁이에서 박원순 리더쉽이 출현하게 된 것이다.
정치에 있어 정당은 여러모로 편리한 기능이 많다. 국민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도록,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고, 인재를 발굴하여 체계적으로 육성할 수 있는 풍부한 자원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정당의 역활이 선순환 해야 한다는 가정하에서 가능한 것이다. 악순환의 고리에 접어들면, 함께 모여 집단의 이익만을 대변하며, 견고한 기득권의 형성으로 변화에 저항한다. 특정 지역을 거점으로 삼아, 네편 내편으로 분리함으로써 국민의 통합을 심각하게 방해하게 된다.
민주화 시대 이후, 양분 된 투쟁의 정치에 희생되어 온 국민들의 시선에 이런 것들이 곱게 비쳤을리 있겠는가. 지도자 적인 인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임에도, 어쩔 수 없이 자기 진영이기 때문에 표를 던져야 했을 땐, 극심한 무력감과 함께 정치 혐오증에 빠지기도 했었다.
6·4 지방선거를 전후해 박원순을 통해 실려온 새로운 시대의 프레임은, 여·야의 경계를 허물고, 더 이상 이념이 국가의 발목을 잡지 않는 정치, 화합하고 화해하고 위로해 주는 정치, 상처를 보듬고 다독거려 주는 정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대표적 보수 진영인 강남3구의 지지율, 지방 선거 후, 광주와 경상도에서의 박원순 시장의 지지율엔 많은 것이 담겨있다.
박근혜 대통령 이후에는 더 이상 지역을 대표하는 맹주가 나타나기 어려운 환경도 새로운 정치 프레임의 등장을 가능하게 한다. 의회 권력은 상당 기간 동안 지역 분할 구도가 지속될 수 밖에 없겠지만, 정권만은 다독거림의 리더십을 가진 사람에게서 탄생할 것이다. 정당을 통해 국민화합의 여망을 실현하겠다는 안철수 의원에게 던지는 냉랭한 시선이 그 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한국사회는 이미 오래전에 민주화를 넘어서는 보편적 가치를 담은 새로운 시대정신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었다. 다만, 정치 권력이 과거의 산업화와 민주화의 틀 속에서 거의 진전을 이루어내지 못했을 뿐이다.
프레임을 무시하고는 어떠한 것도 생존할 수 없다. 윈도 환경에서 도스용 응용프로그램이 생존할 수 없듯이, 화합과 상생과 다독거림의 시대정신을 외면하고는, 어떠한 정치 세력도 생존이 불가능한 시대가 오고 있다. 박원순 시장의 등장이 반갑기도 하지만, 그를 통해 실려온 이번 지방선거의 새로운 메시지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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