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짓밟힌 밀양,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밀양 촛불문화제] "끝난 게 아니라 다시 시작"이라는 주민들

등록|2014.06.15 14:36 수정|2014.06.15 15:56

▲ 밀양시 단장면 용회마을에 주민과 연대자 등 수백 명이 모인 가운데 촛불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 김종술


세월호 취재차 진도에 내려와 있던 나에게 급히 밀양으로 와 달라는 급박한 문자와 전화연락이 빗발쳤습니다. 하지만 전 진도를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밀양에서 들리는 소식은 처참하다 못해 끔찍했습니다. 국가 권력에 의해 짓밟히는 할매·할배들과 농성장 진압을 마친 경찰들이 V자를 그리며 기념사진까지 찍었다는 언론보도를 보며 드는 심정은 그저 참담했습니다.

지난해부터 올해 초 60일 가까이 밀양에 머물며 '밀양의 친구'라고 생각했던 나는 더 이상 듣고만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방관자로 죄책감에 시달리던 나는 13일 오후 진도 취재가 끝남과 동시에 밀양으로 달렸습니다. 6시간을 밤새도록 달려서 밀양에 도착했습니다.

눈에 들어온 밀양은 평온했습니다. 떠들썩하던 너른마당(밀양송전탑 대책위)도 실무자들만 14일 저녁에 있을 촛불문화제 준비로 정신이 없어 보였습니다. 빨리 오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죄송하다는 말로 부끄러운 마음을 감추었습니다.

▲ 충북 제천 간디학교 학생들의 귀여운 몸짓으로 촛불문화제의 시작을 열렸다. ⓒ 김종술


▲ 대책위와 주민들이 참석자의 저녁을 준비하면서 즐거운 식사 시간을 가졌다. ⓒ 김종술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와 주민들은 연대자들과 함께 14일 오후 7시부터 단장면 용회마을 정자 앞, 상동면 고정리 주차장, 부북면 위양마을 회관 앞 등 3곳에서 촛불문화제를 열었습니다. 송전탑 반대를 위해 수백 명이 모인 가운데 150번째 촛불문화제가 열렸습니다.

촛불을 들기 위해 찾아간 단장면 용회마을에서 보고 싶은 분들과 손을 잡고 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 "왜 이제 왔느냐?"란 주민들의 원망섞인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옆에 있어주지 못해서, 지켜주지 못해서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에 구절구절 변명만 늘어놓았지만, 주민들은 그저 나를 따뜻하게 안아 주었습니다.

대책위와 주민들이 준비한 음식도 배부르게 먹었습니다. 오랜만에 고향의 품에 안긴 것처럼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며 정도 나누었습니다. 지난 11일 '신고리-북경남 765kV 송전선로' 철탑 예정 부지에 있던 4곳의 움막농성장을 경찰과 밀양시가 병력 2500명을 동원해 행정대집행에 들어갔을 때, 주민 100명으로 막았다는 무용담도 들었습니다.

▲ 정재준씨가 노래 "고래사냥"에다 김수한 밀양경찰서장의 이름을 붙여 개사한 노래 "한이사냥"을 부르자 참석자들이 손뼉을 치면서 좋아하고 있다. ⓒ 김종술


▲ 송전탑반대 촛불문화제라기 보다는 축제에 가까웠다. 참석자들 노래를 따라부르며 흥겨운 시간을 가졌다. ⓒ 김종술


김철원 밀양농민회 정책실장,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 공동대표 조성제 신부(천주교), 초등학교 교장 출신인 고준길 어르신, 어린이책시민연대 이정화씨, 용회마을 주민 송영숙(송루시아, 59), 동화전마을 권기영씨 등 많은 분들에게 대집행 당시, 공권력에 짓밟혔던 사연을 들으면서 가슴이 먹먹해지는 걸 느꼈습니다.

송전탑 싸움으로 목숨을 잃은 두 분의 어르신과 한국전력공사의 회유와 협박이 심해 싸움을 포기하고 싶었던 일, 경찰한테 짐승보다 못한 취급을 받은 사연을 말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시던 어르신들의 분통한 사연들 가슴에 새기고 또 새겼습니다.

그런 수모를 당하고도 주민들은 싸움에서 진 게 아니라 지금부터 다시 시작이라며 철탑을 뽑아낼 때까지 싸우겠다는 얘기에 용기도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날의 처참했던 영상을 보면서 절대 잊지 않겠다는 다짐도 했습니다.

주민이 낭독한 송경동 시인의 '밀양으로 가는 길'이란 시를 들으면서 반가운 분들과의 작별을 고했습니다. 다시 오겠다고 그때까지 건강 조심하라고 덕담을 나누며 돌아서야 했습니다. 밀양에서부터 따라다니던 둥근달은 우리 집 안마당까지 따라왔습니다.

밀양으로 가는 길

밀양은 어디에 있나요
밀양으로 가는 길은 어디에 있나요
버스를 타고 가면 되나요
기차를 타고 가면 되나요

밀양으로 가면서는 어떤 꿈을 꾸면 되나요
봄이면 꽃이 피고 여름이면 보리싹이 익는
아름다운 고장을 생각하면 되나요
하얀 머릿수건을 쓰고
논물을 대는, 밭고랑을 일구는
농부들의 평화로운 마을을 꿈꾸면 되나요

아, 그러나 지금 밀양은 폐허의 땅
원전마피아들의 짜릿한 속셈만 흐르는 곳
푼돈의 모략이 판치고
죽음의 전류가 관통하는 메마른 땅
계엄의 헬리콥터가 뜨고
점령지의 병사들이 진주하는 곳

거기 나뭇가지마다 목줄을 걸고 있는 난쟁이들
평생을 파먹던 땅에 흙무덤을 파고 있는 검둥이들
날마다 걷어 채이고 끌려가는 무지랭이들
논바닥에 엎어지고 산비탈로 굴러 떨어지며
오열하는 사람들
그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며 함께 절규하는 사람들

도대체 밀양으로 가는 길은 어디인가요
돌아보면 밀양 아닌 곳이 없네요
눈물 아닌 곳이 없네요
아픔 아닌 곳이 설움 아닌 곳이
분노 아닌 곳이 없네요

아, 어디로 가야 우리들의 밀양이 있나요
광화문 네거리에서 무릎꿇고 나랏님께 절하며 상소문이라도 읽어야 하나요
동학난 때처럼 장총을 들고 그리움에 지쳐 산으로 오르면 되나요
죽창이라도 들어 저 가렴주구들의 뱃대지를 찌르면 되나요
폭동이라도 반역이라도 되어야 하나요

아, 도대체 그 아름다운 밀양으로 가는 길은 어디에 있나요
넉넉한 인정이 흐르고
작고 낮은 이들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그 땅은 어디에 있나요
자연과 인간이 흙과 감자처럼 조화롭게 어우러져 튼실히 익어갈 수 있는
그 생명의 땅은 어디에 있는가요

이시우 어른
유한숙 어른
입 좀 열어 얘기 좀 해주세요
왜 그렇게 말이 없으신가요
유한숙 어른께서 그 차디찬 냉동고를 나와
이제 그만 저 참된 우주의 밀알 하나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길은 어디에 있나요

그래요. 알겠어요
우리에겐 다른 빛이 필요하지요
어떤 폭력에도 굴욕에도 꺾이지 않는
존엄한 인간성이라는 그 영롱한 빛
어떤 핵분열도 따라 올 수 없는 그 연대의 빛
어떤 핵폭발도 따라 올 수 없는 분노의 빛
어른께서 놓아두고 간 그 생명의 빛

난 그 빛을 찾아 오늘도 꿈속마다
나의 밀양으로 끝없이 가고 있어요

▲ 마을에 어르신들이 같은 색깔의 옷을 입고 나오셔서 흥겨운 한마당을 가졌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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