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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대한 제 역사 인식은 여러분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문창극, 뒤늦게 위안부-전직 대통령 칼럼 사과... 진정성 의문

등록|2014.06.15 14:35 수정|2014.06.16 08:15
[기사보강 : 15일 오후 7시 46분]

▲ 문창극 총리 후보자가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 사무실 앞에서 위안부 발언 논란 등과 관련해 입장을 밝힌 뒤 고개숙여 인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각종 망언 논란에도 사과의 뜻을 밝히지 않던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15일 뒤늦게 고개를 숙였다. 일본 식민지배와 남북분단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발언해 물의를 빚은 지 나흘 만이다.

문 후보자는 자신의 일본군 위안부 발언으로 상처 입은 피해자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드린다"고 말했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모욕 논란을 두고도 "유족들과 국민들께 불편한 감정을 갖게 해드려 송구스럽다"고 전했다.

반면, '민족 비하' 발언 논란 등이 불거진 교회 강연 관련 해명은 '본래 취지와 다르게 왜곡됐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하는 수준에 그쳤다. 국민의 반대 여론에 대해서도 '모르쇠'로 일관하는 모습을 보여, 그의 이번 사과를 두고 진정성에 의문이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A4용지 2장에 해명 내용 정리... "말실수 할까봐"

문 후보자는 오후 2시 집무실이 마련된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 로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그동안의 논란과 관련해 해명했다. 본인이 직접 취재진 앞에 나서 구체적인 설명을 풀어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기자들의 질문에 몇 마디 답하고 떠나던 기존과 달리, 문 후보자는 이날 발언 내용을 A4용지 2장 분량으로 정리해왔다. "혹시 말실수 할까봐 두려워 메모해왔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리고는 미세하게 떨리는 손으로 종이를 잡고 준비해온 발언을 읽어 내려갔다.

"말할 수 없는 참담한 심정으로 며칠을 보냈다"고 말문을 연 문 후보자는 논란이 된 위안부 발언과 관련해 사과의 뜻을 밝혔다. 그는 지난 4월 서울대 강연에서 '일본으로부터 위안부 문제를 사과 받을 필요가 없다'고 발언한 사실이 드러나 비난에 휩싸였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도 직접 나서 "총리될 자격이 없다"고 강하게 질타했다.

문 후보자는 "(일본이) 진정한 사과를 하면 우리의 마음을 풀 수 있을 텐데, 그러면 양국이 앞으로 같이 나아갈 수 있을 텐데 하는 안타까운 마음에서 쓴 글"이라며 "그런 의미에서 당시 협상이 진실한 사과보다 금전적 배상에 치우친 것 같아 지적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그러나 본의와 다르게 상처 받으신 분들이 계시다는 걸 알았다"며 "그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모욕 논란을 일으킨 과거 칼럼을 두고도 유감을 표명했다. 그는 "김 전 대통령 관련 칼럼은 시중에 회자된 비자금 문제나 해외재산 도피 의혹에 대한 것"이었다며 "당시 김 전 대통령의 병세가 위중한 상황이어서 가족들과 그분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께 몹시 서운한 감정을 갖게 한 것은 사실"이라고 낮은 톤의 목소리로 말했다.

문 후보자는 노무현 전 대통령 관련 칼럼도 언급하며 "전직 대통령인 국가 원로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한 것은 공인의 행동으로는 적절하지 못했다는 것을 언론인으로서 지적한 것"이라며 "유족과 지인들에게 불편한 감정을 갖게 해드려 송구스럽다"고 고개 숙였다.

'하나님의 뜻' 발언 논란에는 별도로 사과 안 해

반면, 민족 비하 논란을 일으킨 교회 강연과 관련해 문 후보자는 "송구스럽다"고 밝히면서도 '본래 취지가 왜곡된 채 보도됐다'는 기존의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그는 지난 2011~2012년 자신이 장로로 있는 교회 강연에서 "일본 식민지배와 남북분단은 하나님의 뜻이다", "우리 민족은 게으르다"는 취지로 발언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문 후보자는 "(논란의 원인이) 저의 진심을 여러분들께 정확히 전달해드리지 못한 표현의 미숙함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글을 썼던 사람으로서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다소 격양된 목소리로 "교회 강연은 저희 교인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며 "기독교인들은 우리의 삶 모든 것에 하나님의 뜻 있다는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라고 발언 이유를 해명했다.

문 후보자는 "일본 식민지배와 남북분단이 하나님의 뜻이란 발언은 교회 안에서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과 나눈 역사의 종교적 인식"이라며 "식민지배와 분단이라는 시련을 통해 우리 민족이 더 강해졌고, 그 시련을 통해 우리는 해방을 맞으며 공산주의를 극복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민족 비하' 발언을 두고도 그는 "당시 조선 사람들이 일하지 않는 것은 양반들의 수탈 때문이었다고 한다"며 "나라가 잘 되기 위해서는 위정자들이 똑바로 해야 한다는 취지로 발언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문 후보자는 사퇴 없이 인사청문회까지 가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그는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것들은 모두 언론인 시절 언론인으로서 한 일이었다"며 "제가 이제 공직을 맡게 된다면 그에 맞는 역할과 몸가짐을 해야 한다고 믿는다, 저의 진심을 여러분들께서 알아주시기 간절히 바란다"고 강조했다.

"사퇴 여론 높다"는 질문에 "대통령께서 지명해주셨기 때문에..."

준비한 내용을 다 읽은 문 후보자는 취재진의 추가질문을 받지 않고 집무실로 이동했다. 그는 기자들을 향해 "(취재진 질문에는) 총리실 대변인을 통해서 말씀 드리겠다"며 "오늘은 이것으로 저를 놓아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당부했다.

자리를 뜨려는 문 후보자를 향해 "교회 강연 내용을 보도한 언론을 상대로 법적대응을 계속 진행할 것이냐"고 묻자, 그는 "총리실 관계자들과 상의하겠다"고 답했다. "문 후보자가 자진 사퇴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는 질문에는 "잘 모르겠다, 대통령께서 저를 지명해주셨기 때문에 그런 질문에 대답을 드릴 수가 없다"며 말을 아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날 문 후보자 사과에 대해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며 자진 사퇴를 촉구했다.

역사정의실천연대 상임대표인 한상권 덕성여대 교수는 이날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조선시대 역사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식민지배가 이뤄졌다는 인식을 여전히 드러내고 있다"며 "이런 논리는 일본이 식민지 역사를 정당화할 때 펼치는 것으로, 문 후보자는 여전히 문제의 심각성을 못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한 교수는 "언론인으로서는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지만, 국무총리로서는 자격이 없다"며 "적어도 총리는 우리 역사에 자긍심을 지닌 사람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도 이날 오후 성명을 통해 "국무총리 후보자의 식민사관 발언은 이념 문제를 떠나 심각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며 자진 사퇴를 촉구했다.

이들은 일본 배상 문제와 관련한 문 후보자의 해명을 언급하며 "'사과와 배상은 필요 없다'는 논리 찾기에 혈안이던 일본 우익정권에게 적당한 구실을 안겨주고 말았다"며 "아베 정부 인사는 물론, <산케이신문> 등 일본 우익언론들이 일제히 문창극 후보자를 두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결코 사과 몇 마디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외교현안을 정상으로 되돌리기 위해서라도 문창극은 사퇴해야 마땅하다고 본다"면서, 박근혜 정부를 향해 "한일관계와 일제피해자 문제에 상식적 견해를 지닌 인물을 기용하라"고 요구했다.

한편 문 후보자는 휴일인 이날도 청문회 준비에 매진한다는 방침이다. 청와대는 예정보다 하루 늦춰진 오는 17일 국회에 임명동의안과 인사청문요청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다음은 문 후보자의 발언 내용이다.

저는 평생 이 나라를 사랑하며 살아왔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가 잘 살게 될까 나름대로 고민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총리로 지명받은 다음날부터 갑자기 제가 반민족적인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저는 이 일이 도대체 무슨 일인지 놀랍고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한 말, 제가 쓴 글들에 대해 쏟아지는 비판을 보면서 몹시 당혹스럽고 놀라웠습니다.

그러나 며칠을 혼란 속에 지내면서 결국 이것은 저의 진심을 여러분들께 정확히 전달해드리지 못한 표현의 미숙함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글을 썼던 사람으로서 이 점을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저에게 쏟아지는 많은 의혹들에 대해 해명하지 않는다면 더 큰 오해와 불신이 생길 것 같아 몇 말씀 드리려 합니다.

온누리교회 강연은 저희 교인을 대상으로 한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우리의 삶 모든 것에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믿음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우리 대한민국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고난도 허락하시고 이를 통해 단련시키셨구나, 그 고난 속에서 길을 열어주셔서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게 된 것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조선민족이 게으르다는 말은 제 얘기가 아닙니다. 1894년 영국 왕립지리학회 회원인 비숍여사의 기행문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에 나옵니다. 비숍 여사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당시 조선 사람들이 일하지 않는 것은 양반들의 수탈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간도나 연해주로 이주간 조선인들은 자신이 일한만큼 모두 자기 것이 될 수 있었기 때문에 열심히 일했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 민족은 세계가 인정하는 부지런한 민족 아닙니까. 강연 내용을 보면 아시겠지만 저는 당시 조선 위정자들과 양반들의 행태와 처신을 지적하는 것이고 나라가 잘 되기 위해서는 위정자들이 똑바로 해야 한다는 취지로 발언한 것이었습니다. 나라는 무너지고 있는데 자신들의 안위만을 생각하고 백성들을 수탈하는 데만 열을 올리는 당시 위정자들 때문에 나라를 잃게 됐다는 점을 지적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세계 10위 경제 대국 아닙니까. 그것은 우리 국민이 얼마나 부지런했다는 것, 그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것 아닙니까.

일본에 대한 저의 역사인식은 여러분들과 하나도 다르지 않습니다. 위안부 문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일본이 진정한 사과를 먼저 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입니다. 위안부는 분명히 반인륜적인 범죄행위입니다.

저는 세 딸의 아버지입니다. 딸만 둔 아빠이기 때문에 이 문제는 마치 제가 지금 당하고 있는 것처럼 가슴이 찔리고 아픕니다. 누구보다 더 참담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분개하고 있습니다. '왜 일본은 독일처럼 사과를 하지 못할까, 왜 진정성 있게 사과하지 않을까, 그들의 진정한 사과로 우리의 마음을 풀 수 있을 텐데, 그러면 양국이 앞으로 같이 나아갈 수 있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에서 쓴 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진실한 사과가 전제되지 않고 금전적 배상에 치우친 것 같은 당시 협상에 대해 지적한 것입니다. 그러나 본의와 다르게 상처 받으신 분이 계시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일본 식민지배와 남북분단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도 그렇습니다. 이것은 일반 역사인식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과 나눈 역사의 종교적 인식이었습니다. 전체 강연 내용을 보면 아시겠지만, 우리 민족에게는 시련과 함께 늘 기회가 있었다는 취지의 강연을 한 것입니다.

식민지배와 분단이라는 시련을 통해 우리 민족이 더 강해졌습니다. 그 시련을 통해 우리는 해방을 맞았고, 공산주의를 극복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오늘의 부강한 대한민국이 됐습니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가장 큰 명제는 조국통일입니다. 통일도 이루어 질 것을 믿기에 우리 분단의 상황은 아프지만 견딜 수밖에 없다는 취지의 말이었습니다.

나라가 가난할 때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근면하고 절약하지만 번영이 오면 타락하고 부패하는 역사의 사이클을 막기 위해서도 도덕과 개혁의 나라가 돼야 한다, 특히 기독교인들에게 책임이 있다는 말을 한 것입니다.

두 분 대통령님에 대해 말씀 드려야겠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관련 칼럼은 당시 시중에 일부 회자된 비자금 문제나 해외재산 도피 의혹에 관한 것인데, 당시 김 대통령 병세가 위중한 상황이어서 가족분과 그 분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께 몹시 서운한 감정을 갖게 한 건 사실입니다.

노무현 대통령 관련 칼럼도 전직 대통령인 국가 원로가 자살이라는 극단적 방법 선택한 것은 공인의 행동으로는 적절치 못했다는 점을 언론인으로서 지적한 것입니다. 유족들과 국민들께 불편한 감정 갖게 해드려서 송구스럽습니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것들은 모두 언론인 시절 언론인으로서 한 일이었습니다. 제가 이제 공직을 맡게 된다면 그에 맞는 역할과 몸가짐을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저의 진심을 여러분들께서 알아주시길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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