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의 탁월한 능력, 국민은 당했다
[착한 정치컨설팅(30)]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총평② 세월호 참사 그 후
차분히 선거를 평가해야 하는데 자꾸 화가 납니다. 세월호의 아이들이 자꾸 생각이 나서입니다. 마땅히 단죄 받아야 하는 세력, 책임을 져야 할 사람, 문제를 해결해야만 하는 집단이 정치적 면죄부를 받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6.4 지방선거는 전대미문의 참사를 겪으면서 유래 없이 조용히 치러졌습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각 정치세력의 끊임없는 도발과 네거티브, 사안에 대한 전략적 접근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특히 새누리당의 정치 전략은 가히 새정치민주연합을 압도했습니다. 반추를 통해 교훈을 정립했으면 합니다. - 기자 말
세월호 침몰 참사 후 '가만히 있으라'는 저항의 언어가 만들어졌고, 사람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의 결과에 대해 보수언론들은 '황금분할'이나 '절묘한 선택'이라는 말장난을 합니다. 새누리당은 금방이라도 죽을 듯이 "머리에서 발끝까지 바꾸겠습니다"라며 무려 1인 시위를 감행합니다. 참 말도 안 되는 상황인데, 이게 먹혔답니다.
더 웃긴 장면은 이번 6·4 지방선거에 대해 양당은 모두 서로 '졌다'고 평가한다는 것입니다. 여당인 새누리당의 경우, 지난 11일 지방선거 결과를 평가하는 의원총회장에서 "새누리당의 전통적인 지지기반이 해체되고 있다는 위기감을 느낀다", "정서적으로 졌다"라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초재선 의원들은 이번 지방선거를 사실상 '패배한 선거'로 규정하고, 지도부 비판과 향후 대책 마련을 성토했다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양당의 지도부는 모두 무승부 혹은 그와 비슷한 인식을 하고 있는 것에 비해 일반 의원의 경우 서로 '졌다'고 우기고 있는 것이죠.
대한민국 전국 선거에서 이겼다와 졌다를 가를 기준이 어디인지에 대해 합의된 건 없습니다. 하지만, 제 개인적인 견해로는 이번 지방 선거는 새누리당의 강력한 선방, 새정치민주연합의 무기력한 패배, 그리고 진보정당들의 전멸, 국민들의 확실한 패배라고 규정짓고자 합니다.
도대체 무슨 이유인지, 무슨 조화를 부렸기에 세월호 심판이라는 어마어마한 어젠다가 던져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결론이 나왔을까요? 도저히 새누리당으로 이어지는 보수진영은 깰 수 없는 장벽일까요? 이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새누리당 선방의 이유①] 여전히 살아있는 '피난민 정서'의 파괴력
지난번에 <박근혜 지지율 '사상 최고'?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기사를 쓰고 나서 여기저기서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아무리 유시민씨의 말을 빌려 분석을 했다 하더라도 전쟁이 끝난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피난민 정서'를 이야기 하느냐란 것이지요.
하지만 저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분명히 피난민 정서가 그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속담에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라는 말이 있듯이 국가적인 위험이나 위기라고 느껴질 때(꼭 전쟁이 아니라 하더라도, 북의 도발이나 침공이 아니라 하더라도)는 나의 안전이 위협받는 것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마음은 이미 남쪽 난민촌으로 도망가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몸은 아파트에 살고 있으나 마음은 피난민이 되어 있는 상황.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다리와 아파트, 언제 사고 날지 모르는 지하철,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도시가스의 공포는 모두를 움츠러들게 합니다. 더군다나 매일 같이 세월호 사고 소식이 보도됐으니, 대한민국 국민이면 '패닉'에 빠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죠.
이 심리는 '대통령을 구해주세요'라든지 '대통령의 눈물을 닦아 줍시다'라는 등의 해괴한 논리와 결합합니다. 대통령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주고 곤경에 빠진 대통령을 구하면 '나'도 역시 구원받을 것이라는 저열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이는 후에 언급할 '메시아 정치'와도 연동이 되지요.
전쟁을 겪은 세대는 그 전쟁의 공포를 후세에게 전파합니다. 교과서에서 배우는 전쟁의 공포보다 아버지나 어머니께 듣는 전쟁의 공포는 더욱 살벌하고 무섭습니다. 지척거리에 북한이라는 '현존'하는 위험도 있는데 안전하다고 믿던 내 진영에 이렇게 무서운 사건이 벌어지게 되는 것에 대해 불안해하지 않을 국민은 없을 것입니다. 이중 삼중으로 엄습해오는 불안과 위험, 공포와 패닉 상태는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마음을 난민촌으로 인도합니다.
그 심리는 '국가는 과연 무엇인가?'하는 근본적인 질문과 엉키면서 당연히 정부여당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방해합니다. 생각이 복잡해지고 어지러워집니다. 여당이나 야당이나 다 그놈이 그놈 같고 믿음이 가지 않습니다. 투표하기도 싫어집니다. 사전투표 제도로 인해 훨씬 투표율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했지만 56.8%에 그친 것이 이를 증명합니다.
[새누리당 선방의 이유②] 심화된 메시아 정치의 구현
제 3시대 그리스도교연구소의 김진호 소장은 <메시아주의, 한국 정치의 어떤 열망>을 통해 다음과 같이 메시아주의 정치에 대해서 설명을 합니다.
"…(중략) 그것은 1997년 이후의 박정희 담론과 2009년 이후의 노무현 담론이 다분히 종교적 성격을 갖고 있다는 나의 판단과 관련이 있다. …(중략) 여기서 '매개자'들의 역할이 주목된다. 정치에 대한 종교적 성향이 강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매개자는 사람들에게 구체적인 정치 행위 속에 참여하도록 유인하는 '장치의 제공자'(frame agents)다. 그들은 직업적 정치가들일 수도 있고 언론매체의 전문가들일 수도 있으며, 문필가들일 수도 있다. 아무튼 그들은 대중의 종교적 상상력을 결집시키고 정치적인 행동으로 전화되도록 이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정치적 담론은 다분히 대중의 종교성을 극화하는 경향이 있다. '메시아주의 정치'라는 극단적인 종교화된 정치담론은 이런 맥락에서 탄생한다."- 김진호, 2012년 메시아주의 한국정치의 어떤 열망 중
박정희든 노무현이든 사회경제적 조건에 따라 메시아를 찾는 대중의 열망이 더욱 커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매개자'로 박근혜가 직접 '생물학적' 딸임은 물론 '정치적' 후계임을 간택(달성 출마)받은 1997년부터 박정희 담론이 떠오르기 시작했다는 것은 참 의미심장한 일입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직접 선거운동을 하지 않았을 뿐이지 실제로는 메시아로서 대중의 갈망을 구현하기 위해 전면에 나섰습니다. 어쩌면 더욱 종교성이 강한 메시아의 모습으로 등장한 것입니다. 세월호 사고는 박근혜 정권의 입장에서는 처치해야 하는 적폐(積弊)일 뿐이지 자신의 책임은 아닌 것입니다. 마땅히 사탄은 응징 당해야 하는 것이고 그 구체적인 사탄의 이름은 '유병언'이며 또 동시에 박 정권을 반대하는 이들입니다.
추락하는 지지율이나 눈물을 흘리는 모습... 마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연상케 합니다. 이런 상황이니 당연히 '대통령을 구해 주세요'라든지 '대통령의 눈물을 닦아 줍시다'라는 논리가 통용이 되는 겁니다. 대통령의 눈물을 닦아주면 선거라는 과정을 거쳐 화려하게 부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새누리당 선방의 이유③] 지독한 새정치민주연합의 무기력
안철수-김한길 조합이 야권의 새로운 리더십인지 아닌지 도통 모르겠습니다. 선거는 지지하는 유권자의 집단 패싸움이고 여기에 가담하지 않는 중도층 유권자의 가담에 따라 선거의 승패가 갈린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래서 확장성이 중요하다고 했지요. 내가 이 정당(혹은 후보자)을 지지하게 되면 마음이 흡족하다, 경제적으로 이익이 생긴다, 사회적 정의를 실현할 수 있다, 한국사회가 발전할 것이다 등 개별 유권자가 지지할 이유가 뚜렷하다는 것이지요. 그 확장성의 요인을 파악하기 위해 정치인과 정당은 그 시대의 정신과 유권자의 트렌드, 심리 등을 정확하게 꿰뚫어보고 리드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1986년 '이민우 파동'을 계기로 김대중-김영삼으로 불리는 야당의 큰 주주가 신민당을 깨고 '통일민주당'을 창당하며 나온 이유는 당시의 시대정신은 전두환 독재에 저항을 해서 직선제를 쟁취하는 것이고 이민우 총재처럼 적당히 타협해서 '내각제 개헌'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민우의 어정쩡한 모습이 중도노선도 아니며 중도층에 어필을 해서 '확장성'을 가지게 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안철수 대표의 표현에 의하면 그저 '싸우지 말자'에 머문 것이죠. 싸우지 않으려면 싸우지 않고도 이길 수 있는 전략을 세워야 합니다. 국민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 정도로 '비둘기'처럼 순결해야 하지만, 싸우지 않아도 이길 수 있을 정도로 '뱀'처럼 지혜로워야 하는 것입니다.
혹자는 안철수-김한길 두 사람 외에 TV에 나와서 활동하는 모습을 보여준 사람이 있느냐? 이번 선거 결과를 어찌 이 둘에게 물을 수 있느냐고도 하지만, 이 둘은 정당 대표이기 때문에 TV에 활동상황이 나온 것일 뿐, 새누리의 대안, 수권정당으로서 대체권력의 적자(嫡子)로 인정받았다고 보기에는 어렵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새누리당이 신승을 거둔 원인은 새정치민주연합이 가진 극도의 무력함 때문이며 그 원인은 안-김 조합의 리더십 실종 때문입니다(물론 국회 과반수가 걸려 있는 7·30 재·보궐선거까지는 이 둘이 무사히 선거를 마쳤으면 합니다. 그 다음 내부 권력투쟁을 해도 늦지 않습니다. 지금 싸우는 것은 적전 분열입니다).
[새누리당 선방의 이유④] 공세적이고 탁월한 선거 전략과 소구력
평소에 저는 새누리당의 정치컨설팅 능력이 탁월하다고 이야기를 해 왔습니다만, 정말 명불허전! 새누리당의 정치컨설팅 능력은 군계일학이었습니다. 새누리당은 자신의 표를 지키면서 상대방 표를 깨고 그리고 남아있는 부동층 표를 흡수하는데 아주 탁월한 실행능력을 지녔습니다.
그 탁월한 실행능력의 정점은 30여 초 동안 눈 깜박거리지 않기 신공을 통해 눈물을 보여주며 소위 지지자를 결집시키는 '자기 표 지키기' 전략입니다. 토끼들이 도망가는 상황에서 우선순위를 '집토끼'부터 잡고, 그 다음엔 끊임없는 종북몰이를 통해 '상대 표 깨기' 전략을 실행하고 마지막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꾸겠다"는 다짐과 1인시위로 '부동층 흡수하기'까지... 철저한 계산속에 진행되었습니다.
더 경악스러운 것은 원래 자기 '식구'도 아니지만 도움이 될 만한 구석이 있다고 판단하여 영입한 조동원이라는 사람의 '1인 시위' 제안을 김세연 선대위 종합상황실장, 윤상현 사무총장, 박대출 대변인 등 새누리당 당직자들은 물론이요, 김무성, 나경원, 손수조 등 등 언론에 나올만한 사람들은 다 나와서 '도와주십시오'하고 표 구걸을 했다는 점입니다. 일사분란 한 이런 모습은 지지부진한 새정치민주연합과 대비됩니다.
어쩌면 '탁월한 정치컨설팅 능력'은 '뻔뻔함'과 동의어일지 모르겠습니다. 선거 시기에 흘린 '눈물'이 마르지도 않은 채 선거가 끝나자마자 밀양 송전탑 반대 농성장을 밀어버리고 그 나물에 그 밥 '회전문' 인사로 국민들의 기대를 꺾었습니다. 어이없는 현실에 국민은 넋이 나가지만 새누리당은 꿈쩍도 않습니다. 새누리당의 선거 전략은 공세적이었으며 탁월했습니다. 과감한 소구력을 보였으며 원하는 만큼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에 비해 새정치민주연합은 무기력했습니다. 그게 어쩌면 전공(專攻)일지 모르겠습니다.
[새누리당 선방의 이유⑤] 언론의 적극적인 외조(外助)
세월호 참사를 '언론 대참사'라고도 부릅니다. 기레기(기자+쓰레기)라는 유행어가 생기고 기자들과 카메라맨들이 곳곳에서 수난을 당합니다. 푸대접을 받는 이유는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언론은 언론이기를 포기한 '사회적 흉기'일 수밖에 없지요. 이번 지방선거에서 일부 언론은 정부여당에 대한 외조를 톡톡히 했습니다.
예를 들어 정몽준 vs 박원순의 대결에서 언론은 벌어진 사건의 전후맥락을 다 버리고 오로지 '농약'만 채택했습니다. 특히 지난 5월 28일, 검찰이 서울시친환경센터에 대한 압수수색과 수사를 중단했을 때 일부 언론은 충견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 압수수색의 핵심은 오세훈 전 시장 재임당시의 직원비리를 빌미로 전개된 것인데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물론 새누리마저 비판하자 검찰이 중단을 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방송들은 오보를 내거나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보도로 시청자들에게 혼란을 줬습니다.
다음은 민주언론시민연합과 전국언론노동조합이 꾸린 '공정선거보도감시단'의 제16차 보고서의 목차입니다.
1) '농약급식'만 부풀리는 방송, '관권개입 의혹'에는 모르쇠
2) 유독 정몽준 후보에게만 유리한 언론보도
3) 조선, 동아는 여당의 '선거 전략실'을 자처 하는가
4) 청와대 비서실은 '방송사'가 지키겠습니다.
5) 보수언론, "세월호의 모든 책임은 유병언이다."
6) 6일 남은 선거운동기간, 선거보도 늘리고 제대로 알려라
7) [지역_부산] 후보 '입'과 '발'만 쫓는 지역신문
목차만 봐도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 정도입니다. 편파적인 언론보도는 매번 선거 때마다 나오는 '기울어진 운동장'의 대표적인 문제입니다.
선거가 끝나자마자 박근혜 대통령은 2기 내각을 꾸리면서 친박을 전면 배치했습니다. 문창극 총리후보자, 이병기 국가정보원장 후보자 등 대부분의 인사들이 정권에 충실할 사람들이지 국민에게 충실할 사람들이 아니라는 평입니다.
선거가 끝나자마자 정부당국은 밀양 송전탑 반대 농성장을 철거하는 행정대집행을 강행했습니다. 할머니들과 수녀님들을 짐승 다루듯 취급했습니다. 또 영리자법인 허용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부대사업 확대를 위한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하는 등 의료영리화 정책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바꾸겠다고, 국민들을 섬기겠다고 호헌장담을 하던 모습은 자취를 감췄고, 국민들을 바보로 만들었습니다.
7·30 재보궐 선거가 또 목전에 있습니다. 정치권은 또 난리를 칠 것입니다. 하지만 속지 맙시다.
세월호 침몰 참사 후 '가만히 있으라'는 저항의 언어가 만들어졌고, 사람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의 결과에 대해 보수언론들은 '황금분할'이나 '절묘한 선택'이라는 말장난을 합니다. 새누리당은 금방이라도 죽을 듯이 "머리에서 발끝까지 바꾸겠습니다"라며 무려 1인 시위를 감행합니다. 참 말도 안 되는 상황인데, 이게 먹혔답니다.
▲ "도와주세요" 대 "표 구걸?"6.4지방선거를 하루 앞둔 3일 오후 손수조 새누리당 당협위원장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도와주세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꾸겠습니다. '부산'을 믿어요! 손수조'가 적힌 피켓을 놓고 절을 하고 있다. 옆에서는 '중·고생 엄마'라고 밝힌 시민이 '오늘 세월호 49재. 세월호 아이들이, 유가족들이 살려달라 울부짖을 때 당신들은 도와주었나요? 도와주세요?? 표 구걸?? 16명의 실종자 찾아주세요'가 적힌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 권우성
더 웃긴 장면은 이번 6·4 지방선거에 대해 양당은 모두 서로 '졌다'고 평가한다는 것입니다. 여당인 새누리당의 경우, 지난 11일 지방선거 결과를 평가하는 의원총회장에서 "새누리당의 전통적인 지지기반이 해체되고 있다는 위기감을 느낀다", "정서적으로 졌다"라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초재선 의원들은 이번 지방선거를 사실상 '패배한 선거'로 규정하고, 지도부 비판과 향후 대책 마련을 성토했다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양당의 지도부는 모두 무승부 혹은 그와 비슷한 인식을 하고 있는 것에 비해 일반 의원의 경우 서로 '졌다'고 우기고 있는 것이죠.
대한민국 전국 선거에서 이겼다와 졌다를 가를 기준이 어디인지에 대해 합의된 건 없습니다. 하지만, 제 개인적인 견해로는 이번 지방 선거는 새누리당의 강력한 선방, 새정치민주연합의 무기력한 패배, 그리고 진보정당들의 전멸, 국민들의 확실한 패배라고 규정짓고자 합니다.
도대체 무슨 이유인지, 무슨 조화를 부렸기에 세월호 심판이라는 어마어마한 어젠다가 던져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결론이 나왔을까요? 도저히 새누리당으로 이어지는 보수진영은 깰 수 없는 장벽일까요? 이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새누리당 선방의 이유①] 여전히 살아있는 '피난민 정서'의 파괴력
지난번에 <박근혜 지지율 '사상 최고'?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기사를 쓰고 나서 여기저기서 많은 비판을 받았습니다. 아무리 유시민씨의 말을 빌려 분석을 했다 하더라도 전쟁이 끝난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피난민 정서'를 이야기 하느냐란 것이지요.
하지만 저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분명히 피난민 정서가 그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속담에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라는 말이 있듯이 국가적인 위험이나 위기라고 느껴질 때(꼭 전쟁이 아니라 하더라도, 북의 도발이나 침공이 아니라 하더라도)는 나의 안전이 위협받는 것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마음은 이미 남쪽 난민촌으로 도망가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몸은 아파트에 살고 있으나 마음은 피난민이 되어 있는 상황.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다리와 아파트, 언제 사고 날지 모르는 지하철,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도시가스의 공포는 모두를 움츠러들게 합니다. 더군다나 매일 같이 세월호 사고 소식이 보도됐으니, 대한민국 국민이면 '패닉'에 빠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죠.
이 심리는 '대통령을 구해주세요'라든지 '대통령의 눈물을 닦아 줍시다'라는 등의 해괴한 논리와 결합합니다. 대통령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주고 곤경에 빠진 대통령을 구하면 '나'도 역시 구원받을 것이라는 저열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이는 후에 언급할 '메시아 정치'와도 연동이 되지요.
▲ 대구시장 선거에 등장한 '박근혜 눈물'6.4지방선거 선거운동 마지막날인 지난 3일 오후 대구 동성로에서 열린 권영진 새누리당 대구시장 후보 거리유세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눈물 사진이 포스터에 사용되고 있다. ⓒ 이희훈
전쟁을 겪은 세대는 그 전쟁의 공포를 후세에게 전파합니다. 교과서에서 배우는 전쟁의 공포보다 아버지나 어머니께 듣는 전쟁의 공포는 더욱 살벌하고 무섭습니다. 지척거리에 북한이라는 '현존'하는 위험도 있는데 안전하다고 믿던 내 진영에 이렇게 무서운 사건이 벌어지게 되는 것에 대해 불안해하지 않을 국민은 없을 것입니다. 이중 삼중으로 엄습해오는 불안과 위험, 공포와 패닉 상태는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마음을 난민촌으로 인도합니다.
그 심리는 '국가는 과연 무엇인가?'하는 근본적인 질문과 엉키면서 당연히 정부여당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방해합니다. 생각이 복잡해지고 어지러워집니다. 여당이나 야당이나 다 그놈이 그놈 같고 믿음이 가지 않습니다. 투표하기도 싫어집니다. 사전투표 제도로 인해 훨씬 투표율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했지만 56.8%에 그친 것이 이를 증명합니다.
[새누리당 선방의 이유②] 심화된 메시아 정치의 구현
제 3시대 그리스도교연구소의 김진호 소장은 <메시아주의, 한국 정치의 어떤 열망>을 통해 다음과 같이 메시아주의 정치에 대해서 설명을 합니다.
"…(중략) 그것은 1997년 이후의 박정희 담론과 2009년 이후의 노무현 담론이 다분히 종교적 성격을 갖고 있다는 나의 판단과 관련이 있다. …(중략) 여기서 '매개자'들의 역할이 주목된다. 정치에 대한 종교적 성향이 강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매개자는 사람들에게 구체적인 정치 행위 속에 참여하도록 유인하는 '장치의 제공자'(frame agents)다. 그들은 직업적 정치가들일 수도 있고 언론매체의 전문가들일 수도 있으며, 문필가들일 수도 있다. 아무튼 그들은 대중의 종교적 상상력을 결집시키고 정치적인 행동으로 전화되도록 이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정치적 담론은 다분히 대중의 종교성을 극화하는 경향이 있다. '메시아주의 정치'라는 극단적인 종교화된 정치담론은 이런 맥락에서 탄생한다."- 김진호, 2012년 메시아주의 한국정치의 어떤 열망 중
박정희든 노무현이든 사회경제적 조건에 따라 메시아를 찾는 대중의 열망이 더욱 커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매개자'로 박근혜가 직접 '생물학적' 딸임은 물론 '정치적' 후계임을 간택(달성 출마)받은 1997년부터 박정희 담론이 떠오르기 시작했다는 것은 참 의미심장한 일입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직접 선거운동을 하지 않았을 뿐이지 실제로는 메시아로서 대중의 갈망을 구현하기 위해 전면에 나섰습니다. 어쩌면 더욱 종교성이 강한 메시아의 모습으로 등장한 것입니다. 세월호 사고는 박근혜 정권의 입장에서는 처치해야 하는 적폐(積弊)일 뿐이지 자신의 책임은 아닌 것입니다. 마땅히 사탄은 응징 당해야 하는 것이고 그 구체적인 사탄의 이름은 '유병언'이며 또 동시에 박 정권을 반대하는 이들입니다.
추락하는 지지율이나 눈물을 흘리는 모습... 마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연상케 합니다. 이런 상황이니 당연히 '대통령을 구해 주세요'라든지 '대통령의 눈물을 닦아 줍시다'라는 논리가 통용이 되는 겁니다. 대통령의 눈물을 닦아주면 선거라는 과정을 거쳐 화려하게 부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새누리당 선방의 이유③] 지독한 새정치민주연합의 무기력
▲ 새정치민주연합 김한길, 안철수 공동대표가 지난 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리는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 권우성
안철수-김한길 조합이 야권의 새로운 리더십인지 아닌지 도통 모르겠습니다. 선거는 지지하는 유권자의 집단 패싸움이고 여기에 가담하지 않는 중도층 유권자의 가담에 따라 선거의 승패가 갈린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래서 확장성이 중요하다고 했지요. 내가 이 정당(혹은 후보자)을 지지하게 되면 마음이 흡족하다, 경제적으로 이익이 생긴다, 사회적 정의를 실현할 수 있다, 한국사회가 발전할 것이다 등 개별 유권자가 지지할 이유가 뚜렷하다는 것이지요. 그 확장성의 요인을 파악하기 위해 정치인과 정당은 그 시대의 정신과 유권자의 트렌드, 심리 등을 정확하게 꿰뚫어보고 리드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1986년 '이민우 파동'을 계기로 김대중-김영삼으로 불리는 야당의 큰 주주가 신민당을 깨고 '통일민주당'을 창당하며 나온 이유는 당시의 시대정신은 전두환 독재에 저항을 해서 직선제를 쟁취하는 것이고 이민우 총재처럼 적당히 타협해서 '내각제 개헌'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민우의 어정쩡한 모습이 중도노선도 아니며 중도층에 어필을 해서 '확장성'을 가지게 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번 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도 저도 아닌 어정쩡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안철수 대표의 표현에 의하면 그저 '싸우지 말자'에 머문 것이죠. 싸우지 않으려면 싸우지 않고도 이길 수 있는 전략을 세워야 합니다. 국민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 정도로 '비둘기'처럼 순결해야 하지만, 싸우지 않아도 이길 수 있을 정도로 '뱀'처럼 지혜로워야 하는 것입니다.
혹자는 안철수-김한길 두 사람 외에 TV에 나와서 활동하는 모습을 보여준 사람이 있느냐? 이번 선거 결과를 어찌 이 둘에게 물을 수 있느냐고도 하지만, 이 둘은 정당 대표이기 때문에 TV에 활동상황이 나온 것일 뿐, 새누리의 대안, 수권정당으로서 대체권력의 적자(嫡子)로 인정받았다고 보기에는 어렵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새누리당이 신승을 거둔 원인은 새정치민주연합이 가진 극도의 무력함 때문이며 그 원인은 안-김 조합의 리더십 실종 때문입니다(물론 국회 과반수가 걸려 있는 7·30 재·보궐선거까지는 이 둘이 무사히 선거를 마쳤으면 합니다. 그 다음 내부 권력투쟁을 해도 늦지 않습니다. 지금 싸우는 것은 적전 분열입니다).
[새누리당 선방의 이유④] 공세적이고 탁월한 선거 전략과 소구력
평소에 저는 새누리당의 정치컨설팅 능력이 탁월하다고 이야기를 해 왔습니다만, 정말 명불허전! 새누리당의 정치컨설팅 능력은 군계일학이었습니다. 새누리당은 자신의 표를 지키면서 상대방 표를 깨고 그리고 남아있는 부동층 표를 흡수하는데 아주 탁월한 실행능력을 지녔습니다.
그 탁월한 실행능력의 정점은 30여 초 동안 눈 깜박거리지 않기 신공을 통해 눈물을 보여주며 소위 지지자를 결집시키는 '자기 표 지키기' 전략입니다. 토끼들이 도망가는 상황에서 우선순위를 '집토끼'부터 잡고, 그 다음엔 끊임없는 종북몰이를 통해 '상대 표 깨기' 전략을 실행하고 마지막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꾸겠다"는 다짐과 1인시위로 '부동층 흡수하기'까지... 철저한 계산속에 진행되었습니다.
더 경악스러운 것은 원래 자기 '식구'도 아니지만 도움이 될 만한 구석이 있다고 판단하여 영입한 조동원이라는 사람의 '1인 시위' 제안을 김세연 선대위 종합상황실장, 윤상현 사무총장, 박대출 대변인 등 새누리당 당직자들은 물론이요, 김무성, 나경원, 손수조 등 등 언론에 나올만한 사람들은 다 나와서 '도와주십시오'하고 표 구걸을 했다는 점입니다. 일사분란 한 이런 모습은 지지부진한 새정치민주연합과 대비됩니다.
어쩌면 '탁월한 정치컨설팅 능력'은 '뻔뻔함'과 동의어일지 모르겠습니다. 선거 시기에 흘린 '눈물'이 마르지도 않은 채 선거가 끝나자마자 밀양 송전탑 반대 농성장을 밀어버리고 그 나물에 그 밥 '회전문' 인사로 국민들의 기대를 꺾었습니다. 어이없는 현실에 국민은 넋이 나가지만 새누리당은 꿈쩍도 않습니다. 새누리당의 선거 전략은 공세적이었으며 탁월했습니다. 과감한 소구력을 보였으며 원하는 만큼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에 비해 새정치민주연합은 무기력했습니다. 그게 어쩌면 전공(專攻)일지 모르겠습니다.
[새누리당 선방의 이유⑤] 언론의 적극적인 외조(外助)
▲ 웃음꽃 핀 새누리당 지도부새누리당 주호영 정책위의장, 이완구 비대위원장, 윤상현 사무총장이 지난 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회의에서 참석자들과 웃음을 터뜨리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권우성
세월호 참사를 '언론 대참사'라고도 부릅니다. 기레기(기자+쓰레기)라는 유행어가 생기고 기자들과 카메라맨들이 곳곳에서 수난을 당합니다. 푸대접을 받는 이유는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언론은 언론이기를 포기한 '사회적 흉기'일 수밖에 없지요. 이번 지방선거에서 일부 언론은 정부여당에 대한 외조를 톡톡히 했습니다.
예를 들어 정몽준 vs 박원순의 대결에서 언론은 벌어진 사건의 전후맥락을 다 버리고 오로지 '농약'만 채택했습니다. 특히 지난 5월 28일, 검찰이 서울시친환경센터에 대한 압수수색과 수사를 중단했을 때 일부 언론은 충견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 압수수색의 핵심은 오세훈 전 시장 재임당시의 직원비리를 빌미로 전개된 것인데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물론 새누리마저 비판하자 검찰이 중단을 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방송들은 오보를 내거나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보도로 시청자들에게 혼란을 줬습니다.
다음은 민주언론시민연합과 전국언론노동조합이 꾸린 '공정선거보도감시단'의 제16차 보고서의 목차입니다.
1) '농약급식'만 부풀리는 방송, '관권개입 의혹'에는 모르쇠
2) 유독 정몽준 후보에게만 유리한 언론보도
3) 조선, 동아는 여당의 '선거 전략실'을 자처 하는가
4) 청와대 비서실은 '방송사'가 지키겠습니다.
5) 보수언론, "세월호의 모든 책임은 유병언이다."
6) 6일 남은 선거운동기간, 선거보도 늘리고 제대로 알려라
7) [지역_부산] 후보 '입'과 '발'만 쫓는 지역신문
목차만 봐도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 정도입니다. 편파적인 언론보도는 매번 선거 때마다 나오는 '기울어진 운동장'의 대표적인 문제입니다.
선거가 끝나자마자 박근혜 대통령은 2기 내각을 꾸리면서 친박을 전면 배치했습니다. 문창극 총리후보자, 이병기 국가정보원장 후보자 등 대부분의 인사들이 정권에 충실할 사람들이지 국민에게 충실할 사람들이 아니라는 평입니다.
선거가 끝나자마자 정부당국은 밀양 송전탑 반대 농성장을 철거하는 행정대집행을 강행했습니다. 할머니들과 수녀님들을 짐승 다루듯 취급했습니다. 또 영리자법인 허용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부대사업 확대를 위한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하는 등 의료영리화 정책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바꾸겠다고, 국민들을 섬기겠다고 호헌장담을 하던 모습은 자취를 감췄고, 국민들을 바보로 만들었습니다.
7·30 재보궐 선거가 또 목전에 있습니다. 정치권은 또 난리를 칠 것입니다. 하지만 속지 맙시다.
덧붙이는 글
다음 글은 전체 마무리로 6.4 지방선거에서 대거 당선된 진보교육감의 의미, 그리고 우리의 미래 희망을 이야기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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