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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걸 다하는 남편? 이번엔 오이장아찌 무침

"여보, 다음엔 꼭 100점 받을 게"

등록|2014.06.16 11:02 수정|2014.06.16 11:05
저는 대전역 앞과 옆에 각각 위치한 전통시장인 중앙시장과 역전시장을 자주 애용합니다. 그래서 일단 시장에 들어서면 그날의 장바구니 물가를 금세 간파할 수 있는 눈까지 키웠지요.

2주 전에 역전시장에 가니 오이의 가격이 아주 착했습니다. 4개에 1천 원이라기에 5천 원어치를 샀지요. 그걸 집에 가지고 와서 주전자에 소금을 넉넉히 넣어 끓였습니다. 그 소금물을 식혀 항아리에 넣은 뒤 오이를 담갔습니다.

그 중 세 개의 오이를 어제 꺼냈지요. 그리곤 찧은 마늘과 들기름, 고춧가루와 통깨 등을 넣어 조물조물 무쳤습니다.

▲ 냉큼 안방으로 달려가 아내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하지만 제가 만든 오이장아찌 무침은 아내로부터 겨우 80점만 받을 수 있었지요. ⓒ 홍경석


"여보~ 오이장아찌 무침 했으니까 한번 먹어봐."

허리와 어깨수술까지 받고 두문불출하는 아내는 여전히 저의 보살핌이 절대적입니다.

"일으켜 줘야 먹어보든 말든 하지!"

냉큼 안방으로 달려가 아내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하지만 제가 만든 오이장아찌 무침은 아내로부터 겨우 80점만 받을 수 있었지요.

"오이를 무칠 때 물기를 쪽 짜내야 하는데 덜 짜는 바람에 식감이 안 좋다."는 평가를 받은 때문이죠.

"당신 말만 들고 처음으로 해본 거니까 이해하고 먹어, 다음엔 꼭 100점 받을 테니까."

오늘도 퇴근길에 중앙시장에 들러 오징어와 근대, 아욱과 호박잎 등을 샀습니다. 그리곤 서둘러 오징어 불고기를 만들었죠. 먼저 양파를 손질하여 프라이팬에 넣고 고추장과 청양고추, 올리브유와 얼마 전 초등학교 동창들과 찾은 만리포해수욕장 지척의 모항항에서 구입한 태안산 바지락도 넣었지요.

마지막으론 콩나물도 한 움큼 넣었는데 시원하고 얼큰하며 맛까지 환상적이었습니다. "맛이 어때?" 아내는 비로소 100점을 주더군요. 자화자찬 같아 면구스럽지만 저는 요리를 잘 합니다.

제가 요리를 잘 하는 것은 너무도 일찍 여읜 어머니의 부재 때문이었습니다. 아들보다 술을 더 좋아하신 홀아버지와 살자니 저라도 요리하는 방법을 터득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었죠.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지은 지가 20년도 더 된 누옥입니다. 물론 저의 집도 아니고 전세를 삽니다. 주방의 턱이 너무 높은 까닭에 아내는 도무지 들어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요즘도 제가 만날 밥과 반찬까지 만들어 턱이 없는 거실의 탁자에 상을 차려주고 출근하지요. 아무튼 이 때문에 조만간 이사를 합니다. 그런데 돈에 맞추려니 조그만 방밖에 안 나오네요.

어쨌거나 이사를 가는 집에선 아내의 병이 조속히 쾌차하길 바랍니다. 이사를 하더라도 지금과 같이 별의별 음식과 반찬까지 다하는 남편의 역할은 여전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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