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교사는 노동자인가, 아닌가 전교조에 대한 법원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

[분석] 25년 전 '교사 단결권' 논쟁 되살린 법외노조 통보 취소소송 1심 판결

등록|2014.06.21 12:49 수정|2014.06.21 12:49

▲ 24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전국교직원노동조합 회의실에서 전교조 관계자들이 '전교조 노동조합 설립취소에 대한 정부의 개입 중단'을 요구하는 '민주주의 말살 전교조 탄압 규탄 및 총력 투쟁 선포 전교조 기자회견을 연 가운데 '참교육'이 적혀 있는 전교조 로고가 보인다. ⓒ 이희훈


교사는 노동자인가, 아닌가. 법원은 이 해묵은 질문을 다시 던지고 있다.

19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부장판사 반정우)는 고용노동부(장관 방하남)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위원장 김정훈)은 노조 아님' 통보는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조합원 자격이 없는 해직교사가 단 1명이라도 있다면, 교사 수만 명의 단결권을 인정할 수 없다는 뜻이다.

재판부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과 '교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교원노조법)'이 해고자의 노조 가입을 제한하고 있음을 거듭 강조했다. 또 산별노조는 해직자나 구직자가 가입할 수 있지만, 교원노조법은 '현직 교원'에게만 조합원 자격이 있기 때문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관련 기사 : "노조 아님"... 법원이 말하는 전교조 완패 4가지 이유).

그런데 법원은 '교사는 다르다'를 전제로 내세웠다. 근거는 '교사는 노동자가 아니다'라는 전교조 가입 교사 1500명이 해고당하던 시절 헌법재판소가 내린 결론이었다. 1991년 7월 헌재는 교원의 노조활동을 금지한 사립학교법 조항을 합헌으로 결정했다. "교원 지위의 특수성과 역사적 현실을 종합, 공공의 이익인 교육제도의 본질을 지키기 위한 입법자의 결정"이란 이유였다.

하지만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의 교육부문을 평가하며 교사들의 단결권을 인정하라고 권고했고, 그로부터 3년 뒤인 1999년 교원노조법이 만들어지며 전교조는 합법노조가 됐다.

결국 19일 판결은 '교원노조는 불법이냐 아니냐'던 1989년 전교조 출범 당시 논쟁에 다시 불을 붙인 셈이다.

91년 헌재 판결 다시 꺼낸 법원

또 재판부는 노조의 자주성은 노조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데에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판결문에 "(노조가 아닌 경우를 정한) 노조법 2조 4호에 해당하는 사유가 발생하면 노조가 실질적으로 자주성을 갖추고 있는지와 무관하게 노조로 보지 않는 해석이 이 조항에 부합한다"고 못 박아버렸다.

교육부·고용노동부장관, 전교조 '법외노조' 발표방하남 고용노동부장관과 서남수 교육부장관이 24일 오후 과천 고용노동부에서 합동브리핑을 열어, 해직자 노조 가입 규약 시정을 거부한 전교조의 법적지위가 상실되어 '법외노조'가 되었음을 발표하고 있다. ⓒ 권우성


노조법은 노조를  '근로자가 주체가 되어 자주적으로 단결, 근로 조건 유지·개선 등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로 정하고 있다. 자주성은 기본 요건 중 하나다. 그런데 이번 판결은 '상관없다'며 '자격 없는 조합원이 단 한 명만 있어도 법외노조'라고 했다. 내용보다 형식이 중요하다는 논리다.

전교조 변호인단에 참여한 신인수 변호사는 "(조합원 자격 등은) 결국 노조의 자주성 문제인데 그건 정부나 법원이 판단할 게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전교조는 6만 명 조합원이 총투표로 해직자를 쫓아내기 싫다고 했다"며 "정부 말대로 해야 한다면 노조법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강영구 변호사도 "어용노조를 막는다는 입법 취지도 무시됐다"고 말했다.

고용부의 법외노조 통보는 '확인절차'일 뿐이라는 재판부의 판단도 의아하다. 법원은 자격 없는 조합원이 가입하는 즉시 전교조는 법외노조가 된다고 했다. 해직조합원이 생기자마자 전교조는 그 이름을 쓸 수 없고,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하거나 노조 전임자를 둘 수 없다는 뜻이다. 당연히 단체교섭권과 단체협약 체결권도 사라진다.

그런데 이번에 문제된 해직교사 9명의 퇴직 날짜 중 가장 빠른 때는 2004년 3월 11일이었다. 판결대로라면 전교조는 애초부터 '무효'인 단체교섭 등 각종 활동에 10년이란 시간을 허비한 셈이다.

6월 23일 2라운드 시작

판결 법정 들어서는 김정훈 위원장김정훈 전국교육직원노동조합 위원장이 1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에서 열린 법외노조 통보 취소소송 1심 판결을 지켜보기 위해 법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이날 김 위원장은 "법외노조 통보 취소소송 1심 재판부의 판결은 한 나라의 주권자의 권력 남용이 무지막지하게 적용되면 민주주의가 얼마만큼 후퇴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판결이다"고 규탄했다. ⓒ 유성호


다른 법적 쟁점 역시 남아 있다. 전교조는 이 사건의 발단이었던 고용부의 시정명령 자체가 위법이라고 주장했다. 노조법에 따르면 정부는 노조에 규약 시정 명령은 할 수 있다.

그런데 지난해 9월 23일 자 고용노동부 시정명령에는 '해직교사의 가입을 허용한 규약을 고치라'는 내용만 담겨있지 않았다. 변호인단은 여기에 '조합원 자격이 없는 사람이 가입·활동하지 않도록 하라'는 것까지 들어간 점을 지적하며 "법외노조 통보의 전제조건인 시정명령부터 위법"이라고 주장해왔다.

1심 재판부는 이 부분을 명확히 따지지 않았기 때문에 항소심 쟁점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 헌재가 전교조의 헌법소원(교원노조법 2조)을 어떻게 판단할지도 지켜봐야 한다.

전교조는 오는 23일(월) 항소장과 법외노조 통보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낸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