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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죽음이 의사탓? 사기 진료에 맞서 싸우는 판사

[서평] 현직 판사 정재민씨가 쓴 소설 <보헤미안 랩소디>

등록|2014.06.28 15:14 수정|2014.06.28 15:14
류마티스와 위암을 앓던 어머니가 어느날 결국 사망했다. 두 가지 모두 환자에게 심한 고통을 주며 동시에 생명에 치명적인 질병이지만, 끝내 어머니를 죽게 만든 사인은 위암이었다. 7년간의 투병생활과 혼자 견디는 외로움, 죽음에 대한 공포를 견디면서 완치를 꿈꾸었지만 결말은 슬픈 이별이었다. 어머니는 끝내 병마에 맞서 다시 일어서지 못했고, 그렇게 곁을 떠나가고 말았다.

그런데 만약, 어머니의 병명이 애초에 잘못된 것이었다면 어떨까? 의사의 진단이 잘못된 것이었고, 그래서 불필요한 의약품 투여로 암이 유발되었던 것이라면? 그것이 7년간 지속되었고 결국 어머니가 사망하게 된 원인이라면? 거기다가 결정적으로, 의사의 진단과 독한 치료제의 처방이 병원 측과 의사의 이익을 챙기기 위한 수단이자 고의적인 사기로 드러났다면?

사기진료에 맞서는 남자의 이야기 <보헤미안 랩소디>

▲ <보헤미안 랩소디>의 표지. ⓒ 나무옆의자

주인공 하지환은 28세의 판사이다. 본인의 꿈은 다른 것이었지만, 어머니의 집착에 가까운 권유로 끝내 법대에 진학해서 공부를 하고 사시에 도전한다. 각고의 노력 끝에 그는 마침내 홀어머니의 평생 소원이었던 판사, 법관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그러나 허무하게도 어머니는 그가 판사가 된 모습을 보기 전에 위암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자신의 삶을 모두 버리면서까지 어머니가 꿈꾸던 열망을 대신 이루었지만 정작 누구도 박수쳐 줄 사람은 없었던 것이다. 그 뒤로 어머니에 대한 지환의 기억은 한이 쌓인 애증으로 남는다.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자신의 삶을 바쁘게 살던 그에게 문득 지나간 기억이 되살아난다. 어머니의 유품을 모아놓은 방에서 투병기간에 쓴 일기를 하지환의 대학 후배인 의사 효린이 우연히 집어들어 읽다가 미처 몰랐던 내용을 보게 된 것이 계기이다. 그 안에는 어머니가 생전에 홀로 병마와 싸우면서 쓴 기록이 적혀 있었는데, 하나같이 "의사가 류마티스는 꾸준히 치료하지 않으면 큰일난다고 겁을 준다", "투약이 고통스럽지만 약을 거르지 말라고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의대를 나온 후배 효린이가 생전 어머니의 사진을 보더니, "손가락이 매끈한 것이 이상하다. 류마티스 환자라면 관절 마디가 크게 부어오르는 증상이 발생한다"고 의문을 제기한 것. 이는 주인공에게 큰 충격을 안겨준다. 만약 추측대로 하지환의 어머니가 류마티스 환자가 아니었다면, 위에 심각한 부담을 주는 항류마티스 치료제를 투여받다가 위암에 걸려 사망하는 일은 충분히 피할 수 있었던 일이다. 그럴 경우 어머니의 사망은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의료사고나 혹은 사기진료에 해당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하지환은 판사의 신분을 드러내지 않고 병원 측에 진료기록을 요청한다. 그러나 병원에서는 엉뚱한 기록만 제시하고, 환자에 대한 정보를 쉽게 제공하지 않는다. 참다 못한 그가 어머니의 치료를 맡았던 의료진을 찾아가자 담당의사였던 우동규는 "내 큰아버지가 법조인이다"라고 뜬금없이 협박처럼 말하며 잘못된 진단의 책임을 부인한다. 그러다 하지환이 본인도 판사임을 밝히자 담당의사는 금세 태도를 바꾸어 혐의를 시인하며 "저를 좀 봐주십시오. 저희 아버지가 배추장사입니다"라며 꼬리를 내린다.

일이 꼬이기 시작하는 것은 그 다음부터다. 증거가 될 의사와의 대화내용을 녹음한 하지환은 일단 발길을 돌리는데, 다음날부터 병원의 행정처장·한국 최대규모 로펌의 변호사·정치인·하지환의 선배 판사를 비롯한 유력인사들이 모두 그에게 연락하여 "의사 우동규에 대한 조사를 그만두라. 고소도 취하하라. 대신 거액을 챙겨주겠다"며 회유와 협박을 시작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우동규 측이 하지환을 역으로 고소하면서 상황은 점입가경으로 나아간다. 사기진료에 맞서는 주인공의 처절한 싸움이 시작되는 것이다.

법정싸움보다 개인의 심리변화를 주목하다

중반부터 길고도 고된 법정싸움으로 진행될 것만 같던 이야기는 의외의 양상으로 전개된다. 사기진료를 자행한 의사인 우동규를 상대로 법정에서 맞붙어 판사로서의 능력을 한껏 선보일 것 같았던 주인공 하지환은 뜻밖의 선택을 한다. 소설은 재판이 이루어지는 상황에 많은 부분의 지면을 할애하는 대신, 하지환의 심리변화에 주목한다. 그는 어머니의 죽음에 크게 분노하며 공황장애를 겪다가 후배 효린의 권유로 정신상담을 받게 되는데, 그로부터 어릴적 자신이 보살핌 받지 못한 것을 이유로 큰 상처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어머니는 "판사가 되라"고 노래를 부르며 다그치고 자신의 꿈을 아들에게 투영하지만, 정작 지환을 배려하거나 따스한 모습을 보이지는 못했다. 그리고 묘하게도 일방적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관계는 현재의 여자친구와도 마찬가지라는 점을 발견한다. 어릴적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사고로 죽었을 때에도 그 충격을 누군가에게 털어놓거나 위로받지 못하며 자라왔다.

결국 주인공은 정신상담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꿰뚫는 큰 상처를 발견하고, 이를 치유하는 과정을 통해 심리적인 안정을 되찾는다. 그 덕에 어머니가 연관된 사기진료 재판에 임하면서도 격정적인 감정이 아니라 보다 이성적인 태도로 임할 수 있게 된다. 재판이 개인의 복수가 아니라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는 길로 탈바꿈한 것이다.

많은 사건에서 어느 쪽이 선이고 악인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솔직히 나는 나 자신이 선인지 악인지조차 모른다. 나의 내면 밑바닥에는 작은 법정이 있다. 그곳에서는 삼십 년 된 나의 인생을 둘러싸고 악이라며 고발하는 검사와 선이라며 옹호하는 변호사가 날마다 열띤 공방을 벌인다. (본문 9쪽 중에서)

다시 재판 이야기로 돌아가보면, 예상한대로 쉽지 않은 판세로 기울어 있다. 지환이 우동규를 사기죄로 고소하지만, 신해지청장은 공소장을 결재하지 않고 버틴다. 그러다가 어렵사리 진행된 1심의 판결은 "우동규의 행위가 명성을 높이고 병원에서의 입지를 공고히 하기 위한 것일 뿐, 재산상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사기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해괴한 논리의 판결문으로 끝난다.

의사가 제약회사로부터 거액의 리베이트를 받으며 환자들에게 잘못된 진단을 내리고 약을 처방했다는 사실을 밝혀내지만, 한 남자가 혼자서 싸우기에는 역부족인 모양새다. 부패한 의사의 뒤에는 의료, 종교, 사법, 정치권력이 끈끈하게 얽혀있는 상태였다. 그들은 서로의 이득을 챙기기 위해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키고 비리를 토대로 자라나고 있었다. 본문은 주인공이 판사임에도 결국 개인을 위해 사법체계가 공정하게 작동하지 않는 현실을 통렬하게 꼬집고 있다.

현직 판사가 쓴 소설, 인간에 대한 통찰 담아

제10회 세계문학상 수상작인 <보헤미안 랩소디>는 불공정한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모습을 담았다. 젊은 판사 하지환이 겪은 사건은 소설 속 가상의 이야기지만, 우리가 뉴스에서 듣거나 이웃에서 볼 수 있는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만 같다. 그리고 실제로 이 소설의 줄거리는 작가의 경험에 어느 정도 밑바탕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주인공이 어머니의 일기장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모습은 실제 그가 겪었던 경험담이고, 작가 정재민씨 본인이 현직 판사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판사라는 이유만으로 이야기가 딱딱하다거나 틀에 박힌 문체일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정재민씨는 2010년에도 <소설 이사부>로 제1회 포항국제동해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고, 2009년에는 독도를 소재로 일본과의 갈등을 표현한 <독도 인 더 헤이그>를 써내기도 했다. 6년에 걸쳐서 완성한 <독도 인 더 헤이그>는 당시 책을 읽은 외교통상부 장관이 정재민 판사를 외교통상부 독도법률자문관으로 영입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해당 작품을 발표할 때 정재민씨가 '하지환'이라는 예명을 썼던 것을 생각해보면, 어쩌면 <보헤미안 랩소디>의 주인공 하지환 판사는 작가의 또 다른 자아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글을 쓴 경력이 긴 만큼 내공도 상당히 쌓여있음이 <보헤미안 랩소디>에서도 드러난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그룹 퀸의 노래 '보헤미안 랩소디'가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여러번 등장하고 흐름의 큰 줄기를 마련하면서 줄거리의 처음와 끝을 장식한다. 정신분석학을 내용에 도입한 것도 단순히 짧게 인용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고 주인공과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에 깊이 관여하는 방식으로 적절히 사용되면서 몰입을 돕는다. 문체도 간결하고 이야기의 흐름도 깔끔하다.

작가 정재민씨는 소설과 판결문에 대해 "재판은 거짓 속에서 진실을 찾는 것이고, 소설도 허구지만 그 속에 인간에 대한 진실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닮았다"면서 "둘 다 사람에 대한 이야기로 인생에서 잊지 못할 가장 중요한 부분을 포착해내는 점도 비슷하다"고 설명한다. 자신의 전문분야인 법과 재판에 있어서도 구체적인 설명과 과장없는 묘사로 현실감을 더한다. 주인공 하지환 판사가 재판에서 황당한 논리로 패하자 "내가 판결을 내린 사람들도 어쩌면 이런 기분을 느꼈을까" 스스로 되묻는 장면은 현직판사인 작가 개인의 성찰도 녹아있는 듯 하다.

주인공의 내적갈등과 생각이 변해가는 과정에 대한 심리묘사에서 인간성에 대한 통찰도 엿보인다. 흥미를 돋우기 위한 법정싸움보다 하지환의 내면에 잠재된 상처가 치유되는 모습을 더욱 중점적으로 그려낸 것은, 어쩌면 판사로서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려는 노력일까? 하지환은 항소심에서 끝내 권력과의 싸움에서 기분좋게 승리할 것인가, 아니면 독자의 바람과는 반대로 처참하게 패하면서 사회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비추게 될 것인가? 인간 욕망에 대한 비유와 이야기를 풀어내는 솜씨가 출중한 이 책의 결말이 과연 어떤 것일지, 독자가 직접 확인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덧붙이는 글 <보헤미안 랩소디> (정재민 씀 | 나무옆의자 | 2014.6. | 1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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