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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사람 박노정 시인, 문창극 후보 향해 '일침'

시 '문 선생님께' 보내와... "이형기 시인의 국민 애송시 낙화에서..."

등록|2014.06.23 14:58 수정|2014.06.23 14:58
"진주 출신 고 이형기 시인은 '정신은 그것이 정신인 줄 아는 사람에게 있어서만 정신'이라고, 또 국민 애송시 낙화에서 '가야 할 때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아름답다'고 했지요."

'진주사람' 박노정 시인이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한테 '일침'을 가했다. 박 시인은 23일 '문 선생님께'라는 제목의 시를 <오마이뉴스>에 보내왔다.

시 속에 나오는 '그때 그 전씨'는 전두환 전 대통령을 말하며, 세월호 침몰사고로 희생된 고 유니나 단원고 교사는 진주 경상대학교 출신이다.

'진주기생 산홍(山紅)'은 얼굴이 아름답고 서예도 잘했는데, 을사오적의 한 사람이었던 '이지용'이 1906년 진주를 방문해 첩으로 삼으려고 했을 때 "내가 비록 기생이기는 하나 사람 구실만은 제대로 하고 있는데 어찌 역적의 첩이 되겠느냐"고 했던 일화가 전한다.

다음은 박노정 시인의 시 전문이다.

문창극 '안중근의사기념관 헌화했다'친일 및 민족비하 발언 등으로 거센 사퇴압력을 받고 있는 문창극 총리 후보자가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창성동 정부청사 별관에 퇴근을 하며 기자들에게 답변하고 있다. 문 후보자는 자신이 안중근의사기념관에 헌화한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 이희훈


문 선생님께

박노정(시인)

그때 그 전씨와 진배없는 '골목성명'을
여러 차례 하시는 걸 봤습니다.
저는 여러 날을 아파 누웠습니다.
그보다는 눈물이 그렁그렁했습니다.
세월이 지나 뒷날 어느 좋은날 진주에 들르시면
예를 갖춰
감히 선생과 함께 진주성을 거닐며
남강과 진주기생 산홍을,
형평운동과 선생 남명을 두고
한 말씀 듣고 싶습니다.
두려움으로 떨리는 모습으로
또 당당한 모습으로 예를 지켜 …
진주성을 거닐며

오늘은
일속자 장일순 선생의 마지막 호 하류(下流)
법정 스님의 조고각하(照顧脚下)를,
청년시에 달달 외던 '고린도전서 13장'을
다시 새겨보고 싶습니다.
또 성자라고 받드는 고 권정생 선생의 동화책을
하나도 빼지 말고 읽어보라 권하고 싶습니다.
진주 탯말로 에나에나 
선생님은 모든 걸 알고 계시지요?
진주정신으로 세계로 나아가는
작년 진주 유등축제 때 수백만이 다녀갔고
유등은 논개의 붉디붉은 마음으로 물들었습니다.
오백년을 지나서도 대숲 댓이파리 끝에 사운거리는.
남강엔 6만 민·관·군의 순사를 기리는 소망등이
3만개나 피었습니다.
올해는 축복처럼 생각지도 못한 운석들이 떨어졌습니다,

지금 저는 골방에서 물속에 갇힌 아이들 생각에
꾸역꾸역 웁니다.
칠월 초엔 친구들과 여럿이,
아이들을 생각하며 팽목항을 찾을 것입니다.
진주 출신 고 이형기 시인은
'정신은 그것이 정신인 줄 아는 사람에게 있어서만 정신'이라고
또 국민 애송시 낙화에서
'가야 할 때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아름답다'고 했지요.
다시 떨리는 목소리로 두려움으로
당당한 모습으로 예를 지켜,
단원고의 애송이 교사로 아이들을 구하고
자신은 어버이 곁으로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진주 출신 유니나를 찾아서
돌아오지 않는 그의 숱한 학생들을 찾아서
며칠 뒤엔 팽목으로 달려갈 것입니다.

저도 올해 예순다섯입니다.
진주얘기만으로 몇 권의 책을 쓸 수 있지만
그 일이 언제일지 저도 모릅니다.
여러 가지 무례를 용서해주십시오.

박노정 시인은 시집 <눈물공양><바람도 한참은 바람난 바람이 되어><늪이고 노래며 사랑이던>을 펴냈고, 경남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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