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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극은 물러났지만 풀리지 않는 의문 하나

[게릴라칼럼] 문남규 선생은 정말 문창극의 할아버지인가

등록|2014.06.25 15:40 수정|2014.06.25 15:43
'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사퇴 발표 앞 둔 문창극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24일 오전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후보사퇴 입장 발표를 위해 기자회견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 이희훈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는 24일에 사퇴했지만, 그가 일으킨 문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친일 망언 등으로 국민적 지탄을 받은 그는 "독립투사 문남규 선생이 나의 할아버지다"라는 말을 남긴 채 사퇴했다.

친일 망언을 한 사람도 독립투사 할아버지를 둘 수 있다. 하지만 문 전 후보자의 말이 과연 진실인지를 조사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있다. 문 전 후보자의 주장에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런 석연치 않은 주장에 국가보훈처가 사실상의 공신력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23일자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지난 20일 문 후보자 측은 문남규 선생이 문 후보자의 할아버지가 아닌지 확인해달라고 보훈처에 문의했다. 문남규 선생은 2010년 11월 15일 순국선열의 날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은 분이다. 그런데 문남규 선생의 유족이 확인되지 않아서, 그동안 보훈처가 선생의 훈장을 보관해왔다.

문 후보자 측의 문의에 대해 보훈처 관계자는 "문남규 선생이 문창극의 할아버지일 가능성이 높다"는 추정적 판단을 내놓았다. 이 판단을 근거로 문 전 후보자는 "나는 독립운동가의 후예다"라며 자신의 친일 망언을 씻어내려 했다.

그런데 보훈처가 추정의 근거로 제시한 사항들을 살펴보면, 이런 근거들이 과연 올바른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보훈처가 제시한 근거는 크게 세 가지다.

① 문남규 선생의 한자 이름과 '문창극 후보자의 할아버지'(이하 '할아버지')의 한자 이름이 같다.
② 문남규 선생과 할아버지의 원적지(본적지)가 똑같이 평안북도 삭주군이다.
③ 문남규 선생이 사망한 1921년에 문 후보자의 할아버지도 사망했다. 이 점은 문 후보자의 아버지인 고 문기석(1914년 생)이 "내 아버지는 일곱 살 때 돌아가셨다"고 말한 데서 입증된다.

보훈처가 제시한 근거 세 가지... 모두 사실일까

여기서 ③이 사실과 다르다는 점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관지인 1921년 4월 9일자 <독립신문> 보도에서 확인된다. 문남규 선생의 순국에 관한 유일한 자료인 이 날짜의 <독립신문> 기사에 따르면, 선생이 순국한 시점은 1921년이 아니라 1920년 2월께 혹은 그 직후다.

이 점은 <독립신문> 기사의 앞부분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문남규 선생이 소속한 부대가 평북 삭주에 출동한 계기를 설명하는 문단의 앞부분에서, <독립신문>은 "2년 2월에 이르러" 러시아에 주재한 최영호 부대가 적의 기습을 받은 데 대한 보복의 차원에서 여러 방면의 부대가 출동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 1921년 4월 9일자 <독립신문>. 빨간 줄로 표시한 "2년 2월"은 문남규 선생이 대한민국 2년 2월 즉 1920년 2월경이나 그 직후에 순국하였음을 보여준다. ⓒ 한국독립운동사 정보 시스템


여기서 2년 2월은 1920년 2월을 지칭한다. 중국 상하이에 대한민국임시정부가 건립된 1919년을 기준으로 해서 1920년이 대한민국 2년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독립신문> 보도에 따르면, 문 선생의 순국 시점은 1920년 2월께나 그 직후가 된다.

문남규 선생이 1921년에 순국했다는 이야기는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보훈처가 작성한 문남규 선생의 '공적조서'에는 순국 연도가 1921년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이것은 착오에 의한 기록일 뿐이다. 선생이 순국한 연도는 1920년이고 그것이 보도된 연도는 1921년인데, 보도된 연도를 순국 연도로 잘못 착각한 것이다. 따라서 위의 ③은 사실과 다르다.

이제 남은 것은 ①과 ②다. 문남규 선생과 할아버지의 한자 이름 및 본적지가 같다는 주장만 남았다. 본적지와 한자 이름만 같으면 무조건 동일한 사람인가? 이런 의문도 생기지만 이 점은 일단 논외로 하고, ①과 ②가 과연 올바른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 1921년 4월 9일자 <독립신문> ⓒ 한국독립운동사 정보시스템


문남규 선생은 문 전 후보자의 북한 본적인 평안북도 삭주군과 인연이 깊다. 위의 <독립신문>에 실린 '대한독립단의 약력'이란 기사에 따르면, 선생은 독립운동단체인 대한독립단 단원 자격으로 삭주군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던 중에 전사했다.

이 기사의 해당 부분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이해의 편의를 위해 일부 표현을 지금의 언어로 바꾸었다. 아래에 나오는 '토벌대'는 독립군이고 '적군'은 일본군이다.

"또 모 지방(의) 기관으로부터 출동한 토벌대장 주○○씨 이하 일개 소대는 국내 전체를 토벌하기로 계획을 세우고 출동한 바, 삭주군에서 적군과 개전하여 여러 명의 적을 베고 어느 정도의 승리를 거두었지만, 종군한 이선찬·문남규 두 분이 순국했다."

▲ <독립신문> 기사 중에서 이 글에 인용된 부분. 위의 왼쪽 문단이 이 글에 인용되어 있다. ‘삭주군에서’와 ‘문남규’라는 부분이 빨간 줄로 표시되어 있다. ⓒ 한국독립운동사 정보시스템


이에 따르면, 평북 삭주군은 문남규 선생이 순국한 곳이다. 이곳이 선생의 본적지라고 판단할 만한 근거는 위 기사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보훈처는 무엇을 근거로 문남규 선생의 본적지가 평북 삭주라고 말했을까? 보훈처는 <독립신문> 이외의 자료를 별도로 갖고 있는 것인가?

보훈처 역시 별도의 자료를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은 두 건의 문건을 통해 확인된다. 하나는 보훈처가 작성한 문남규 선생의 '공적조서'다. 여기에는 문남규 선생의 본적지가 '미상'으로 되어 있다. 보훈처도 문남규 선생의 본적지를 모르는 것이다.

▲ 문남규 선생에 관한 '공적조서. 민족문제연구소 홈페이지에서 갈무리했다. ⓒ 국가보훈처


또 다른 문건은 2010년 11월 15일 보훈처가 배포한 '보도자료'다. 문남규 선생을 포함한 순국선열·애국지사 58명의 포상에 관한 이 '보도자료'에는 보훈처의 조사 과정이 매우 정밀했음을 강조하는 대목이 나온다.

"총 58명의 포상자 가운데 91.3%에 달하는 53명은 국가보훈처의 '전문사료 발굴·분석단'이 행형 기록 및 일제 정보문서, 신문보도 기사 등을 찾아 분석·검토하고, 현지조사를 통해 동일인 여부와 활동 전후의 행적을 확인하는 등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자료를 발굴하여 포상하게 되었다."

이에 따르면, 보훈처는 독립운동가들의 인적 사항 및 행적을 조사하고자 '전문사료 발굴·분석단'(이하 '분석단')을 동원했다. 이 분석단이 신뢰할 수 있는 부서인가에 관해 '보도자료'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근현대사, 독립운동사 등 역사학 전공자를 주축으로 2005년에 발족한 국가보훈처 '전문사료 발굴·분석단'은 그동안 수형인명부와 범죄인명부, 형사사건부, 신분장지문원지, 가출옥에 관한 서류, 판결문 등의 국내 사료는 물론 중국 자료, 러시아 국립문서보관소 등에 산재한 다양한 자료를 수집·분석하여 국내와 중국 관내 및 만주, 노령, 일본 등지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들을 다수 발굴·포상하여 왔다."

▲ 2010년 11월 15일에 보훈처가 배포한 보도자료 ⓒ 국가보훈처


이 글에서는 '분석단'이 역사학 전공자를 주축으로 하는 동시에 광범위한 국내외 자료를 분석하는 부서라고 말했다. 이 같은 분석단이 조사를 벌였지만 문남규 선생의 본적지를 확인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자료가 위의 '공적조서'다. '공적조서'에는 선생의 본적지가 미상으로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선생의 본적지를 알려주는 자료가 현재까지는 나오지 않은 것이다.

문남규 선생 본적지는 "미상"이라 해놓고... 보훈처가 대답하라

그런데 문창극 후보자 측으로부터 확인 요청을 받은 지 3일 만에 보훈처는 '문남규 선생의 본적지는 평북 삭주군이다'라는 판단을 내놓았다. 그동안 확인하지 못한 내용을 어떻게 3일 만에 확인했는지에 대해 보훈처는 명확히 밝힐 필요가 있다. 명확한 해명이 없다면, 보훈처가 근거 없는 허위의 주장을 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보훈처가 내놓아야 할 자료는 많다. 우선 문남규 선생의 본적지가 평북 삭주라는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평북 삭주에서 순국하셨으니 그곳이 본적지일 것이라는 식의 추리를 내놓으면 안 된다. 만약 선생의 본적지를 확인할 수 없다면, 선생의 부모가 평북 삭주에 살았다는 증거라도 제시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문창극 전 후보자 할아버지의 본적지가 평북 삭주라는 증거도 제시해야 한다. 평북 삭주에 살았다고 해서 그곳이 본적지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증거를 제시하지 않는다면, 이는 보훈처가 명확한 근거자료 없이 문 전 후보자를 옹호했음을 뜻하게 될 것이다. 나아가 이것은 보훈처가 평소에도 허술한 태도로 보훈행정을 처리했을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독립운동가들을 정확히 발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것은 나라의 독립에 기여한 분들에 대한 마땅한 도리다. 또 이것은 우리 국민들이 본받고 따라야 할 분들을 찾아내는 작업이다. 또 이것은 국민의 혈세를 사용하는 문제와도 관련되어 있다. 독립운동가와 유가족에게 국민의 혈세가 정확히 배분되도록 하려면, 보훈행정이 정확하고 엄밀하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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