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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은 보지만 정의는 못 보는 대한민국 헌법재판소

'시각장애인 위한 점자형 선거공보 의무' 거부결정 무엇이 문제인가

등록|2014.06.24 17:28 수정|2014.06.24 17:28
헌법재판소는 지난 5월 29일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형 선거공보 작성을 의무화하지 않는 공직선거법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시각장애인의 선거권 방해요인 제거를 거절한 것이다.

이 사건은 시각장애인 등 장애인들에게 헌법상의 기본권리를 보장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선거권은 헌법상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헌법상의 선거권을 적극적으로 보장해야 할 헌법재판소가 이를 거절했다.

사안은 간단하다. 시각장애 1급인 청구인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형 선거공보의 작성 여부를 후보자의 임의사항으로 하고, 점자형 선거공보의 면수도 비장애인을 위한 책자형 선거공보의 면수 이내에서 작성하도록 규정한 공직선거법이 시각장애인의 선거권을 침해하고 국가의 장애인 보호의무에 위반된다고 주장했다.

헌법재판소는 다수의견과 소수의견으로 나뉘었다. 다수의견은 5명이다. 다수의견은 첫째, 점자형 선거공보 작성의무가 임의적이지만 같은 내용의 책자형 선거공보 역시 임의적이라는 점, 둘째, 선고공보 이외에 방송연설, 대담, 인터넷을 이용한 선거운동 등 다른 선거운동 방법도 많이 있다는 점, 셋째, 점자형 선거공보를 의무화하면 선거운동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는 점 등을 이유로 점자형 선거공보를 의무화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일부 후보자만 점자형 선거공보 제작하는 현실 외면

모두 형식적인 이유이다. 선거공보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직접 유권자들의 가정에 전달되는 유일한 것이다. 내용은 법정되어 있고 가장 상세하고 가장 정확하다. 후보자들도 정성 들여 만든다. 이 때문에 선거공보는 모든 후보자들이 작성한다.  지난 대통령 선거 때 대통령 후보자 7명은 모두 선거공보를 제작했다. 그러나 점자형 선거공보는 5명만 제작했다.

한편 대부분의 다른 선거운동 방법도 시각적 방법에 의존한다. 문자메시지, 현수막, 명함, 홍보물, 어깨띠, 공약집, 선거벽보 등이 그것이다. 나아가 공직선거법은 점자형 선거공보를 비롯한 법률이 규정한 방법을 제외하고는 녹음·녹화 테이프 등 비시각적 방법에 의한 선거운동을 포괄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그만큼 시각장애선거인은 후보자에 대한 정치적 정보를 얻는 방법이 제한되어 있다. 선거운동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주장도 성립할 수 없다. 점자형 선거공보의 제작비용은 국가가 전액 부담하기 때문이다.

<앞은 못 봐도 정의는 본다>의 주인공, 일본 최초 시각장애 변호사 다케시타

만일 시각장애인이 공무원임용시험을 응시한다면 국가는 이런 이유로 이를 거절할 수 있을까? 지금은 이런 경우를 상상할 수 없다. 시각장애인 판사를 배출할 정도로 시험문턱은 낮아졌다. 시각장애인 최영씨는 2008년 제50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2012년 판사로 임명되었다. 

시각장애인이 사법시험에 합격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사법시험 자체가 어려운데다가 시각장애인은 물리적인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의 어려움은 장애가 아니라 제도이다.

일본 최초의 시각장애 변호사 다케시타 요시키 변호사의 스토리는 사법시험 합격기록이 아니라 사법시험 개혁기록이다. 그의 사법시험 합격과정과 변호사 활동을 기록한 책이 있다. <앞은 못 봐도 정의는 본다>가 그 책이다. 우리말로는 여영학 변호사가 번역했다.

다케시타 변호사는 1951년 생으로 중학교 3학년때 시력을 잃는다. 그러나 그는 변호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가 1966년 중학교를 졸업했을 때 시각장애인이 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는 안마사 뿐이었다. 그가 변호사가 될 것을 결심했을 때 주위에서는 어이없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미국의 유명한 흑인 지도자였던 말콤 엑스도 초등학교 때 변호사가 꿈이었다. 그가 변호사가 되고 싶다고 했을 때 초등학교 선생님은 목수가 될 것을 권했다. 당시 말콤 엑스가 알고 있는 흑인 중 가장 출세한 인물은 호텔 보이 정도였다고 한다. 어쩌면 선생님의 반응은 당연했을 지도 모른다.

사시 도전이 아니라 '사시개혁' 된 다케시다의 도전, 마침내 성공했다

청년 다케시타는 류코쿠 대학 법학부에 입학하여 사법시험을 공부하면서 시각장애인 사법시험 실시 여부를 법무성(우리의 법무부)에 문의한다. 대답은 시각장애인 사법시험을 실시한 적이 없고 실시할 의사가 없다는 것이었다. 시각장애인에게 사법시험의 기회조차 부여하지 않았던 것이다.

당시 일본에는 점자 법전도 없었다. 나중에 발간된 점자 법전은  A4 크기의 종이 50쪽 분량으로 된 책이 51권, 책값도 12만엔이라고 한다. 점자 법률서적도 없었다. 다케시타 변호사가 사법시험에 합격할 무렵이 되어서야 200권 가량의 점자책과 1000개 분량의 녹음테이프가 만들어졌다. 시중에서 구입한 것은 하나도 없었고 모두 자원봉사자가 만들어 주었던 것들이다.

다케시타 변호사는 이에 굴하지 않고 법무성에 시각장애인 사법시험 실시를 계속 요구했다. 이에 법무성은 1973년 처음으로 시각장애인 사법시험을 실시하기로 한다. 하지만 점자 법전도 제공되지 않았고 시험 시간도 충분히 보장되지 않았다. 당시 일본의 일부 대학에서는 시각장애인의 시험을 인정했는데 시간은 보통 1.5배를 주고 있었다.

다케시타 변호사는 이를 개혁하기 위하여 국회에서 장애인에 대한 차별 실태를 증언하기도 했다. 그 결과 1975년 드디어 점자 법전이 제공되었고 시험시간도 일부 연장되었다. 하지만 그가 합격한 것은 그로부터 6년이 지난 1981년이었다. 1981년 사법시험 합격자 수는 433명이었다고 한다. 다케시타 변호사는 최초의 시각장애 합격자였다.

사법연수소·법원·검찰 등도 다케시타 변호사 위한 보조원 배치

사법시험에 합격하자 사법연수소(우리의 사법연수원)도 대비를 해야 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교육시설을 마련해야 했기 때문이다. 사법연수소는 교재를 녹음하거나 전문서적과 자료를 읽어주는 남자보조원을 담당 직원으로 도서관에 배치해 주었다. 법원과 검찰도 보조원을 배치해 실무수습을 제대로 마치도록 도왔다. 심지어 실무수습 변호사 사무소에서도 보조원을 배치해 주었다.

아무리 다케시타 변호사가 대단하다고 하더라도 그를 만든 힘의 절반은 자원봉사자들의 힘이다. 그가 사법시험에 도전하기로 결심했을 때 교토대학, 도쿄대학, 와세다대학, 호세대학, 아오야마대학, 류코쿠 대학 등의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불합리하게 장애인을 차별하는 현실에 같이 분개하고 다케시타 변호사와 함께 현실개혁을 모색했다. '시각장애인에게도 변호사의 길을'이라는 제목의 소책자를 만들어 뿌리기도 하고 함께 공부를 하기도 했다. 사법연수소에서도 이러한 인연은 계속 이어진다.

사법연수소 졸업후 다케시타 변호사는 교토에서 개업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변호활동을 하고 있다. 장애인이나 노숙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재판을 맡으며 인권 변호사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시각장애 판사도 배출했는데도 선거권 보장 않는 우리 현실 걱정스럽다

우리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과거의 느낌을 물씬 풍긴다. 일본의 시각장애인 다케시타에게 변호사의 기회가 주어진 것은 이미 40년도 넘은 과거의 일이다. 하지만 우리 헌법재판소는 2014년 시각장애인들의 선거권을 제한하는 규정이 위헌이 아니라고 한다.

과거 인권이 국가에 의하여 짓눌리던 시대, 장애를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아무런 권리주장도 할 수 없었던 시대, 장애인에 대한 제도적 차별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던 시대의 결정처럼 보인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느낌이다.

우리는 시각장애인을 판사로 임명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장애가 문제가 아니라 제도가 문제라는 점이 명백해진 시대다. '나도 사람이다'라는 인권의 외침에 귀 기울이고 이를 위하여 사회 공동체가 양보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흐름을 보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온통 과거로 돌아가는 시대에 헌법재판소도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걱정스럽다.
덧붙이는 글 * 이 칼럼은 한국미래발전연구원 홈페이지(www.futurekorea.org)에 동시 게재합니다.
* 김인회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사법위원장, 참여정부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 등을 지냈으며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2011) 등의 저서를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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