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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송전탑 주민들 "살아야 할 의무가 생겼다"

송전탑 반대 움막농성장 6.11 행정대집행 상황 증언대회, 국회의원회관서 열려

등록|2014.06.26 09:16 수정|2014.06.26 09:16
밀양사람들이 국회를 찾아가 감정에 북받쳐 울었다. 25일 오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폭력과 야만의 밀양을 증언한다'에 참석했던 송전탑 반대 주민들이 증언 도중에 눈물을 쏟아내기도 한 것이다.

'6․11 행정대집행 참사 국회 증언대회'는 새정치민주연합 정청래·장하나·진선미 국회의원과 밀양법률지원단, 밀양인권감시단 등이 마련했다. 밀양 주민 30여 명과 연대단체인 천주교 수녀들이 참석해 경찰관(기동대)·공무원들로부터 당했던 피해와 억울함을 쏟아냈다.

▲ 장하나, 정청래, 진선미 국회의원실 주최로 25일 오후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실에서 밀양 주민들과 천주교 수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지난 11일 밀양 송전탑 반대 움막농성장 강제 철거 행정대집행에 대한 증언대회가 열렸다. ⓒ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


밀양사람들은 '신고리-북경남 765kV 송전선로' 철탑 예정지 4곳과 길목 3곳에 움막을 지어놓고 농성해 왔는데, 밀양시가 경찰을 동원해 지난 11일 강제철거를 위한 행정대집행을 단행했던 것이다.

당시 공무원·경찰은 밀양 부북면 평밭마을(129번 철탑), 위양마을(127번 철탑), 상동면 고답마을(115번 철탑), 단장면 용회마을(101번 철탑)의 움막농성장을 강제철거했다. 당시 주민들은 움막과 구덩이 안에서 몸에 쇠사슬을 묶어 버티기도 했는데, 수십 명이 다치거나 실신해 병원에 후송되기도 했다.

"할머니, 마지막 보루가 끊어졌다는 사실에 실신"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에 따르면, 주민과 연대단체 회원들은 갖가지 증언을 쏟아냈다. 127번 농성장에 있었던 조명순(캐더린) 수녀(성가소비녀회)는 "경찰은 절단기로 주민들의 목을 감았던 쇠사슬을 끊었고, 한 할머니는 마지막 보루가 끊어졌다는 사실에 실신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조명순 수녀는 "현장에서는 국회의원도 보좌관도, 천주교 신부와 연대단체 회원할 것 없이 다 끌려나왔고, 그런 것을 보면서 아수라장 상태에서 이것이 전쟁이구나 싶었다"며 "말을 해도 들리지 않았고, 참혹함과 처참함에 나라가 무너지는 것 같은 심정을 느꼈다"고 덧붙였다.

129번 농성장에 있었던 유재영(마리로나) 수녀는 "나도 항거를 하다가 여경들에게 끌려나왔는데 나오는 상황에서 어르신들이 당하는 폭력적인 상황, 몸부림들이 전쟁터 아닌 다음에야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며 "그 자리에서 양심의 소리를 같이 합하는 것이 우리의 몫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주민들도 입을 열었다. 한옥순(평밭마을)씨는 "경찰이 칼을 쥐고 머리 위에서 천막을 찢었는데, 지금도 악몽 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다"며 "소·돼지도 그렇게 끌어낼 수 없다, 현장은 너무도 잔인했고, 어떻게 사람을 그렇게 할 수 있단 말이냐"며 목소리르 높였다.

이어 한씨는 "이 진상을 국회의원들이 밝히기 전에는 눈을 감을 수 없다"며 "생존권과 우리의 권리를 찾을 때까지 국회의원들이 도와주면 목숨을 내놓고 철탑이 들어서지 못하도록 우리 마을을 또 지킬 것이고, 진상이 밝혀질 때까지 함께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 이제 올 게 왔구나 싶었다"

▲ 밀양시와 경찰이 11일 오후 밀양 단장면 용회마을 승학산 정상에 있는 101번 송전철탑 공사장 부지의 움막을 강제철거하는 행정대집행을 단행한 가운데, 움막 지붕에서 농성하던 초등학교 교장 출신의 주민 고준길(72)씨가 경찰에 의해 들려서 나오고 있다. ⓒ 윤성효


죽고 싶었다는 증언도 나왔다. 정임출(위양마을)씨는 "행정대집행 하루 전날부터 목에 밥이 넘어가지 않았고, 우리가 왜 이렇게 당해야 하나 싶었으며, 그렇게 한잠도 자지 못하고 이틀 동안 꼬박 밤샘했는데, 그날 새벽 경찰이 온다는 소리가 들려 '아 이제 올 게 왔구나' 싶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당시 몸에 쇠사슬을 묶고 있었던 그는 "경찰이 움막에 올라와서 한 쪽만 찢는 게 아니라 여기저기 찢었고, 움막 안에 있던 할머니들은 '다 죽여라'고 고함을 질렀다"며 "그때 움막 철거는 공무원이 하지 않고 경찰들이 했으며, 얼마나 발버둥을 쳤는지 옷이 다 벗겨졌더라"고 말했다.

정신을 잃어 병원에 후송되었던 정임출씨는 "그 순간에는 죽고 싶은 마음 밖에 없었고, 내가 죽어서 철탑이 서지 않고 원전이 세워지지 않는다면 죽겠다는 생각도 들었다"며 "그런데 또 살게 되었다, 우리는 에너지 정책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자는 것이지, 보상을 더 받자고 하는 것이 아니다, 정말 보상 필요 없다, 수십 억을 줘도 도장 안 찍을 것이고 보상 안 받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115번 농성장에 있었던 김영자(여수마을)씨는 "경찰이 와서 한꺼번에 천막을 뜯어내는 작업을 했는데 '밑에 사람이 있다'고 소리를 쳐도 그래도 하더라"며 "끌려 나와 감나무 밑에 있었는데, 벌써 포크레인이 길을 닦고 올라오며 과일나무를 부러뜨렸다, 과일나무는 우리 생명줄이나 마찬가지인데 그 광경을 보는 순간 숨이 턱 막히더라"고 소개했다.

101번 움막 안에 주민 7명과 함께 몸에 쇠사슬을 묶고 있었던 송영숙(용회마을)씨는 "다 처음 겪는 것이지만, 경찰이 그렇게 할 것이라고 상상도 못했다"며 "오늘 우리가 아무리 증언을 한들 저들은 오리발을 내미는 선수니까, 우리가 백날 진실이라고 부르짖어봐야 눈도 깜짝하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정말 죽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죽지 못하는 이유가 있고, 우리가 살아야 할 의무가 생겼다"며 "철탑이 다 들어선 이후라도 더 열심히 살아서, 철탑으로 인해 피해를 당하는 사람들을 위해 연대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상규 "총체적으로 위법한 행정대집행이었다"

행정대집행 당시 주민들과 함께 했던 정상규 변호사는 "총체적으로 위법한 행정대집행이었다"고 지적했다. 당시 밀양법률지원단 소속 변호사 12명이 현장에 있었고, 이들은 행정대집행 순간을 목격했다.

정 변호사는 "움막에 있는 주민을 들어내는 것은 강제처분인데 근거가 있어야 한다, 임의동행이라고 해서 당사자가 동의해야 하거나 영장을 들고 가야하고, 아니면 범죄행위라면 현행범 체포 연행이 있다"며 "그런데 당일 현장에는 영장도 없었고, 주민들이 동의하지도 않았으며, 공사현장 부지를 점거하는 게 업무방해에 해당할 수 있으나 그것에 대한 현행범 체포로서의 연행이라면 그 현장에서 미란다 원칙을 고지해야 하나 일체 그런 게 없었다"고 전했다.

정 변호사는 "경찰이 천막을 대부분 찢고 집기를 훼손한 행위 역시 위법이고, 전날부터 계속 통행제한을 했는데 그것은 직권남용에 해당하며, 경찰 책임자에 대해 형사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행정대집행 과정에서 밀양시 공무원 중 집행책임자는 대집행법에 따라 주민 재산 손실이 없도록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지만 그런 의무를 전혀 다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 11일 오후 공무원과 경찰 수백명이 투입돼 밀양 송전탑 101번 마지막 움막의 행정대집행이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부상자가 다수 발생했다. ⓒ 윤성효


정청래 의원은 "국가를 개조하자고 이야기를 했는데 이것은 독재자의 발상이다"며 "개조해야 할 것은 밀양사태에서 보듯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국가 공권력의 폭력진압이고, 용산 참사에서도 봤듯이 공권력에 대해서 개혁하고 제자리로 돌려놓는 것이 진정한 개조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진선미 의원은 "저도 반성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는 것"이라며 "누군가의 마음을, 원전을 유지해야 한다고 믿고 있는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포기하지 않는 여러 어르신들이 계시기에 변화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어 본다"며 밀양 사람들을 위로했다.

김제남 의원(정의당)은 "한국전력공사를 위한 경찰임을 천하에 다 드러냈다"며 "다시 시작하는 마음이다, 아픈 상처가 있으면 손 잡고 같이 치유하고 함께 안아주면서 다음 투쟁을 이어가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증언대회는 오후 늦게 끝났다.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는 7개 마을에 농성장을 새로 꾸미고 <밀양 인권침해 종합보고서> 발간, 한국전력공사와 국가(경찰)를 상대로 재산피해청구소송과 경찰폭력국가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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