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교육부의 '호들갑'... 김명수 후보자나 걱정하세요

[주장] 정당한 조퇴 투쟁 결심... 교육권 침해 아니다

등록|2014.06.26 13:56 수정|2014.06.26 16:21

▲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법외노조 통보 취소소송에서 패소한 가운데, 1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전교조 김정훈 위원장을 비롯한 조합원들이 정부의 전교조 탄압을 규탄하고 있다. 이날 김 위원장은 "법외노조 통보 취소소송 1심 재판부의 판결은 한 나라의 주권자의 권력 남용이 무지막지하게 적용되면 민주주의가 얼마만큼 후퇴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판결이다"고 규탄했다. ⓒ 유성호


교직 경력 15년차의 평범한 중학교 교사인 저는 내일 '조퇴'라는 일상적인 단어에 '투쟁'이라는 특별한 단어를 붙인 채 서울에 가려고 합니다. '헌법노조' 전교조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노조 아님' 통보가 적법하다는 사법부 판결과, 그런 판결을 이끌어낸 '원칙'에 충실한 정부, 그 사법부와 정부가 애지중지 여기는 '악법'들에 저항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오는 6월 27일 전교조가 배수의 심정으로 진행하는 조퇴 투쟁의 끄트머리에 서려고 합니다.

'조퇴'라는 당연한 권리에 '투쟁'이라는 말을 붙이니, 사나운 눈으로 전교조를 쏘아보는 이들이 많습니다. 며칠 전 한 언론은 조퇴나 연가 투쟁에 나선 전교조의 과거를 끄집어냈더군요. 정부가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는 바람에 전교조가 11차례나 되는 조퇴·연가 투쟁을 한 게 아니냐는 것이었습니다. 사실상 정부가 전교조를 향해 몽둥이를 화끈하게 휘둘러야 한다는 주문이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교육부의 실질적인 '수장' 노릇을 겸하는 나승일 교육부 차관이 무서운 엄포를 내놓았습니다. 나 차관은 전국 시·도교육청 교육국장회의를 소집한 자리에서 "(조퇴 투쟁이) 국가공무원법상 집단 행위 금지 의무 등에 위반되어 징계 처분을 받을 수 있으므로 복무관리를 철저히 해 주실 것을 당부드린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한 보수언론은 교육부 관계자의 말을 빌려 조퇴 투쟁에 임하려는 전교조 교사들을 '겁박'하는 듯한 기사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과거 정책 반대 중심의 조퇴 투쟁과 달리 이번에는 법원이 판결한 사안을 두고 조퇴 투쟁을 벌이는 만큼 징계 수위가 높아질 것"이라며 "조퇴 투쟁 주동자는 중징계하고, 단순 참가자도 주의나 경고가 아닌 징계를 원칙으로 할 것"이라고요.

전교조가 조퇴·연가 투쟁을 추진하려 할 때마다 교육부와 반 전교조 성향의 보수 언론들이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말이 있습니다. 교사들의 조퇴와 연가가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한다는 논리가 그것입니다. 국가공무원법상 교사의 성실·복종 의무와 직장이탈 금지 의무, 집단행위 금지와 같은 규정도 상투적으로 반복되는 후렴구입니다.

교육권 침해로 전교조 공격하는 정부

교육부나 보수 언론들이 전교조의 조퇴 투쟁을 불법으로 모는 핵심적인 논거 중 하나가 학생들의 학습권(수업권) 침해입니다. 가령 '솜방망이 처벌'을 거론한 예의 언론은 기사에서 교사가 갑작스레 학교 현장을 비울 경우 수천 명의 대체 교사를 교육현장에 투입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점을 문제 삼는 식입니다.

조퇴 투쟁에 대한 악의적인 왜곡일 뿐입니다. 교사가 조퇴를 하기 위해서는 수업을 교체하거나 대체해야 합니다. 학생들의 학습권 보장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다른 교사와 시간을 미리 바꿔 수업을 진행해 놓습니다. 학교급이나 과목에 따라 조금씩 다르겠지만, 이번 조퇴 투쟁으로 교사 개개인이 바꿔야 하는 수업은 두세 시간을 넘지 않으리라 봅니다. 하루나 이틀 정도에 걸쳐 교체 수업을 하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조퇴를 하려는 교사는 교체 수업 전에 학생들에게 양해를 구함으로써 학생들이 수업을 준비하는 데 지장이 없도록 합니다. 교사의 급작스러운 질병이나 사고에 따른 입원 치료, 또는 교사 부모의 사망에 따른 장례 등과 같이 예기치 않은 가정사가 발생해 교사가 조퇴나 연가를 내야 할 때도 소속 교과별로 정한 순위에 따라 다른 교사들이 대체 수업을 진행합니다. 예의 언론이 악의적으로 왜곡한 것과 같이 교사가 갑작스럽게 학교 현장을 비워 교실을 혼란에 빠뜨리거나, 수천 명의 교사를 한꺼번에 교실에 투입해야 하는 상황이 일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조퇴 투쟁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학생들이 원래 예정되어 있는 교사가 아니라 다른 교사에게서 갑작스럽게 수업을 듣게 되면 학습 환경이 급격히 달라져 정상적인 수업이 이뤄지지 않는 점을 지적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이번 전교조 조퇴 투쟁과 관련하여 전교조 울산지부 소속의 조용식 선생님이 쓴 글을 보니 예전 전교조의 연가 투쟁 참여 교사에 대한 재판 이야기가 쓰여 있더군요. 연가 때문에 수업을 전부 교체하여 학생들의 수업 공백을 막아 학습권을 보장해 주고 연가 투쟁을 한 선생님에게 판사가 이렇게 판시했다고 합니다.

"당초 계획된 장소에서 담당 교사에 의해, 당해 시간의 수업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학습권이 침해되었다고 본다."

백번을 양보해 들으려고 해도 납득하기 힘든 논리입니다. 이렇게 판시한 판사의 논리에 따르면 교사는 공무 출장이나 교육, 연수, 기타 이런저런 개인 사정으로 인한 조퇴나 연가, 휴가를 신청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교사가 조퇴나 연가를 내어 학교를 비우게 되면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식의 학습권 침해라면 조 선생님의 말마따나 조퇴나 출장, 연가, 병가 등 교사 공무원에게 합법적으로 보장된 모든 휴가 규정을 모조리 삭제해야 하지 않을까요.

학습권 침해는 교사가 이런저런 사유로 학생들을 일방적으로 복도로 내쫓거나, 정해진 수업 시간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경우를 말합니다. 불량하고 불성실한 교육자가 스스로 자신의 수업을 내팽개치거나 학생들의 수업 시간을 빼앗는 것이 '진정한' 학습권 침해입니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사례들이 그렇습니다.

먼저 지난 6.4교육감선거에 서울시교육감 후보로 나선 문용린 전 서울교육감이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보도에 따르면, 지난 5월 28일 문 후보는 개인적인 선거운동의 일환으로 서울 미동초등학교를 방문해 오전 10시 20분부터 11시까지 학생 공연 관람과 학부모 간담회를 가졌다고 합니다. 이 행사 공연에 3~6학년 초등생 110여 명이 참가했습니다. 그 때문에 학생들은 2~3교시 정규수업 가운데 일정 시간을 침해받게 되었습니다. (관련 기사 : 문용린 후보 행차에 학생들 수업 빼먹고 풍물 공연)

제자 논문 가로채기 등으로 최악의 평가를 받고 있는 김명수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후보자는 수업권 침해 사례의 '역대급' 본보기로 봐도 될 듯합니다. <오마이뉴스> 보도에 의하면, 최근까지 한국교원대 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김 후보자는 3시간으로 규정된 수업시간을 잘라 이른바 '반 토막 수업'을 한 것으로 교원대 내에 소문이 파다했다고 합니다. (관련 기사 : 반토막 수업에 조기종강, 강의중 박근혜 옹호도)

교육부 장관 후보자의 '기행'은 괜찮은가

김 후보자는 또 청문회 준비를 핑계로 교원대 교육과정상 6월 11일로 잡혀 있는 종강일을 5월 28일로 제멋대로 앞당겨 결정했다고도 합니다. 김 후보자 측의 청문회 준비 관계자는 학생들과의 협의를 통해 종강일을 앞당겼으니 학습권 침해는 아니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할 말이 없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대체로 학생들은(연수 차원에서 강의나 수업을 받는 성인 직장인들도 마찬가지지요.) 어지간하면 강의든 수업이든 일찍 끝나기를 바랍니다. 그런 학생들과 협의해 강의나 수업을 일찍 끝내면 학습권 침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게 말이 되는지요.

문 후보와 김 후보자의 사례를 더듬어 보자니 문득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한 인물이 있습니다. 김석준 부산시교육감 당선인입니다. 부산대 사범대 일반사회교육학과 교수였던 김 당선인은 선거 운동 기간에도 하루도 빠짐없이 강의를 했다고 합니다. 교육감 당선증을 받은 날에도 강의를 온전히 마쳤다지요. (관련 기사 : "선관위 가서 당선증 받았는데..." 학생들 "우와"

지금 교육부는 여느 때처럼 조퇴 투쟁을 하려는 전국의 전교조 선생님들을 향해 국가공무원법상 교사의 성실·복종 의무와 직장 이탈 금지 의무, 집단행위 금지와 같은 규정을 상투적인 후렴구처럼 반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전교조가 추진하는 일개(?) 조퇴 투쟁은 국가공무원법이라는 거창한 법을 끌어들일 만큼 큰 일이 아닙니다. 조퇴는 학교장의 허가사항일 뿐입니다. 관할 시·도교육청이 왈가왈부할 사안도 아닙니다.

걱정과 두려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한 달 월급 받아 살아가는 평범한 직장인 중 '징계'라는 말을 가볍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어제 연 전교조 분회 총회에서 동료 조합원 선생님들에게 이번 조퇴 투쟁에 참가하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솔직히 후회도 됐습니다. 교육부의 엄포가 말로 끝나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켠에서는 전교조가 교육부 지시를 따르면서 문제가 된 법 개정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일단 물러선 뒤 좀 더 좋은 때를 기다리라며 걱정 어린 목소리로 조언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악법'도 법이니 일단 지키는 게 교사 본분에 맞지 않겠느냐는 것이지요. 모두가 진심으로 전교조를 걱정하는 말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만 있기에는 현재의 사태가 너무 엄중합니다. 새정치민주연합 등 야당에서는 문제의 교원노조법과 같은 관련 법 개정이 이루어지도록 애쓰겠다고 말합니다. 그게 언제될 지 확신하기 어렵습니다. 사실상 사문화한 법 조항을 끌어와 법외노조 통보를 한 정부가, 훗날을 기약하며 뒤로 물러서는 전교조에게 곱게 퇴로를 열어줄 것 같지도 않습니다.

전교조 법외노조화는 전교조의 문제인 동시에 대한민국 모든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문제라고 봅니다. 교사 노동3권의 시계를 1980년대로 돌린 정부인데, 다른 노동자들의 권리는 무사할까요? 세상에서 전교조와 박근혜 대통령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풍자로만 들리지 않습니다.

전교조는 지금 '마녀 사냥'의 거센 바람 앞에 서 있습니다. 전교조 교사가 침묵하는 순간, 이 나라 정부가 일으키는 시대착오의 바람은 광포한 태풍이 되어 대한민국을 휩쓸어갈 것입니다. 어떤 일에든 침묵을 지키며 '가만히 있으라'는 정부와, 그런 정부의 말을 충실히 따르는 이들에게, 독일의 반 나치 신학자였던 에밀 구스타프 프리드리히 마틴 니묄러(1892~1984) 신부의 말을 들려 드리고 싶습니다.

독일에 처음 나치가 등장했을 때 // 처음에 그들은 유태인들을 잡아갔습니다. / 그러나 나는 침묵했습니다. / 나는 유태인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 그 다음에 그들은 공산주의자들을 잡아갔습니다. / 그러나 나는 침묵했습니다. /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 그 다음엔 사회주의자들을 잡아갔습니다. / 그때도 나는 침묵했습니다. / 나는 사회주의자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 그리고 그 다음엔 노동운동가들을 잡아갔습니다. / 나는 이때도 역시 침묵했습니다. / 나는 노동운동가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 그리고 이제는 가톨릭 교도들과 기독교인들을 잡아갔습니다. / 그러나 나는 침묵했습니다. / 가톨릭이나 기독교인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 그리고 어느 날부터 내 이웃들이 잡혀가기 시작했습니다. / 그러나 나는 침묵했습니다. / 나는 그들이 뭔가 죄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 그러던 어느 날은 내 친구들이 잡혀갔습니다. / 그러나 그때도 나는 침묵했습니다. / 나는 내 가족들이 더 소중했기 때문입니다. //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은 나를 잡으러 왔습니다. / 하지만 이미 내 주위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 나를 위해 이야기 해줄 사람이. - <나는 침묵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