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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책임지고 사표낸 총리가 세월호 재발 막는다?

[분석] 돌고돌아 정홍원 총리 유임... 박 대통령의 무책임한 미봉책

등록|2014.06.26 13:43 수정|2014.06.26 13:43

'나 계속 총리하는거야?'세월호 참사 이후 사의를 표명한 정홍원 국무총리가 12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의 교섭단체대표연설을 듣고 있다. 정 총리 사의 표명 이후 안대희 후보자 중도 사퇴, 문창극 후보자 '망언' 파문 등으로 후임 인선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 권우성


정홍원→안대희→문창극→정홍원

돌고 돌아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60일 만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26일 새 국무총리 후보 지명을 포기하고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던 정홍원 총리를 유임시켰다. 안대희·문창극 등 새 총리 후보자가 청문회조차 못 거치고 연달아 낙마한 탓이다. 청와대는 국정공백과 국론분열을 '명분'으로 앞세웠다. 그러나 이는 부인할 수 없는 '미봉책'이다.

당초 이번 개각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문책성' 성격이었다. 그러나 정 총리가 돌아오면서 이번 개각은 '모순'으로 귀결됐다.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져야 하는 총리가 세월호 참사 재발을 막기 위한 개혁 작업을 주도하게 된 것이다. 결국 '무책임 내각'으로 규정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박 대통령 스스로 한계를 드러냈다. 여야는 안대희·문창극 중도낙마 사태에 대해 박 대통령에게 여러 주문을 내놨다. 2012년 대선 당시 약속했던 '국민대통합', '탕평인사'를 해야 한다는 요구부터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을 필두로 한 청와대 인사시스템에 대한 보완까지 요구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박 대통령은 세 번째 총리 후보자 인선 포기로 답했다. 이는 박 대통령의 인재풀이 협소하다는 것을 드러낸 것이다. 새롭게 인선한 후보자마저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했을 때 닥칠 후폭풍을 염려한 흔적도 보인다. 이는 박 대통령이 여당인 새누리당을 예전만큼 장악하지 못하고 있음도 시사한다. 

[무책임 내각] 세월호 참사 '총책임자', 사고 재발 막는 조직 관할한다?

당장,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무책임'이다.

정 총리는 지난 4월 "내각을 총괄하는 총리인 제가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것이 당연하고 사죄드리는 길"이라며 사의를 표명했다. 박 대통령도 지난 5월 대국민담화에서 눈물을 흘리며 '국가대개조'를 천명했다. 특히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당시 정부의 컨트롤타워 부재 지적을 수용, 국무총리실 산하에 국가재난처를 신설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정 총리가 유임되면서 책임 소재가 모호해졌다. 책임을 지고 물러난 총리가 세월호 참사 재발을 막기 위한 조직을 관할하는 모양새가 돼 버렸다. 

정 총리도 이 점을 감안한 듯, "저의 마지막 모든 힘을 다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이날 유임 결정 직후 "앞으로 국가를 바로 세우고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일과 공직사회 개혁, 부패 척결, 그리고 비정상의 정상화 등 국가개조에 앞장서서 저의 마지막 모든 힘을 다하겠다"라며 "필요한 경우 대통령께 진언하면서 국가적 과제를 완수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또 "세월호 사고 이후 국가개조를 통해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는 국가적 과제에 직면해 있으나 후임 총리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 과정이 길어지고 국론분열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라며 "저는 고사의 뜻을 밝혔으나 중요한 시기에 장기간의 국정 중단을 막아야 한다는 대통령의 간곡한 당부가 있어 새로운 각오 하에 임하기로 했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그의 다짐과 현실은 다르다. 이미 사의를 한 차례 표명했고 두 번의 후임 총리 후보자의 중도 낙마가 있었다. 정 총리를 재신임해서 한 유임 결정이 아니라 사정상 '고육지책'으로 유임을 결정했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향후 정 총리의 내각 장악력에 물음표가 찍히는 이유다.

더군다나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후 교육부 장관이 겸임하는 교육·사회·문화 부총리를 신설키로 했다. 총리의 역할이 공직사회 개혁과 사회 안전, 법질서 확립, 비정상의 정상화 등을 전담하는 동시에 국정의 총괄 운영 등으로 축소된 셈이다.

결국, 새로 입각할 최경환 경제부총리 후보자에게 힘이 쏠릴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특히, 최 후보자는 2007년 대선경선 때부터 박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로 꼽혀왔다. 윤두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이날 정 총리 유임 결정 기자회견에서 "정 총리와 경제부총리, 교육부총리가 중심이 돼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비롯한 국정과제와 국가개조를 강력히 추진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고육지책] 기반 흔들린 박 대통령, '최소부담' 택했다

▲ 중앙아시아 3개국 순방을 마친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1일 저녁 서울공항에 도착, 김기춘 비서실장 등과 함께 공항을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박 대통령은 이 같은 상황이 예상되는데도 정 총리의 유임을 선택했다. 역설적으로 정 총리를 유임하는 것이 새 후보자를 지명하는 것보다 청와대의 부담이 덜한 카드였기 때문이다.

문창극 전 후보자 사태가 결정적이었다. 안대희 전 후보자가 고액 수임료에 따른 전관예우 논란으로 중도 사퇴한 가운데, 등장한 문 전 후보자는 그야말로 '깜짝 카드'였다. 그러나 문 전 후보자는 지명 직후 우편향·식민사관 논란에 휩싸였다. 사태 초반 그를 감싸던 새누리당은 거센 역풍을 맞기도 했다. 새누리당 차기 지도부를 뽑는 7·14 전당대회에 출마한 당권주자들도 문 전 후보자의 자진사퇴를 촉구했다.

즉, 인사청문회를 강행하더라도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카드였던 셈이다. 이와 관련, 한 수도권 야당 의원은 "만약 문창극 후보자를 먼저 지명한 뒤, 안대희 후보자를 지명했다면 수월하게 인사청문회를 통과했을 것"이라며 문 전 후보자 지명을 '치명적 결정'으로 지적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박 대통령의 주요한 국정운영 '축'이 흔들렸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50% 중·후반대를 자랑하는 높은 지지율을 바탕으로 국정을 주도했다. 친박(친박근혜) 주류로 짜여진 당 지도부도 박 대통령의 든든한 뒷배였다.

그러나 이른바, '문창극 사태'가 발발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세월호 참사 후폭풍을 벗어나 잠시 반등 조짐을 보이던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추세로 바뀌었다. '리얼미터', '한국갤럽' 등 주요 여론조사 전문기관의 정례조사에서 박 대통령 국정 수행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를 앞서는 일도 벌어졌다. 당 장악력도 약화됐다. 초선의원 몇몇의 소수의견이었던 '자진사퇴론'이 주요 당권주자까지 합세하는 대세로 변했다. 인사위원장인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을 두고서는 주류 대 비주류 간 논쟁까지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박 대통령의 이번 선택은 이 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조치다. 세 번째 후보자가 청문회를 통과 못했을 때의 위험 부담을 정리했고,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을 겨냥한 여당 내 비주류의 반발을 일부 누그러뜨렸다. 여야의 의석구도를 바꿀 수 있는 7·30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악영향을 미칠 '변수'들을 제거한 셈이다.

당장 유력 당권주자인 서청원 의원은 이날 "국민의 요구에 부응했는지도 생각해 보아야 하지만, 인사권자의 고뇌도 고려해야 할 상황"이라며 박 대통령의 결정을 감쌌다. 그는 "대안을 가져오라고 말하기는 쉽지만 합당한 인물을 찾고 설득하고 하는 작업이 그렇게 쉽지는 않다"라고도 강조했다.

당 지도부도 당 인사청문제도 개선 TF팀 발족을 준비하면서 '문창극 사태' 책임을 외부로 돌리고 있다. 즉, 식민사관 논란을 불지폈던 문 후보자의 교회 강연 동영상을 보도했던 KBS가 '악의적 편집'으로 여론몰이를 하고, 야당에서 과도한 정치공세를 벌였다는 주장이다. 이 같은 논리라면 자연스레 청와대의 인사검증 책임은 '물타기' 된다.

이완구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국정이 마비되는 일은 없어야 하니 (정 총리 유임 결정이) 이해된다"라며 "대통령의 그러한 우려들을 보완할 수 있도록 협력해 드리고 차분히 생각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중지란] "대통령이 직접 설명해야" vs "대통령 고뇌 이해된다"

불씨도 남아있다. 세월호 참사 책임을 져야 할 총리를 유임시킨 것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고,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에 대한 책임론도 여전히 존재한다. 특히 여당 내에서도 이번 총리 유임 결정에 논란이 일고 있다.

당장, 7·14 전당대회에 출마한 김영우 새누리당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장고 끝에 악수를 둘까 걱정했는데 현실이 됐다"라며 "세월호 피해자와 국민들에게 이 결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여당 국회의원으로서 난감하다"라고 밝혔다.

그는 특히 "정 총리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부실대응의 총책임자로서 사퇴했다"라며 "인물을 고르고 검증해 청문회를 통과시켜야 하는 청와대의 고충도 인정하지만 떠나려던 총리를 다시 유임시키는 것은 책임회피요,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정부란 비판을 받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박 대통령께서 직접 정 총리 유임 결정 이유에 대해 국민께 소상히 밝혀주셔야 한다"라며 "김기춘 비서실장도 그간 총리 인선 관련 무한 책임을 지셔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반면,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 총리 사임은 (세월호 참사의) 직접적 책임이 있어서라기 보다 민심수습 차원의 정무적 판단이었다"라며 "현재는 세월호 위기 국면을 벗어나 일상을 되찾고 있고 (야권이) 문창극 후보자의 역사관까지 왜곡시켜 낙마시킨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번 유임 결정에 힘을 실은 것이다.

그는 "다른 총리 후보가 낙마한다면 국정의 공백이 너무 길어지는 것"이라며 "국가의 불안정성을 강화하고 국민들에게 피해만 주는 국정 공백을 지속하는 것보다는 국정의 안정성을 위해 최선의 선택은 아니지만 정 총리를 유임하는 것이 불가피한 것 아니냐는 대통령의 고뇌도 이해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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