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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인들, 러시아 이주 150년 만에 고국 땅 밟아

'고려인돕기운동본부' 초청... 10박 11일 일정

등록|2014.06.27 14:08 수정|2014.06.27 14:14

고려인 동포 모국방문 국회 환영식국회의사당에서 환영식 후 기념촬영 ⓒ 여현숙


고려인들이 러시아 이주 150년 만에 감격스런 모국의 땅을 밟았다.

이들은 2014년 6월18일~30일까지 10박 11일 동안 사단법인 고려인돕기운동본부의 초청으로 고려인 124명이 꿈에 그리던 고국 땅을 밟게 되었다. 러시아 모스크바, 블라디보스토크, 하바롭스크 등 12개 지역에서 온 이들은 전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여객선을 타고 동해항을 통해 입국했다.

방문단에는 일제강점기 러시아 연해주에서 항일 독립운동을 주도했으며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암살 등의 지원을 돕던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의 증손자인 쇼루코프 알렉산드르 씨(43)와 그의 아들(13), 박밀양 선생의 조카 김리마(81·여)씨, 김경천 선생의 후손 샤라피예프 에밀(16)군도 포함됐다.

고려인 동포 모국방문 국회 환영식정의화 국회의장 환영사 ⓒ 여현숙


동해항에 도착한 고려인 동포는 지난 19일 환영식장인 국회의사당을 찾았다. 정의화 국회의장과 여야 원내대표를 포함한 의원들은 모국 방문에 큰 의미를 부여하며 이들을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고려인 이주 15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 정부가 55만의 고려인들을 끌어안아 주면서 그들의 한을 풀어주는 고려인들의 '신원(伸寃)의 해를 맞이했다"고 사단법인 고려인돕기운동본부 이광길 회장은 감격케 했다.

국회도서관 강당에서 열린 환영식에는 고려인돕기운동본부 이광길 회장의 환영사에 이어 정의화 국회의장,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 새누리당 주호영 정책위의장의 축사가 있었다. 정성호, 김회선, 강석호, 윤명희 의원도 함께해 모국을 찾은 고려인들을 반겼다.

이광길 고려인돕기운동본부 회장은 "자랑스러운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바로 고려인"이라고 말했다. 그는 "봉오동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던 홍범도 장군이 중앙아시아로 끌려간 뒤 극장 수위로 일하다 쓸쓸히 삶을 마감하고 그 후손들은 조국을 방문할 기회조차 갖지 못한 사실이 무척 안타까웠다"며 행사를 마련한 이유를 설명했다.

이광길 회장은 "한국으로부터 8000km 떨어진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에 살고 있는 55만의 고려인 동포들이 현지에서 자립하면서도 민족적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한국 정부는 고려인 동포들과의 교류, 협력과 지원을 크게 늘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고려인은 700만 해외동포들 중 미국과 중국 일본 다음으로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는 만큼 고려인 한민족네트워크 형성은 우리 세대의 역사적 과업이라고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고려인은 남북한을 동시에 방문할 수 있어 남북한 불신의 신뢰의 연결고리가 되어 평화 통일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고려인들은 큰 땅 농사에 성공한 저력 있는 민족으로,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넓은 땅에 농사를 지어 한국으로 역수출을 해서 식량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 회장은 "늦었지만 한국의 자유와 번영에 기여했던 고려인 독립유공자와 동포들의 한을 풀어주고 스스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민임을 각인시켜 이들이 한국과 러시아 사이의 '교류의 다리'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축사에 앞서 청중석에 자리 잡은 고려인 동포들에게 한국어를 아는 분이 얼마나 되는지 직접 물어봤고, 손을 드는 동포가 몇 명이 안 되자, 현장에서 한국어를 구사하는 고령인 여성 엄파플리나(59)씨에게 즉석 통역을 부탁했다.

정 의장은 축사에서 "러시아 이주 150주년을 맞아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전역에 계시는 55만 동포를 대표해 모국을 찾아준 방문단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한다"며 "오늘날 대한민국이 누리는 자유과 평화, 경제적 번영은 여러분들의 조상 덕분"이라고 말했다.

정 의장은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은 손잡고 고려인 동포 사회의 발전과 고려인이 사는 나라와 우리나라가 협력을 강화하도록 뒷받침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고, 고려인 동포들은 큰 박수를 보냈다.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러시아어로 인사를 해 눈길을 끌었다. 박 원내대표는 기자 시절인 1989년 구소련을 방문했던 일을 소개하며 "1930년대 한국이 일제 압박을 받을 때 연해주에는 한글학교가 380개나 있었다는 말을 들었다"며 "한글학교를 많이 세울 수 있도록 정부가 예산를 지원해줬으면 하는 생각이 있는데 힘닿는데 까지 예산지원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를 대신해 참석한 주호영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은 "고려인들의 정신과 혼이 대한민국의 독립을 이끌었고, 역사의 정통성을 되찾아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했다"며 "더는 외롭고 소외된 민족이 아닌 자랑스럽고 떳떳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긍심을 가져달라"고 말했다.

정 의장은 행사 마지막 동포들에게 "대한민국 만세!"를 제안했고, 고려인들은 한 손에 소형 태극기를 들고서 "만세"구호를 따라 외쳤다.

일제 강점기 때 러시아에서 항일 독립운동을 벌였던 최재형, 박밀양, 김경천 선생의 후손들에게 꽃다발 전달하는 것으로 환영식은 마무리 되었다.

저녁만찬은 재외동포재단 조규형 이사장의 초대로 올림픽파크텔에서 각종 문화행사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갖게 되었다.

최재형 선생의 증손자인 쇼루코프 알렉산드르씨는 "할아버지의 조국을 방문하게 돼 정말 감사하다, 모국인 한국을 알려주기 위해 아들을 데리고 왔다"면서 "오래전 할머니로부터 선조의 애기를 들었을 때 무척이나 자랑스러웠다"고 떠올렸다.

또 다른 독립운동가 박밀양 선생의 후손인 김리마(81)씨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왔다"며 손에 잔뜩 쥐고 있던 박밀양 선생 생전 사진과 기록 등을 보여주며 취재진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김리마 선생은 대학교수를 하다가 1988년 은퇴했다. 김리마씨에 따르면, 1837년 11월 6일 밤 김씨의 작은 아버지 박밀양 선생은 스탈린 정권에 의해 일본 첩자라는 누명을 쓰고 일년 동안 감옥에 갇혀서 자백하라는 고문을 받으면서 갇혀 있다 총살을 당했다고 한다.

스탈린은 러·일 전쟁이 터지면 일본군과 피부 색깔이 비슷한 우리 민족이 일본군의 앞잡이 스파이 될 수 있다는 명목으로 고려인들을 강제이주 시키기로 작정하고, 강제이주 전야에 고려인 지식인 대표 2000여 명을 밤에 끌고 가서 일거에 총살해 버린다.

그때 김리마씨의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도 끌려가 총살을 당했다. 김리마씨는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는 부자로 살았는데 러시아 정부에서 (아버지에게) 일본군 스파이라는 누명을 씌우고 모든 재산을 몰수하고 길바닥에 내동댕이쳤다"면서 "풀을 뜯어서 먹고 돼지에게 주는 밀기울을 먹으며 너무도 어렵게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말했다.

8세~21세까지 공부도 못하고 벼농사를 지으면서 고생을 하며 살았던 김리마씨는 재봉일을 하며 공부를 해서 초, 중, 고를 마치고 대학은 도서관 관리자로 일하면서 혼자서 공부해졸업을 하였다. 사범대학에서 조교로 일하다가 준 박사를 따고 교수가 된 김리마씨는 지금은 근무했던 학교에 가끔 나가서 무료로 가르치는 봉사도 하고, 고아원 등을 돌보는 봉사활동을 23년째 하고 있다고 한다.

고려인돕기운동 본부는 1999년부터 고려인들과 자매결연을 맺고, 자원봉사자를 보내 한글을 가르쳤다. 러시아 연해주에 문화원을 설립 했고,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에는 유치원을 설립해주고, 자매결연도 맺어왔다.

2001년도에는 '고려인은 결코 버려진 소수민족이 아닌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국민이다'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연해주에서 위문 공연과 가두행진도 하고 문화의 날을 정해서 러시아 정부와 함께 문화 공연도 같이 했다.

방문단은 29일까지 11일간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과 서울 안중근 기념관, 경복궁, 강원 평창 2018 겨울올림픽 경기장 등을 둘러본다. 광주 고려인마을을 방문하고 자신들의 전통문화공연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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