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책 찾아 삼만리
[내가 추억하는 가게 이야기 2] 만화대여점,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주산학원, 학교 앞 문방구, 에어로빅 학원 등 지금은 보기 힘들어진 것들. 세상이 변하면 그 흐름에 맞춰 수많은 직업과 가게들이 뒤안길로 사라진다.
꾸벅꾸벅 졸던 어느 날, 문득 예전에 살던 동네에 가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골목길을 걷는데 문이 활짝 열린 작업장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 부업을 알선 해준다는 그 곳에 아주머니들 몇 명이 열심히 손을 놀리며 일을 하고 계셨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가 갑자기 한 가지 추억이 떠올랐다. 그 자리는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만화대여점'이었다. 아주 잠깐 동안.
꽤 오래 전, 골목에 만화대여점이 하나 생겼다. 하지만 안이 잘 보이지 않는 가게는 홍보조차 잘 되지 않아 드나드는 사람이 없었다. 하루는 너무 심심해 집을 나섰다가 그 가게를 보게 되었다.
'책이나 한 권 빌릴까?'
하지만 휑하니 빈 책장. 빌릴 만한 책이 거의 없어 과연 장사를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건지 의심스러웠다. 내가 구석구석 살펴볼 동안 인기척도 전혀 없었다. 안쪽으로 굳게 닫힌 미닫이문도 열리지 않아 끝내 나는 그냥 가게를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몇 주 뒤, 그 가게에 다시 들르게 되었다.
'설마 볼만한 책 한 권이 진짜 없겠어?'
사실 오기가 생겼다. 아무리 책이 적다 한들 시간을 때울 만한 만화책 한 권 없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문을 옆으로 밀고 들어서자 예전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잠에서 깬 듯한 부스스한 모습의 아주머니가 안쪽 방에서 걸어 나왔다. 그리고 나는 고심 끝에 만화책 몇 권을 빌렸다.
"여기에 이름하고 전화번호랑 주소 써."
아주머니가 내게 내민 것은 줄이 그어진 공책 한 권이었다. 허술해 보이는 그 모습에 웃음이 났지만 나는 인적사항을 꼼꼼히 쓴 뒤 가게를 나섰다. 만화는 생각보다 재밌었지만 그림체로 보나 내용으로 보나 굉장히 오래된 듯했다. 출생의 비밀 때문에 갈라서게 된 자매의 이야기. 일명 '막장 드라마'와 같은 줄거리. 그리고 책을 반납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진 만화대여점.
이 가게에 대한 기사를 쓰기로 마음먹으면서 나는 그 책을 꼭 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라진 가게를 추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으니까. 하지만 이 만화책은 이미 절판되어 구하기 참 힘들었다. 수소문한 끝에 만화박물관에 책이 보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하지만 서가정보에는 열람불가라고 적혀있었다.
"저 혹시 이 책 열람할 수 없는 건가요? 자료정리실에 있다는데 열람불가라고 되어 있어서요."
"아, 그 책은 정식으로 출판된 게 아니라서 저희가 보관용으로만 가지고 있는 거라서 열람은 불가능하십니다."
아쉬웠다. 그러던 와중에 검색 사이트에서 중고책이 판매용으로 올라온 사실을 발견했다. 우여곡절 끝에 내 손에 들어온 만화책. 택배로 온 그 상자를 개봉하니 한눈에 들어오는 표지. 추억 속 그 책이 맞았다. 그리고 출간일을 확인하니 1994년도.
내 기억 속 그 가게와 아주머니는 정확하게 20년이 된 추억이었던 것이다. 그 책을 찾기 위해 사방팔방 애를 쓴 건 실은 그 만화책이 보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그 추억을 온전하게 간직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었으니까.
꾸벅꾸벅 졸던 어느 날, 문득 예전에 살던 동네에 가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골목길을 걷는데 문이 활짝 열린 작업장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 부업을 알선 해준다는 그 곳에 아주머니들 몇 명이 열심히 손을 놀리며 일을 하고 계셨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가 갑자기 한 가지 추억이 떠올랐다. 그 자리는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만화대여점'이었다. 아주 잠깐 동안.
꽤 오래 전, 골목에 만화대여점이 하나 생겼다. 하지만 안이 잘 보이지 않는 가게는 홍보조차 잘 되지 않아 드나드는 사람이 없었다. 하루는 너무 심심해 집을 나섰다가 그 가게를 보게 되었다.
'책이나 한 권 빌릴까?'
하지만 휑하니 빈 책장. 빌릴 만한 책이 거의 없어 과연 장사를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건지 의심스러웠다. 내가 구석구석 살펴볼 동안 인기척도 전혀 없었다. 안쪽으로 굳게 닫힌 미닫이문도 열리지 않아 끝내 나는 그냥 가게를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몇 주 뒤, 그 가게에 다시 들르게 되었다.
'설마 볼만한 책 한 권이 진짜 없겠어?'
사실 오기가 생겼다. 아무리 책이 적다 한들 시간을 때울 만한 만화책 한 권 없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문을 옆으로 밀고 들어서자 예전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잠에서 깬 듯한 부스스한 모습의 아주머니가 안쪽 방에서 걸어 나왔다. 그리고 나는 고심 끝에 만화책 몇 권을 빌렸다.
"여기에 이름하고 전화번호랑 주소 써."
아주머니가 내게 내민 것은 줄이 그어진 공책 한 권이었다. 허술해 보이는 그 모습에 웃음이 났지만 나는 인적사항을 꼼꼼히 쓴 뒤 가게를 나섰다. 만화는 생각보다 재밌었지만 그림체로 보나 내용으로 보나 굉장히 오래된 듯했다. 출생의 비밀 때문에 갈라서게 된 자매의 이야기. 일명 '막장 드라마'와 같은 줄거리. 그리고 책을 반납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진 만화대여점.
이 가게에 대한 기사를 쓰기로 마음먹으면서 나는 그 책을 꼭 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라진 가게를 추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으니까. 하지만 이 만화책은 이미 절판되어 구하기 참 힘들었다. 수소문한 끝에 만화박물관에 책이 보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하지만 서가정보에는 열람불가라고 적혀있었다.
"저 혹시 이 책 열람할 수 없는 건가요? 자료정리실에 있다는데 열람불가라고 되어 있어서요."
"아, 그 책은 정식으로 출판된 게 아니라서 저희가 보관용으로만 가지고 있는 거라서 열람은 불가능하십니다."
▲ 추억의 만화책. <유리의 성> 표지. ⓒ 새소년(최하나 재촬영)
▲ 출생의 비밀을 다룬 원조격의 만화책. ⓒ 새소년(최하나 재촬영)
아쉬웠다. 그러던 와중에 검색 사이트에서 중고책이 판매용으로 올라온 사실을 발견했다. 우여곡절 끝에 내 손에 들어온 만화책. 택배로 온 그 상자를 개봉하니 한눈에 들어오는 표지. 추억 속 그 책이 맞았다. 그리고 출간일을 확인하니 1994년도.
내 기억 속 그 가게와 아주머니는 정확하게 20년이 된 추억이었던 것이다. 그 책을 찾기 위해 사방팔방 애를 쓴 건 실은 그 만화책이 보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그 추억을 온전하게 간직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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