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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피로한 당신, '번 아웃'을 아십니까

[TV리뷰] MBC '다큐 스페셜', 인간 소진시키는 경쟁 사회가 낳은 증후군

등록|2014.07.01 13:56 수정|2014.07.01 13:56

▲ MBC <다큐 스페셜> '오늘도 피로한 당신, 번 아웃' 편의 한 장면. ⓒ MBC


6월 30일 방송된 MBC <다큐 스페셜> '오늘도 피로한 당신, 번 아웃' 편을 통해 번 아웃(Burn Out) 증후군을 다뤘다. 번 아웃 증후군은 새롭게 대두되고 있는 스트레스 질환으로, 2013년 현재 하루 평균 근무 시간 10시간 30분의 대한민국 사회가 낳고 있는 후유증이다.

영어 사전에서 'burn out'을 찾아보면, 말 그대로 '불태우다', '소진하다'란 뜻을 지니고 있다. 그 의미 그대로, 번 아웃은 직업적으로 자신의 열정을 다 소진시켜 버려 더 이상 어떤 열정이 남아있지 않은 상태, 그로 인해 일이 오로지 스트레스로만 개인에게 부여되는 상태를 의미한다.

가볍게는 건망증에서부터 시작되는 이 질환은 우울증, 인지 능력 저하, 불면증까지 개인의 생활 전반에 걸쳐 심각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개인을 고사시켜 가며, 그 파급력은 가족과 직장, 나아가 사회에까지 미치고 있다.

경쟁이 내재화 된 대한민국이 낳은 질병

다큐는 번 아웃 증후군을 설명하기 위해 몇 명의 사례자를 추적한다. 쇼핑 호스트 권미란 씨, 직업의 성격 상 분초를 다투며 실적을 올려야 하는 그의 업무 시간은 아침부터 새벽까지 정해진 방송 시간에 따라 중구난방이다.

그래서 늘 권미란씨는 생방송 시간을 앞두고 혹시나 실수를 할까, 생각만큼 실적이 오르지 않을까 초조해 한다. 아이와 노는 중간에도, 아이에게 집중하지 못한 채 자신의 방송 준비에 전전긍긍한다. 방송을 마치고 나오면 파김치 돼서 탈진하다시피 잠을 청하지만, 그도 여의치 않다. 일곱 살배기 딸은 늘 엄마의 존재에 갈증을 느끼고, 그런 딸의 요구에도 지친 권미란씨의 일상에는 여유가 없다.

이렇게 번 아웃 증후군은 업무의 성격 상 시간을 다투는 일에서 그 사례가 많다. 70% 정도가 번 아웃 증후군을 겪는다는 간호사 고성준씨도 예외는 아니다. 3교대의 중환자실 근무를 5년째 하고 있는 그의 업무는 한시도 긴장을 늦추지 못한 채 환자와의 대화도 허술히 할 수 없는 감정 노동에 시달릴 정도로 강도 높다. 그런 생활이 지속되다 보니, 열정은커녕 무기력해지면서 시간만 나면 잠을 청하지만, 불면증은 달콤한 잠조차 허락지 않는다.

그런 고성준씨에게 유일한 낙이 있다면 목이 잔뜩 부은 상태에서도 포기할 수 없는, 얼음을 동동 띄운 커피다. 이렇게 번 아웃 증후군 환자들은 자신에게 가중된 스트레스를 벗어나고자 카페인이나 알코올에 의존하는 빈도수가 높다.

납입 기일을 맞춰야 하는 주방 기구 업체 제조업 반장 정성철씨도 예외가 아니다. 서른네 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책임자의 위치에 오른 그는 회사 내 온갖 허드렛일까지 신경 써야 하는 처지로, 퇴근 무렵이 되면 지칠 대로 지쳐 버린다. 그런 그에게 유일한 낙이란, 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반주 한 잔이다. 한 잔에서 시작된 반주는 부인의 잔소리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한 병에 이르렀다.

하지만 촉각을 다투는 업무의 특성만으로 번 아웃 증후군을 설명할 수는 없다. 남아공을 여행하다 낭만적인 사랑을 하며 결혼에 골인했던 유임주씨는 아직 자리 잡지 않은 유치원을 이끌어 가야 하는 강박 관념 때문에 번 아웃 증후군에 빠졌다. 물이 흐른 바닥을 닦는 아이들 뒤치다꺼리, 학부모 상담, 학원 홍보 등 하나부터 열까지 신경을 써야 하는 그는 결혼 초보다 무려 20kg이나 살이 쪘음에도 스트레스를 먹는 것으로 달래는 일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언제 이 사회에서 밀려날지 모른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다큐는 이런 번 아웃 증후군이라는 병리학적 증상이 그저 심리적 병증이 아니라, 그 어느 나라보다 혹독한 노동 시간에 시달려야 하며 경쟁이 내재화된 대한민국 사회가 가져온 후유증이라고 진단한다. 빅데이터 분석 결과, 다수의 사람들이 늘 '피곤하다', '지친다'를 달고 사는 우리 사회의 현주소에 다름 아닌 것이다.

현 독일 카를스루 조형 예술 대학 교수로 재직하는 한병철 교수는 현대 사회의 패러다임을 '피로 사회'로 설명해 낸다. 전쟁 등의 외적 영향은 줄어들었지만, 성공을 내재화한, 그것을 개인의 짐으로 온전히 안긴 현대사회에서 인간은 그 개인이 성과 주체가 되어 사회적 하중을 견뎌내야 한다. 인간은 사회적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해 과잉 활동과 자극에 시달리고, 그 부작용으로 피로에 시달리며, 그로 인해 우울증 등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바로 그 '피로 사회'의 전형을 MBC <다큐 스페셜>은 현재 우후죽순 발생하고 있는 번 아웃 증후군을 통해 설명해 낸다. 번 아웃 증후군에 이르기까지의 사례로 들은 설명은 적나라하다. 다큐는 정신과 의사의 입을 빌어, 머리로 가는 자극을 잠시 차단키 위해 심호흡을 하고, 하늘을 보며 여유를 가지고 산책이라도 즐길 것을 해결책으로 권한다.

물론, 진통제를 처방하듯 이런 대증적 요법도 중요하긴 하다. 하지만 평균 10시간 30분의 업무 시간이 줄어들지 않는 사회, 개인의 낙오에 그 어떤 방탄막이가 되어 있지 않은 사회, 직장을 다니는 엄마·아빠에게 아이를 키울 정신적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는 사회에서 개인이 올려다보며 내쉬는 한숨의 여유가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절박한 현실 인식과 고발, 그리고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리는 오늘을 사는 사람들에게 어쩐지 아쉬운 처방의 시간, '오늘도 피로한 당신, 번 아웃'이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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