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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매물도에 어활(어촌봉사활동) 온 '바다사람'

폐교된 소매물도 분교에서, 남매바위의 전설

등록|2014.07.03 14:47 수정|2014.07.03 14:47

▲ 교실건물에는 두개의 교실이 있다(윗쪽사진). 수국이 탐스럽게 피어있었다. 관사로 보이는 집앞에 들어가 보았다(아래쪽 사진). 폐교라는 이름에 으시시했다. ⓒ 송태원


민박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폐교에 들렀다. 교적비에는 "1961년 4월29일 개교하여 졸업생 131명을 배출하고 1996년 3월1일 폐교되었음"라고 적혀있다. 필자가 이곳을 처음 왔을때는 아이들이 있었다. 잡풀이 우거진 운동장 사이로 학교건물로 들어가는 길이 있었다. 수국은 탐스럽게 피어 있었고 입구 오른편의 (이곳에 발령받은 교직원 살았던)관사로 보이는 집은 조금 으스스하기도 하였다. 젊을때 섬마을 선생님이 되어 보는게 필자의 꿈중 하나였다.

"야야 우리 여기에 마스크(수경) 두고 가자. 밤에 12시에 가져오기 어떤노? 숨겨놓는다." 누군가 제안하였다. 재미있겠다는 반응에 마스크(수경)를 교실에 두고 나왔다.

▲ 소매물도 분교 운동장에서 단체사진이다. 뒷쪽에 수국이 탐스럽게 피어있다. 폐교에 갈 벌칙을 수행할 사람을 정하기 위해 치열한 게임들(중간 오른쪽)이 계속되었다. 폐교로 가는길에 만난 고양이(중간 왼쪽) 두마리를 만났다. 사람을 전혀 경계하지 않는다. 발앞에까지 와서 자리 잡는다. 폐교에 들어가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는 세사람(아래쪽 오른쪽). 폐교 건물들어가는 입구에 낮에는 없었던 대형거미가 거미줄을 쳐 놓고 있었다. 폐교안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했지만 삐꺽거리는 마루판소리에 무서워서 빨리 나왔다. ⓒ 송태원


후배들과의 즐거웠던 게임, 그리고 폐교에 다녀오는 벌칙

저녁 식사를 후에 후배들과 술자리가 있었다. 어촌계 간사님이 '놀러 왔는데 맛은 보고 가야지' 하면서 직접 잡아온 멍게을 주었다. 우리가 채취한 소라와 고동 그리고 멍게가 안주였다. 팀이 나누어졌다. 그리고 자기소개하는 게임부터 시작되었다. 무릎치고 손뼉치고 오른팔 왼팔을 순서대로 벌리고 이름을 말하는 게임이다. 해 본지 10년은 쪽히 넘은 것 같다.

필자의 이름은 '작가'로 했다. "작가 둘"이 불리우면  박자에 맞추어 "작가,작가"를 말하며 게임에 참가하였따. 게임의 규칙은 예전과 비슷하면서도 조금 달랐다. 나에게는 속도가 너무 빨랐어(박자 맞추기 어려웠음) 필자가 이름을 4번까지 빠르게 말하는 건 그 날 밤에는 거의 불가능했다. 후배들의 아량으로 필자를 지목될 때는 이름을 2번만 할 수 있는 암묵적인 특혜를 주었다. 한 팀이 9명으로 이루어져 있고 필자도 팀에 포함되어 있었다. 진 팀은 일단은 술을 먹었다. 그리고 진 팀에서 3명은 12시에 폐교에 가야 하는 벌칙이 기다리고 있었다. 폐교에 가서 수경을 찾아오는 벌칙에 게임의 열기는 대단했다. 필자는 팀의 패배에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폐교에 갈 3명이 정해졌다. 팀 패배에 결정적 역할을 한 나는 자청해서 같이 폐교에 다녀왔다.

28일 아침이었다. 다들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필자는 잠자리에 있었다. 회장과 몇몇 후배가 필자가 자고 있는 방문앞에서 '누가 선배를 깨워야 하는데 간단한 회의가 열렸다' 그 소리에 나는 깨었다. 17명이 20대이고 필자는 40대이다. 평균연령을 갑자기 너무 높인것 아닌지 필자의 반경1m이내에는 접근을 하지 않는다. 필자가 지나가면 소매물도와 등대섬사이의 길이 열리듯한 기적이 걸을때마다 일어났다.

회장(서유미 2학년)이 아침 먹은 다음 탐방로(바다백리길 중 하나인 등대길)를 걸으면서 주위에 버려진 쓰레기를 줍고 폐교청소와 운동장에 풀베기을 한다고 하였다.

▲ 오전에는 탐방로 주위를 청소하였다. 요즘 대학생들은 사진찍기놀이는 생활인것 같다. 아래쪽 오른쪽 사진은 남매바위중 위쪽에 있는 바위이다. ⓒ 송태원


남매바위에 얽힌 전설, 동아리 커플의 전설

남매바위를 지나면서 같이 걷고 있던 후배들에게 남매바위에 얽힌 전설을 이야기해 주었다.
"매물도라고 하며 대매물도, 소매물도, 등대섬을 합쳐서 매물도라고 했었다. 옛날에는 대매물도에만 사람이 살았고 소매물도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였다. 대물매도에 어느 부부가 아이를 낳았는데 쌍둥이를 낳았다고 한다. 아들과 딸인 이란성 쌍둥이였다. 부부는 고심 끝에 딸인 동생을 소매물도에 버렸다.  아이둘을 키우기에 농사지을 땅이 부족한 섬에서 허락되지 않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대매물도의 사람들은 고기잡이를 하다 가끔 소매물도에 배를 대고 쉬기도 하였지만, 그곳에서 사람을 본 적은 없었다. 세월이 흘러 오빠는 청년이 되었고 고기잡이를 위해 바다로 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청년은 소매물도에서 한눈에 홀려버린 아리따운 처자를 만나게 된다. 청년은 고기잡이를 하다 나오는 날에는 매번 소매물도에 있는 처자를 만나러 갔다. 소매물도에 십수 년 전에 버려진 여동생이란 것을 모르고 둘은 사랑을 하게 되었다. 결국, 하늘은 크게 노하게 되고 천둥과 벼락이 치면서 두 남매는 바위로 변하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 동아리에서 이 섬에 MT를 다녀가면 커플이 매년 생긴다는 전설도 함께 내려오고 있다." 하루밤 만에 이십 삼사 년 나이차이의 어색함은 허물어지지 않았지만 조금은 가까워진 후배들과 바다의 절경을 보며 숲길을 걸었다.

▲ 폐교된 소매물도 분교에서 풀베기를 하고 있다. 운동장에 가득히 우거진 잡풀을 다 제거하지는 못했다. 어느정도 확보된 공간에서 두 팀으로 나누어서 닭싸움이 벌어졌다. 우리팀이 4:0 으로 이기다가 5연패후 패배하였다. <아이스크림과 저녁 설거지>라는 엄청난 타이틀이 걸려있었던 어마어마한 닭싸움이었다. ⓒ 송태원


폐교운동장에 가득한 풀베기, 또 설거지 내기 게임 닭싸움

군대를 다녀온 예비역 후배들의 제초작업에 대한 추억이 쏟아졌다. 예비역 병장들의 낫질 정석이 설파되었다. 낫을 든 4명이 한 조가 되어 교대로 풀을 베었다. 햇볕이 따가웠지만, 틈틈이 낫을 들고 사진 찍는 모습에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어느 정도 풀이 베어진 공간에서 닭싸움이 벌어졌다. 저녁 설거지를 걸고 "바닷사람 닭싸움"이 개최되었다. 필자는 신입생과의 대결하였다. 각종 게임 중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승리였다. 이렇게 즐겁게 제초작업을 할 수 있다는 젊음이 부러웠다.

오전의 일정이 끝나고 민박집에 돌아왔다. 슈트(잠수복)와 장비를 준비하고 아침에 준비한 주먹밥과 라면을 들고 물질(스킨다이빙)을 하기 위해 민박집을 떠났다. 후배들에게는 대선배이지만 필자에게는 10년후배들이 섬을 찾아왔다. 그나마 얼굴과 이름을 아는 후배들을 만난것이다.

'바다 백리길' 중 소매물도 '등대길을 걸으며

ⓒ 송태원


▲ "바다에 취하면 평생이 즐겁다."라는 구호가 적힌 펼침막과 함께 단체사진 ⓒ 송태원


강기훈(30기)씨가 밝힌 소매물도 어촌봉사활동후 밝힌 소회이다. 강기훈씨는 회장(서유미)을 비롯한 임원진 중 한명으로 훈련부장을 맡고 있다.

"처음 가보는 곳이라 어떤곳일지 물은 얼마나 좋을지 설렘과 동시에 훈련부장으로서 신입생들에게 잊지못할 추억을 남겨주어야한다는 약간의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 무거운 짐을 들고 정말 힘들었을 신입생들 때문에 걱정이 앞섰지만  막상 도착해 놀다보니 저부터 신이나가지고 신입생들 재밌으려나하는 걱정할 겨를이 없더라구요.(웃음) 중간중간 해파리때문에 조금 성가시긴 햇지만 그래도 정말 물이 너무 좋았습니다. 수중환경정화를 명목으로 스쿠버다이빙도 해보고 멍게밭도 발견하여 멍게도 따오고 우리 재학생분들이 밥을 또 기가막히게 만들어 와가지고 정말 부족함없는 스킨다이빙을 할 수 있었습니다. 날씨도 4일 내내 햇빛쨍쨍한 맑은날씨가 계속되어 정말 축복받은 기분이었습니다.

그리고 둘째날 셋째날 많은 선배님들 와주셔서 고기도 잡아주시고ㅎㅎ약간은 부족햇던 술자리 재미까지 더할 수 있어 정말 웃기고 재밌고 떠나기 싫은 매물도가 되었습니다. 마지막날 하루만 더있을래? 하고 제가 말을 던졌는데 진짜 진심으로 한말이엇는데 농담인줄 알더라고요. 진짠데.

이렇게 안전하고 보람차고 행복한 추억 만들고 올수있게 도와주신 많은 선배님들과 특히 유미와 지원이의 머리를 지뜯고 고민하고 있었던 숙박문제와 비용문제를 한방에 해결해주신 우리 김명철 선배님!!! 정말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선배님들에게 받은 도움을 저도 후배들에게 더 큰 재미와 도움으로 되돌려줄 수 있는 선배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정말 너무너무 재밌고 좋았습니다!"
덧붙이는 글 무인도의 가장 큰 특징은 식수가 없다는 것이다. 소매물도는 작은 섬으로 식수가 넉넉치 못한 곳이다. 지금은 연간 60만명이 찾는 관광지가 되어 통영시에서 지하수를 파서 식수를 확보하였다. 하지만 얼마지 않아 고갈되었고 다시 지하수를 팠다고 한다. 15명 남짓했던 해녀아줌마(필자가 처음 만났을때)였던 해녀들은 할매가 되었다. 두 분이 운동삼아 물질을 한다고 한다. 원주민들은 섬에 너무 많은 사람이 찾아오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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