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벳 'a' 배우는 데 1년... 그는 어떻게 교사가 됐을까
[서평] 다니엘 페낙의 <학교의 슬픔>
▲ 며칠 전, 수업에 들어간 어느 반 칠판에서 본 문구다. 2차고사(기말고사)를 앞둔 중 2 아이들의 심정이 잘 드러나 있다. ⓒ 정은균
학교시험을 좋아하는 아이가 있을까. 열등생이든 우등생이든 시험은 학교 다니는 모든 아이들에게 '공적'이다. 음험한 악의 세력이자 어둠 그 자체다. 최악의 시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꿈을 꿔본 이가 한둘일까. 디데이에 가까워질수록 시험은 짙은 어둠이 되어 우리를 질식시킨다.
시험이 그런 취급을 받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배움 자체가 즐겁다면 시험 따위가 무슨 대수랴. 시험 문제를 푸는 일은 즐거운 배움의 기회를 한 번 더 되풀이하는 게 아니겠는가. 그런데 안타깝게도 학교는 그렇지 못하다. 중·고등학교 교사 출신으로 세계적인 작가가 된 작가 다니엘 페낙은 학교를 즐거움이 아니라 슬픔을 주는 곳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그가 보기에 슬픔은 배움을 가로막는 벽이다. 책 제목이 <학교의 슬픔>이 된 까닭이겠다.
▲ <학교의 슬픔> 책표지. ⓒ 문학동네
그렇다. 그게 바로 열등생의 속성이다. 그들은 자신의 열등함에 대해 굽이굽이 반복되는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난 한심해, 난 절대 할 수 없어. 그러니 노력해볼 필요도 없어, 이미 다 망했어, 내가 그랬잖아요, 학교는 나한테 맞지 않는다고······열등생에게 학교는 출입이 금지된 몹시 폐쇄적인 집단으로 보인다. 때로는 몇몇 선생님이 그런 생각을 돕는다. (25쪽)
스스로가 열등생이라는 생각은 작가에게 커다란 두려움을 안겨주었다. 그것은 학창 시절 내내 작가에게 가장 큰 문제이자 장애물이었다. 그래서 작가는 교사가 된 뒤 자신의 급선무를 공부 못하는 학생들의 두려움을 치료하고 방해물을 치워버려 앎이 스며들 기회를 갖게 해주는 일에 둔다.
물론 학교에는 작가와 같은 교사들이 그리 많지 않다. 문제아(?) 수가 학년 전체의 반 평균(?)보다 많은 학급의 담임교사는 분통을 터뜨리기 바쁘다. 재수가 없어 형편 없는 아이들로 가득찬 반을 맡았다는 이유를 대면서 말이다. 반에 심각한 문제라도 생기면 문제를 일으킨 아이를 학교 밖으로 내쫓을 궁리부터 하는 교사도 있다. 학교와 정책의 한계를 들이대며 문제의 아이를 현재의 학교 시스템에서는 돌볼 수 없다고 강조한다.
열등생이나 문제아, 어떤 식으로 풀 수 있을까
그런데 열등생이나 문제아의 문제를 그런 식으로 풀 수 있을까. 아이의 문제는 부모와 사회가 만들어낸 것일 때가 많다. 부모들이 즐겨 쓰는 말 중에 '대체 이 애가 뭐가 될까요'라는 질문이 있다. 어떤 배경에서 만들어지는 질문일까. 작가는 대다수 어머니(부모라고 해도 되겠다)가 미래라는 강박적인 화폭에 현재를 투영해 그려놓은 것을 아이의 미래로 생각한다고 말한다. 희망 없는 현재의 이미지가 비대하게 투영된 벽을 미래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거대한 공포감에 사로잡힌 부모들은 아이들을 채근하기 시작한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그 결과 아이들이 주눅이 들어 열등생의 세계로 빠져들거나, 반항심으로 똘똘 뭉친 문제아 대열에 끼게 되는 것도 모른 채로 말이다.
작가의 말처럼 아이들은 '뭔가 된다'. 예상대로 되는 일은 흔치 않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아이들 모두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뭔가가 되어간다는 점이다. 그런 아이들을 위해 학교는, 그리고 교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언젠가는 뭔가가 된다니 가만히 기다리기만 하면 될까.
설명하긴 어렵지만, 단 하나의 시선, 호의적인 말 한마디, 믿음직한 어른의 말 한마디, 분명하고 안정적인 그 한마디면 충분히 그들의 슬픔을 녹여내고 마음을 가볍게 하여, 그들을 직설법 현재(있는 그대로의 상황에서 눈에 보이는 지금, 여기의 일을 직접 말하는 방식. '현실'과 '현재'를 강조하기 위한 일종의 비유임-기자 주)에 빈틈없이 정착시킬 수 있다. (81~82쪽)
그래서 작가는 스스로를 포기해버린 열등생들을 설득했다. 따귀보다 정중한 대우가 자신들을 진심으로 반성할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을 믿게 해주고 싶었다고 한다. 또한 작가는 아이들에게 이것이든 저것이든 뭐라도 해야지 '결코 아무것도'라는 말은 '결코' 없다는 것을 강조했다. 아이들을 중간에 포기하거나 하는 일도 절대 하지 않았다.
유년시절의 작가는 대책 없는 열등생에다 집안에 있는 금고까지 턴 못말리는 문제아였다. 그런 작가를 '슬픈 학교'에서 구해낸 건 무엇이었을까. 작가는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부터 구해내고 나머지 다른 사람들을 모두 잊게 하는 데는 단 한 분의 선생님이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다만 조건이 있다. 자기 과목에 대한 열정에 빠져 있고, 그것을 아이들에게 전해 주려고 노력하며, 아이들을 끝까지 결코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작가에게는 그런 선생님이 세 명이나 있었다. 고2 때 수학선생님과 고3 시절 만난 역사 선생님, 재수 시절의 철학 선생님 등이 그들이다. 그들은 모른다고 하는 열등생들의 말을 결코 그대로 듣지 않았다고 한다.
익사 위기에서 구해내려는 그 몸짓의 이미지, 자살하려는 몸짓을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저 위로 나를 끌어올리려는 그 손목, 내 옷자락을 단단히 움켜쥔 살아 있는 손의 생생한 이미지, 이런 것들이 바로 그분들을 생각할 때마다 맨 처음 떠오르는 모습이다. 그들의 현존 안에서-그들의 과목 안에서-나는 나 자신의 모습에 눈을 떴다. 수학자인 나, 역사가인 나, 철학자인 나로. 그러한 나는 이 스승들을 만날 때까지 진정으로 여기 있다는 느낌을 방해했던 나를 한 시간 동안 잠시 잊고, 나를 괄호 속에 집어넣고, 나로부터 나를 치워버렸다. (324쪽)
작가의 말처럼 시장의 '고객'인 아이들로 구성되는 오늘날 학교에서 교사가 사랑이나 열정으로 무장해야 한다고 말하는 결론의 말은 어찌 보면 한가한 소리로 들린다. 아이 고객들은 돈이 도는 시장의 말을 따르기가 더 쉬워 보이지 않겠는가 말이다.
이 세상도 사랑과 열정만으로는 교사가 제 대접을 받기 어려운 시대가 된 듯하다. 아이들은 영악하게도 시장 말을 더 잘 따른다. 학교와 교실 주변에는 온갖 다양한 교육제도와 학교정책의 찌꺼기들이 쓰레기처럼 둥둥 떠나닌다.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꾸준히 이어져 온 문화와 우리들의 의식, 격동하는 정치·사회적인 흐름은 학교와 교사들을 질식시키기 일쑤다. 열정과 헌신은 불온시되고, 사랑은 오해를 받는다.
그럼에도 아니 그렇기 때문에 교사들은 더욱 더 사랑과 열정으로 무장해야 한다는 게 작가의 생각이다. 열등생과 문제아는 갈수록 더 늘어나고, 그 심각성 또한 크게 깊어지고 있다. 오죽하면 열등생을 가장 정상적인 학생으로 제시하는 게 지혜로운 교육학이 해야 하는 일이라고까지 말했을까. 작가가 보기에 열등생이야말로 교사의 역할을 온전히 정당화해주는 학생이다.
작가는 그런 교사와 학생의 모습을 하나의 메타포로 설명하면서 책을 끝맺는다. 해마다 9월이면 작가의 집에 남북으로 난 투명 유리창 부분을 통해 비행하려는 제비들이 날아든다고 한다. 그런데 그 유리창에 머리를 부딪혀 날개가 부러지거나 잠깐 기절하는 제비들이 생겨난다고 한다.
작가는 교육에서의 사랑이 학생들이 미친 새처럼 날아갈 때 일어나는 일들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아이들을 학교생활의 혼수상태에서 깨어나게 하는 일은 날개가 부러진 제비를 고쳐주고, 기절한 제비를 혼수상태에서 깨어나게 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그때마다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길을 따라가는 데 실패하고, 몇몇은 다시 깨어나지 못해 카펫에 그대로 남아 있거나 다음번 유리창에 목이 부러지기도 한다. ··· 하지만 매번 노력하고, 노력했을 것이다. 그들은 우리의 학생이니까. 이 아이 혹은 저 아이에 대한 호감이나 반감(더할 나위 없이 현실적인 문제이긴 하지만!)의 문제는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아이들에 대한 우리 감정의 정도를 말한다는 건 너무 쉽다. 지금 문제가 되는 사랑은 그런 게 아니다. 기절한 제비는 되살려야 하는 제비일 뿐이다. 그뿐이다. (371쪽)
나에게는 '기절한 제비'가 몇이나 될까.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가방을 가져오고, 하루종일 수업시간에 엎드려 자는 아이들이 몇 있다. 나는 그들을 '기절한 제비'로, 그러니까 내가 '되살려야 하는 제비'로 바라보고 있을까. 학교의 슬픔은 배움을 가로막는 벽이라는 작가의 말이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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