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소년에게 복싱은 무슨 의미일까요?
소년체전 금메달리스트, 집 떠나야 하는데 동생이 눈에 밟힙니다
▲ 눈빛종우에게 복싱은 마음을 다스리는 좋은 운동입니다. ⓒ 황주찬
"경기에서 이기면 성취감이 들어요. 그 기분이 좋아서 계속 운동해요."
여드름투성이 중학교 3학년 김종우 학생이 던진 말입니다. 종우는 제43회 전국소년체전 복싱 종목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복싱은 사각 링 안에서 두 사람이 맞붙는 경기입니다. 사각 링 크기는 가로, 세로 6m 10cm입니다. 그곳에서 잘 맞고 잘 때리면 둘 중 한사람이 이기는 경기입니다.
다시 말하면 규칙이 정해져 있는 주먹다짐입니다. 그 때문에 복싱은 인간이 만든 경기중 가장 격렬한 운동입니다. 장갑 낀 주먹으로 상대방을 때리는 이 경기는 권투입니다. 70년대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춥고 배고프던 시절, 사람들은 복싱 경기를 보며 대리 만족을 느꼈습니다.
▲ 경기사각링 크기는 가로, 세로 6미터 10센티미터입니다. 그곳에서 잘 맞고 잘 때리면 둘 중 한사람이 이기는 경기입니다. ⓒ 임성호
복싱을 보는 사람들은 주먹 한 방에 상대가 쓰러지는 모습에서 답답한 자신의 현실을 멀리 날려 보냈습니다. 지금은 사람들이 건강을 위해 주먹을 휘두릅니다. 최근, 영화배우 이시영씨가 복싱을 통해 또 한 번 유명세를 타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이시영이라는 미모의 여배우가 망가지는 모습을 보며 묘한 동질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언제나 약자인 사람들에게 잘 나가는 여배우의 망가진 얼굴을 독특한(?) 기분을 느끼게 하나 봅니다. 요즘 복싱은 비인기종목입니다. 70년대 인기를 회복하기는 힘들 듯합니다.
▲ 시상식제43회 전국소년체전 복싱 종목 금메달 리스트 김종우입니다 ⓒ 임성호
엄마와 헤어진 종우, 복싱은 마음 다스리기 좋은 운동
복싱은 상당히 힘든 운동입니다. 모든 운동이 매한가지겠지만, 특히 복싱은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날아오는 주먹은 피하며 자신의 주먹은 상대에게 맞춰야 하니 참 어려운 운동입니다. 하지만 중학생 종우는 복싱을 통해 자신과의 힘든 싸움에서 당당히 이겼습니다.
또, 자신을 둘러싼 어려움도 이겨내고 있습니다. 종우는 엄마와 6살 때 헤어졌습니다. 엄마가 아빠와 이혼하고 집을 나갔습니다. 그 뒤 종우는 엄마 얼굴을 본 적 없습니다. 엄마 모습이 잘 떠오르지도 않습니다. 엄마와 너무 어려서 헤어졌기 때문에 엄마에 대한 그리움도 기억도 희미합니다.
이런 종우에게 복싱은 마음을 다스리는 좋은 운동입니다. 종우 마음 속에는 오직 복싱에 대한 생각만 가득합니다. 때문에 종우는 힘든 운동을 군소리 없이 해냅니다. 사각링에 오르는 순간을 위해 쉼 없이 노력합니다. 종우에게 하루 10km 운동장 달리기는 기본입니다.
체중조절이 필요해 먹는 일도 조심합니다. 맘껏 음식 먹은 날이면 종우는 남들보다 두 배 더 달립니다. 고생 덕분에 종우는 제43회 전국소년체육대회 복싱종목 라이트 밴텀급(52Kg)에 출전해 금메달을 땄습니다. 헌데, 종우는 이번에 딴 빛나는 금메달이 마냥 기쁘지 않습니다.
▲ 여수종고중학교여드름투성이 종우는 올해 16살로 전남 여수 종고중학교(교장 이광연) 3학년입니다. ⓒ 황주찬
막내 간식 챙기고 숙제도 도와야하는데...
종우는 곧 고등학교로 진학합니다. 종우가 소년체전에서 딴 금메달 고등학교 진학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동생이 눈에 밟혀 먼 곳으로 떠나지 못합니다. 종우가 집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요? 지난달 28일, 소년체전 복싱 금메달리스트 김종우 학생을 만나 복잡한 속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종우는 올해 16살로 전남 여수 종고중학교(교장 이광연) 3학년입니다. 그런 종우에게 고민이 생겼습니다. 중학교 마치고 고등학교에 가야 하는 데 발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막내 남동생 때문입니다. 복싱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막내와 헤어져야 합니다.
여수에는 복싱부가 있는 고등학교가 없기 때문입니다. 종우가 복싱을 계속하려면 전남 무안에 있는 전남체고로 진학해야합니다. 하지만 초등학교 5학년 남동생이 눈에 밟힙니다. 현장일 하시는 아버지는 아침 일찍 일터로 나갑니다. 그럼 종우가 막내동생을 돌봅니다.
종우는 학교에서 운동 끝나면 급히 집으로 돌아옵니다. 친구들과 노닥거릴 시간도 없습니다. 집에서 막내 간식도 챙기고 숙제도 도와야합니다. 이래저래 바쁜 종우인데 고등학교를 무안으로 가버리면 동생 챙겨줄 사람이 없습니다. 종우 고민이 점점 더 깊어지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 김종우여드름투성이 여수 종고중학교 3학년 김종우 학생이 복싱 금메달을 땄습니다. ⓒ 황주찬
비인기 종목의 서러움, "예산 부족하고 실업팀 후원할 기업 없다"
머리가 커지면서 생기는 걱정입니다. 복싱 계속 해야 할지 근본적인 질문이 자꾸 떠오릅니다. 왜냐하면 이 운동을 통해 자신이 사회에서 자리 잡고 살 수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종우는 복싱을 열심히 해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되는 일이 꿈입니다. 하지만 종우도 남들처럼 좋은 직장에 다니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복싱으로 취직할 직장은 몇 곳 없습니다. 더구나 여수시와 전라남도에는 복싱 실업팀(직장운동부)도 없습니다. 때문에 종우는 복싱을 언제까지 해야 할지 고민입니다. 종우의 이런 고민이 현실인지 알아보고자 지난달 30일, 전남도청 스포츠산업과에 문의했습니다.
도청 담당자는 "전남에 복싱 실업팀이 한 곳도 없다"고 알려 줬습니다. 또, "전국에 복싱 실업팀 없는 곳은 전남뿐"이라는 대답도 들었습니다. 그럼, 전남에 복싱 실업팀이 없는 이유는 뭘까요? 도청 담당자는 "예산이 부족하고 실업팀 후원할 기업이 나서지 않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습니다.
다시 말하면, 복싱은 비인기 종목이라 후원할 기업이 없습니다. 종우는 선수생활 하면서도 비인기 종목 서러움을 톡톡히 당했는데 직장구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 종우가 복싱을 계속 해야 하는지 갈등이 생길 만도 합니다. 종우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보니, 이유가 한 가지 더 있습니다.
▲ 링복싱은 인간이 만든 경기 중 가장 격렬한 운동입니다. 70년대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춥고 배고프던 시절, 사람들은 복싱 경기를 보며 대리 만족을 느꼈습니다. ⓒ 황주찬
백인철과 박종팔도 전남 출신, 복싱 소외될 곳 아니다
사실, 종우 형도 복싱 국가대표 상비군까지 올라갔습니다. 하지만 중도에 복싱을 그만뒀습니다. 형도 고등학교 진학 때부터 발목이 잡혔습니다. 결국, 종우 형은 좋아하고 잘하는 복싱을 그만두고 일반대학에 들어갔습니다. 종우는 그런 형을 보면서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종우에게 복싱은 복잡한 세상을 잊게 해주는 마지막 선택입니다. 종우와 종우 형을 가르친 임성호(41·성호복싱체육관 관장)감독도 종우 형편을 안타까워합니다.
임 감독은 종우를 "복싱에 재능 있고 마음씨도 착한 아이"라고 평가합니다. 또, 임 감독은 "안타까운 점은 학교에서 교장 선생님 이하 많은 분들이 종우를 돕고 있는데 한계가 있다"며 "종우에게 필요한 고등학교가 여수에 없고 체고 나와도 마땅한 실업팀이 없어 안타깝다"고 아쉬워합니다.
▲ 장갑권투는 규칙이 정해져 있는 주먹다짐입니다. 장갑 낀 주먹으로 상대방을 때리는 경기입니다. ⓒ 황주찬
전남 복싱계가 중학교와 고등학교 그리고 실업팀으로 이어지는 연계교육 시스템을 만들 수는 없는 걸까요? 지난 2일, 대한복싱협회에 전국에 실업팀 몇 곳 있는지 물었습니다. 협회 담당자는 "공교롭게도 전남과 전북지역을 제외하고 모든 지역에 실업팀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협회 측은 "전국 22곳에 복싱 실업팀이 구성돼 있다"고 알려주기도 했습니다. 전남은 예전부터 복싱 스타가 많이 배출된 곳입니다. 무쇠주먹 백인철과 레젼드 파이터 박종팔이 전남 출신입니다, 즉, 이 지역이 복싱에서 소외될 지역이 아닌데 참 아쉬운 상황입니다.
▲ 연습종우는 사각링에 오르는 순간을 위해 쉼 없이 노력합니다. 종우에게 하루 10킬로미터 운동장 달리기는 기본입니다. 종우는 체중조절이 필요해 먹는 일도 조심합니다. 맘껏 음식 먹은 날이면 종우는 남들보다 두 배 더 달립니다. ⓒ 황주찬
올림픽에서 금메달 따고 싶은 종우의 꿈, 이루어질까요?
전라남도청 소속 실업팀은 6개입니다. 전라남도는 이들 6개 팀에게 매년 약 80억 원을 지원합니다. 남들 보기에 큰돈처럼 보이지만 6개 팀을 유지하기에 부족한 예산입니다. 그 때문에 복싱 팀까지 운영하기 힘든 모양입니다. 종우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꿈입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 집 떠나자니 동생이 눈에 밟힙니다. 여드름투성이 사춘기 소년이 마음에 품은 꿈과 온몸에 부딪쳐오는 현실은 참 많이 다릅니다. 하지만 종우는 오늘도 열심히 운동장을 달립니다. 고등학교와 대학 그리고 먹고 사는 모든 문제는 어른들에게 맡기고 묵묵히 손에 장갑을 낍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도록 달리다 보면 모든 걱정이 사라진다는 종우가 계속 복싱 장갑을 끼고 답답한 세상을 향해 날쌔고 시원한 주먹 날렸으면 좋겠습니다. 비인기 종목이라는 서러움도, 고등학교를 다니기 위해 가족과 멀리 떨어져야 하는 아쉬움도 종우가 뻗는 주먹 한 방에 스스로 무너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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