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제발, 온전한 복숭아 한 번 먹게 해다오

[경상도 여자의 전라도 생활 이야기]10년째 그가 복숭아 못 먹은 이유

등록|2014.07.17 17:07 수정|2014.07.17 19:26
우리 집 마당엔 과일나무들이 있다. 대문으로 들어서자마자 오른쪽에 키위나무가 있고 개집 옆엔 오래된 뽕나무가 있다. 개집 뒤로는 복숭아나무가 세 그루 서 있다. 한 그루는 백도, 또 한 그루는 개복숭아, 다른 한 그루는 천도복숭아와 일반 복숭아를 접목한 것이다. 그 옆으로 단감나무가 두 그루, 산수유나무 두 그루, 매실나무 다섯 그루, 석류나무가 네 그루 있다. 함께 사는 룸메이트가 10년 전 집안 둘레를 따라 과일나무를 열심히 심은 결과다.

그는 철마다 과일을 즐겨 먹었다. 그러나 복숭아는 거의 먹어보지 못했다고 한다. 복숭아가 익을 철이 되면 새들이 날아와 다 먹어치워 버렸다고 했다. 복숭아가 익어가는 단내를 새들이 먼저 알고 새벽같이 찾아와 쪼아 먹곤 가버렸다는 것이다. 새가 먹지 않은 것은 제대로 크지 않아 벌레에게 도로 다 내줘야 했단다.

언제쯤 온전한 복숭아 한 번 맛볼까

▲ 아직 익지 않은 복숭아 옆, 단내를 풍기던 복숭아는 이미 새가 다 쪼아 먹고 씨앗만 남아 매달려 있다. ⓒ 김윤희


"저는요, 과일 중엔 복숭아를 제일 좋아해요. 새들처럼 복숭아를 맘껏 먹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룸메이트에게 내가 말했다. 돈을 주고 사 먹기엔 복숭아는 너무 비싸다. 그 수고로움을 가격으로 매길 순 없지만 내 주머니 사정을 봐선 턱없다. 그에게 은근한 압력을 넣고 복숭아가 익기를 기다렸다.

내가 집을 비운 사이, 그는 벌레 퇴치 약을 쳐 두고 복숭아를 수시로 확인하고 있었다. 마당을 둘러본다는 핑계로 나 또한 복숭아가 잘 크고 있는지 자주 살폈다. 가지에 매달려 계속 커야 할 복숭아가 자꾸 바닥으로 떨어졌다. 한 가지에 많은 열매가 달리면 잘 여물지 않아 사람의 손을 써야했지만 굳이 손대지 않았다. 그랬더니 자연히 나무가 실하지 못한 것을 스스로 떨어뜨렸다. 이제 떨어질 만한 것은 거의 다 떨어졌다. 복숭아가 붉은빛을 띠며 익어갔다.

'언제쯤 먹을까?' 하는 즐거운 고민에 빠졌으나 곧 즐겁지 않은 고민도 함께 찾아왔다. 집 마당에 매일 새들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새벽부터 정신없이 지저귀는 새소리에 날이 밝아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새들이 연못 물을 먹거나, 목욕하러 온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녀석들은 복숭아나무 가지에 앉아서 한참을 떠나지 않았다. 아차, 새들이 복숭아를 먹으러 온 것이다.

"야, 너 거기 기다려. 너 뭐하는 거야? 그거 내꺼 거든! 야!"
"무슨 일이야? 왜?"

나는 새를 향해 소리치면서 복숭아나무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 모습을 본 룸메이트는 내게 무슨 일이 생겼다고 여긴 모양인지 밖으로 나왔다.

"아니, 저기 새가 자꾸 복숭아 나뭇가지에 앉더니 날아갈 생각을 안 해요. 내 복숭아를 다 먹어치우고 있는 거 맞죠?"

▲ 복숭아를 땄다. 그런데 내 주먹쥔 손보다 작다. 모양은 이상해도 아주 먹음직스럽다. ⓒ 김윤희


내 말을 듣고 룸메이트가 다가왔다. 새를 쫓아내고 복숭아나무를 이리저리 살폈다. 쪼아 먹다 만 복숭아들이 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어떤 건 씨앗만 남기고 거의 다 먹어치웠다. 먹다 만 복숭아는 날벌레들이 달라붙어 신나게 즙을 빨아대고 있었다.

복숭아를 다 뺏길 수 없어 마저 커야할 복숭아를 남겨두고 모두 따기 시작했다. 금세 바가지가 복숭아로 가득 찼다. 내 주먹보다 더 작았지만 이걸 먹을 생각에 신이 난다. 한 입 베어 먹어 보니 온전하게 익지 않은 것이라 맛이 다 들진 않았지만 그래도 먹을만 했다. 모양이 좀 이상하고 상처가 난 것들은 더 달고 맛있었다.

'역시 과일은 못생긴 게 맛나.'

못 생긴 복숭아 모아 통조림 만들었더니 꿀맛

먹겠다고 따오긴 했지만 양이 많았다. 복숭아는 보관이 어려워 빨리 먹어야 하는 과일이다. 매일 먹는다 해도 조금의 상처라도 있으면 곧 물컹거리며 썩을 것이다. 여름이 지나도 이 복숭아를 먹고 싶었다. 아니 겨울까지 먹을 수 있다면 더 좋을 것 같았다. 돈만 있다면 겨울에도 복숭아를 먹을 수 있지만 난 그렇게 할 수 없다. 그러니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 찾아낸 방법은 바로 복숭아 통조림을 만드는 것.

나는 복숭아를 깎고 또 깎았다. 검은 점이 박혀 지저분해 보이던 껍질 속에 뽀얗고 붉은 줄무늬가 그려진 속살이 나왔다. 정말 예뻤다. 요걸 먹을 생각을 하니 괜히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바가지에 든 것을 다 깎았지만 양이 많지 않았다. 2시간 동안 한 자리에서 서서 손가락 마디가 붉어지도록 열심히 깎았건만... 작은 냄비에 가득차지도 않는다. 하지만 여기서 멈춰야 할 것 같다. 복숭아를 잘 지켜 나무에서 마저 자라고 있는 것들로 다시 통조림을 만들면 될 테다.

복숭아를 먹기 좋게 잘라 냄비에 담고 물과 설탕을 넣어 끓였다. 냄비에 있는 물이 파도처럼 흰 거품이 일면서 끓었다. 잠시 후, 불을 낮추고 거품을 거둬낸 뒤 식기만을 기다렸다. 단단하던 복숭아 살이 말랑하니 윤기가 돌았다. 금세라도 입속으로 쏙 집어넣고 싶어졌다. 식은 복숭아 통조림을 통에 담았다. 냉장고에 넣어 두고 손님이 올 때 내 놓거나 간식으로 먹을 것이다.

복숭아를 날 것으로만 먹었다는 그도, 냉장고에서 나온 시원한 통조림을 먹어 보더니 매우 만족스러워했다. 더위에 지칠 때마다 시원한 복숭아 통조림을 먹으면 정말 힘이 난다. 인스턴트가 아니기에 몸에 나쁠 리 없고 흡연자들에게도 좋다고하니 만들어보길 권한다. 껍질을 까서 자르는 일이 좀 힘들긴 하지만 그 정성까지 먹으면 얼마나 기쁘겠는가.

▲ 완성된 복숭아 통조림이다. 속살이 뽀얀 아기 살결 같다. ⓒ 김윤희


방안에 있자니 저 멀리서 새 한 마리가 날아왔다. 덩치도 제법 크다. 공중을 나는 것 같더니 살며시 복숭아 나뭇가지에 앉았다. 나는 새의 주둥이가 복숭아에 닿는 순간 한달음에 달려 나갔다.

"야, 너 거기서 봐. 자꾸 그럴 거니? 이제껏 많이 먹었잖아, 나도 좀 먹자. 이 치사한 녀석아. 너 거기 서 보라니까. 어디 가냐?"

새와 복숭아 공유하는 법 찾다

새가 하늘을 날다 말고 멈춰 설 일은 없다. 멈춰 선다면 추락사인데 그럴 리가 있겠는가. 

"난 또 누구랑 애기한다고. 그렇게 하면, 새가 안 먹을 것 같으냐? 안되겠다. 무슨 조치를 취해야지. 진작 종이를 씌울 걸 그랬나보다."

룸메이트는 중얼거리는 나를 보더니 한마디 했다. 복숭아를 혼자 먹을 생각은 아니었다. 새들이 먹을 것은 따로 남겨 놓을 참이었다. 새들은 이런 내 마음도 몰라주고 복숭아들을 죄다 쪼아놓는 바람에 새도 나도 먹지 못하고 썩어버렸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복숭아를 하나씩 종이로 감싸는 것은 무리였다. 나는 집안에 있는 그물망들을 모았다. 이것으로 복숭아 가지 전체를 다 감쌌다. 높은 곳은 손대지 않고 새의 몫으로 남겨두었다. 나의 배려를 새들이 안다면 내 몫에는 손 대지 않기를 바라본다. 과연 나는 적당한 크기로 잘 익은 복숭아를 먹을 수 있을까?      

▲ 개수가 너무 줄어서 낮은 곳에 있는 복숭아에 그물을 씌웠다. 이것이 새와 내가 공존하는 방법이다. ⓒ 김윤희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