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보험, '50년 세월'이 야속해
[특집②] 근로복지공단, 모든 산재를 산재로 인정하라
▲ 산재보험 50년을 맞아 안전보건단체 등 여러 민주사회단체가 구성한 ‘산재보험 50년을 맞아 구성한 '일하는 모든 이들의 산재보험과 안전할 권리를 위한 공동행동’은 10대 요구안을 발표하였는데 그 첫 번째 요구가 ‘모든 산재를 산재로’였다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지난 2014년 7월 1일은 산업재해보상보험이 도입된 지 50년이 된 날이다. 산재보험은 1964년 도입되었다. 1964년에는 500인 이상의 사업장과 일부 업종에만 산재보험이 적용됐지만, 점차 적용규모와 업종이 확대되면서 2000년에는 1인 이상 전 사업장으로 확대됐다.
외형상으로 보자면 크나큰 발전이라 아니할 수 없다. 반세기 한국 사회보험의 역사이며, 도입의 목적과 취지가 산업재해 노동자들의 아픔을 달래고 치유와 예방의 동반자를 자부하고 있으니 실로 그 역사가 뿌듯할 만한데, 막상 현실은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하다. 오죽하면 '모든 산재를 산재로'라는 뜨악하고, 논리 모순적인 요구가 가장 앞에 서겠는가.
'모든 산재를 산재로'라는 요구는 그만큼 현장에서 발생하는 산업재해가 '산업재해'로 오롯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는 현실을 개탄하는 것이다. 현장에서 빈번하게 은폐되는 산업재해의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재해를 당한 노동자 또는 그 유족이 절박한 심정으로 용기(?)를 내어 근로복지공단에 신청한 요양 및 유족보상 신청은 산재보험이 사회보험인지조차 의심될 정도로 적지 않게 꺾이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사회보험의 역할을 망각한 고용노동부 그리고 운영기관인 근로복지공단의 부적절한 태도이며, 이와 연동하는 빡빡한 재해 인정 기준과 재해노동자가 과도하게 짊어져야 하는 입증책임 때문이다.
업무상 질병, 절반 이상이 불승인
산업재해는 크게 사고와 질병으로 나눌 수 있는데, 사고성 재해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상당부분 인정되었다. 반면 업무상 질병의 경우 절반 이상 불승인 되었다. 통계를 보면 2013년 인정률의 경우 뇌심혈관질병 21%, 근골격계질병 53.8%, 정신질환, 자살 등등 포함하는 기타 질병 35.5%로 전체 업무상 질병 인정률이 44.1%에 지나지 않는다. 이나마도 최근 3~4년의 통계를 비교하자면 높은 편에 속한다. 바꿔 말하면 60%에 이르는 산재노동자의 경우 불승인되어 질병의 고통과 가정 경제의 파탄을 개인적으로 감당하고 있다. 요양신청자 중 업무상 관련성이 없는 경우를 고려하더라도 인정 기준은 턱없이 높다.
예컨대 최근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과로성 질병(심혈관질환 또는 사망과 관련이 있음)과 관련하여 그 기준이 완화되었다고 고용노동부나 근로복지공단이 선전한 적이 있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리 만만치 않다. 산재업무 현업에 종사하는 Y 노무사의 증언은 승인기준이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과로와 관련하여 발병 전 4주 64시간, 12주 60시간 이상 일했는지가 변경 기준이 되었다. 그리고 이 기준만은 보지 않는다고 했는데, 실상 이것이 거의 절대적 기준이 되었다. 이 기준에 미달된 경우에는 여지없고, 이 기준 시간이 넘었다 하더라도 개인 질병 관리 등을 살피게 된다. 더욱이 문제는 시간 이외에 해당 직업이 가지는 독특한 스트레스 요인을 고려하지 않는다. 이전 보다 과로의 인정 범위가 확대되었다는 것은 일면 맞는지 모르지만, 여전히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노동자가 겪는 과로와 스트레스의 현실을 반영하지 않고 있다."
과로성 질병뿐만 아니라 업무상 질병의 산업재해 인정의 기준은 재해노동자를 두 번 울리고 있다.
입증책임 누구의 의무인가
2011년 6월 23일, 서울행정법원은 "백혈병과 업무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된다"며 산업재해를 인정하는 판정을 하였다. 세상의 이목을 받고 있는 소위 '삼성 백혈병' 사건이다. 이 판결의 의미는 삼성전자에서 일했던 노동자의 최초의 백혈병 산재 인정이라는 사회적 의미도 있겠지만, 이외에도 중요한 내용을 함께 가지고 있다. 판결은 "명백하게 백혈병 유발 요인을 입증하지 못하더라도 유해한 화학물질에 지속해서 노출되면 백혈병이 발병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하여 재해노동자의 입증책임을 완화하였다.
물론 이러한 판결 내용이 재해노동자의 입증책임을 전적으로 전환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근로복지공단의 태도와 비교하면 매우 전향적임에 틀림없다. 위 판결의 대상이 되는 유족은 2007년 딸의 죽음 이후 지난한 싸움을 하고 있다. 만일 근로복지공단이 애초에 산재사망을 인정하였다면 유족은 이다지도 힘든 싸움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인데 말이다.
그런데 근로복지공단은 이조차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의 태도는 일반 사보험의 이익추구와 다를 바 없으며, 오히려 그 이상이다. 이쯤 되면 공적기금으로 산재보험을 운영하는 근로복지공단의 존재가치를 다시금 생각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근로복지공단은 현행법상 산재 여부는 심사되어야 한다고 한다. 법 개정 이전에는 재해 노동자의 입증책임 전환은 어림도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법을 바꿔야 한다. 하지만 법을 바꾸지 않고 지금이라도 얼마든지 근로복지공단이 산재보험의 사회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 재해노동자가 업무상 질병을 신청하였을 때 근로복지공단은 관련 조사의 의무를 가지고 있다. 설사 재해노동자가 '개떡' 같이 요양 신청서를 작성하였다 하더라도 근로복지공단은 이것이 업무상 관련이 있는지 최선을 다하여 조사하고, "명백하지 않아도 발생 가능성이 있다"면 산재를 인정하면 된다. 법원이 인정하는 것을 근로복지공단이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조사하는데 행정력을 가진 준 국가기관이 개인 노동자보다 유리하지 않겠는가!
근로복지공단이 바로 서는 시작은 모든 산재를 산재로 인정하는 것부터
산재보험의 목적이 "근로자의 업무상의 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하며, 재해근로자의 재활 및 사회 복귀를 촉진하기 위하여 이에 필요한 보험시설을 설치·운영하고, 재해 예방과 그 밖에 근로자의 복지 증진을 위한 사업을 시행하여 근로자 보호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불승인할까' 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인정되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실행하는 것이 사보험이 아닌 공공보험과 공공기관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다.
현재의 근로복지공단의 행태 때문에 개별 노동자들은 산재보험 급여 신청을 주저하게 된다. 산재보험의 수혜를 받아야 하는 재해노동자에게 근로복지공단은 두렵고 먼 하늘이다. 근로복지공단이 5조에 가까운 수익을 남겨도 재해노동자는 즐겁고 행복하지 않은 이유이다.
50년, 반세기, 세대가 두 번 물갈이가 될 수 있는 참으로 긴 시간이다. 이쯤 되면 국민에게 사랑받기 위해서 산재보험 그리고 근로복지공단이 스스로 제대로 서기 위해서 몸부림을 쳐야 맞지 않을까? 그 시작이 모든 산업재해를 산업재해로 인정하는 것이다. 근로복지공단은 현행법에 의해 인정기준, 입증책임이 불가피하다고 뒤로 숨을 일이 아니다. 다시 강조하건대 지금이라도 못할 것이 없다. 불승인이 목표가 아니라 가능한 승인을 조직목표로 하고, 조직의 중요한 부처로 직업성 질병 원인 파악 전담부서를 구성하면 된다. 동시에 적어도 "명백하지 않아도 발생 가능성이 있다"면 재해로 승인하면 된다. 혹여 재정 상황을 운운할 것이라면 우선 대사업장으로부터 부당하게 감면하는 수조 원에 이르는 산재보험료부터 챙기고서 나서 운을 떼는 것이 순서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월간 잡지 <일터>에 실린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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