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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씨에겐 이번이 좋은 기회라 봐야지" "박근혜 정권을 보고 어찌 새누리당 찍겠나"

[르포] '왕의 남자'의 결전장, 전남 순천·곡성의 민심 흐름

등록|2014.07.19 22:47 수정|2014.07.20 11:28

▲ 서갑원 새정치민주연합 순천·곡성 국회의원 후보와 정세균 의원이 17일 전남 순천 동부상설시장에서 유세를 하고 있는 가운데, 이정현 새누리당 후보의 유세차가 서 후보 앞을 지나가고 있다. ⓒ 소중한


"이정현씨 입장에서 이번이 좋은 기회라고 봐야지."

18일 전남 곡성의 곡성읍내에서 만난 한양호(67·남)씨는 "이정현 새누리당 후보를 밀 것"이라며 "분위기가 영 심상치 않다"고 속삭였다. 읍내에서 상점을 운영하는 그는 약간의 미소를 지으며 "원래는 나도 야당인데…"라며 말끝을 흐리기도 했다.

'왕의 남자' 간 대결로 불리며 7·30 재보궐선거 중 주요 격전지로 꼽히는 전남 순천·곡성. 이곳은 지난 2012년 총선의 광주 서을(당시 이정현 새누리당 후보 39.7% 득표)과 비슷한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다른 점은 지역구인 곡성이 이 후보의 고향이라는 것. 한씨의 "2012년 광주에서보다 지금이 더 좋은 기회"라는 설명은 이 때문이다.

이정현 후보와 대결하는 나머지 후보는 모두 네 명이다. 서갑원 새정치민주연합 후보가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정현 후보를 앞서며 높은 당선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서 후보 입장에서 새정치민주연합 경선 과정에서 탈당 후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구희승 후보와 김선동 전 통합진보당 의원(18대 순천, 19대 순천·곡성)의 뒤를 잇는 이성수 후보는 껄끄러운 상대다. 새정치민주연합 경선에 참여했다가 컷오프 탈락한 김동철 무소속 후보도 야권 후보로 분류된다.

<오마이뉴스>가 17, 18일 전남 순천과 곡성을 돌아다니며 선거 분위기와 여론을 취재해, 이번 선거의 네 개 키워드를 꼽았다.

[키워드 ①] '박근혜의 남자'의 아킬레스건

▲ 7.30보궐선거 공식 선거운동 시작일인 17일 오후, 이정현 새누리당 후보가 순천 연향동 거리에서 자전거를 끌고다니며 시민들과 인사하고 있다. ⓒ 이주빈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서갑원 후보가 이정현 후보를 9~11%p 정도 앞서고 있다. 하지만 이 후보가 가진 '호남의 새누리당 후보', '전 청와대 홍보수석' 등의 이력은 당락 여부를 떠나 이번 선거의 키워드를 이 후보로 만들고 있다.

취재 중 만난 유권자 대부분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이 후보의 이름을 자주 거론했다. 18일 만난 이아무개(56·남·공무원)씨는 "민주당, 통합진보당 모두 찍어봤는데 순천에 도움된 게 없다"며 "정권 실세라고 하니 이 후보에게 표를 줄 생각이다"고 말했다. 17일 순천 연향동에서 만난 이아무개(77·남)씨도 "전라도에서 한 번 정도는 바뀌어야 한다"며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청와대에서 큰 일을 했던 이 후보면 표를 줄 마음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회사원 장영(43·남)씨는 "아버지가 누굴 찍겠다며 대놓고 말한 건 이번이 처음인데 그게 이 후보"라며 "회사 동료들도 분위기가 예전같지 않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 후보를 지지하는 여론의 대부분이 '정권 실세'를 거론하고 있지만 정작 이 후보는 '박근혜 마케팅'을 극도로 자제하며 '왕의 남자 간 대결' 구도를 꺼리는 모양새다. '예산폭탄'과 같은 공약을 내세우면서도 박 대통령은 일절 거론하지 않고 있다. 박근혜 정권을 향한 반감이 큰 지역 정서상 오히려 박 대통령이 이 후보에게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후보는 컨셉도 '조용한 선거운동'으로 잡았다. 주로 자신의 이름이 적힌 빨간 조끼를 걸친 채 구형 자전거를 타고 지역구 곳곳을 돌고 있다. 명함도 거의 돌리지 않고, 특별한 일이 아니면 언론에 일정도 공개하지 않는다. <오마이뉴스>가 17일 로드인터뷰를 한 것을 제외하곤 언론 인터뷰도 하지 않고 있다(관련기사 : "25년만에 새누리당 후보 당선, 이것이 진짜 발전").

지역 정가에선 "이 후보가 언론에 자주 노출되고 당선 가능성이 높다고 알려질수록 이 후보에게 불리한 선거가 된다"며 "당선 가능성을 상당히 높이 봤던 2012년 총선 당시 광주 서을에서의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은 것 같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투표장에 들어가야 아는' 호남민심이 이 후보의 아킬레스건인 셈이다.

[키워드 ②] '노무현의 남자'의 아킬레스건

▲ 7·30 재보궐선거에서 전남 순천·곡성 국회의원에 도전하는 서갑원 새정치민주연합 후보가 17일 전남 순천 동부상설시장에서 정세균 의원과 유세를 하고 있다. ⓒ 소중한


이정현 후보가 순천·곡성에 출마하지 않았다면 이번 선거는 새정치민주연합의 경선과 함께 막을 내렸을 것이다. 그만큼 호남에서의 새정치민주연합 지지는 강고하고, 이는 "이 후보 쪽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상황에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서 후보가 앞서는 힘이다.

18일 순천 동부상설시장에서 만난 정아무개(52·여·순천 해룡면)는 "새누리당 지지는 꺼려진다"며 "주변 사람들을 봐도 '그래도 전라도라' 서 후보를 지지하는 쪽이 많다"고 말했다. 회사원 최송아(28·여·순천 연향동)씨도 "박근혜 정권이 하고 있는 걸 보고 어떻게 새누리당 후보를 찍나"라며 "이건 지역감정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후보에게 박근혜 대통령이 힘이자 아킬레스건이듯, 서 후보에게도 새정치민주연합은 힘이자 아킬레스건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이 6월 지방선거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최근 공천 파동까지 겪으면서 지역 유권자들은 "야당 간판만으론 서 후보가 지지를 얻기 어렵다"는 분위기를 내보였다. 공무원 이아무개(27·순천 월등면)씨는 "둘 중에 한 명을 고른다고 하면 새정치민주연합 후보겠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이 좋아서 고르는 건 아니다"며 "선거를 하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이러한 여론에 맞서 서 후보 측은 '정권심판론'을 강조하며 자신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또 서 후보는 노무현 전 대통령 당시 비서관을 역임했던 이력을 앞세우며 "심판 받아야 할 정권에게 정권의 수호 무사(이정현 후보 지칭)를 당선시켜 면죄부를 줄 순 없다"고 자신과 이 후보를 대조하고 있다.

2011년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국회의원직을 상실한 것도 서 후보에게 약점이 되고 있다. <오마이뉴스>가 만난 많은 유권자가 당시 사건을 인식하고 있었다. 서 후보 측은 "(의원직 상실형이) 정치탄압이란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에 서갑원이 다시 새정치민주연합 후보가 될 수 있었다"며 반박하고 있다(관련기사 : "'여왕의 남자', 호남을 위해 그동안 뭘 했나").

[키워드 ③] 군소후보, 누구의 아킬레스건?

▲ 7·30 재보궐선게에서 순천·곡성 지역구 국회의원에 도전하는 구희승 무소속 후보(왼쪽)와 이성수 통합진보당 후보. ⓒ 구희승 후보 페이스북, 소중한


2강 구도 속에서 이성수 통합진보당 후보와 구희승 무소속 후보가 어떤 역할을 할지 주목된다. 두 후보가 야권 후보이기 때문에 여론조사에서 이정현 후보와 큰 차이를 보이지 못한 서갑원 후보 입장에선 불리한 상황이다.

순천·곡성이 김선동 전 진보당 의원의 지역구였기 때문에 이성수 후보는 '제2의 김선동', '박근혜 정권 심판'을 강조하며 선거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정희 대표가 18일까지 이 지역에 머무는 등 당력이 모이기도 했다.

특히 새정치민주엽합 경선 도중 경선 방식을 비판하며 무소속 출마를 결심한 구 후보는 서 후보의 표를 직접적으로 갉아먹을 수 있다는 점에서 캐스팅보트로 꼽히고 있다. 구 후보는 중앙일보 조사연구팀과 여론조사기관인 엠브레인이 10~15일 유권자 8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8.0%의 지지율을 기록했다(유선 RDD 600명, 무선 패널 200명, 평균 응답률은 27.6%, 오차범위는 95% 신뢰수준에서 ±3.5%p).

▲ 7·30 재보선 순천·곡성 국회의원 선거에 얼마전까지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이정현 새누리당 후보와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 비서관을 지낸 서갑원 새정치민주연합 후보가 출마하면서 여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전남 순천 동부상설시장 인근에 붙어 있는 선거 포스터 앞을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 소중한


[키워드 ④] 인구는 적지만... 곡성의 표심

곡성은 이정현 후보의 고향이다.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곡성에서 만큼은 이 후보가 서 후보를 앞서고 있다. 18일 곡성읍내의 한 상점에서 만난 윤아무개(70·남)씨는 "지금까지 새정치민주연합을 지지했고, 당원이기도 하다"면서도 "이번에 곡성은 이정현 후보를 미는 분위기이고 나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한양호(67·남)씨는 "곡성에서 김효석 전 의원을 세 번이나 밀어줬어도 큰 변화가 없었다"며 "(이정현 후보가) 고향사람이라 아무래도 팔이 안으로 굽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이어 "순천에 곡성 사람이 많이 나가 있는데 '순천에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고 전화가 많이 온다"며 "곡성의 유권자 수가 순천에 비해 1/10 밖에 안 되지만 곡성에서 지지하면 적지 않은 힘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순천의 유권자 수는 21만 5000여 명으로 곡성(2만 7000여 명)에 10배 가량 많다.

한편 곡성 여론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진 않지만 젊은층의 경우엔 새누리당을 향한 반발심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았다. 18일 만난 회사원 문애정(25·여)씨는 "곡성에서 이정현 후보를 미는 분위기가 있지만 그래도 젊은 사람들은 야당 후보를 지지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 7·30 재보선 순천·곡성 국회의원 선거에 얼마전까지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이정현 새누리당 후보와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 비서관을 지낸 서갑원 새정치민주연합 후보가 출마하면서 여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전남 순천 연향동의 한 거리에 순천·곡성 국회의원 후보들의 현수막이 나란히 걸려 있다.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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