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밥'을 잊지 않기 위한 18대의 카메라
[서평] 이상엽의 <최후의 언어 - 나는 왜 찍는가>
▲ 진도 팽목항 터미널 건물 옥상은 시각 정보가 차지했다. 신문사와 방송사의 사진 동영상 취재기자를 위해 강력한 기지국이 건설되었다. 이것이 권력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 이상엽
20세기 사진가로 불리는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Henri cartier Bresson)는 라이카(Leica) 카메라를 끼고 다녔다. "내 라이카는 내 눈의 연장이다"라며 라이카를 향한 애정을 철학적으로 표현했던 그였다. 그의 대표작 <결정적 순간>(Images à la sauvette, 1952년)은 그와 라이카가 만나지 않았다면 나올 수 없는 작품이었다.
2차 세계대전 종군기자로 널리 알려진 로버트 카파(Robert Capa)는 칼 자이스(Carl Zeiss)의 콘탁스(Contax)를 선호했다. 2차 세계대전 사진 중 하이라이트로 평가받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카파가 콘탁스와 함께 갯벌에 뛰어들어 건져올린 것이었다. 그는 죽을 때까지 콘탁스 카메라를 손에 들고 있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라이카와 콘탁스가 한국전쟁을 기록하는 데 가장 많이 사용된 카메라라는 점이다. 이렇게 카메라는 '시대'와 맞닿아 있다. 포토저널리스트이자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인 이상엽씨의 <최후의 언어-나는 왜 찍는가>(북멘토)는 18대의 카메라와 시대가 만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세월호와 팽목항, 핫셀블라드 500CM
▲ <최후의 언어> ⓒ 북멘토
이씨가 팽목항에 가져온 카메라는 스웨덴 메이커 핫셀블라드(HASSELBLAD)의 초창기 모델인 500CM이었다. 이는 피해자 가족들을 배려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카메라는 "고개숙여 봐야 하는 웨스트레벨 파인더"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메라를 꺼낼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조용하게 몇 컷 찍은 뒤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이씨는 "현장에서 듣는 가장 인상적인 단어는 국가다"라며 "사망자와 실종자수도 놀랍지만 우리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은 국가의 실종이었다"라고 말했다. 거기서 그는 일본 작가 마루야마 겐지의 거친 목소리를 떠올렸다.
"국가란 누구의 것인가. 독재국가는 물론, 이상적인 민주주의 국가 역시 불특정 다수가 아니라 특정 소수의 것이다. 더는 민주적일 수 없을 만큼 민주적인 국가라 하더라도 실제로 그 나라는 특정 소수의 사유물이거나 거의 사유화된 동산이며 부동산이다."(<인생 따윗 엿이나 먹어라> 중에서)
이씨의 시선은 '국가'에서 '언론'으로 옮아갔다. 세월호 침몰사고에서 사람들의 입길에 자주 오르내린 것은 '기레기'(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였다. 국가의 불신에 이은 언론의 불신이었다.
"언론은 여론을 만들고 그것으로 국가를 압박하고 변화를 만든다. 하지만 그것이 현실일까? 아니다. 팽목항 현장에 수백명의 기자들이 있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피해자 가족들의 시선은 불신을 넘어 혐오와 적대에 더 가깝다.
기레기(기자 쓰레기)라는 말은 여기서 출발한다. 팽목항 터미널 건물 옥상을 점령하고 온갖 카메라와 송출장치를 설치하고 있는 모습은 사실상 컨트롤 타워를 보는 듯하다. 대놓고 정부를 대변하겠다고 자처하거나 정부와 피해자 유가족 사이에서 조정자를 자임한다. 펜과 카메라는 종횡무진 고통을 후벼 파는 칼날이 된다. 계속되는 오보와 왜곡은 사실은 은폐하고 진실에서 멀어지게 한다."(본문 239~240쪽)
한때 진보성향 월간 <사회평론길>의 사진기자로 활동했던 이씨는 "사진기자들이 팽목항 여기 저기를 돌아다니며 거대한 재난의 본질적인 문제를 증거하고 그 진실을 사진에 담았다고 한들 그가 속한 신문이나 방송이라는 제도, 국가라는 제도 안에서 규정될 뿐이다"라고 일갈했다. 그래서 "국가로부터 권위를 부여받은 장이 아닌 나와 같은 낮은 위계의 장에서 찍힌 사진을 통해" 세월호 침몰사고를 바라보겠단다.
구럼비 바위와 가림막, 펜탁스 LX
▲ 강정천의 감시. 이 길을 따라 구럼비 해안으로 가려면 두 명의 경찰을 꼬리에 달고 다녀야 한다. 감시에는 예외가 없다. ⓒ 이상엽
진도의 세월호 침몰사고에서 '국가의 실종'을 목격했다면, '구럼비 바위'가 파괴된 제주도의 강정마을에선 평화를 위협하는 '국가의 폭력'과 마주했다. 이씨는 비가 내리는 날 강정천을 따라 걷다가 '가림막'을 보게 됐다. 해군기지를 건설하려는 해군과 시공사들이 설치한 것이었다. 그 가림막으로 인해 "저 안쪽의 풍경은 감추어져 있다".
"내가 지난 수년간 작업한 것은 이땅의 파괴와 소외였다. 그 소재 중 하나가 가림막이다. 무언가를 은폐하고 음모하기 위해 쳐놓은 것이 가림막이다. 재개발지구에서, 4대강에서 우리는 무수히 많은 가림막을 보았다. 그리고 여기 제주도 강정에서 또 본다. 올레길을 찾는 이들도 기계적으로 이 가림막을 통과해야 한다. 그리고 무언가를 느낄 것이다. 제주도가 동북아 분쟁의 전초기지인지 평화의 섬인지는 결국 우리가 판단해야 한다."(본문 60쪽)
이씨는 '우리 땅 연작'을 염두에 두고 사진작업을 해왔다고 한다. 제주도 강정마을의 구럼비 바위 풍경도 여기에 포함될 것이다. 그는 "제목은 '감시받는 땅, 강정'쯤으로 할까 하는데, 사실 은폐하는 땅이 맞을 듯도 하다"라고 했다. 구럼비 바위를 중심으로 해군기지 건설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전역을 가림막과 펜스, 가시철조망으로 둘러쳤기 때문이다. 평화는 그렇게 멀어졌다.
"이 제주도 해안에 군사기지가 만들어지는 이유가 미국의 중국 견제용이라는 사실을 이제는 누구나 안다. 안보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위태롭게 하는 것이다. 게다가 제주도 주민과 환경생태마저 위협한다. 구럼비가 '가치없다'고 이야기하는 오만은 풍경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저 비내리는 날 추적거리며 강정을 걸었던 보잘 것 없는 사진가의 생각이다. 하지만 그 생각이 나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따라온 아들도 그리 생각할 것이다."(본문 67쪽)
이 불편한 풍경을 담기 위해 동행한 카메라는 아사히 펜탁스 LX였다. 지난 1980년 아사히 펜탁스 창립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기종으로 펜탁스 카메라의 명작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뛰어난 '방진-방습' 기능이 설계돼 있다. 이씨가 펜탁스 LX를 가져간 것도 "비를 맞아도 수건으로 쓱 닦아 주면 되는 간이 방수기능은 강정 취재를 한결 편하게" 해줄 거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울산과 48m 철탑, 자이스 이콘
일본 코시나사가 독일의 칼 자이스와 합작해 만든 카메라 가운데 하나가 '자이스 이콘(ZEISS IKON) 레인지파인더 카메라'다. 세상의 모든 M형 렌즈들이 호환된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필름카메라인데 지금도 생산되고 있다. 이씨는 "회사는 작지만 자본가와 노동자가 합심해 세상에 꼭 필요한 물건을 정성들여 내보이고 있는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그런 미덕이 있어 이 카메라를 한때 한국노동운동의 핵심지역이었던 울산에 데려갔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 울산은 평온하다. 파업은 사라지고 도시는 윤택해졌다. 태화강의 똥물은 이제 맑은 물이 되어 황어들이 올라온다. 현대백화점은 노동자의 아내들로 흥청대고 학원가에는 노동자의 아들로도 넘쳐난다. 집값은 경남 최고다."(본문 81쪽)
▲ 울산 현대자동차 공장 앞 45미터짜리 송전탑. 이 철탑 20미터 중간쯤에서 비정규 노동자 두 명이 296일간 농성을 했다. ⓒ 이상엽
그런 울산의 현대자동차 공장 앞에는 높이 45m의 송전탑이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 2명(천의봉·최병승씨)이 296일간 농성을 벌인 곳이다. 농성 90일째 그곳에 내려간 이씨는 철탑을 보고 '묘한 경이로움'을 느꼈다.
"농성장에서 '사진적'으로 느낀 것은 붉은 색의 현수막도 주변의 농성 천막도 아니다. 철탑이었다. 가까이서 본 철탑의 규모는 놀라웠다. 두 노동자가 아주 작게 느껴질 정도로 거대했다. 어마어마한 양의 철을 녹여 아주 튼튼하게 쌓아올린 구조물. 이것을 누가 만들었나? 노동자들이다.
(중략) 원래는 전기를 보내는 전선을 이어 가는 높은 구조물에 불과하지만 그곳을 점령한 이들 덕분에 이 철탑은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은 것이다. 옆에는 거대한 현대자동차 공장, 앞에는 그들이 만든 자동차와 그것을 타는 노동자, 그 모든 풍경이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목숨을 걸고 농성하는 차별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본문 88쪽)
이씨는 그 철탑 위에 올라가고 싶었지만 여의치 않았다. 결국 도르래를 이용해 카메라 가방을 철탑 위로 올려보냈다. 그러자 천의봉씨가 철탑 농성장에서 주변 풍경을 찍어 다시 내려보냈다. 거기에는 '노동자가 노동자를 차별하는' 공장의 모습이 찍혀 있었다. 이씨는 묻는다. "그는 이 카메라로 세상의 무엇을 찍어 보여 주고 싶었을까?".
"노동자가 만들어 내는 정교한 카메라. 그리고 세상이 꼭 필요한 것을 만들어 내는 자본. 노동으로부터 소외되지 않는 노동. 그것을 기꺼이 비싼 가격을 치르고 손에 들어 세상을 기록하는 사진가. 뭔가 참으로 가치있고 의미깊은 관계인 듯한데 이것이 우리 사회에서 잘 안된다. 마지막으로 철탑 위 사진을 찍어준 천의봉씨에게 감사를 표한다. 그가 한 철탑 위 농성은 이 시대 노동자들의 전위적 예술이다."(본문 94쪽)
최후의 언어로 기록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 이유
▲ 최근 <최후의 언어- 나는 왜 찍는가>를 펴낸 다큐멘터리 사진가 이상엽씨. ⓒ 이상엽 제공
이씨는 진도 팽목항과 제주 강정마을, 울산 현대자동차 공장 말고도 연평도․백령도와 새만금, 거리의 우익들이 우굴거리는 서울 시청 앞 등에도 카메라를 들이댔다. 중국 동북성과 동부 연안도시, 실크로드에도 갔다.
그때마다 이씨와 동행한 것은 니콘(Nikon) FA, 미놀타(Minolta) CLE, 캐논(canon) 뉴 F-1, 펜탁스 LX, 라이카플렉스(Leicaflex) SL2, 자이스 이콘, 라이카 M4-P, 올림푸스(OLYMPUS) OM4TI, 캐논 EOS-1n, 니콘 F4s, 핫셀블라드 X-Pan, 콘탁스 RTS, 롤라이플렉스(ROLLEIFLEX) 2.8F, 마미야(MAMIYA) 7Ⅱ, 베리와이드(VERIWIDE) 100, 펜탁스 67Ⅱ, 핫셀블라드 500CM과 555ELD 등 18대의 카메라였다.
책의 부제에 나온 것처럼, 이씨는 "왜 찍는가"? 아마도 에필로그에 나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초상이 그 답이 될 것이다. 그는 한국비정규직노동자센터와 1년 동안 전국을 돌며 간병인, 베이비시터, 장애인활동보조, 청소원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만나 구술을 채록하고 사진을 찍었다(여기에는 핫셀블라드 555ELD가 동원됐다). 간병인 이외선씨의 '얼음밥' 증언은 정말 놀랍고 아프다.
"우리는 식사 문제가 제일 힘들어요. 식사가 안 나오거든요. 환자하고 상주를 하게 되잖아요. 일주일 일한다 그러면 식사를 일주일치 싸 가지고 와야 해요 밥은 냉동실에 잔뜩 얼려놓고 녹여 먹어요. 얼음밥 안 먹게 해 달라고 캠페인도 해봤지만 시정이 안 되었어요."(본문 257~258쪽)
"그들의 노동조건이 얼마나 열악한지, 얼마나 고단한지, 얼마나 비참한지는 상상을 초월"해 놀랐단다. 그런데 이씨가 집담회 때 찍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한결같이 웃고 있다. 진짜 웃고 있었을까? 아니면 웃고 싶었을까? 당연히 후자일 것이다.
그래서 이들이 '진짜' 웃을 수 있을 때까지 이씨는 최후의 언어로 시대를 기록하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가 현장에서 사용했고, 책 속에서 설명했던 18대의 카메라는 '그 얼음밥'을 잊지 않기 위한 그의 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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