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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았다" 소리 들으며 가꾼 밭... 상식을 깬다

'길항작용'을 아십니까... 조순정씨의 억척스러운 농사 일기

등록|2014.07.21 11:17 수정|2014.07.21 14:57

▲ 다래넝쿨 아래 오이 맛이 싱그러웠다. ⓒ 신광태


1000여 평 규모의 다래넝쿨 아래, 곰취와 고추 등이 같이 심어져 있었다. 일반 농민들의 상식을 깨는 일이다. 특정 농작물을 재배할 때는 그 외의 식물은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모두 제거하는 게 상책인데 말이다. 제초제를 뿌려가며 작은 풀들 모두를 없앴던 것이 우리네 농법이었다. 제초제를 살 형편이 되지 못했던 농가에서는 부지런히 김을 맸다. '잡초가 하나도 없도록 하는 게 비료를 한번 주는 것보다 낫다'는 옛 어른들의 말씀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난 17일 내가 서 있었던 그곳에는 다래넝쿨과 옻나무·오이·고추·다래·곰취가 사이좋게 자라고 있다. 양분 흡입력이 강한 나무식물의 간섭 때문에 고추·오이 등 밭작물은 노랗게 말라 비틀어졌거나, 비리비리해야 정상이다. 그런데 다래넝쿨과 옻나무는 싱싱함을 더했고 고추와 오이가 주렁주렁 열렸다.

맛은 어떨까? 한입 베어 문 오이, 즙 특유의 떫은 향과 어울린 단맛이 입안에 가득 퍼졌다. 풋고추 맛도 그랬다. 매운맛과 어울린 달달함은 시장에서 판매하는 그것과는 비할 데가 아니었다.

"길항작용, 쉽지 않은 농법입니다"

▲ 엄나무와 고추 그리고 곰취, 곤드레 복합영농... 이 또한 길항작용이다. ⓒ 신광태


"'길항작용'이라고 합니다. 복합경영의 일종이고요. 아무 작물이나 막 심는 게 아니라 궁합이 맞는 식물들이 어울려 살도록 심는 거죠."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 광덕3리 어느 산 속으로 우리 일행(군청 기획감사실장, 사내면장)을 안내한 조순정씨는 나이를 묻는 내게 "개띠"라고 답했다. 순간 1970년생이라 생각했다. 옷만 화려했으면 넉넉히 그런 생각을 했을 테지만, 그보다 좀 늙어 보인다는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조순정씨는 "1958년생"이라고 말했다.

그는 차별화된 농사를 짓고 싶었단다. 7만 평 규모의 산과 밭을 사 오솔길을 만들었다. 2km 남짓한 거리에 위치한 밭으로 가는 길. 양옆엔 오갈피도 심고 당귀·누리대도 심었다. 도라지와 더덕은 자생 그대로 크도록 내버려 뒀다. 병풍취와 곰취는 그늘 속에서 이미 밀림을 이룬 지 오래다. 지목이 전으로 돼 있는 곳에는 엄나무도 심고 다래나무 눈개숭마도 식재했다. 밭고랑엔 고추와 오이·호박·옥수수 등을 심었다.

▲ 산길을 오르는 길, 양옆엔 온통 나물 군란지다. ⓒ 신광태


복합경영이란다. 아무 나무나 식물이 어울리는 게 아니다. 궁합이 맞는 작목이 따로 있단다. 상호보완을 통해 작물 특유의 독특한 맛이 살아난다고 했다. '길항작용'이라는 설명이다.

"이 산 속에서 생활한 것이 9년이 좀 넘었을 거예요. 실패도 무진장했어요. 오죽했으면 마이스터대학에 등록하고 유기농 2급 자격증까지 땄을까."

대답을 하기 전까지는 그냥 생각나는 대로 대충 아무 작물이나 심었겠거니 했다. 대학수강, 때론 독학으로 이 괴상한(?) 농법 연구에 몰두하길 7년이나 걸렸단다. 10평 남짓한 비닐하우스를 짓고 괭이와 삽으로 오솔길은 내는데 2년이 걸렸다니 도합 9년을 이 산 속에서 살아온 것이다.

모든 게 시어머님 덕분일지도...

▲ 58년 개띠 여인, 조순정씨를 소개합니다. ⓒ 신광태


"다들 돌았다고 했죠. 말리다 못한 남편은 저러다 말겠지 했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가끔 응원도 해줍니다."

반대가 심했다. 그나마 남편은 왜 성공할 수 없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설득을 했지만, 동네 사람들은 특별한 이유도 없이 미친 짓이라고 폄하했다. '혼자 산속에서 무섭지 않았냐?'는 질문에 "반드시 성공해야 할 구실을 남편 그리고 마을사람들이 만들어줬기에 무서울 틈이 없었다"라고 말했다. 이루고야 말겠다는 의지 내지는 강한 고집 때문이겠다.

"책 읽기를 즐겨한 것은 아마 시어머님 덕분일 겁니다. 그 습관 때문에 복합영농 공부에 집중할 수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요."

20대 나이. 남편을 따라 정착하게 된 광덕마을 시골집. 시어머님은 유독 잔소리가 심했다. 스트레스 때문에 병이 날 지경까지 이르면 그는 아무 생각 없이 춘천행 버스를 탔다. 서점에 들러 하루 종일 책을 읽고 나면 스스로 왜 그렇게 못났는지에 대한 반성에 이어 생각이 긍정적으로 바뀌더란다.

시어머님 태도도 차츰 변했다. 이후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시어머님 허락을 받아 춘천의 어느 서점을 찾곤 했다. 책을 살 여유가 없을 정도로 넉넉하지 못한 살림살이 때문이었다. 

▲ 산속엔 곰취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 신광태


"봄에는 더덕·취나물·곰취·병풍취 등의 산나물. 여름철엔 풋고추·애호박·오이. 가을엔 산다래·오미자·표고버섯. 겨울철엔 우랑 통밀빵 체험 등 사계절 농법을 합니다."

산길을 따라 밭으로 오르는 길. 겨울철만 제외하고 오솔 길가엔 산나물과 야생초가 지천이다. 다래나무 그늘 아래에서 자라는 곰취는 그 순이 연해 언제든 나물로 먹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땀을 뻘뻘 흘려가며 올라가는 소로가 지겹지 않은 건 계절에 맞게 피어난 야생화와 온통 산을 뒤덮은 산나물 향기 때문이다. 오솔길 끝자락에 자리한 '길항 오이밭'에서 따낸 오이로 갈증을 달랬다. '이런 게 힐링이구나'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자연을 역행하는 거다.

우유·계란·식용유 없는 빵... 맛은 어떨까

▲ 곰취튀김, 곰취 장아찌, 곰취국. 음식 자체가 힐링이다. ⓒ 신광태


"다른 빵들과는 맛이 다를 걸요. 맛 좀 보세요."

'개띠 여인'이 만든 빵맛은 어떨까. 내가 빵을 먹어본 기억은 옛날 단팥빵 정도가 전부다. 빵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성격 탓이다. 내가 먹어본 빵은 밀 특유의 까끌한 느낌이 났다. 사실 큰 감동은 없었다.

"흙가마, 참나무, 유기재배 통밀, 자연효소, 가마에서 구운 소금, 꿀만 넣고 구운 빵입니다. 설탕이나 우유, 계란, 식용유 등을 넣지 않았기 때문에 시중에서 파는 그런 맛은 나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단백함은 더하죠?"

'산방환담'. 농원 아래 국도변에 지은 흙벽돌 집 입구에 간판을 달았다. 힐링을 체험하고 온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란다. 길항 오이, 호박도 팔고, 힐링 오솔길에서 뜯어 온 곤드레 비빔밥, 통밀빵도 판다. 단 50가구 한정이란다.

▲ 산방환담, 산속을 다녀온 사람들끼리 힐링 이야기를 나눴다. ⓒ 신광태


덧붙이는 글 이 기사를 쓴 신광태 기자는 강원도 화천군청 기획담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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