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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빨 뽑히고 꼬리 잘린 돼지, 이런 이유였어?

폭 60cm 공간에서 임신과 출산 반복하기도... 소비자가 알면 바뀝니다

등록|2014.07.28 19:53 수정|2014.07.28 19:53
중학교 교사인 친구와의 술자리에서 농담 삼아 얘기했다.

"학생들한테 한 번 실제로 돼지를 본 적이 있냐고 물어봐, 아마 없을 걸?"

그런데 며칠 뒤, 그 친구가 정말 학생들한테 물어본 결과를 알려줬다. 정말 단 한 명도 실제 돼지를 봤다고 손을 드는 학생이 없었단다.

얼마 전 국내 1호 돼지 동물복지 농장 인증을 받은 강산이야기 강민구 대표의 일화다. 직장인 회식 단골 메뉴이며, 요즘 같은 휴가철에는 특히 판매량이 증가하는 돼지고기는 국내에서 1인당 소비량이 가장 높은 육류다. 이렇게 돼지는 우리 생활과 가장 밀착돼 있는 축산물 중 하나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살아있는 돼지가 어떤 모습인지, 돼지가 어떻게 사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다. 특히 나이대가 어릴수록 돼지는 그림책에서나 보는 동물 중 하나에 불과하다. 식품 안전에 대한 관심과 생산 과정을 세세히 알기 원하는 까다로운 소비자가 늘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실제로 살아있는 돼지를 보기 힘든 걸까?

국민 1인당 소비량 가장 많은 돼지, 어디서 자랄까?

더럽고 게으를 것 같은 돼지에 대한 우리의 편견과 달리, 돼지는 공간이 허용된다면 배변자리와 잠자리를 구분해 생활하는 청결하고, 똑똑한 동물이다. 많은 연구를 통해 돼지는 개보다 학습능력이 뛰어나고 사람으로 치면 3살 아이 정도의 지능을 가진 것으로 밝혀졌다.

'돼지가 조이스틱 게임을 할 줄 안다'는 재밌는 연구 결과도 있다. 또한 사회적 동물인 돼지는 소규모로 그룹을 짓고 다른 개체와 유대하며 살기 좋아한다. 그룹 안에서 자기들끼리 서열을 정해서 살기 때문에 그룹에 낯선 개체가 들어오면 매우 공격적으로 변하기도 한다.

더위를 식히려 진흙 목욕을 좋아하는 돼지미국의 Farm Sanctuary란 농장동물 구조, 보호단체에서 보호 중인 돼지의 모습 ⓒ Farm Sanctuary


돼지 몸에는 땀샘이 없어 더울 때는 물이나 진흙에 뒹굴기를 좋아한다. 또 몸을 덮는 두터운 털이 없어 추위에도 매우 약하다. 크고 넓은 코를 가진 돼지는 후각이 뛰어나고, 코끝에는 촉각이 함께 발달해 있다. 이에 돼지는 코로 땅을 파서 풀뿌리나 흙 속에 있는 벌레들을 찾아 먹는 습성이 있다.

돼지의 꼬리는 기분이 좋으면 말려 위로 올라가고, 기분이 좋지 않으면 아래로 내려 기분을 표현한다. 어미돼지는 출산이 가까우면 짚이나 풀을 이용해 둥지를 만드는 습성이 매우 강하다. 주변에 마땅한 장소가 없다고 판단되면 안전한 보금자리를 찾기 위해 수 Km까지도 이동한다.

그러나 오늘날 돼지를 사육하는 데 이런 이런 돼지의 습성이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현대 축산업은 오랜 가축 사육의 역사 가운데 근 100년 동안 가장 많은 고기를 생산할 수 있도록 발전했다. 돼지는 더 이상 온전한 돼지의 모습이 아니다. 국내 인구 수 1/5에 해당하는 돼지를 우리가 실제로 잘 볼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빛도 제대로 들지 않는 대형축사에 수백 수천 마리를 가둬 키우기 때문이다.

밀집사육 본래 돼지는 청결한 습성을 가진 동물이지만 좁은 공간에 사육되는 공장식 농장의 돼지들은 오물과 뒤섞여 살 수 밖에 없다 ⓒ 동물자유연대


오늘날 축산업은 수천, 수만 마리를 기르는 대규모 농장으로, 대기업 중심체제로 변모했다(소규모 가축 농가는 점점 사라지는 추세). 돼지가 질병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현재의 축산 방식은 방역을 이유로 농장과 외부의 차단이 더욱 심해지도록 만들었다.

미국의 일부 주에서는 대형 축산업자들의 로비로, 외부와 차단된 대규모 농장에서 흔히 벌어지는 동물학대를 조사해 사진과 영상으로 대중에게 알리는 동물보호 운동가와 내부고발자를 저지하기 위한 법안이 발의되어 논란이 되고 있기도 하다.  

60cm 폭 스톨에서 벗어날 수 없는 어미돼지의 삶

스톨에서 평생을 사는 어미돼지 스톨사육이 야기하는 문제들 ⓒ CIWF


딱딱한 바닥에서 오물과 뒤섞여 사는 돼지는 코로 땅을 파는 습성을 행할 수 없다. 돼지의 트레이드 마크인 꼬리도 볼 수 없다. 돼지도 아픔과 슬픔, 행복한 감정을 느끼는 존재란 사실이 망각된 공장식 농장.

이처럼 본성이 충족되지 않는 공장식 농장의 환경은 돼지의 스트레스를 높여 다른 개체를 공격하게 만든다. 이로 인해 여타의 가축에게 상처 입히는 것을 막으려 축산업자들은 돼지의 이빨과 꼬리를 자른다. 물론 마취도 없이.

▲ 분만틀에 갇힌 어미돼지는 새끼돼지와 자유롭게 교감할 수 없다. 새끼돼지는 태어나자마자 꼬리가 잘리고, 수퇘지는 고기품질을 이유로 거세당한다. ⓒ 동물자유연대


어미돼지의 삶은 더욱 가혹하다. 어미돼지는 60cm 폭의 스톨(Stall, 감금틀)에 갇혀 평생 새끼 낳는 일만 반복한다. 몸을 돌릴 수조차 없다. 감옥에서 가장 큰 형벌이 독방 처분이라는데 어미돼지는 어미로 태어난 죄로 다른 개체와의 교류를 할 수도, 걸을 수도 없다. 그저 앉았다 일어났다만을 반복할 뿐이다. 새끼를 낳고 나면 20여일 만에 재임신을 위해 새끼와 강제로 떼어 놓는다.

어미돼지는 무료함과 스트레스로 결국 쇠울타리를 계속 물고 씹는 이상행동을 보이며,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린다. 반복된 임신과 운동 부족은 만성 근골격계 질환과 생식기 질환을 야기한다. 몸과 정신이 온전치 않은 상태에서 계속 새끼를 낳는 어미돼지가 농장을 벗어나는 순간은 생식능력이 떨어져 도태되는 때이다.

돼지 운송 사진 햇볕이나 바람을 막을 장치가 없는 차량에 운송되는 돼지들. 약 110kg 돼지 한 마리 당 신문지보다 작은 공간에 실려 운송된다 ⓒ 동물자유연대


운송과 도살 과정에서도 돼지들의 고통은 끝나지 않는다. 겁도 많고, 호기심도 많은 돼지를 강제로 차에 태우기란 쉽지 않다. 빠른 작업과 편리함이 중요한 공장식 축산 시스템에선 돼지를 쉽게 차에 태우고 내리기 위해 관행적으로 전기 충격기를 사용한다.

도살 과정은 전기나 가스를 사용해 기절시킨 후 목을 자르는 방혈작업 그리고 뜨거운 물에 담그는 탕적 작업이 이뤄지는데 하루에 수백, 수천 마리를 다루는 도축공장에서 돼지 한 마리 한 마리의 고통을 헤아리며 도축하기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동물복지에 대한 인식 높아져... 국내 축산업에도 변화가

국내 1호 돼지 동물복지 농장 '강산이야기'동물복지 농장에서는 돼지의 꼬리 자르기는 금지다. 동물복지농장에서는 적정한 사육밀도를 준수하기에 꼬리를 자르지 않아도 꼬리를 무는 증상이 없다. ⓒ 강산이야기


현재 국내에서 사육되는 돼지는 약 천만 마리에 육박해 사상 최대를 기록하고 있다. 돼지의 99% 이상이 공장식으로 사육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런 현실을 알지 못한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언젠가 지금의 사육 방식이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돼지는 '원래 그렇게 키우는 동물'이라는 인식이 팽배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돼지들에게 아주 희망이 없지는 않다. 전세계적으로 동물이 가진 최소한의 기본적인 권리도 충족하지 못하는 공장식 사육방식을 점차 개선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는 것. 유럽의 경우 2012년 암탉을 철장에서 기르는 배터리케이지 시스템을 폐지하고, 2013년부터는 어미돼지의 스톨 사육을 금지했다.

미국, 뉴질랜드, 캐나다, 호주에서도 동물복지를 저해하는 최악의 사육 시설인 스톨을 단계적으로 폐지하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 또 소비자들의 관심과 요구로 돼지고기를 생산하는 대기업들이 앞다퉈 스톨 사육을 하는 농장의 돼지고기는 이용하지 않겠다는 발표를 내놓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2년부터 '동물복지축산농장 인증제도'가 도입되어 2012년에는 산란계, 2013년에는 돼지에 대한 인증이 시작됐다. 동물복지 인증을 받으려면 스톨 사육을 해서는 안 된다. 또 적정한 사육밀도를 준수해야하고, 돼지의 꼬리나 이빨을 자르는 것도 금지다.

어미돼지에게는 푹신한 깔짚이 제공되고, 새끼들과 함께 지낼 수 있는 시간이 다른 농장보다 더 많이 주어진다. 놀기 좋아하는 돼지들은 갖고 놀 수 있는 장난감도 제공 받는다. 공장식 농장에서 발생하는 심각한 악취도 동물복지 농장에서는 나지 않는다. 동물복지 농장은 동물뿐 아니라 사람이 사는 환경에도 좋은 영향을 미친다.

돼지 농장 쉽게 볼 수 있으려면 소비자가 변해야

▲ 당신이 생각하는 돼지의 모습은 어떤가요? ⓒ 동물자유연대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우리 삶의 질과 관련된 사소한 것까지 수많은 선택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농장동물에게는 그런 선택권이 없다. 그늘과 햇볕을 선택할 권리도, 한발짝 앞으로 내디딜 수도, 자기가 낳은 새끼와 함께 있을 수도 없이 그저 인간이 정해준 틀에서 평생을 살아야 한다.

이런 상태에서 동물복지란 더 좋은 것을 동물에게 베풀어 주는 게 아니다. 그저 가장 최악의 상황을 피하는 방법을 시도할 뿐이다. 당장 사육 방법을 바꿀 수도 없고, 모든 사람이 채식으로 전환해 동물이 받는 고통을 근절시킬 수도 없다. 하기에 동물복지에 대한 접근은 더딜지라도 조금씩 동물이 받는 고통을 줄여주는 방향으로, 그렇게 그들의 본래 모습을 찾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농장동물에 대한 우리의 생각과 현실과의 괴리는 지금까지 축산농장에서 동물에게 가해지는 고통을 방치하는 결과를 낳았다. 어떤 고기를 먹는가와 고기를 먹고 안 먹고는 개인의 선택이지만, 우리가 돌려줘야 할 동물들의 본래 모습이 무엇인지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기를 바란다.

과도한 소비를 부추기는 세력이 만든 동물들의 거짓 모습에 더 이상 속지 않기를 바란다. '사람들에게 직접 보여줄 수 있는 농장을 만들고 싶다'는 동물복지 농장 대표의 말에 답이 있다.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돼지를 자신 있게 보여줄 수 없던 이유는 공장 혹은 기계와도 같은 돼지의 삶때문이다. 이제 소비자들이 제대로 알고 변화를 요구할 때이다.

동물복지 개선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1. 육류 소비 줄이기 : 소비를 줄이는 것만으로도 돼지의 고통을 줄일 수 있습니다. 주 1회 채식, 고기 없는 월요일 운동에 참여해주세요.
2. 동물복지 축산물로 이용하기 : 동물복지 축산물 이용은 더 많은 어미돼지들을 스톨에서 벗어나게 해줍니다. 조금 덜 먹고, 먹을 때는 동물복지 축산물을 이용해주세요.
3. 동물보호단체 활동에 함께하기 : 여러분의 참여는 지속적으로 농장동물의 복지를 개선할 수 있는 가장 큰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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