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유가족은 당장 단식을 멈춰야 합니다
영국 '힐스보로 참사' 진실규명이 주는 교훈... 20년 싸워 명예회복
▲ 단식 16일째인 유민이 아빠는 청와대를 한참 쳐다보더니 다시 제자리에 주저 앉는다. ⓒ 이희훈
세월호특별법 통과를 위해 유가족들은 벌써 열흘 넘게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도 여기에 합류했다.
그 모든 분들에게 단식을 중단하시라고 부탁하고 싶다. 어서 밥을 먹고 기력을 회복하시라고. 힘을 더 키우고 건강을 잘 돌보시라고. 꼭 부탁드리고 싶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노력은 100미터 질주가 아니다.
세월호 진상규명을 향한 여정은 단거리 질주가 하닌 '울트라 마라톤'이 될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특별법이 통과되더라도, 심지어 유가족이 원하는 내용에 근접한 법안이라도 진상규명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 결과는 단기간에 나오지 않는다. 진상이 완전히 규명될 때까지, 그에 따른 적절한 조처가 내려질 때까지 집요하게 싸워야 한다. 힘 조절을 잘 해 꾸준히 압력을 가해야 한다. 이번만은 쉽게 잊지 않는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세월호특별법 다툼의 근원에는 사법제도에 대한 불신이 있다. 검찰·경찰에 맡기면 제대로 된 수사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검사와 경찰이 신뢰와 존경의 대상인 나라에서 비슷한 사고가 일어났다면 그곳에서는 제대로 된 수사가 진행될까? 불행히도 답은 '아니'다.
세월호 진실 규명, 단거리 질주가 아닙니다
소위 '사법제도 선진국'에서도 대형 인재 참사 발생 후 진실을 밝히는 데까지 수십년이 걸렸다. 특히 정부의 잘못이 관계된 사건이라면 더욱 그렇다. 영국에서 일어난 사례를 한 번 살펴보자.
1989년 영국 축구경기장에서 큰 사고가 발생했다. 거의 100명이 죽고 700명 넘게 중상을 입은, 수천 명이 후유증에 시달린 사건이었다. 이 사건 역시 인재였다.
'힐스보로 스타디움 참사'를 어렴풋이 기억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힐스보로 스타디움은 영국 북쪽 쉐필드라는 도시에 있는 경기장이다. 1980년대 영국 축구경기장의 특징은 관람석은 입석이고, 경기장으로 사람들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큰 철망 펜스를 설치했다는 점이다. 경기장 입장 후 관중들은 우리 안에 갇힌 상태로 경기를 구경했다.
1989년 4월 15일 힐스보로 경기장에서 영국축구협회 대회 준결승전이 열렸다. 출전 팀은 리버풀과 노팅햄 포레스트였다. 축구협회는 팬끼리 싸움이 붙는 것을 염려하여 팬을 팀별로 나눠 경기장 반대쪽에 각각 입장시켰다. 리버풀 팬들이 관람석으로 가려면 가늘고 긴 터널을 통과해야 했다. 마치 병목을 통과하여 병 안으로 들어가는 모양새였다.
평상시 경찰은 그 통로 입구에서 관람객 수와 입장 속도를 통제했다. 하지만 그날 경찰은 통제하지 않았다. 긴 통로 안으로 사람들은 꾸역꾸역 계속 입장했다. 관람석 안은 더 이상 발디딜 틈이 없었다. 경기장 밖 사람들은 안의 상황을 모르고 계속 입장했다.
먼저 관람석 안에 들어온 사람들은 뒷사람들에게 떠밀렸다. 결국 철망펜스에 막혀 숨도 쉴 수 없게 되었다. 뒷사람들에게 멈추라고 소리쳐도 그 메시지는 전달되지 않았다. 앞으로는 철망에, 뒤로는 인파에 눌리는 위험한 상황. 철망을 떼어내고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 목숨을 건지려는 사람들을 경찰은 오히려 저지하고 다시 관람석으로 밀어 넣었다. 경찰도 상황파악을 못했다.
아수라장으로 변한 리버풀팀 관람석에서 결국 96명이 목숨을 잃고 766명이 중상을 입었다. 그 자리에서 질식사한 사람도 있지만, 응급구조와 처치가 늦어 목숨을 잃은 사람도 적지 않았다. 피해자들 중 두 명은 몇 년째 혼수상태에 빠져있다가 영영 깨어나지 못했다. 사망자 중 거의 절반은 십대 청소년이었다. 경기 중계를 위해 현장에 있던 방송국 카메라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참사 모습을 생방송으로 내보냈다.
▲ (EPA) 수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있는 힐스보로 참사 15일 영국 리버풀 앤필드에서 96명의 리버풀 팬들이 사망한 힐스보로 참사 19주년 추도식이 열려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애도의 꽃을 헌정하고있다. ⓒ 연합뉴스
우리가 경험한대로 영국 국민도 힐스보로 사건으로 큰 충격에 빠졌다. 막을 수 있었던 인재였기에 사건의 원인을 반드시 밝혀야 한다고 했다. 당시 영국의 집권당은 보수당이었는데, 사건 직후 지체 없이 은퇴한 대법원 판사가 주관하는 공식 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
세월호 참사 닮은 영국 '힐스보로 참사'
그 판사의 성을 따서 '테일러 위원회'라고 불렸던 이 위원회의 임무는 사건 원인규명과 축구경기장 안전 개선 방안을 제안하는 것이었다. 경찰, 응급구조기관, 축구협회 등 모든 관련 기관들이 조사 대상이었다. 위원회에게는 모든 조사 권한이 주어졌다.
테일러 판사는 30일간의 청문회와 약 8개월간의 조사 후 다음해 1월에 최종보고서를 제출했다. 사고의 책임은 전적으로 경찰에게 있다고 결론 내렸다. 조사 과정에서 경찰이 얼마나 비협조적이었는지도 최종보고서에 기록했다. 테일러 판사는 경찰이 필요한 증거를 제출하지 않고 명확한 답을 하지 않으며,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보고했다.
경찰은 자신들 잘못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리버풀팀 팬들이 질서를 지키지 않고 술에 취해 경기장에 빨리 입장하려 서로 밀치는 과정에서 참사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참사 책임을 피해자들에게 돌린 것이다.
조사위원회가 경찰의 잘못으로 일어난 사고라고 규정했지만, 구조 절차와 기관의 책임은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다. 피해자들이 술에 취해 참사를 초래했다는 구설수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언론은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해 피해자들의 책임이 더 컸다는 여론을 조성하기도 했다. 실제로 많은 영국 시민은 팬들이 술에 취한 탓에 작은 사고가 참사로 이어졌다고 믿었다. 하지만 유가족들은 이를 반박하며 경찰과 응급 지원서비스의 미흡한 대응을 지적하며 새로운 조사가 진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가족들은 집요하게 문제를 제기했다. 결국 정권이 노동당으로 바뀐 뒤 1997년 내무부 장관에 의해 재조사 지시가 내려졌다. 하지만 새 조사위원회는 별다른 내용을 밝히지 못했다. 오히려 조사위원회 위원장은 피해자들을 비하하는 발언을 해 비난을 받았다.
힐스보로 유가족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계속 사고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면서 새로운 조사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고가 일어난 후 꼬박 20년이 지난 2009년 12월, 영국 내무부 장관은 새로운 독립조사위원회를 구성해 힐스보로 참사 재조사를 선언했다. 독립조사위원회의 목적은 1989년 사고 관련 모든 정보를 연구·분석하고 그 결과를 유가족과 시민에게 공개해 참사에 대한 이해를 돕는 것이었다.
영국 성공회 교회 리버풀 지역의 주교가 독립조사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인권변호사, 정보수집전문가, 기자, 범죄학 전문가, 방송인, 지역구 경찰 차장, 복지부 차관급 의료전문가 등이 조사위원회에 참여했다. 독립조사위원회는 약 2년에 동안 4만5000건이 넘는 정보를 조사, 분석했다.
그 결과 사고 직후 경찰이 본인들의 잘못을 덮기 위해 160여 증인들의 진술을 날조한 사실이 밝혀졌다. 경찰은 피해자들이 술에 취한 것으로 가장하려 어린이 피해자에게까지 혈중알코올 검사를 강행해 결과를 조작한 것도 밝혀졌다. 언론사들은 이러한 왜곡된 사실들을 의심 없이 그대로 받아쓰며 피해자의 잘못을 탓하는데 가세했다는 것 역시 드러났다.
사건 후 20년이 지난 후에야 유가족들이 원하는 진실규명이 이뤄진 것이다. 결국 언론사들은 유가족들에게 사과했고 정정보도를 했다. 위증과 진실 은폐 공작을 주도하거나 가담한 경찰의 기소와 처벌을 요구하는 시민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경찰은 자발적으로 경찰독립감시기관에 이 사건 비리 수사를 맡겼다. 이는 영국 경찰에 대한 역사상 가장 큰 수사로 발전했다. 2012년 10월, 힐스보로 참사와 그 사건의 조사에 관여했던 1500명에 가까운 전·현직 경찰관에 대한 조사가 시작됐다.
이 조사로 앞서 밝혀진 160여건의 허위진술에 더해 55건의 새로운 위증이 드러났다. 경찰이 피해자들에게 잘못과 책임을 돌리기 위해 증거를 날조하고 국회에서도 위증을 했다는 사실이 명백히 밝혀졌다. 이 수사는 아직 진행중이다. 검찰은 새로운 증거들을 기초로 관계자들을 살인혐의로 기소하는 걸 검토하고 있다.
사건 발생 20년 후에 관계자들 살인혐의로 기소 검토
경찰 수사를 진행한 경찰독립감시기관은 20년 세월 동안 포기하지 않고 진실규명을 위해 노력한 피해자 유가족들의 열정과 투쟁이 없었다면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유가족들의 노력을 인정한 것이다.
영국은 자타 공인 법치주의 국가이다. 특히 영국 검찰은 권력의 시녀가 아닌 감시자 역할을 철저히 하고, 경찰은 그 어느 나라보다 국민에게 높은 신뢰를 얻고 있다. 하지만 경찰은 자기 이익과 책임이 걸린 문제 앞에서 이 믿음을 져버렸다. 심지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불법까지 저질렀다.
▲ 지갑 속 '보고 싶은 수진이'세월호 참사 100일된 24일 오후 단식 농성 중이던 수진이 아빠가 도보행열에 합류해 한참을 걷다 쉬는 시간, 지갑에서 수진이 사진을 꺼내듭니다. 주변 엄마들은 "수진이가 아빠 닮아 이쁘네"라며 연발 칭찬을 합니다. ⓒ 이희훈
세월호 참사는 영국의 힐스보로 사건보다 훨씬 규모가 크다. 그 원인도 훨씬 더 복합적으로 보인다. 결국 관련 기관, 법, 제도, 이행과정 등을 다 구석구석까지 살펴야 한다. 그럼에도 벌써 참사가 왜 일어났는지 제대로 알아보려는 것을 저지하려는 세력이 있다.
진실규명을 위한 조사가 시작되면 이 사건에 연루된 모든 기관들은 정부나 언론 그 누구할 것 없이 책임을 회피하려 악착같이 발버둥칠 것이다. 그래서 진실 규명은 더욱 힘들 것이다.
그러니 다시 유가족들에게 당부한다. 단식을 중단하시고 체력을 키워야 한다. 진실을 위한 투쟁은 앞으로도 갈 길이 멀고 험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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