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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가 헬기 타겠다고 손 들고 나왔다"

[단원고 생존 학생들, 입을 열다⑨] I학생의 법정 증언

등록|2014.07.29 21:34 수정|2014.08.11 23:28

[기사 대체 : 31일 오전 12시 55분]

아홉 번째로 증인석에 앉은 I학생(여, 기자 주 - 발언순서에 따라 알파벳순으로 명명)은 헬기를 타고 탈출했다. 그는 우현 쪽 갑판까지 올라가 헬기를 탈 사람은 오라는 말에 손을 들었다. I학생의 숙소는 4층 중앙 좌현 쪽인 B-23번방이었고, 탈출 경로는 먼저 증언한 F학생, G학생과 거의 같았다.

그는 "헬기 타서 하늘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나서야 배가 침몰하고 있는지 알았다"며 "제발 왜 그렇게 됐는지만 제대로 알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다음은 I학생의 증언을 정리한 것이다.

"헬기에 타서야 배가 침몰하고 있는지 알았다"

[검찰 측 신문]

"처음엔 갑자기 (배가) 기울어서 그냥 누웠다. 그런데 다시 배가 '쿵' 하고 기울어서 방 2층 침대에서 뛰어내려 복도로 나왔다. 침대에 기둥 같은 게 있다. 이층 올라가는 봉을 잡고 올라왔다. 혼자서."

"방에 창문 있는데, (사고 당시에 밖을 보니까) 네모난 창문 4분의 3 정도에 물이 차 있었다. (손으로 사각형을 그린 뒤 4분의 1정도만 표시하며) 요만큼만 하얗고 다 물이 차 있었다. 안내방송에서 복도에 안전바가 있으니까 그거 잡고 가만히 앉아 있으라고, 우리가 움직이면 배가 더 가라앉는다고,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복도에 나온 사람은 거의 20명이 넘었다. 내가 (복도에) 맨 마지막으로 나왔는데 그때 19명 있었다."

"거기서 대기할 때 승무원들은 못 봤는데 (친구들이) 곧 있으면 해경이 온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 쪽에 있던 남자애 한 명이 헬기가 왔다고, 탈 수 있는 사람 타라고 해서 손을 들었다. 나중에 배가 오니까 무서운 애들은 배타면 된다고 했다. 나는 헬기 탄다고 손들고 나갔다. 손 든 사람은 별로 안 됐다. 대여섯 명 정도. 그 중에 G학생도 있었다."

"(B-28번방 쪽으로 올라갈 때) 커튼을 줬는데 제대로 안 묶여 있었다. 그래서 떨어졌는데, 내가 못 나오니까 일반 승객분들이 호스를 다시 내려줘서 그걸 허리에 묶고 나왔다. B-28번방까지 올라왔을 때에는 그쪽 복도에 다른 학생이나 승객이 안 보였다."

"해경은 갑판 위에서 헬기 탈 때 잡아주고 앉혀주고, 그거 말고는 도와준 거 없다."

"내가 거기서 나와서 서거차도 있다가 진도체육관으로 갔다. 다시 병원으로 가서 일반인 승객을 만났는데 '학생들은 바보같이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 믿었는데 일반인들은 캐리어 같은 걸로 창문 깨서 나왔다'고 해서 그 말 듣고 친구한테 (카카오톡으로) 얘기했다. 나는 헬기 탄 뒤 하늘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나서야 배가 침몰하고 있는지 알았다."

"처음부터 배가 침몰하는 걸 알았다면 많이들 나올 수 있었다. 내가 나온 게 (오전) 10시 넘어서였고 오빠한테 (사고가 났다고) 전화했을 때가 오전 8시 50여 분이었다. 그런데 계속 앉아 있으라고 해서 한 시간 넘게 앉아 있었던 것이다. 처음부터 나가라고 했으면 많이 살았을 것 같다. 다 구명조끼도 입었으니까."

"탈출할 때 머리, 팔, 허리, 엉덩이랑 다리를 다쳤다. 그냥 막 친구들 가끔 생각날 때는 미안하고…."

"선원들 처벌은 법대로 해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제발 왜 그렇게 됐는지만 제대로 알았으면 좋겠다. 왜 침몰했는지."

"좌현 갑판 쪽에 구명보트 있었다면 뛰어내렸다"

세월호 생존 학생 증언 위한 법정28일 오전 세월호 침몰사고와 관련해 안산 단원고 생존학생들이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에서 법정 증언을 나선다. 재판부는 학생들이 미성년자이고 안산지역에 살고 있어 광주까지 장거리 이동에 어려움이 있다고 보고 안산에서 증인신문을 진행하기로 했다. 사진은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법정. ⓒ 사진공동취재단


[변호인 측 신문]

"('헬기 탈 사람 손들라'는 얘기를 누가 했냐는 질문에) 처음에 남자애 있다고 했지 않은가. 그 애가 전해줬다. 위에서 일반인들이 도와주시는데 그 남자애가 헬기 좀 이따가 오니까 탈 수 있는 사람 올라오라고 했다."

- (재판장) 좌현 갑판 쪽 출입문으로는 못 나갔는가.
"그쪽으로 배가 기울어서 못 나갔다. 거기는 애들 다 떨어질 것 같고 처음부터 문 열려서 바다가 보였다. 닿을 듯했는데 친구들 중에 뛰어들자고 한 사람은 없었다."

"만약에 구명보트나 구명벌이 있었으면 난 뛰어내릴 것 같다. 왜냐하면 그냥 쭉 미끄러지면 되는 상황이었다. 좌현 갑판 쪽 출입문은 활짝 열려서 바다가 잘 보였다. 그런데 저 위쪽으로 헬기가 왔다고 했다. 그래서 그리로 밖에 못 나가는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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