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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차올라서 어쩔 수 없이 나왔다"

[단원고 생존 학생들, 입을 열다19] N학생의 법정 증언

등록|2014.07.30 01:39 수정|2014.08.12 00:08

[기사 대체 : 31일 오전 1시 30분]

29일, 전날에 이어 열네 번째로 증언에 나선 N학생(남, 기자 주 - 발언순서에 따라 알파벳순으로 명명)은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401호 법정 증인석에 혼자 앉았다. 부모가 동행했지만 법정에는 들어오지 말라고 했다.

그는 대체로 담담하게 증언했다. 사고 후 정신적 충격은 없냐는 질문에 "잘 지내고 있다"고 답했다. 재판장도 이날 "다른 사람들보다 씩씩한 것 같다"며 "주변에 괴로워하는 친구들을 도와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다음은 N학생의 증언을 정리한 것이다.

"애들이 선생님한테 물 찬다고 살려달라고 소리 질렀다"

[검찰 측 신문]

"B-6번방을 배정받고 잠도 거기서 잤다. 4월 16일에 일어나선 친구들하고 식당에서 밥 먹고, 자유시간에 4층 좌현 갑판에서 놀았다. 놀다가 갑자기 추워져서 친구들이랑 방에 들어가려고 했다. 제 방에 갔는데 친구가 자기 방에 놀자고 해서 B-18번방으로 갔다. 거기 방에서 누워서 얘기하던 중에 갑자기 배가 기울었다. 누워 있다가 갑자기 좌측으로 쭈욱, 천천히 기울었다."

"처음에는 그냥 잠시 기울어지고 원래대로 돌아올 줄 알았는데 안 돌아오니까 애들끼리 그 상태에서 놀았다. 위험한 상황인줄 모르고 폰으로 사진 찍고 동영상 찍었다. 그러던 중 바깥 상황이 궁금해서 문을 열었는데 B-19번방에서 선수 쪽까지 이어지는 복도에 애들이 엄청 나와 있었다. 우리도 애들 보고 다 복도로 나왔다. 선실에 한 7~10분 정도 있었다."

"복도로 나오고 나서부터 (방송이) 들렸다. 그때 복도에 있던 사람이 거의 한 30명? 50명 가까이? 복도에 거의 자리가 없을 정도로 애들이 많았다. 쭉 일렬로.

"물이 복도에 찰 것 같아서 무서웠다. 그래서 애들끼리 그냥 구명조끼 입자고 했다. '어떻게 입냐'고 하니까 방 안에 구명조끼 있으니까 한 명이 들어가서 꺼내왔다. 배가 기울어질 당시에는 맞은편(B-16번방 쪽)이 보였다. 그래서 그쪽 애들한테 구명조끼 몇 개 필요한지 물어봐서 얘기 듣고 밑으로 내려줬다. 기울어져있으니까 그냥 내려줬다. 방송에선 구명조끼 입으란 말 안 나왔는데 우리끼린 입고 있었다. 입고 나서 좀 많이 기울어진 상태에서 구명조끼 방송 나왔다. 그때에는 거의 방으로 못 들어갈 정도로 기울어져 있었다."

"선원은 본 적이 없다. (침몰할 것 같았지만) '움직이지 말고 각자 자리에서 대기해주시길 바란다'는 방송 나왔고 움직이면 더 위험해지는 상황이 벌어질 것 같았다. 기울어졌으니까 아무래도 넘어지면 다칠 것 같았다. 그래서 방송 나오는 대로 그냥 따라하자고 했다. 또 몇 분 뒤에 해경이 도착할 예정이라고 해서 '아 이제 와서 구해주나보다'하고 생각했다. 우리는 그냥 학생들만 있었고 선내 방송만 믿고 해경을 기다리고 있었다."

"원래 맞은편(좌현)이 보였는데, 배가 기우니까 그쪽이 안 보였다. 정전이 되고 완전 캄캄한데 물소리는 계속 들렸다. B-16번방 쪽 복도에서 애들이 선생님한테 물 찬다고 소리 지르고 살려달라고 한 애들도 있었다. 배가 많이 기울어서 아예 움직일 수도 없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B-11번방 쪽 복도까지 물이 다 차서 중앙 로비 쪽으로 나가려고 했다. 내 순서를 기다리는데, 물이 키즈룸(4층 중앙 우현)까지 차버렸다. 수압 때문에 물이 거꾸로 내가 있는 쪽으로 밀려오고 양쪽에서 물이 오니까 아무것도 모르고 빨리 나가려고 했는데 몸이 선수 쪽으로 밀렸다.

"키즈룸에 애들 많았는데... 선실에 있던 7명 중 세 명만 나왔다"

세월호 생존 학생 증언 위한 법정28일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에서 세월호 참사 생존 단원고 학생들의 증인신문이 진행된 가운데 화상장치가 연결된 법정이 공개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그래도 앞으로 가서 문을 잡고 잠수하듯이 나왔다. 중앙 로비, 우현 쪽으로 오니까 거긴 물이 이미 찼는데, 키즈룸 부근에 애들이 엄청 많았다. 내 생각에는 좌측에 있던 애들도 물이 차서 그쪽으로 올라온 것 같다. 그런데 앞으로 갈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거기서도 어떻게 앞으로 가슴 정도까지 물이 다 찬 상태였는데, 뭘 잡고서 잠수하듯이 나와서 우현 갑판으로 나왔다. 그쪽 문이 한쪽은 고정문이고 한쪽은 열리는 문이니까 고정문을 잡고 나왔다. 갑판으로 나올 때도 정확한 기억은 안 나지만, 여기서도 그렇게 나오지 않았을까."

"B-18번방 쪽에 나랑 같이 있던 친구들이 7명 정도 있었는데 배 밖으로 나왔을 때는 3명뿐이었다. 그리고 뒤에 있던 애들(선수 쪽)은 아무도 못 봤다."

"대피하라는 방송은 못 들었다. 물이 차서 어쩔 수 없이 나온 것이다. 처음에야 이동이 가능했는데, (복도에) 애들이 많다보니까 한 명 정도 밖에 움직일 수 없었다. 그래도 대피방송이 나왔다면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중앙 로비 쪽에 계단 같은 잡을 게 있으니까 어떻게든 나오려고 시도했을 것 같다."

"제가 있던 복도에 어린아이가 있었는데 구조된 걸로 안다. 내 친구가 데리고 있었는데, 같이 나온 걸로 안다. 마지막에 그 친구가 다른 친구에 준 것 같다. '여기 아이 있다, 아이부터 태워달라'고 말했다. 나는 (마지막에 나올 때 물살도 세서 아이를 데리고) 못 나왔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친구는 복도 맨 앞에 있어서 물이 중앙 쪽에 찼어도 점프해서 나오면 가능했을 것 같다. 인명 구조 교육 같은 건 받은 적 없는 친구다."

"잠수해서 올라오다 어디 부딪쳐서 얼굴에 타박상이 생겼다. 친구들 내려오는 것을 도와주다가 손에 상처가 났다. (정신적으로는) 나는 잘 지내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선장과 선원들은 좀 제대로 된 벌을 받았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자꾸 그 선장도, 잘못했으니까 벌 받아야 하는 게 마땅한데 그 벌 받을 생각 안 하니까 별로인 것 같다. 제대로 된 벌을 해주시면 좋을 것 같다."

"선장, 잘못했으면 벌 받는 게 마땅하다"

[변호인 측 신문]

"대피 방송에서 몇 분 뒤에 해경이 온다고 한 건지는 기억 안 난다. 그 방송과 제자리에 있으라는 방송이 같은 사람이었는지도 모르겠는데 둘 다 남자였다."

"해경이나 헬기 언급한 방송도 있었다. 이제 해경이 도착했으니 자리에서 대기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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