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이 없는 문제, 문화재 반환의 역사를 기록한 책
[서평] <우리 품에 돌아온 문화재>를 읽고
뉴스를 통해서 불법 반출되었던 문화재가 한국에 다시 돌아왔다거나, 약탈된 문화재가 외국의 박물관에서 발견되었는데 반환을 거부하고 있다는 보도를 많이들 접해보셨을 겁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문화재가 해외로 유출된 것일까요?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조사에 의하면 2013년 현재 해외로 유출된 우리 문화재는 15만점이 넘습니다. 그중에 일본에 있는 것이 가장 많아 약 6만 6000점에 달하고, 미국에 약 4만 점이 있으며 그 외에도 독일, 중국, 영국, 러시아, 프랑스 등 여러 나라에 흩어져 있습니다. 15만여 점이라지만 그 실태가 정확한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유출 경로를 모두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임진왜란, 일제강점기, 6.25전쟁 등 전쟁이나 나라의 혼란기에 약탈당한 것으로 드러난 경우가 무척 많습니다. (본문 51p)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죠? 그마저도 불법으로 입수한 문화재를 당당히 전시하거나 매매하는 경우가 적어서 정확한 조사가 아니라고 하니 얼마나 많은 문화재가 해외에 있을지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이와 같은 불법 유출된 문화재 반환에 힘쓰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서 문화재 반환 사례 16건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내었습니다.
우리가 몰랐던 문화재 반환의 뒷이야기
영국의 대영박물관으로 대표되는 세계 유수의 박물관은 자국의 문화재만을 소장하고 있는게 아니라 제국 시절 해외에서 약탈해 온 문화재들이 상당수 소장되어 있습니다. 후진국들이 문화재 보존 능력이 없으니 선진국의 박물관에 보관되어 인류가 아직도 볼 수 있는게 다행이라는 반론도 있고 이미 약탈한 문화재에 자국의 문화재법을 적용해 해외 반출을 막아버리는 경우가 많아서 정부 대 정부 간의 반환 협상이 아주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프랑스가 병인양요 당시 약탈해 갔다가 20여년 간의 협상 끝에 한국에 돌아온 외규장곽 의궤는 이와 같은 각국 법률의 한계를 '갱신되는 대여'라는 묘안으로 해결했습니다.
비록 반환이 아니라 5년 단위로 갱신되는 대여의 형식을 빌리기는 했지만, 프랑스에 되돌려줄 필요가 없는 사실상의 영구 대여라는 점에서 한국은 실리를 얻고, 프랑스는 명분을 살린 윈-윈 협상이 아니었을까요? (본문 92p)
또한 문화재를 돌려받을 때에는 용어선택에도 매우 민감한 모습을 보입니다. 도쿄대가 소장하고 있던오대산사고본 실록을 돌려받는 과정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반환' 요구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돌려주는 문화재가 불법적으로 반출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셈이니까요. 결국 도쿄대학이 선택한 것은 실록을 서울대학교에 '기증'하는 것이었습니다. (본문 p188)
이처럼 반납하는 국가와 돌려받는 국가 간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의 문화재가 해외에서 발견되었고 이게 불법적으로 유출된 것이라고 생각하면 많은 국민들은 정부 차원에서 찾아오라고 정부를 압박하곤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일반적인 생각과는 달리 문화재 반환 협상에서는 그리 좋지 않은 방법인가 봅니다.
데라우치문고에 한국 관계 자료가 다량으로 소장되어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먼저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이 자료들의 반환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정부 기관이 직접 나서면 더 복잡해질 수 있는 것이 문화재 반환 문제입니다. 섣불리 약탈, 반출한 문화재를 원소유국에 되돌려준다면 비슷한 사례가 꼬리를 이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문화재 반환은 민간 차원에서 시도 또는 주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본문 41p)
외국의 반환 태도를 꼭 비난할 수 만은 없는 이유
이처럼 외국이 문화재 반환에 자국의 법률을 이유로 영구 반납이 아닌 대여 형식을 요구하고 이를 수용하는 우리 정부의 모습이 의아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래 사례를 살펴보면 우리나라가 가진 한계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신미양요 당시 미군에 의해 노획당했던 어재연 장군 수자기가 보관되어 있던 아나폴리스 해군사관학교와 우리나라는 어재연 장군 수자기의 반환을 검토하다 미국법의 한계 때문에 10년의 장기대여를 제안했습니다.
우리가 어재연 장군 수자기를 돌려받은 이야기와 비슷한 상황이 러시아와의 관계에서도 있었습니다. 1904년 2월, 일본 해군은 인천 제물포항에 정박중이던 러시아 해군 순양함대를 기습 공격합니다. 그 중 순양함 바리야크호는 심각한 타격을 입지만 항복하는 대신 다른 나라의 배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항구에서 스스로 나와 침몰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이 배의 깃발은 일본이 전리품으로 가져갔다가 해방 후에 한국에 남아 인천시립박물관에 소장중이었습니다.
하지만 유물은 그 가치를 알고 추모하는 후손에게 있을 때 더 큰 의미를 가집니다. 인천시는 2010년 서울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방문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에게 깃발을 전달했습니다. 다만 인천시도 아나폴리스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처럼 '2년 대여' 형식으로 깃발을 건넸습니다. 우리 문화재보호법상 2년간의 대여만이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아나폴리스 해군사관학교 박물관 측의 마음도 그랬을 거라 추측해봅니다. (본문 77p)
문화재 반환이란 정답이 없는 문제라고들 합니다. 국민 감정이나 민족의 자존심을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가서 가져와야 할 것 같지만, 상대국가와의 외교 문제를 무시할 수 없고 만약 우리나라에서 손실될 가능성이 높았던 문화재를 상대국이 정성스레 보존해오고 관리해 왔다면 이 문제는 더욱 복잡해 집니다. 이런 어려운 문제에 지금껏 힘써온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다양한 노력들이 기록된 이 책은 마치 소설을 읽는 것처럼 흥미로웠습니다.
대형 도판으로 인쇄된 문화재의 다양한 사진은 도록으로서도 가치를 가지며, 문화재 반환에 대한 고정관념이 얼마나 잘못 되었는지 알 수 있었고 미처 알지 못했던 뒷이야기도 살펴 볼 수 있는 흥미로운 책이기에 우리 문화를 사랑하는 많은 독자들에게 꼭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조사에 의하면 2013년 현재 해외로 유출된 우리 문화재는 15만점이 넘습니다. 그중에 일본에 있는 것이 가장 많아 약 6만 6000점에 달하고, 미국에 약 4만 점이 있으며 그 외에도 독일, 중국, 영국, 러시아, 프랑스 등 여러 나라에 흩어져 있습니다. 15만여 점이라지만 그 실태가 정확한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유출 경로를 모두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임진왜란, 일제강점기, 6.25전쟁 등 전쟁이나 나라의 혼란기에 약탈당한 것으로 드러난 경우가 무척 많습니다. (본문 51p)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죠? 그마저도 불법으로 입수한 문화재를 당당히 전시하거나 매매하는 경우가 적어서 정확한 조사가 아니라고 하니 얼마나 많은 문화재가 해외에 있을지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이와 같은 불법 유출된 문화재 반환에 힘쓰는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서 문화재 반환 사례 16건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내었습니다.
우리가 몰랐던 문화재 반환의 뒷이야기
▲ <우리 품에 돌아온 문화재> 책표지 ⓒ 눌와, 2014
영국의 대영박물관으로 대표되는 세계 유수의 박물관은 자국의 문화재만을 소장하고 있는게 아니라 제국 시절 해외에서 약탈해 온 문화재들이 상당수 소장되어 있습니다. 후진국들이 문화재 보존 능력이 없으니 선진국의 박물관에 보관되어 인류가 아직도 볼 수 있는게 다행이라는 반론도 있고 이미 약탈한 문화재에 자국의 문화재법을 적용해 해외 반출을 막아버리는 경우가 많아서 정부 대 정부 간의 반환 협상이 아주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프랑스가 병인양요 당시 약탈해 갔다가 20여년 간의 협상 끝에 한국에 돌아온 외규장곽 의궤는 이와 같은 각국 법률의 한계를 '갱신되는 대여'라는 묘안으로 해결했습니다.
비록 반환이 아니라 5년 단위로 갱신되는 대여의 형식을 빌리기는 했지만, 프랑스에 되돌려줄 필요가 없는 사실상의 영구 대여라는 점에서 한국은 실리를 얻고, 프랑스는 명분을 살린 윈-윈 협상이 아니었을까요? (본문 92p)
또한 문화재를 돌려받을 때에는 용어선택에도 매우 민감한 모습을 보입니다. 도쿄대가 소장하고 있던오대산사고본 실록을 돌려받는 과정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반환' 요구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돌려주는 문화재가 불법적으로 반출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셈이니까요. 결국 도쿄대학이 선택한 것은 실록을 서울대학교에 '기증'하는 것이었습니다. (본문 p188)
이처럼 반납하는 국가와 돌려받는 국가 간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의 문화재가 해외에서 발견되었고 이게 불법적으로 유출된 것이라고 생각하면 많은 국민들은 정부 차원에서 찾아오라고 정부를 압박하곤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일반적인 생각과는 달리 문화재 반환 협상에서는 그리 좋지 않은 방법인가 봅니다.
데라우치문고에 한국 관계 자료가 다량으로 소장되어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먼저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이 자료들의 반환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정부 기관이 직접 나서면 더 복잡해질 수 있는 것이 문화재 반환 문제입니다. 섣불리 약탈, 반출한 문화재를 원소유국에 되돌려준다면 비슷한 사례가 꼬리를 이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문화재 반환은 민간 차원에서 시도 또는 주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본문 41p)
외국의 반환 태도를 꼭 비난할 수 만은 없는 이유
이처럼 외국이 문화재 반환에 자국의 법률을 이유로 영구 반납이 아닌 대여 형식을 요구하고 이를 수용하는 우리 정부의 모습이 의아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래 사례를 살펴보면 우리나라가 가진 한계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신미양요 당시 미군에 의해 노획당했던 어재연 장군 수자기가 보관되어 있던 아나폴리스 해군사관학교와 우리나라는 어재연 장군 수자기의 반환을 검토하다 미국법의 한계 때문에 10년의 장기대여를 제안했습니다.
우리가 어재연 장군 수자기를 돌려받은 이야기와 비슷한 상황이 러시아와의 관계에서도 있었습니다. 1904년 2월, 일본 해군은 인천 제물포항에 정박중이던 러시아 해군 순양함대를 기습 공격합니다. 그 중 순양함 바리야크호는 심각한 타격을 입지만 항복하는 대신 다른 나라의 배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항구에서 스스로 나와 침몰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이 배의 깃발은 일본이 전리품으로 가져갔다가 해방 후에 한국에 남아 인천시립박물관에 소장중이었습니다.
하지만 유물은 그 가치를 알고 추모하는 후손에게 있을 때 더 큰 의미를 가집니다. 인천시는 2010년 서울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방문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에게 깃발을 전달했습니다. 다만 인천시도 아나폴리스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처럼 '2년 대여' 형식으로 깃발을 건넸습니다. 우리 문화재보호법상 2년간의 대여만이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아나폴리스 해군사관학교 박물관 측의 마음도 그랬을 거라 추측해봅니다. (본문 77p)
문화재 반환이란 정답이 없는 문제라고들 합니다. 국민 감정이나 민족의 자존심을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가서 가져와야 할 것 같지만, 상대국가와의 외교 문제를 무시할 수 없고 만약 우리나라에서 손실될 가능성이 높았던 문화재를 상대국이 정성스레 보존해오고 관리해 왔다면 이 문제는 더욱 복잡해 집니다. 이런 어려운 문제에 지금껏 힘써온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다양한 노력들이 기록된 이 책은 마치 소설을 읽는 것처럼 흥미로웠습니다.
대형 도판으로 인쇄된 문화재의 다양한 사진은 도록으로서도 가치를 가지며, 문화재 반환에 대한 고정관념이 얼마나 잘못 되었는지 알 수 있었고 미처 알지 못했던 뒷이야기도 살펴 볼 수 있는 흥미로운 책이기에 우리 문화를 사랑하는 많은 독자들에게 꼭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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