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한 수였지만... 박혜진 아나운서 한참 울어"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 142] '세월호 다큐' 만든 송원근 <뉴스타파> PD
세월호 희생자·실종자 가족대책위와 '416기록단', <뉴스타파>가 공동제작한 다큐멘터리 <세월호 골든타임, 국가는 없었다>가 화제다. 특히 박혜진 전 MBC 아나운서가 진행과 내레이션을 맡아 눈길을 끈다.
이 다큐멘터리(이하 다큐)는 참사가 일어난 시간부터 3일, '골든타임'이라 불리는 72시간을 재조명했다. 다큐는 당시 국가는 구조를 위해 무엇을 했는지 보여준다. 다큐를 공동제작한 송원근 <뉴스타파> PD를 지난 7월 28일 <뉴스타파> 사무실에서 만났다.
다음은 송원근 <뉴스타파> PD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함께 만든 '세월호 다큐'의 힘
- <세월호 골든타임. 국가는 없었다>가 호평을 받고 있는데 어떻게 기획됐나요?
"참사 100일이 지나면서 '당시 정부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돌아보자'는 의견이 <뉴스타파> 내부에 있었어요. 세월호 관련 기사들은 구원파 유병언 전 회장 관련 뉴스만 부각되는 상황이었죠. 근본적인 시스템을 짚는 언론은 많지 않았는데, 다큐를 통해 '참사 당시 국가는 어떻게 해야 했나'라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저희는 이번에 공동제작 형식을 취했어요. 세월호 가족대책위원회와 독립PD들이 주축이 된 '416기록단'과 <뉴스타파>가 공동제작한 거죠. 가족대책위는 초기부터 촬영한 영상과 기록을 제공했어요. '416기록단'도 참사 초기부터 현장을 기록했죠. 이걸 재조합하고 재구성했습니다. <뉴스타파>는 이런 기록들이 세상에 알려지는 통로죠."
- 이번 작업은 어디서 먼저 제안했나요?
"'세월호 100일'은 의미가 크잖아요. 각자가 생각하는 100일 의미가 있었던 거죠. '100일 특집' 제작을 논의하는 단계부터 참사 발생 이후 72시간이라는 '골든타임'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자는 합의가 있었습니다."
- 방송이 나간 후 반응은 어땠나요?
"<뉴스타파> 기반이 인터넷이잖아요. <유튜브><비메오><다음팟>, 팟캐스트 등으로만 시청자에게 전해지니 공중파처럼 방송 한 번으로 몇백 만 가구가 시청하는 확장성은 부족하죠. 그래도 일단 반응은 좋았어요. 대책위가 제작에 참여했고, 박혜진 전 MBC 아나운서가 진행과 내레이션을 맡아 많은 분이 더 관심을 가진 듯합니다.
기억하기 싫은 참담한 이야기들이 주된 내용이니, 많은 시청자는 처음 10분에서 20분 정도까지 보고, 더 못 보겠다고 말하기도 해요. 그럼에도 반응은 여전히 SNS상에서 회자되고 있을 정도예요. 이 다큐를 꼭 봐야 할 가치가 있다고 평가해 주는 시청자도 많아요."
- 이 다큐는 세월호 침몰 후 72시간을 재구성한 것인데, 100일이 지난 시점에서 '72시간의 재구성'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72시간은 3일입니다. 3일은 아이들을 구해야만 하는, 국가가 최선을 다해야 하는 골든타임입니다. 그때 국가는 어디에 있었나를 생각해 볼 수밖에 없어요. 당시 과정이 기록된 영상이 있기 때문에 자신있게 '골든타임, 국가는 없었다'라고 타이틀을 정했죠. 4월 16, 17, 18일을 돌아보면 그 시간에 정말 국가는 없었어요. 국민들이 이를 함께 생각해보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참사 후 3일에 집중했어요."
박혜진 아나운서의 힘
- 초기 72시간을 확인하는 일이 고통스러웠을 것 같아요.
"제작진이 편집하면서 많이 울었어요. 저도 초기 영상을 보면서 참담했고요. 반드시 잘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었어요. 실제 제작에 참여했던 '416기록단'의 PD들도 편집 과정에서 많이 울었다고 하더라고요. 당시는 누가 봐도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제작진은 (분위기에) 매몰되는 걸 견제해야 하니 최대한 감정을 추스르려 했죠."
- 박혜진 전 MBC 아나운서가 진행과 내레이션을 맡았잖아요. 한 번에 섭외했다고 하던데, 박 아나운서 섭외 뒷이야기가 있을 듯합니다.
"이번 다큐의 기획의도가 '국가는 무엇을 했나'였잖아요.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뉴스타파>가 그동안 보여준 '돌직구 접근'이 시청자들에게 제대로 전달될까?'라는 점이 고민이었어요. 객관적이고 담담하게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을 찾던 중 박혜진 아나운서가 생각이 났어요. 이미 5월에 MBC에서 퇴사했잖아요. 전화나 한 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섭외했죠. 박 아나운서도 '세월호 100일을 맞아 무언가를 하고 싶었다'며 바로 참여하겠다고 했어요. 다른 얘기는 없었어요. 저희가 운이 좋았죠. 많은 분들이 박 아나운서의 진행과 내레이션은 '신의 한수'라고 표현할 정도니까요."
- 박 아나운서에 대한 에피소드도 있을 것 같아요.
"팽목항을 촬영하기 위해 내려갈 때도 제작 여건이 안 좋았어요. 그래서 또 미안한 소리를 했죠. 우리 차를 타고 함께 가야할 것 같다고. 그렇게 하자고 하더군요. 6시간을 제대로 쉬지도 못한 채 내려갔죠. 방송 출연을 위해 미용실에서 머리 손질하고 이동했으니 의자에 기대지도 못하고 6시간을 갔어요. 그런 불편도 감수해 준 게 지금 생각하면 참 고맙죠.
팽목항에 내려갔는데 그날 바람이 많이 불었어요. 이미 오후 3시가 넘은 상황이었기에 해 지기 전에 촬영을 마치려면 서둘러야 했죠. 바람이 멈추길 기다릴 수도 없고... 말 그대로 바닷바람을 헤쳐가면서 촬영했어요. 서울에서 한 머리는 이미 초토화된 상태였죠.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모습들이 현장의 생생함을 더 잘 보여준 것 같아서 좋았어요."
- 촬영하면서 박 아나운서가 많이 울었다고 하던데요.
"진도 다녀오고 다음날 국회에서 클로징을 촬영하는데 거기서 유가족분들이 단식농성을 하고 계시잖아요. 팽목항에서의 적막함에 이어 단식하는 유가족들 앞에서 클로징을 촬영하니까 마음이 좋을 수가 없죠. 박 아나운서는 녹화하는 도중 '잠깐만요' 하더니 다른 곳으로 가 한참 눈물을 닦더라고요. 결국, 이래저래 다음날 광화문 앞에서 다시 녹화했죠.
그날 저녁에 내레이션 녹음하는데, 제작하는 저희도 편집하면서 눈물이 나왔어요. 그 영상을 보면서 더빙하는 처지에서도 감정이 개입되었을 거예요. 어쨌든, 많은 분이 방송이 나가고 박혜진 아나운서의 복귀(?)를 반겨주셨고, 박 아나운서도 유가족께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얘기했어요. 진심을 다하는 진행자의 힘이 얼마나 큰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친구들이 죽은 이유를 밝혀달라는데..."
- 다큐의 메시지가 '72시간 동안 국가는 뭘 했나'만은 아닐 것 같은데요.
"유가족 단식농성 현장에서 클로징을 하고, 유가족들의 행진을 다큐 마지막에 보여준 건 현장의 메시지를 담은 겁니다.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위해 특별법이 필요하다'는 거죠. 유가족들은 보상금이나 특혜를 바라는 게 아니에요.
생존 학생들의 증언에 의해서도 당시 해경은 구조 의지가 없었다는 게 드러나잖아요. '친구들이 죽은 이유에 대해서 진실규명을 해달라'고 하는데, 이를 얼버무리려 하는 지금 상황이 너무 어이 없어요. 제대로 된 진실규명을 위해서는 유가족이 주장하는 특별법 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 세월호 같은 비극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일개 PD가 이런 질문에 대답하는 게 적절한지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 세월호 참사를 지켜보면서 든 생각은 '어떻게 이렇게 시스템이 없을 수 있나'라는 겁니다. '정부, 해경, 구조당국 등 제대로 된 컨트롤타워도 없는 이 시스템은 대체 뭐지?'라는 생각이요. 재난은 언제나 예고 없이 터지잖아요. 사고가 터졌을 때 바로 적용할 수 있는 매뉴얼이 없었다는 게 세월호 참사를 통해 드러났어요. 이런 일이 다시 벌어졌을 때, 적용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은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래야만 제2, 제3의 세월호 참사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 반드시 진상규명이 필요하고요."
이 다큐멘터리(이하 다큐)는 참사가 일어난 시간부터 3일, '골든타임'이라 불리는 72시간을 재조명했다. 다큐는 당시 국가는 구조를 위해 무엇을 했는지 보여준다. 다큐를 공동제작한 송원근 <뉴스타파> PD를 지난 7월 28일 <뉴스타파> 사무실에서 만났다.
다음은 송원근 <뉴스타파> PD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 송원근 <뉴스타파> PD ⓒ 이영광
함께 만든 '세월호 다큐'의 힘
- <세월호 골든타임. 국가는 없었다>가 호평을 받고 있는데 어떻게 기획됐나요?
"참사 100일이 지나면서 '당시 정부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돌아보자'는 의견이 <뉴스타파> 내부에 있었어요. 세월호 관련 기사들은 구원파 유병언 전 회장 관련 뉴스만 부각되는 상황이었죠. 근본적인 시스템을 짚는 언론은 많지 않았는데, 다큐를 통해 '참사 당시 국가는 어떻게 해야 했나'라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저희는 이번에 공동제작 형식을 취했어요. 세월호 가족대책위원회와 독립PD들이 주축이 된 '416기록단'과 <뉴스타파>가 공동제작한 거죠. 가족대책위는 초기부터 촬영한 영상과 기록을 제공했어요. '416기록단'도 참사 초기부터 현장을 기록했죠. 이걸 재조합하고 재구성했습니다. <뉴스타파>는 이런 기록들이 세상에 알려지는 통로죠."
- 이번 작업은 어디서 먼저 제안했나요?
"'세월호 100일'은 의미가 크잖아요. 각자가 생각하는 100일 의미가 있었던 거죠. '100일 특집' 제작을 논의하는 단계부터 참사 발생 이후 72시간이라는 '골든타임'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자는 합의가 있었습니다."
- 방송이 나간 후 반응은 어땠나요?
"<뉴스타파> 기반이 인터넷이잖아요. <유튜브><비메오><다음팟>, 팟캐스트 등으로만 시청자에게 전해지니 공중파처럼 방송 한 번으로 몇백 만 가구가 시청하는 확장성은 부족하죠. 그래도 일단 반응은 좋았어요. 대책위가 제작에 참여했고, 박혜진 전 MBC 아나운서가 진행과 내레이션을 맡아 많은 분이 더 관심을 가진 듯합니다.
기억하기 싫은 참담한 이야기들이 주된 내용이니, 많은 시청자는 처음 10분에서 20분 정도까지 보고, 더 못 보겠다고 말하기도 해요. 그럼에도 반응은 여전히 SNS상에서 회자되고 있을 정도예요. 이 다큐를 꼭 봐야 할 가치가 있다고 평가해 주는 시청자도 많아요."
- 이 다큐는 세월호 침몰 후 72시간을 재구성한 것인데, 100일이 지난 시점에서 '72시간의 재구성'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72시간은 3일입니다. 3일은 아이들을 구해야만 하는, 국가가 최선을 다해야 하는 골든타임입니다. 그때 국가는 어디에 있었나를 생각해 볼 수밖에 없어요. 당시 과정이 기록된 영상이 있기 때문에 자신있게 '골든타임, 국가는 없었다'라고 타이틀을 정했죠. 4월 16, 17, 18일을 돌아보면 그 시간에 정말 국가는 없었어요. 국민들이 이를 함께 생각해보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참사 후 3일에 집중했어요."
박혜진 아나운서의 힘
- 초기 72시간을 확인하는 일이 고통스러웠을 것 같아요.
"제작진이 편집하면서 많이 울었어요. 저도 초기 영상을 보면서 참담했고요. 반드시 잘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었어요. 실제 제작에 참여했던 '416기록단'의 PD들도 편집 과정에서 많이 울었다고 하더라고요. 당시는 누가 봐도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제작진은 (분위기에) 매몰되는 걸 견제해야 하니 최대한 감정을 추스르려 했죠."
▲ '세월호 골든타임, 국가는 없었다'에서 진행과 내레이션을 맡은 박혜진 전 MBC 아나운서. ⓒ <뉴스타파> 제공
- 박혜진 전 MBC 아나운서가 진행과 내레이션을 맡았잖아요. 한 번에 섭외했다고 하던데, 박 아나운서 섭외 뒷이야기가 있을 듯합니다.
"이번 다큐의 기획의도가 '국가는 무엇을 했나'였잖아요.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뉴스타파>가 그동안 보여준 '돌직구 접근'이 시청자들에게 제대로 전달될까?'라는 점이 고민이었어요. 객관적이고 담담하게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을 찾던 중 박혜진 아나운서가 생각이 났어요. 이미 5월에 MBC에서 퇴사했잖아요. 전화나 한 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섭외했죠. 박 아나운서도 '세월호 100일을 맞아 무언가를 하고 싶었다'며 바로 참여하겠다고 했어요. 다른 얘기는 없었어요. 저희가 운이 좋았죠. 많은 분들이 박 아나운서의 진행과 내레이션은 '신의 한수'라고 표현할 정도니까요."
- 박 아나운서에 대한 에피소드도 있을 것 같아요.
"팽목항을 촬영하기 위해 내려갈 때도 제작 여건이 안 좋았어요. 그래서 또 미안한 소리를 했죠. 우리 차를 타고 함께 가야할 것 같다고. 그렇게 하자고 하더군요. 6시간을 제대로 쉬지도 못한 채 내려갔죠. 방송 출연을 위해 미용실에서 머리 손질하고 이동했으니 의자에 기대지도 못하고 6시간을 갔어요. 그런 불편도 감수해 준 게 지금 생각하면 참 고맙죠.
팽목항에 내려갔는데 그날 바람이 많이 불었어요. 이미 오후 3시가 넘은 상황이었기에 해 지기 전에 촬영을 마치려면 서둘러야 했죠. 바람이 멈추길 기다릴 수도 없고... 말 그대로 바닷바람을 헤쳐가면서 촬영했어요. 서울에서 한 머리는 이미 초토화된 상태였죠.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모습들이 현장의 생생함을 더 잘 보여준 것 같아서 좋았어요."
- 촬영하면서 박 아나운서가 많이 울었다고 하던데요.
"진도 다녀오고 다음날 국회에서 클로징을 촬영하는데 거기서 유가족분들이 단식농성을 하고 계시잖아요. 팽목항에서의 적막함에 이어 단식하는 유가족들 앞에서 클로징을 촬영하니까 마음이 좋을 수가 없죠. 박 아나운서는 녹화하는 도중 '잠깐만요' 하더니 다른 곳으로 가 한참 눈물을 닦더라고요. 결국, 이래저래 다음날 광화문 앞에서 다시 녹화했죠.
그날 저녁에 내레이션 녹음하는데, 제작하는 저희도 편집하면서 눈물이 나왔어요. 그 영상을 보면서 더빙하는 처지에서도 감정이 개입되었을 거예요. 어쨌든, 많은 분이 방송이 나가고 박혜진 아나운서의 복귀(?)를 반겨주셨고, 박 아나운서도 유가족께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얘기했어요. 진심을 다하는 진행자의 힘이 얼마나 큰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친구들이 죽은 이유를 밝혀달라는데..."
- 다큐의 메시지가 '72시간 동안 국가는 뭘 했나'만은 아닐 것 같은데요.
"유가족 단식농성 현장에서 클로징을 하고, 유가족들의 행진을 다큐 마지막에 보여준 건 현장의 메시지를 담은 겁니다.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위해 특별법이 필요하다'는 거죠. 유가족들은 보상금이나 특혜를 바라는 게 아니에요.
생존 학생들의 증언에 의해서도 당시 해경은 구조 의지가 없었다는 게 드러나잖아요. '친구들이 죽은 이유에 대해서 진실규명을 해달라'고 하는데, 이를 얼버무리려 하는 지금 상황이 너무 어이 없어요. 제대로 된 진실규명을 위해서는 유가족이 주장하는 특별법 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 세월호 같은 비극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일개 PD가 이런 질문에 대답하는 게 적절한지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 세월호 참사를 지켜보면서 든 생각은 '어떻게 이렇게 시스템이 없을 수 있나'라는 겁니다. '정부, 해경, 구조당국 등 제대로 된 컨트롤타워도 없는 이 시스템은 대체 뭐지?'라는 생각이요. 재난은 언제나 예고 없이 터지잖아요. 사고가 터졌을 때 바로 적용할 수 있는 매뉴얼이 없었다는 게 세월호 참사를 통해 드러났어요. 이런 일이 다시 벌어졌을 때, 적용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은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래야만 제2, 제3의 세월호 참사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 반드시 진상규명이 필요하고요."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영광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이영광의 언론, 그리고 방송이야기'(http://blog.daum/lightsorikwan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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