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위를 잊게한 도가니탕. ⓒ 이영미
폭염이 내린 한낮, 도 경계를 넘어 출장을 다녀왔다. 준비된 물품 지급처가 약속 시간을 40분 이상 내주는 바람에 나는 점심을 거르고 바로 출장기관에 들어가야 했다. 무거운 물품들을 빈속으로 가지고 가려니 기관 안에 반입할 때는 땀만 철철 났다.
기관 안에서 출장을 마치고 주차장에 뜨겁게 달구어진 승용차에 오르니 땀이 비 오듯 쏟아질 뿐만 아니라 갑자기 현기증도 났다. 아직 차에 에어콘이 본격적으로 가동된 상태이며 빈속으로 거리를 헤매고 다닌 탓에 더위를 먹은 것 같았다.
그늘진 곳에 차를 대어 좀 쉬었는데 그래도 속이 울렁거리고 현기증이 가시지 않는다. 주변을 둘러보니 멀리서 40년 곰탕집이란 간판이 보인다. 무슨 정신으로 차를 몰고 그 집 주차장에 대었는지 모르겠다. 들어가자 마자 "여기 곰탕 하나 주세요!" 시켜놓고 메뉴판을 보니 도가니도 눈에 들어와서 "아니 아니! 도가니탕 주세요!"하고 주문을 바꾸었다.
도가니로 바꿔 시킨 것은 도가니의 맛을 알아서가 아니다. '도가니'란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을 읽었기에 그 단어가 친근하기도 했고, 더위를 먹었으니 아무래도 몇천 원이라도 더 비싼 도가니를 먹으면 몸이 좀 낫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계산할 때 내가 처음 시킨 곰탕 값으로 결제가 되었다. 나는 이렇게 장사하면 어쩌느냐고 웃으면서 말하면서 곰탕을 안 먹고 도가니를 먹었다고 다시 결제하였다. 그리고 잠시 쉬었다가 다시 운전대를 잡고 고속도로에 들어섰다. 도가니 한 그릇으로 더위 먹은 게 빨리 사라진 것인지 힘이 나고 무사히 출장을 마치고 하루를 마감했다.
전교 조회 때도 더위 먹고 양호실 갔는데...
학교 다닐 때도 더운 여름에 전교 조회를 하면 나는 쉽게 더위를 먹었다. 양호실을 단골로 가야 했다. 그래서 나중에는 전교 조회 때는 그냥 교실에 있어야 했다. 어른이 되어서는 더위를 먹지 않고 전업주부로 안온하게 살았던 시절, 그때는 도가니를 전혀 먹지 못했다.
도가니뿐만 아니라 40세까지는 고기 자체가 몸에 소화가 안 되어 먹지 못했으며 하루 2끼 정도만 먹고 살았다. 그리고 낯을 많이 가려서 식당에서 혼자서 밥을 사 먹는다는 것도 상상할 수 없었다.
이제는 더위도 잘 먹고 도가니도 혼자 씩씩하게 식당에서 사 먹게 되었다. 나이를 먹어서 일까? 아니면 잘 먹고 잘 살아야한다는 우리 엄마의 유언이었기 때문일까? 이전의 소녀 같은 감성은 여전히 변하지 않고 살아있는데, 내 몸은 이전의 내 몸이 아니고 그 몸을 위해 악착같이 챙겨 먹는 나도 이전의 내가 아니다.
도가니탕을 먹고 더위 먹었던 것은 사라졌지만, 사라지지 않는 껄끄러움은 남아있다. 그 껄끄러움은 내 너덜너덜해진 양심에 한 조각 남은 잎사귀 같은 것일까? 그래도 한때 인권단체일을 오래 했는데 나는 어느새 오늘 저녁은 뭘 먹을까? 내일은 말복 날인데 누구랑 먹을까? 이렇게 한 끼 한 끼에 목을 매달은 속물이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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