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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에서 나오는 면발, 보신 적 있나요?

'요술쟁이' 국수호박 재배하는 전남 영광 장성남씨

등록|2014.08.07 15:25 수정|2014.08.07 15:26

▲ 국수호박에서 뽑아낸 면발. 마법을 부리지 않았는데도 호박에서 국수 가락이 나오고 있다. ⓒ 이돈삼


정말 그럴까 싶었다. 믿기지 않았다. 아무리 국수호박이라지만 쉽게 상상하기 힘들었다. 어떻게 호박에서 국수 가락이 나올 수 있단 말인가? 이름은 생소한 국수호박이지만 생김새는 보통의 호박과 큰 차이가 없다. 흡사 큰 참외 같다. 아니 통통한 애호박만 하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음식을 만드는 요령(레시피)대로 면발 뽑기에 나섰다. 먼저 국수호박 한 덩어리를 절반으로 쪼갠 다음 씨앗을 모두 긁어냈다. 그 호박을 끓는 물에 15분 동안 넣었다. 혹시나 해서 몇 분을 더 삶았다.

다 삶은 호박을 꺼내 찬물에 식혔다. 호박이 너무 뜨거워서 식히느라 애를 먹었다. 호박이 풀어내는 면발을 보기 위해선 참을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 국수호박에서 면발 뽑기. 국수호박을 씻은 다음 절반으로 잘라 씨앗을 긁어낸다. ⓒ 이돈삼


▲ 국수호박에서 면발 뽑기. 끓는 물에 15분 동안 삶은 호박을 건져 찬물에 식힌 다음 손으로 누르면 국수 가락이 나오기 시작한다. ⓒ 이돈삼


이제 익어서 물러진 호박을 눌러주는 일만 남았다. 접시에다 대고 호박을 조심스럽게 눌러봤다. 호박의 속살이 흐트러지더니 면발 모양이 모습을 드러냈다. 호박을 누르는 손에 힘이 더 들어가자 면발이 술술 풀어져 나왔다.

세상에. 탄성이 절로 나왔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요술이었다. '비비디 바비디 부' 하고 주문을 외우지 않았는데도 호박의 속살이 면발로 변신했다. 동화 속에서 호박이 마차로 변하는 것처럼.

▲ 국수호박에서 면발 뽑기. 호박의 속살이 모두 국수 가락으로 변신해 나온다. ⓒ 이돈삼


▲ 국수호박에서 면발 뽑기. 국수 가락으로 속살을 다 내놓은 호박은 껍질만 남는다. ⓒ 이돈삼


연노랑의 속살, 별미의 재료가 되다

호박이 풀어놓은 면발의 빛깔도 탐스러웠다. 연노랑의 속살이 고스란히 국수 가락으로 됐다. 밀가루 한 숟갈, 쌀 한 줌 섞이지 않았는데도 그랬다. 순수한 호박의 속살 그대로의 면발이다. 노란 속살을 면발로 다 풀어낸 호박은 쭈글쭈글해진 껍질만 남았다.

이 면발이 별미의 재료가 된다. 콩물과 만나면 콩물 호박국수다. 비빔 재료와 섞이면 비빔국수가 된다. 적당한 소스를 만들어 부으면 호박 샐러드다. 냉채로 만들거나 전으로 부쳐 먹어도 괜찮다. 아삭아삭 달짝지근 맛있다.

▲ 국수호박에서 뽑아낸 면발. 호박 한 덩어리에서 뽑은 양이다. ⓒ 이돈삼


국수호박이 맛만 좋은 게 아니다. 우리 몸에도 좋다. 풍부한 섬유질이 우리 몸의 노폐물을 배출해 낸다. 변비에 좋다. 당연히 다이어트에도 으뜸이다. 카로티노이드 성분은 우리 몸의 부기를 가라앉혀 준다. 잠도 편하게 잘 수 있도록 돕는다. 자연스레 피부 미용에 도움을 준다.

호박에 많이 들어있는 비타민과 미네랄, 칼륨은 고혈압과 당뇨에 그만이다. 각종 성인병 예방에도 효과가 있다. 특히 비타민A는 시력의 저하를 막아준다. 호박은 또 우리 몸의 면역력도 높여 준다.

이 국수호박은 3㎏ 한 상자에 2만7000원씩 판다. 일반적인 호박에 비해 가격이 비싼 편이지만 시쳇말로 없어서 못 판다. 한 유명 백화점에서 소비자와 만나고 있다. 나머지는 인터넷을 통해 직거래한다.

▲ 호박콩물국수. 호박에서 뽑아낸 면발에 콩물을 부어 만들었다. ⓒ 이돈삼


▲ 국수호박샐러드. 호박에서 뽑아낸 면발에 여러 가지 야채와 소스를 얹었다. ⓒ 이돈삼


국수호박을 재배하고 있는 이는 장성남(50)씨. 영광 백수에서 호박 농사를 짓고 있다. 지난 2009년 3월 충남 공주에서 전라남도 영광으로 옮겨왔다.

귀농 전 장 씨는 농협중앙회에서 일을 했다. 30대 초반에 지점장을 지냈다. 농협을 그만둔 뒤엔 쇼핑몰을 운영했다. 해외 유통에도 관여했다. 살림살이는 비교적 넉넉했다. 하지만 부인(김나연·45)의 건강이 문제였다. 귀농을 결심한 이유였다.

영광에 둥지를 튼 건 우연이었다. 백수해안에 여행 왔다가 풍광에 반했다. 산세가 빼어나고 바닷바람도 좋았다. 무엇보다 땅이 농사짓기에 그만이었다.

백수해안 뱀음골에 터를 잡았다. 묵혀있던 산비탈을 빌려 밭으로 일궜다. 밭이 된 6000㎡에 호박을 심었다. 호박은 열매는 물론 뿌리와 줄기, 잎 등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다는 게 매력이었다. 귀농 전부터 생각해오던 작물이었다.

▲ 국수호박을 재배하는 장성남 씨가 호박밭에서 국수호박을 들어보이고 있다. 장씨는 전남 영광으로 귀농해 국수호박을 재배하고 있다. ⓒ 이돈삼


▲ 장성남 씨가 재배하는 국수호박. 호박 넝쿨에 노란 국수호박이 달려 있다. ⓒ 이돈삼


지금은 10만㎡에 꿀단호박, 맷돌호박, 화초호박, 애호박 등 수십 가지 호박을 심었다. 이 가운데 1만㎡가 국수호박이다. 재배법도 자연농법을 실천하고 있다. 부엽토를 만들어 땅에 넣어주고 바닷물과 민물을 섞어 뿌려준다. 미생물이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병해충이 줄어든다.

풀도 손으로 뽑는다. 미처 뽑지 못한 건 호박넝쿨과 함께 자라도록 놔둔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이 유기농산물 인증을 해주었다.

"좋습니다. 내가 직접 가꾼 안전한 농산물을 먹을 수 있어서 좋고요. 맑은 공기 마시며 일하는 것도 보람이고요. 집사람의 건강도 많이 좋아졌고. 다 좋아요. 너무 바빠서 정신이 없다는 것 빼고는요."

장씨의 말에서 귀농으로 얻은 보람이 묻어난다.

▲ 밭에 널린 국수호박. 귀농인 장성남 씨가 재배하고 있는 것이다. ⓒ 이돈삼


▲ 장성남 씨의 국수호박 밭.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하고 있다. 겉보기에 호박보다도 풀이 더 많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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