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보장·강군육성, 두 마리 토끼 잡은 독일
[병영에 햇빛을③] 군사 옴부즈만 제도, 군에 대한 문민통제 장치로 자리잡아
28사단 윤 일병은 군 입대 후 112일 만에 부모 한 번 못 만나보고 선임병들의 구타로 사망했습니다. 그의 사망을 계기로 육군이 단 18일간 조사한 결과 3919건의 군내 가혹행위가 적발됐습니다.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많은 가혹행위가 자행되고 있다고 추정됩니다. 군이 병영문화를 개선하겠다고 한 지 15년이 지났지만 상황은 여전히 심각합니다. 이제 군에만 맡기지 말고 외부에서 본격적으로 감시하고 개입할 때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병영에 햇빛을' 기획 연재기사를 싣습니다. [편집자말]
▲ 의회 청사 앞을 행진하는 독일연방군독일 연방 의회 앞을 행진하는 독일연방군 장병들. 독일 의회는 언제든 불시에 부대를 방문해 병사들의 인권침해 여부를 조사하는 권한을 가진 군사 옴부즈만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 위키피디아
"독일연방군(Bundeswehr)에서는 병사의 넥타이가 틀어져 있을 때에도 장교가 손으로 직접 바로잡아주지 않는다. 넥타이는 복장의 일부분이고 복장은 인격의 연장이라고 보기에 넥타이에 손을 대는 것은 몸에 손을 대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장교들이 병사의 넥타이에도 손을 대지 않는 만큼 인격을 존중하는 군대가 바로 독일연방군이다."
국방부 정책기획관을 지낸 김국헌 예비역 육군 소장(육사 28기·군사학 박사)은 장병의 인권을 보장하면서도 강력한 전투력을 보유한 군대의 전형으로 서슴치 않고 독일연방군을 꼽았다.
김 장군은 독일연방군의 특성 중 하나로 명령에 대한 무조건적 복종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을 들었다. 합법적이고 가능한 명령에만 복종해야 하고, 비합법적인 명령은 거부할 수 있도록 한 게 독일연방군의 전통이다.
이 같은 전통은 과거 역사에 기인한다. 2차대전 당시 독일군 참모본부가 히틀러의 명령에 무조건 따르다보니 참담한 패전으로 가는 결과를 낳은 것에 대한 통절한 반성의 결과라는 것. 오늘날 독일연방군 장교들이 임관 전, 히틀러 암살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폰 슈타우펜베르크' 대령이 총살당했던 곳을 방문하는 전통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게 김 장군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민주주의와 인권존중의 전통이 살아 있는 강한 군대는 어떻게 만들어 질 수 있었을까? 이 의문을 풀기 위해선 2차대전 전범국가인 독일의 전후 재무장 과정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전사' 양성하던 나치 시대 독일군
1933년 나치는 '국방군(Wehrmacht) 구성에 관한 법'을 통과시켜 강제 징집의 근거를 마련했다. 국가사회주의와 히틀러에 의해 만들어진 국방군은 히틀러와 나치의 군대로 존재했으며, 인권 존중보다는 증오에 찬 전사(戰士)적 전통을 중시하면서 절대적인 복종과 히틀러에 대한 충성을 강조했다.
2차대전 기간 중 대략 2000만 명의 독일 남성이 군 복무를 했는데, 이들 중 1800만 명 이상이 징집된 사람들이었다. 이들에게는 전체주의적 감시와 통제 속에서 규율에 종속되고 상관의 명령에는 무조건 복종할 의무가 강조됐다.
국방군은 겉으로는 공격적이고 효율적으로 보였지만, 합리적 판단을 억누르는 군율에 의해 불구가 돼갔다. 나치 이데올로기로 점철된 정훈교육은 '유대인은 기생충이니 제거돼야 한다'는 그릇된 인종주의를 장병들에게 심어줬고, '홀로코스트'라는 끔찍한 전쟁 범죄의 하수인이 되게 했다.
패전 후 독일은 동서로 분단됐고, 국토를 분할 점령한 연합군은 어떠한 종류의 재무장 계획도 허용하지 않았다. 무장 해제된 서독은 소규모의 국경수비대 병력만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전쟁 후 동서 냉전이 격화되면서 독일의 비무장화 정책에 변화가 생기게 된다. 소련의 주도로 동독이 재무장을 추진하자, 이에 자극받은 미국과 영국·프랑스는 서독의 재무장 정책을 허가했다.
"인간의 존엄을 보호하는 건 국가의 의무"
1954년 서독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했으며, 이듬해 독일연방군이 창설된다. 1956년에는 18세부터 45세까지의 모든 남성에게 병역의무가 부과됐다(기자 주 : 지난 2011년 독일은 전면 모병제로 전환했다).
서독이 군대를 재창설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했던 사항은 바로 과거 나치시대와 같이 군이 오용돼 세계적인 비난의 대상으로 낙인찍혔던 역사적 오점을 다시는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서독은 연방군을 자체의 권력에 의해 운영되는 '국가 속의 또 하나의 국가'가 아니라, 연방의회의 상시적 감시를 받는 강력한 문민통제의 기틀을 마련했다. 또 군대 내 공식적인 지휘원칙으로 연방군 특유의 '내적지휘' 개념이 정립됐다.
내적지휘란 "인간의 존엄은 불가침이며, 이를 존중하고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로 명시하고 있는 독일연방 기본법의 정신이 군대에도 충실하게 구현될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개념을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각 개인에게 부여된 자유로운 국민으로서의 권리와 군인으로서 요구되는 의무 사이에 발생하는 대립구도를 조정하고 유지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내적지휘의 궁극적인 목적은 군을 민주주의 법치국가에 결속시키는 것이며, 군에서도 장병들의 인권과 기본권이 보장받도록 하는 것이다. 즉 자유와 민주주의·법치주의의 원칙들을 군에 정착시킴으로써 '제복 입은 시민'의 정신을 정착시킨 것이 바로 내적지휘라고 할 수 있다.
장병의 공식적·개인적·사회적 문제 관할하는 옴부즈만
내적지휘가 연방군 내부의 공식지휘 원칙이라면, 이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감시하고, 군대에 대한 의회 통제권을 구현하는 독일식 제도가 바로 '군사 옴부즈만(Wehrbeauftragter)' 제도다.
독일연방 기본법은 '45조 b'에 군사 옴부즈만을 설치하도록 돼 있다. 이를 위해 1957년 6월 '연방의회의 군사 옴부즈만에 관한 법률'이 공표됐고, 1959년 4월 3일 '헬무트 폰 그롤만'이 초대 군사 옴부즈만으로 취임했다.
독일의 군사 옴부즈만은 의회나 의회의 국방위원회가 지시하는 사항, 연방군 장병들의 기본권 침해나 내적지휘 원칙 위반 사항들을 조사하거나 장병들이 군대생활을 하면서 발생하는 공식적·개인적·사회적인 문제 전반을 관할한다.
연방군 소속의 모든 군인은 직무상의 명령 계통을 거치지 않고 자신의 문제를 직접 군사 옴부즈맨에게 청원하고 호소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군인이라면 누구나 기간의 제한을 받지 않고 자신의 판단에 따라 복무하면서 느낀 모든 불만족스러운 문제점들을 군사 옴부즈만에게 형식의 제한 없이 토로할 수 있다.
군사 옴부즈만의 권한도 막강해서 사전에 예고 없이 언제든지 연방군 소속 부대·시설·행정부서를 방문할 수 있고 국방장관과 국방부 소속 관청과 직원이 작성한 기록을 요구할 수 있는 정보요구권을 가지고 있다. 또한 군사 옴부즈만은 직권조사권도 가지고 있어 조사과정에서 자신이 입수한 정보에 근거하거나 장병들이 제안한 사항, 언론매체에 보도된 내용에 대해 조사활동을 펼칠 수 있다.
비록 군사 옴부즈만의 제안이나 권고가 구속력 있는 명령이나 지시의 형태를 보이지는 않지만, 일선 부대장으로부터 국방부 장관에 이르는 상급자들로 하여금 리더십을 지닌 행동을 하게 하는 등의 적극적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5년 임기의 군사 옴부즈만은 연방의회의 국방위원회나 정당의 추천을 받아 연방의회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선출된다. 연임은 물론 중임도 가능하다. 35세 이상의 독일 국적자면 누구나 출마할 수 있고, 반드시 군 경력이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어서 군 경력이 없는 여성도 선출될 수 있다. 1995년 클레르 마리엔펠트가 여성으로선 최초로 군사 옴부즈만에 취임했다.
정무차관급에 해당하는 신분을 지니는 군사 옴부즈만은 보조기관인 사무처 아래 1과(국방정책, 내적 지휘의 원칙, 행정), 2과(군 인력, 관리, 해외파병), 3과(현역 및 예비군 복무, 군대 내 여성 문제), 4과(직업군인 복무 문제), 5과(복지, 장병 및 가족 문제)를 두고 자신을 보좌하는 70여 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연방군에 대한 의회의 통제권을 구현하고 있다.
한국에도 군사 옴부즈만 제도 도입? 가장 높은 벽은...
군사 옴부즈만의 활동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매년 한 차례 의회에 보고되는 연례보고서(연보)다.
장병들의 기본권과 내적지휘 통솔 원칙 위반 사항을 주로 다루고 있는 이 연보는 장병과 연방군 전체의 특별한 관심사에 대해 의회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대중매체의 보도를 통해 군대 내 문제에 대한 독일 국민들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연보는 연방의회의 자료로 출판돼 장병들에게 배포된다.
연방의회 의장은 군사 옴부즈만이 제출한 연보를 국방위원회로 넘기고, 국방위원회는 국방장관에게 그에 대해 답변을 요구한다. 국방장관의 답변이 제출되면 국방위원회는 심의과정에서 국방장관과 군사 옴부즈만을 참여시켜 논의를 진행한다. 국방위원회는 군사 옴부즈만이 작성한 보고서에 대한 권고안을 작성하고 보고서와 권고안 모두 의회의 공식적 심의를 위해 정식으로 제안하게 된다.
독일식의 군사 옴부즈만 제도를 벤치마킹해 군의 고질적 인권침해 문제를 개선하려는 노력은 지난 참여정부 당시 시작됐다. 2003년 국민고충처리위원회 정책연수팀이, 2006년 청와대 군사 옴부즈만 TF가 군사 옴부즈만 연구를 위해 독일을 방문했다.
최근 잇따른 군대 사건사고의 근본 원인이 군대 조직의 폐쇄성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19대 국회에는 국회 안에 군사 옴부즈만을 설치하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하는 '군인 지위 향상에 관한 기본법안'이 안규백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대표발의로 제출돼 있다. 하지만 지난 6월 한 차례 공청회를 개최한 후 지지부진한 상태다. 군 조직이 외부에 공개되는 것을 꺼리는 국방부의 반대가 가장 높은 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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