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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장관 알았어도 이 지경인데... 피해사실 알리면 군생활 내내 왕따"

[병영에 햇빛을④] 예비군 3인 대담... "부대관리도 못하는데 나라 지키겠나"

등록|2014.08.09 15:47 수정|2014.08.09 16:19
28사단 윤 일병은 군 입대 후 112일 만에 부모 한 번 못 만나보고 선임병들의 구타로 사망했습니다. 그의 사망을 계기로 육군이 단 18일간 조사한 결과 3919건의 군내 가혹행위가 적발됐습니다.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많은 가혹행위가 자행되고 있다고 추정됩니다. 군이 병영문화를 개선하겠다고 한 지 15년이 지났지만 상황은 여전히 심각합니다. 이제 군에만 맡기지 말고 외부에서 본격적으로 감시하고 개입할 때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병영에 햇빛을' 기획 연재기사를 싣습니다. [편집자말]

▲ <오마이뉴스>가 7일 한 대학가에서 예비군 3명과 함께 '28사단 가혹행위 사망사건'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 소중한


"4월에 터진 이런 엄청난 일이 외부의 폭로로 8월이 다 돼 알려지는 상황, 이게 군대다."
"국방장관이 알았어도 이 지경인데 어느 병사가 '나 맞았어요'라고 말하겠나."

전역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예비군들은 한결같이 "군은 감추는 것에 익숙하다"고 말했다. 7일 <오마이뉴스>가 '28사단 가혹행위 사망사건'을 주제로 연 좌담회에서 육군 행정병 출신 김아무개(2009년 전역, 취업준비)씨는 "군에서 사건·사고를 처리하는 걸 보면 '어떻게 하면 윗선에 안 알려질까', '어떻게 하면 감출까'만 고민한다"고 강조했다.

육군 포병 출신 장아무개(2012년 전역, 대학생)씨도 "군은 특성상 닫힌 공간이지만 닫아야 할 영역과 그렇지 않은 영역이 있다고 본다"며 "이번 사건과 같이 부조리에 의해 죽고 다치는 건 왜 그랬는지 공개하고, 열어야 한다. 감춘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군대 내 부조리를 "악순환 구조"이라고 표현했다. 피해 사실을 알리기도 어렵고, 알린다 하더라도 이른바 "'군 생활이 꼬이는' 일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이날 좌담회에서 해병대 보병 출신의 김아무개(2013년 전역, 대학생)는 "이번 사건에 유 하사가 가담해 있듯, 병사를 관리해야 할 간부들도 쉬쉬하거나 오히려 병장에게 '○○○ 일병 안 되겠던데'라고 말하며 폭행 혹은 가혹행위를 조장하기도 한다"고도 전했다.

이들은 "군대가 열리고,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문제해결 방식을 묻는 말에는 "답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부정'보단 '체념'의 의미였다. 그만큼 군대의 '닫힌 문화'가 군 생활을 하는 동안 깊이 박힌 것이다.

실제로 윤 일병의 한 인척은 이번 사건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알렸으나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관련 기사 : 인권위는 왜 '윤일병 사망 사건' 알고도 덮었나). 국방부에도 구타, 가혹행위를 신고할 수 있는 국방신고센터가 있으나 이용실적이 1년에 약 1000건에 불과하고 그나마도 전역 후 신고한 사례가 대부분이다. 사단급 내부공익신고센터의 경우엔 1년에 10건 정도의 신고가 들어오는 실정이다(대통령실, <군 고충처리제도 개선방안>, 2006).

아래는 <오마이뉴스>가 한 대학가에서 3명의 예비군과 한 좌담을 요약한 내용이다.

진압곤봉 들고 대기 중인 군 병력최근 28사단 병사폭행사망사건으로 군 사망사고 문제 여론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군 사망사고 피해 유족들이 6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마치고 호소문을 전달하기 위해 영내 진입을 시도하자 닫힌 정문 뒤로 병사들이 곤봉을 들고 대기하고 있다. ⓒ 이희훈


"군대 내 폭행 '봐도 모른척' 분위기"

- 각자 군생활 했던 곳을 간단히 소개해달라.
포병(아래 포) : 강원도 철원에서 근무, 2012년에 전역했다. 주특기는 포병이었다.
행정병(아래 행) : 경기도 양주에서 행정병으로 군생활을 했고, 2009년에 전역했다.
보병(아래 보) : 2013년 초까지 해병대에서 복무했다. 일반 보병이었다.

- '28사단 가혹행위 사망 사건'을 접했을 때 어떻던가.
: 구타로 인해 윤 일병이 숨졌다는 소식을 듣고 많이 놀랐다. 하지만 군대라는 시스템이 폭력이 어느 정도 묵인되는 분위기이지 않나. 이번 일이 처음도 아니고. '똑같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또 일이 터졌구나'라고 생각했다.

: 하사 한 명이 같이 폭행에 가담했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안타까웠다. 내 군생활을 떠올려보면 지휘관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부대 분위기가 확실히 달라진다. 부조리가 없도록 관리해야 하는 간부까지 가담했다니. 할 말이 없다.

- 혹시 군생활 중 폭력을 당한 적이 있나.
: 나의 경우 자대배치 뒤 일주일 만에 어떤 선임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폭행과 가혹행위 때문이었다. 그래서 폭행이나 가혹행위를 하면 안 된다는 분위기가 있었다. 하지만 눈치만 볼 뿐 지속적인 관찰이 없으면 금방 스멀스멀 올라온다. 사고 이후 한동안 괜찮다가, 어느 날 뒤통수를 때리고, 어느 날 주먹으로 때리고, 뭐 이런 식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좀 유치한데 이등병은 거울 보면 안 된다, 같은 이등병과 말하면 안 된다 등 계급 별로 해도 되고, 해선 안 되는 일이 정해져 있었다. 이걸 지키지 않으면 폭행이나 가혹행위가 있었던 것 같다.

: 나도 비슷한 사례다. 가혹행위로 인해 자대배치 뒤 한 달 정도 지나 선임이 탈영하는 사례가 발생해 폭행·가혹행위 분위기가 사그라들었다. 내 친구의 경우 일상적으로 폭행이 있었던 부대에서 근무했는데 이른바 '내리갈굼'을 당하다가 주먹으로 맞아 턱뼈가 부러졌다. 멀리서 달려오라고 한 뒤, 선임이 가슴을 때리려고 했는데 잘못해서 턱을 때린 것이다.

- 군대 내에서의 폭력, 어떤 의미인가.
: 봐도 모른 척 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에도 44명의 병사가 윤 일병이 폭행당하는 걸 봤다고 하지 않나.

: 간부들도 아주 큰일이 아닌 이상 쉬쉬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 사건에도 하사 한 명이 엮여있는데, 내 군생활에 비춰봤을 때 심지어 은근히 폭행을 조장하는 경우도 있다. 병장에게 와서 '너네 요새 빠졌더라?', '야, ○○○ 일병 안 되겠던데' 하는 식의 말을 하고 간다.

: 폭행이 일어나면 '잘못을 했으니 맞겠지'하는 이미지가 박혀 있는 것 같다.

▲ <오마이뉴스>가 7일 한 대학가에서 예비군 3명과 함께 '28사단 가혹행위 사망사건'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 소중한


"평소엔 소홀하다가 사건만 터지면 '빡센' 인권교육"

- 군대에서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 사실을 알리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졌나.
: 정기적으로 '마음의 편지'를 썼다.

: 지휘관에게 직접 찾아가거나 화장실에 있는 '소리함'에 몰래 쪽지를 넣을 수 있었다. 

- 이러한 것들이 수월했나. 혹은 익명성이 보장됐나.
: 전혀 안 된다.

: 내가 근무한 부대의 경우 마음의 편지를 병사들이 종합해 지휘관에게 보고했는데 이러면 마음의 편지에 이름을 적지 않더라도 대충 누가 썼는지 가닥이 잡힌다. 간부가 직접 관리해도 마찬가지다.

- 만약 공개가 되면 어떤 분위기가 조성되나.
: 해병대에는 기수열외라고 하는 게 있다. 아예 왕따가 된다. 답이 없다. 그냥 전역할 때까지 그렇게 지낸다.

- 이후 조치는 어떤 식인가.
: 여러모로 복잡하다. 이런저런 교육을 시작하고, 갑자기 상담을 하고, 생활관도 바뀌고. 이렇다보니 피해 사실을 알리는 게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일반 회사면 그만 둬버리고 말지, 군대는 그럴 수도 없다.

: 이번에도 병사 인권교육이랍시고 엄청 굴릴 거다. 사실 인권교육, 정기적인 상담 같은 건 평소에도 계속 해야 하는 거다. 평소에 안 하거나, 대충하면서 이럴 때만 '빡세게' 하니 병사들이 인권교육, 상담을 뭐라 생각하겠나. '꼰지른 놈 때문에 이게 웬 개고생'이란 이미지가 박히는 것이다.

- 최근 보도에 따르면 폭행, 가혹행위로 인한 사망 사실이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에게도 보고가 됐다고 한다.
: 4월 7일에 윤 일병이 숨졌다. 그리고 8일 국방장관이 '중요사건'으로 보고를 받았다. 국방장관은 '전군 부대정밀진단'을 지시했고 군은 이를 11~28일동안 진행됐다. 어쨌든 윤 일병 사건의 진실은 이 과정에서 어느 정도 밝혀졌을 거라 본다. 물론 원칙적으로는 국방장관 보고 전에 다 밝혀졌어야 맞다. 어쨌든 우리가 이 사건을 알게된 건 얼마 안 됐다. 4월에 발생한 이런 엄청난 사건이 8월이 다 돼서 알려진다? 그것도 인권단체의 고발 때문에? 이게 군대다.

: 국방장관이 알아도 이 지경인데 어느 병사가 '나 맞았어요'하고 말하겠나.

윤일병 집단폭행 사망사건 내무반 둘러보는 국방위원들국회 국방위원회소속 의원들이 5일 윤일병 폭행사망사건의 현장인 경기도 연천군 28사단 977포병대대 생활관을 방문해 부대 간부로부터 사건에 대한 보고를 받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이러다가 군 해체하자고 할라"

- 군대의 신뢰도가 그렇게 높지 않은 편이다.
: 군 특성상 닫힌 공간 아닌가. 하지만 닫아야 할 영역과 그렇지 않은 영역이 있다고 본다. 상식적인 것 아닌가. 군 기밀사항은 닫아야 하는 게 당연하고, 이번 사건과 같이 부조리에 의해 죽고, 다치는 건 왜 그랬는지 공개하고, 열어야 한다.

: 행정병을 하다보면 각종 사건사고를 접하게 되는데 군에서 이를 처리하는 걸 보면 '어떻게 하면 윗선에 안 알려질까', '어떻게 하면 감출까' 고민한다. 사안에 따라 다르지만 이러한 폭행 사건은 덮어놓고 볼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 사실 간부 입장에서 보면 사건·사고가 알려지면 좋을 게 하나 없다. 진급이 걸린 문제 아닌가.

- 문제해결을 위한 방법은.
: 답이 없다. 아까 군대가 열려야 한다고 말은 하긴 했는데 그럴 가능성이 없다.

: 윤 일병의 인척이 국가인권위원회에도 알렸다고 하지 않나. 그런데 제대로 된 조사가 안 이뤄졌다고 한다. 이번 사건 이후 군대 내부는 물론 외부의 군인권기구나, 외국의 군 옴부즈만과 같은 사례가 보도되고 있는데, 대한민국에서 이게 적용될 수 있을지 상상이 안 된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국가안보를 중시한다는 정권 아래에서 자꾸 군 문제가 터지니 '안보'라는 말이 허상같다. 부대관리도 못하는데 나라는 지킬 수 있을지 걱정이다. 북한 무인기 청와대 상공 촬영, 노크귀순, 여군 대위 자살, 임 병장 총기난사 등 군 문제가 계속 불거지고 있다.

: 이러다가 군대를 해체하자는 이야기까지 나올 것 같다.

: MBC <진짜사나이> 같은 프로그램도 각성해야 한다. 물론 예능이니 그럴 순 없겠지만 '리얼입대 프로젝트'라고 하면서 군대의 어두운 모습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이건 지나친 미화다. 국방부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투명한 이미지를 얻으려는 것 같은데 미화는 감추는 것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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