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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만에 집 장만한 내게 그가 준 선물, '의리'

야간근무에 시달리는 경비원들...그들만의 따뜻한 배려

등록|2014.08.08 18:02 수정|2014.08.08 19:53
드디어 내일 이사합니다. 무려 11년 만입니다. 여태 나이만 먹었지 돈을 모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지금껏 사는 집도 남의 집입니다. 하지만 내일 이사하는 집은 이제 '내 집'이 됩니다. 저는 지금 한 회사에서 경비 일을 하고 있습니다.

결혼한 지 33년 만에야 비로소 내 집을 장만하는 셈이죠. 그래서일까요... 청소 하러 어제 그 집에 가서 땀깨나 뺐지만 기분은 마치 나들이를 가는 봄 처녀인 양 낭창낭창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비록 지금 사는 집보다 훨씬 작은 규모의 빌라긴 하지만 말이죠. 지난달까진 업무 형태가 '주야비(주간, 야간, 비근무)'의 반복이었습니다. 즉 하루는 주간근무, 이튿날은 야근, 야근을 마친 다음날엔 근무를 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경비원들의 은어입니다.

조금씩 배려하는 마음, '의리'로 뭉친 동료들

▲ 배우 김보성이 '의리'를 내세운 다양한 시리즈로 최근 다시금 인기를 얻고 있다. 사진은 SBS <한밤의 TV 연예>의 한 장면. ⓒ SBS


저희들의 이구동성 '청원'으로 이번 달부턴 '주주야야비비'로 바뀌었습니다. 즉, 야근을 모두 마친 어제 아침부터 오늘까지 쉬어도 된다는 거죠. 내일도 아내가 수술 후유증으로 꼼짝을 못 하는 바람에 다른 직원에게 대근(대신 근무)을 부탁해 놓았습니다. 이사도 해야 하고요.

따라서 내일까지 휴일이지요. 다른 직업과 달리 경비원은 다른 동료가 대근을 해주지 않으면 쉬고 싶어도 쉴 수 없습니다. 원초적 숙명을 안은 '노예'랄까요. 하지만 평소 제가 의리를 유지해 온 덕분인지 부탁만 하면 다들 흔쾌히 대근을 해주네요. (이 기사를 빌어 우리 경비원 동료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합니다!)

뿐만 아니라 저와 늘 교대 하는 경비원은 요즘 무려 1시간이나 일찍 출근해 바꿔주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이 동료가 더욱 고마운 건 물론이지요. 인지상정이겠지만 10시간을 일하는 주간과 달리, 14시간 근무하는 야근의 경우, 1시간만 일찍 교대해줘도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경비원 일을 해 보신 분들은 익히 아는 상식이지요. 사흘 전에도 그 동료는 평소의 교대시간인 오전 7시 대신 오전 6시 5분에 출근해 저와 교대를 해줬습니다.

"어휴~ 너무 일찍 나오셨네요?"
"아닙니다, 홍 형은 늘 그렇게 한 시간 일찍 나오시잖아요? 그러니 저도 의리를 지켜야죠."

그 말에 저는 웃음을 멈출 수 없었지요.

"맞아요 하하. 남자는 역시 의리 빼면 시체니까요. 아무튼 의리가 살아있어 고맙네요!"

최근 들어 새삼 각광을 받고 있는 '의리'. 이 말은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일컫습니다. 앞으로도 동료들과 의리를 지키며 좋은 관계를 맺어 나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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