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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간 무한 대실... 우린 휴가내서 모텔 가요"

숙박업소 아닌 놀이장소 된 모텔... 무인 모텔부터 무한 대실, 의상 대여까지

등록|2014.08.15 16:45 수정|2014.08.15 16:45

신촌의 한 모텔촌모텔밀집지역은 '모텔촌'이라고 불린다. 서울 신촌에 위치한 모텔촌. ⓒ 정민경


"포인트 카드나 할인쿠폰 있으세요?"
"여기요."
"네, 회원님 포인트로 다음 번 무료로 1회 사용 가능하세요. 감사합니다."

카페나 마트에서의 대화가 아니다. 모텔이다. 대학생 전아무개(24, 여)씨는 데이트를 할 때 미리 모텔 가이드 앱을 보고 모텔을 정한다. 한 모텔을 꾸준히 가야 포인트도 쌓이고, 무료 쿠폰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모텔이 진화 중이다. 모텔 전문 커뮤니티가 여럿 생기고, 이와 제휴한 모텔이 수백 곳이다. 포인트 카드와 각종 쿠폰은 기본. '무인 모텔'부터 '무한 대실 모텔', '테마 모텔'까지. 게임기나 보드게임, 미니당구대가 설치돼 있고 편의점 심부름, 의상 대여를 해주는 모텔까지 있다.

"무인 모텔 가는 사람은 무인 모텔만 가요"

무인 모텔은 말 그대로 사람을 마주할 필요 없이 모텔을 이용할 수 있게 만든 시설이다. 보통 카운터 대신 자판기가 수납을 하고, 주차장과 객실이 이어져 있어 차에서 내려 사람을 마주치지 않고 바로 객실로 갈 수 있는 곳도 있다. 대학원생 최아무개(25, 여)씨는 "무인 모텔 가는 사람은 무인 모텔만 간다"고 말했다.

"남자친구와 저 모두 주말에는 어디 돌아다니기보다 그저 푹 쉬고 싶거든요. 그런데 주말 내내 모텔 직원들이나 옆방 사람을 자주 마주치면 너무 민망할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무인 모텔에 가게 됐어요. 꼭 불륜이 아니더라도 저같이 남들 이목을 많이 신경쓰거나 예민한 사람들은 무인 모텔을 선호해요. 무인 모텔 다니다 보면 딴 덴 못가요."

무인모텔무인모텔은 카운터 대신 자판기 형태의 기계로 수납을 하고 객실로 들어가는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 정민경


이아무개(25, 여)씨는 무심코 들어선 모텔의 사방이 거울로 돼있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이씨는 "거울방은 충격이었지만 확실한 분위기 전환이 됐다"며 "그 뒤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특이한 모텔을 추천받기도 하고, 모텔 후기를 읽어보고 선택하기도 한다"며 모텔 가이드 앱을 자주 사용한다고 덧붙였다.

대실 비용은 저렴해지고 대실 시간은 늘어났다. 무한 대실 모텔은 그 결정판이다. 3년째 연애중인 김아무개(26, 직장인)씨 연인은 둘 모두 모텔 이외의 데이트 코스는 거의 짜지 않을 정도로 '모텔 마니아'다.

이들에게 보통 대실 시간(3~4시간)은 언제나 모자라서 추가 비용을 더 내는 일이 빈번했다. 그런데 무한 대실 모텔을 발견한 후, 김씨와 연인은 평일 휴가를 내서 모텔을 찾을 정도다.

"평일 낮 12시 이전에 들어가면 밤 12시 이전에 나오면 되는 거죠. 사실 그 안에서 12시간 있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라 그 전에 나오게 돼요. 거의 '무한'으로 놀다 가라는 거죠."

다른 말로 '긴긴 대실'이라고도 불리는 이 모텔은 평일 낮부터 저녁까지 10시간~12시간 정도이지만, 가격은 보통 대실비와 큰 차이가 없다. 주로 교외 지역에 위치해 있다. 김씨는 "차라리 멀리 나가서 무한 대실 모텔에서 하루 종일 노는 것이 여기저기 다니는 것보다 저렴하다"고 말했다.

단순한 숙박업소 아닌 '놀이의 장소', '휴식의 장소'

이렇게 모텔이 진화하는 동력은 무엇보다 젊은 층의 개방적인 성(性) 관념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모텔에 가본 적 없는데, 친구들 사이에서 천연기념물로 통한다"는 취재 중 만난 대학생 정아무개(24, 여)씨의 말처럼, 혼전성관계는 더 이상 젊은이들에게 금기가 아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서 설명이 부족하다.

이안나 부산대 여성연구소 전임연구원이 2013년 발표한 <모텔 이야기: 신자유주의시대 대학생들의 모텔 활용과 성적 실천의 의미 변화> 논문은 대학생들의 모텔 이용 세태를 분석했다. 그는 모텔이 단순한 숙박업소나 성관계의 장소가 아닌 '놀이의 장소'와 '휴식의 장소'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연인이 아닌 친구들과 함께 기념일이나 술자리 이후 뒤풀이를 할 때 모텔의 '파티룸'을 사용하는 이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모텔은 처음 가봤는데, 위에 풍선도 달려 있고 거실이 넓어서 야한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보드게임이나 미니당구대가 있고 사진 찍기에 좋게 세련되고 심플하게 꾸며져 있었다. 음식도 시켜 먹을 수 있으니까 술만 사가고 음식은 시켜 먹었다. 겨울에 추위를 많이 타는데 가서 뜨거운 물 펑펑 쓰고 이불 뒤집어쓰고 영화 보며 놀았다. 클럽 같이 정신없는 곳을 싫어하는 성격 때문에 가는 것도 있다."(이아무개, 25, 여)

또 한가지 중요한 요인은 젊은이들이 모텔 경험을 적극적으로 떠들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야놀자'나 '여기야' 같은 모텔 전문 사이트에는 모텔 후기가 하루에도 수십 건 이상 올라온다.

김아무개(27, 남)씨는 "친구들끼리 어디 모텔이 좋다며 이야기하고 편하게들 간다"며 "1학년 때와 제대하고 난 후 비교를 해보면 모텔 수도 많아졌고 모텔에 대한 이야기도 많아졌다"고 말했다.

변하는 소비자를 따라가지 못하는 공급자는 당연히 도태되는 법. 서울 종로의 A모텔 운영자는 "돈이 들더라도 대형업체와 제휴를 맺어야 선전도 되고 인터넷에 홍보도 된다"며 "인터넷을 보고 오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에 블로그에 글을 올리면 쿠폰을 주는 식의 행사도 한다"고 말했다. 신촌의 B모텔 운영자는 "손님을 끌려면 업데이트는 필수"라며 "인테리어도 자주 바꾸고 손님이 많은 옆 모텔의 전략은 어떤가 신경쓴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정민경 기자는 <오마이뉴스> 20기 인턴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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