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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사장이 원하는 아줌마는 되고 싶지 않아요"

[인터뷰] 금속노조 레이테크코리아 조합원 3명

등록|2014.08.12 18:54 수정|2014.11.14 21:40
견출지, 라벨지 시장 매출 1위, 300만 불 수출을 기록한 레이테크코리아. 지난달 22일, 인간답게 일하는 일터와 일상을 되찾기 위해 투쟁하고 있는 금속노조 레이테크코리아 지회 조복남, 김선희, 정해선 조합원을 만났다.

- 세 분 다 일하신 지 2년 좀 넘었다고 들었는데요. 일은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되었나요?
조복남 : 친구 소개로 왔어요. 집하고 멀지 않아서 출·퇴근도 편하고 그래서 다니게 되었죠. 근데 막상 와서 일을 해보니까 이렇게 일하는 곳도 있나 싶었어요. 아침에 출근해서 자리에 앉으면 점심 때까지 고개 한 번 들기 힘들었어요. 화장실도 못 가요. 요즘에도 이렇게 일하는 데가 있나 싶었어요. 계속 다녀야 하나 갈등도 많이 했어요.

김선희 : 저도 전철 한 번에 오는 거리라 오게 됐어요. 만약 공장이 안성에 내려가는 줄 알았으면 다니지 않았을 거예요. 처음에 한 마디도 없었거든요. 나중에 공장 이전을 반대하니까, 회사는 6년 전부터 내려갈 계획이었다고 주장하는데 그게 사실이면 미리 얘기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정해선 : 제가 늦둥이가 있어서, 집에서 가깝고 주 5일 9시 출근해서 6시 퇴근하고 잔업이 없는 데라고 해서 일했어요. 저는 여기서 일하면서 결혼하고 나오는 주부들은 다 이렇게 일하는 줄 알았어요.

- 구체적인 노동조건은 어땠나요?
정해선 : 당시 대표가 회사 전체에 CCTV를 설치하고 감시가 굉장했어요. 주로 대표가 제주도에  있는데 핸드폰에 CCTV를 연결해서 감시하면서, 물건 때문에 화면이 가려지면 직원을 불러다가 그 앞에 물건치우고 그랬어요.

조복남 : 누가 물 마시는지, 화장실 많이 가는지 감시하고. 처음 근무 할 때 화장실 가는 사람도 없고, 물 마시는 사람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옆에 동료한테 "여기 화장실 가면 안 되느냐?" 물어봤는데 "눈치껏 가면 돼요" 그러더라고요. 그때 바로 알았죠. 가면 안 되는구나. 그래서 대개 점심시간까지 참다가 종이 땡 울리면 화장실 가려고 다들 뛰어가요.

점심에도 식당이 없어서 도시락 싸와서 일하던 바닥에 돗자리 펴고 먹어요. 월급에 밥값 10만 원 포함해서 나오는데 그나마 그 돈으로 최저임금 딱 맞춰 주는 거예요. 그러니 그 돈으로 점심 사 먹으면 남는 것도 없어요.

정해선 : 대표 신년사도 가관이었어요. "여러분들은 원더우먼이십니다. 존경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더 좋은 곳이 있다면 언제든지 주저하지 말고 가십시오. 오는 사람 안 막고 가는 사람 안 잡습니다." 아줌마들은 얼마든지 있다 그거죠.

조복남 : 처음 3개월은 수습기간인데, 회사 마음에 안 들거나 못마땅하면 수습 때 바로 자르고 새로 사람 뽑고 그랬어요. 만약 3개월 수습이 지난 정규직 사원을 그만두게 하고 싶을 때는 부서를 마구 돌리면서 사람 자존심에 상처를 내고 스스로 그만두게 했어요.

- 노동조합을 만들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뭐였나요?
조복남 : 전 직원에게 비정규직 전환 계약서, 시간제 알바 계약을 강요한 게 결정적이었어요. 그때를 계기로 작년 6월 4일 조합을 만들었는데, 회사는 대표 자리를 아들에게 물려주고, 일주일 후에는 8월 말에 공장을 안성으로 이전하겠다고 했어요.

조합은 꾸준히 공장 이전에 맞서 항의했는데 결국 힘에 밀려서 예정대로 진행됐어요. 회사는 공장이 안성으로 가면 아무래도 출·퇴근에 제약을 받으니 조합원들이 회사를 그만둘 거라고 생각한 거죠. 그래도 안성 내려가서 피나는 노력 끝에 2013년 9월에 단협 체결하고, 출·퇴근 버스 제공 합의도 이끌어 냈어요.

정해선 : 처음엔 70명 정도 조합에 가입했는데 작년 8월 말, 안성으로 공장 이전하고 작년 연말에 회사 그만두는 조건으로 위로금 100만 원을 준다고 했을 때랑 실업급여기간 끝났을 때, 결정적으로 그렇게 두 차례 조합원이 줄면서 현재 25명이 남아있어요.

▲ 요구안 쟁취를 위해 투쟁하고 있는 레이테크코리아 조합원 동지들 ⓒ 노동과 세계


- 안성공장에서도 CCTV는 계속 있었나요?
조복남 : 회사에서는 CCTV를 설치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는데 막상 가보니 조합원들이 주로 있는 포장부랑 생산부 그리고 휴게실이자 탈의실인 컨테이너에 CCTV가 있더라고요. 나중에 사회적으로 이 문제가 알려지니까 올해 3월에 폐쇄했어요. 이번 대표는 자기는 전 대표 같은 일은 하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했는데 하나도 다르지 않았어요.

정해선 : CCTV뿐만이 아니에요. 작년 12월 31일, 퇴근 30분 전에 회사에서 통근버스를 없앤다고 했어요. 다들 일을 그만둘 줄 알았는데 생각대로 안 되니까 통근버스를 없앤다고 한 거죠. 그래서 두 달 동안 조합원들이 버스를 렌트해서 다니면서 노동부에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회사와 교섭을 해서 작년 2월, 4월 19일 부로 안성에서 서울 공장으로 이전한다는 합의를 했어요.

그때부터 렌트 취소하고 임시로 회사에서 제공하는 차를 탔어요. 그런데 폐차 일보 직전의 봉고차 2대가 오는 거예요. 하루는 비가 엄청나게 많이 왔는데, 와이퍼 하나가 날아가서 도로에 차 세우고 주워가지고 끈으로 엮어서 겨우 내려간 적도 있어요.

김선희 : 조합원 대부분이 5시 반에 일어나서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해서 집에 가 빨래하고 그러면 자정 넘어 자니까, 출·퇴근 시간 버스에서 눈 붙이는 게 다인데 봉고차는 앞 유리도 테이프로 붙여놓고 회사에서 같이 일하는 직원이 운전도 하다 보니 졸음운전도 하고. 우리는 고속도로에 목숨 내놓고 일했어요.

김선희 : 노동조합 만들고 투쟁하니까 전 대표가 "내 건물에 노동조합은 절대들일 수 없다"고 해서, 교섭에서 합의한 지금 대표가 본인도 어쩔 수 없다면서 공장 이전을 하지 않고 있어요. 또, 단협에서 재직 중인 직원은 정년까지 고용을 보장한다고 되어있는데 작년 2월 4일 비정규직 계약으로 한 김OO 조합원을 5월 1일 부로 해고했어요. 이것도 명백한 단협 위반사항이죠.

조복남 : 지회에서 특별근로감독을 요구하고, 항의 농성하러 고용노동부 서울지방청에 자주 갔었는데, 우리가 생각할 때 노동부라고 하면 근로자 편일 것 같은데 실제로는 근로자편이 아닌 게 너무 화가 나고 서글펐어요.

- 지금까지 이 투쟁을 버틸 수 있었던 큰 힘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조복남 : 힘은 들지만, 조합원이 몇 명 없는데 제가 그만두면 다른 사람들도 얼마나 맥이 풀리겠어요. 세상 저 혼자 살아가는 것도 아니고 더불어 사는 건데, 내가 그만두면 다른 동료들이 더 힘들어하니까 그래서 지금도 싸우고 있어요.

김선희 : 엄마가 권리를 찾기 위해 싸우다 중간에 그만두면, 우리 애들도 노동자로 살아갈 텐데 애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지금 현실이 애들의 미래일 텐데 이런 끔찍한 현실을 똑같이 물려주고 싶지 않아요.

정해선 : 초등학교 1학년 막내가 "엄마, 내가 엄마 일할 수 있는 데 알아봐 줄게 그만해" 그래요. 그런데 아무 결론 난 게 없는 상황에서 그럴 수 없죠. 또 지금 포기하면 대표가 원하는, 힘들면 그만둬 버리는 그런 아줌마가 돼버리는 거잖아요. 아줌마들도 잘못된 현실을 바꿀 수 있다는 걸 꼭 보여주고 싶어요.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1년 여, 지금까지 오면서 어찌 흔들리지 않았을까. 가족과 동료를 위해 버티고 있다고 말하는 레이테크코리아 지회 조합원들 모두 무수한 흔들림과 시련 속에서 누구의 엄마, 아내가 아니라 노동조합의 한 주체로서 새로운 꽃잎을 피우고 있었다. 투쟁 승리하는 그날까지, 건투를 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정재현 기자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 연구원입니다. 또한 이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발행하는 기관지 <일터> 8월호에도 연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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