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행사로 세월호 유족 쫓겨나는 것 원하지 않아"
강우일 주교 교황 방한 대국민 메시지 발표... "유족들 아픔 끌어안고 가려한다"
▲ "유족 분들 광화문에서 쫓겨나는 것 원하지 않아"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이 이틀 전으로 다가온 가운데, 교황 방한 준비위원회 위원장인 강우일 주교(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가 12일 오후 '프란치스코 교종(교황)과 함께 평화를 나눕시다'라는 제목의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했다. 왼쪽부터 허영엽 신부(방준위 대변인), 강우일 주교(위원장), 조규만 주교(집행위원장). ⓒ 유성애
14일로 예정된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이 이틀 전으로 다가온 가운데, 교황 방한 준비위원회 위원장인 강우일 주교(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가 12일 오후 '프란치스코 교종(교황)과 함께 평화를 나눕시다'라는 제목의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했다.
강 주교는 12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명동성당 문화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교종께서 아시아 대륙에서도 가장 먼 한반도를 제일 먼저 찾은 것은 우리와 함께 한반도와 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시려는 염원 때문"이라며 "국민 여러분께서도 멀리서 오시는 귀한 손님을 한마음으로 기쁘게 맞이해달라"고 말했다.
교황 방한에 앞서, 강 주교는 특히 제대로 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광화문 광장에서 단식 농성 중인 세월호 유족에 대해 안타까운 심정을 드러냈다. 그는 "세월호 침몰은 국가 운영 시스템 전체의 패착이 송두리째 드러난 참혹한 대형사고"라며 "국회에서는 유족들 염원대로 올바른 진상조사와 사후 조처를 철저히 보장하는 세월호 특별법을 통과시키도록 최선을 다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도 강 주교는 16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리게 될 시복식 행사를 언급하며 "우리 행사 때문에 그 분들이 거기(광화문 농성장)서 물리적으로 퇴거당하거나 쫓겨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눈물 흘리는 사람들을 내쫓고 예수님께 사랑의 미사를 거행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되도록 그 분들의 아픔을 끌어안고 가려 한다"며 "(특별법 제정 관련해) 유족분들의 염원이 어떻게든 관철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광화문 광장에는 최소한의 유족들이 남을 것으로 예상되며, 준비위 측은 "계속 유가족과 협의 중에 있다"고 밝혔다.
강 주교 "신자들에게 총체적인 가르침 줄 수 있는 분이 교황"
강 주교는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해 "초대교회의 구심점이었던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라고 설명하면서 "세계 전체 교회를 하나로 묶는 분이 교종(교황)이고, 그는 신자들에게 총체적인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정신적 도덕적 권위를 가진 분"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교종이라는 낯선 단어를 계속 쓰는 이유는 교황이라는 단어에 담겨있는 황제의 이미지를 피하려는 것"이라며 "천주교 공식 용어집에 따르면 '교종'도 함께 쓸 수 있도록 돼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나라의 궤적이나 현실 속에서 안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어떤 말씀을 해주실지, 세월호 유족들과 만나서 무슨 말씀을 하실지 저는 교종께 아무런 힌트도 받은 적이 없다"며 "현재 한국 사회가 어떤 일을 겪고 있는지를 되도록 상세히 알리려 노력은 했지만, 특정 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조언을 해주시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이어 조규만 주교(방준위 집행위원장)는 시복식의 의미에 대해 설명했다. 조 주교는 "순교자들은 자신의 신앙을 끝까지 관철해 목숨까지 바쳤던 사람들임에도 우리나라에는 역적 취급을 받았다"며 "그 분들이 살았던 자리에서, 다시 명예를 회복하고 영광스럽게 되는 게 시복식의 가장 큰 의미"라고 답했다.
이들은 교황 방한 일정의 마지막 날(18일), 명동성당에서 있을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에 "위안부 할머님들을 초청하는 등 모든 상처 입은 분들을 초대하려고 하고 있으며, 탈북자 초청 또한 협의 중에 있다"고 말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강 주교를 비롯해 집행위원장을 맡은 조규만 주교, 대변인을 맡은 허영엽 신부 등이 참석했다. 방준위에 따르면 지난해 3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즉위하면서 오는 15일 대전에서 열릴 '제6회 아시아청년대회'에 교황이 참석하는 방한 계획이 구체화됐고, 지난 6~7월 교황청 실사단이 한국을 찾아 최종 점검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방준위는 현재 막바지 점검에 착수해 11일 오후부터 광화문 제단 설치 작업을 시작했으며, 오는 15일 저녁 7시에는 16일 진행될 시복식 미사에 대한 리허설을 진행할 예정이다.
▲ 세월호 단식농성장 찾은 강우일 주교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강우일 주교가 지난 7월 25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농성 중인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을 방문해 위로하고 있다. ⓒ 연합뉴스
다음은 강우일 주교가 발표한 교황 방한 대국민 메시지 전문이다.
<프란치스코 교종(교황)과 함께 평화를 나눕시다>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이제 이틀 후면 프란치스코 교종께서 이 땅에 오십니다. 교종께서는 아시아 청년대회에서 아시아의 젊은이들과 함께 어우러지시고, 124위의 순교자들을 복자품에 올리는 시복식을 통해 진리를 위해 목숨까지 바치신 우리 선조들의 증거의 삶을 은 세상에 공포해 주실 것입니다.
아시아 청년대회에 보편교회의 수장이신 교종께서 직접 참가하시는 일은 처음입니다. 이는 아시아 대륙 전체에서 보면 한 줌도 안 되는 소수의 가톨릭 젊은이들이지만 용기를 내어 이 광활한 대륙에서 하느님의 구원의 기쁜 소식을 실어 나르는 파발꾼이 되기를 초대하고 격려해 주시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세계 곳곳에서 거행되는 시복식도 교종의 특사가 집전하시는 것이 관례입니다. 그런데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는 이번 124위 순교자들의 시복 미사를 손수 주례하고자 찾아주십니다. 그것은 진리를 위해 목숨 바치는 순교자들의 충성과 신의를 물질주의와 상대주의적 가치관 속에 파묻혀 사는 오늘의 우리가 상기하고 본받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 사회는 많은 번민에 휩싸여 있습니다. 남북한의 여전한 냉전 구도, 아시아 이웃 나라들과의 갈등, 국내적으로는 경제지수의 혹자 행진에도 불구하고 급속도로 양극화된 계층 간의 격차, 거기에다 국가 운영 시스템 전체의 패착이 송두리째 드러난 세월호 침몰 같은 참혹한 대형사고가 일어나고, 나라를 지켜야 할 군 병영 내에서 비인간적인 폭력이 일상화되고 관행적으로 되풀이되는 치부가 드러나면서 우리 국민들이 심한 충격에 가슴앓이를 하고 있습니다.
힘들어 하는 사람들 곁을 제일 먼저 찾아가시는 프란치스코 교종이시니 오늘 이러한 가슴앓이를 하고 있는 우리 곁에 오셔서 사도 베드로의 후계자로서 위로와 회망의 복음을 들려주시리라고 믿습니다. 초대교회의 사도들은 주로 여행하며 일하였습니다. 가장 많은 여행을 한 사도 바오로는 여러 지역교회를 방문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방문의 목적은 첫째로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이었습니다. 둘째로는 그 지역교회가 겪는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 격려하고 절망에서 일으켜 세우기 위함이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도 우리의 현실에 필요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겪는 어려움을 보고 듣고 공유하시며 힘겨워하는 이들에게 하느님의 사랑과 희망을 선포해 주실 것입니다.
교종께서 아시아 대륙에서도 가장 먼 한반도를 제일 먼저 찾아주시는 것은 우리와 함께 한반도와 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시려는 염원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의 가장 큰 염원을 함께 젊어지시기 위해서입니다. 고령의 연세에 휴가도 마다하고 먼 길을 떠나 지구 반대편까지 찾아오십니다. 교종께서 우리와 함께하는 기간 동안 우리도 그분의 뜻에 마음을 하나로 모아, 그분이 전하고자 하시는 '사랑과 희망' 안에 서로를 포용하고 화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이 땅에 화해와 평화의 싹이 더 커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국민 여러분께서도 멀리서 오시는 귀한 손님을 한마음으로 기쁘게 맞이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방한 기간 동안 대규모 집회와 행사로 곳곳에서 많은 불편을 겪게 해드리는 점 송구하게 생각하며 너그러이 양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광화문 광장에서 단식하고 있는 세월호 회생자 가족들의 염원이 받아들여져 올바른 진상 조사와 사후 조처를 철저히 보장하는 세월호 특별법을 신속히 통과시키도록 국회에서는 최선을 다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나라 모든 분들에게 모두에게 주님의 평화가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2014년 8월 12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교황방한준비 위원장
강우일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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