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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사회에서 정부 아닌 교황에게 기대야 하다니...

[주장] 15일 범국민대회, 국민의 마음 드러내는 기회될 것

등록|2014.08.14 18:33 수정|2014.08.14 19:45
시민들의 관심이 14일 방한한 교황의 일거수일투족에 쏠렸다. 서울에서 진행될 일정 중 가장 주목을 받는 것은 아무래도 오는 16일 광화문에서 열릴 것으로 예정된 시복식일 것이다. 천주교 신자 20만 명을 포함해 100만 명의 인파가 운집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프란체스코 교황이 즉위 이후 '낮은 곳으로 임하는' 그의 행보는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방한 결정을 보면서 나도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신자는 아니지만 꼭 가까이서 그의 말씀을 듣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시복식이 열리는 16일의 광화문보다 그 전날인 15일의 광화문을 더 주목하고 있다. 바로 15일 오후 3시부터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범국민대회가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국민 여러분! 8월 15일 촛불을 밝혀주십시오. 그때까지 버티겠습니다. 믿어주십시오!"

오는 15일, 광화문에서 단식농성 중인 유가족 김영오씨는 단식 33일째를 맞이하게 된다. 딸에 대한 미안함과 더불어 진실을 밝히겠다는 굳은 의지 하나로 버티고 있는 그. 김영오씨는 시민들의 참여를 간곡히 호소하고 있다. 

왜 정부가 아닌 교황에게 진실의 희망을 찾아야 하나 

세월호 유가족 위로하는 교황프란치스코 교황이 14일 오전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을 통해 입국하며, 영접 나온 세월호참사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있다.'세월호 유가족'이라는 통역 신부의 소개를 받은 교황은 "희생자들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한다. 마음이 아프다."며 위로했다. ⓒ 사진공동취재단


지난 11일, 국회는 유가족들의 국회 진입을 통제하고 나섰고, 이 과정에서 유가족이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오는 16일 광화문에서 열릴 천주교 시복식을 앞두고, 광화문에서 농성 중인 유가족들은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시달리고 있는 실정이다. 강우일 주교가 나서서 "눈물 흘리는 사람들을 내쫓고 시복식을 할 수 없다"는 공식 언급을 한 것은, 광화문 농성장에 있는 유가족들의 처지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했다.

심지어 13일에는 청와대 인근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청와대로 행진하던 유가족 7명을 과잉진압해 이 중 두 명이 실신, 병원으로 후송됐다.

같은 날 새누리당은 의원총회를 열고 "야당의 세월호특별법 재협상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도 이날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과 관련된 협상을 "정쟁"으로 규정하고 '민생경제파탄'이라는 실체 없는 위협을 들먹이며 재협상 거부에 무게를 실었다.

대통령과 여당이 소통을 거부하고 진상규명에 대한 의지를 보이지 않다보니, 유가족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진실을 밝히는 데 힘을 실어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대통령과 국회가 아닌, 교황에게 이런 기대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너무나 부끄럽고 가슴이 아프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서명운동에 참여하는 이들 중에는 세월호 참사 이전에 거리에 나와 서명을 받거나 시위에 참여해 본 일이 단 한 번도 없는 사람들이 많다. 일산에 거주하는 조아무개(50, 여) 씨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세 딸의 엄마이자 독실한 기독교인인 조씨는 삼풍백화점이나 씨랜드 참사 소식에도 교회에서 기도를 하는 것만이 자신의 할 일이라 여겼다. 그랬던 그녀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후 교회를 벗어나 팽목항으로, 광화문으로 뛰어다니고 있다.

"저에게 그 정도의 충격이라면 전 국민이 똑같다고 생각했어요. 너무 실망스러운 거예요. 참사가 일어난 지 120일이 지났는데 아직도 이런 상태라는 게. 박근혜 대통령이 울면서 국가개조를 이야기하고 철저한 진상조사를 약속했을 때 그렇게 될 거라 믿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점점 지나고 언론이 통제되는 걸 보면서 지금은 그런 기대가 반반으로 바뀌었죠."

안전사회를 향한 '마지막 기회'

교황 시복식 앞둔 광화문의 유민 아빠세월호특별법제정 촉구 단식 32일째인 14일 오후 광화문 광장에서 유민이 아빠 김영오씨가 광장을 걸으며 운동을 하고 있다. 뒷 편으로 16일 열릴 예정인 프란치스고 교황이 집전하는 시복식 무대의 십자가가 보이고 있다. ⓒ 이희훈


전 국민이 비슷한 마음이지 않겠냐는 그의 생각은 틀리지 않다. 상당수 국민들이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정부의 대처에 깊은 불신을 가지고 있으며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이 꼭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이 7월말 진행한 조사에서는 검찰과 경찰이 발표한 수사 결과에 대해 66%가 "신뢰하지 않는다"고 응답했으며, 53%가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을 줘야 한다"는 의견을 보였다. 리서치뷰와 인터넷방송 팩트TV가 8월초 진행한 여론조사에서도 50.9%의 응답자들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부여해야' 한다고 응답했고, 최소한 '수사권만 부여해야 한다'는 응답자도 19.1%나 됐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서명이 두 달여 만에 350만 명을 돌파한 것은 사실상 초유의 일이다. 서명 열기는 지금도 뜨겁다. 외국인들까지 마음을 보태고 있다. 조씨는 자신조차 모르는 일에 대해 묻는 외국인들을 만날 때도 있다며 놀라워했다.

"제가 설명하기도 전에 이미 세월호 참사에 대해 다 알고 있더라고요. 오히려 한국보다 외국에 더 보도가 많이 돼서 그런 것 같아요. 굉장히 마음 아파하고 유가족들이 거리에서 시위해야 되는 지금 상황을 이해를 할 수 없다는 반응들이에요."

"세월호 참사가 안전사회로 방향을 틀 수 있는 마지막기회처럼 여겨진다"고 말하는 그녀의 절박함은 우리 모두가 함께 느끼고 있다고 생각한다.15일 범국민대회는 여론조사의 숫자로만 드러나 있는 우리의 마음을 눈에 보이는 형태로 드러내주는 기회가 될 것이다.

15일 오후 3시부터 광화문 광장 인근에서 열리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범국민대회에 대한 정보는 세월호참사 국민대책회의 홈페이지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오후 7시에는 이승환, 타카피, 와이낫 등의 가수들이 출연하는 특별법 제정 촉구 촛불문화제도 예정되어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인 박희정씨가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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