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책' 치료하는 책병원이 찾아갑니다
[시끌Book적 도서관이야기②] 책 고치는 사람들의 아주 특별한 외출
김순희 시민기자는 울산 동구의 마을 도서관, 꽃바위작은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고 있습니다. 마을사람 누구나 오순도순 소박한 정을 나누는 마을 사랑방 같은 작은도서관. 그곳에서 만난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오마이뉴스> 독자 여러분들께 전합니다. [편집자말]
▲ 도서관에서 책을 고치는 사람들~도서관자원봉사하는 샘들의 자발적인 동아리활동으로 정기적인 모임을 통해 훼손된 책들을 고칩니다~ ⓒ 김순희
예년보다 더위가 많이 약해진 것 같은 날씨지만 그래도 한번씩 느껴지는 더위는 무어라 말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우리 도서관은 월요일마다 쉽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며, 책장 넘기는 소리로 가득하던 도서관에는 매주 월요일만 되면 숨소리조차 들킬 것 같은 고요함이 밀려듭니다.
"사서샘! 반갑심더. 밥은 묵었는교?"
"뭐 대충 묵고 왔지요. 사서샘은 우째 밥은 묵고 왔는교?"
"밥맛도 없고 해서 뭐 한 숟갈 묵었지요."
"샘은 맨날 한 숟갈이라더만. 이잔 안 속아요. 한 그릇이면서. 하하하."
도서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책 고치는 자원봉사자 선생님(우리는 서로를 다 선생님이라고 부릅니다)들의 발자국 소리가 요란합니다. 한 달에 두 번 정기적인 만남을 하고 있는 '책 보수팀'들은 제가 없어도 알아서 도서관으로 나옵니다.
늘 하던 것처럼 만나면 밥 먹었는지, 뭐하며 지냈는지, 그동안 있었던 일을 서로 이야기합니다. 밥 먹었냐고 물을 때 한 숟갈 먹었다고 대답하면 으레 맛난 간식거리들을 사주셨는데, 이제 자원봉사 선생님들은 더 이상 저의 '한 숟갈'을 믿어주지 않네요.
"벌써 들통 나버렸네. 속아줄 때가 좋더만."
"샘, 이번에는 어디로 가요?"
"인근 고등학교에서 연락이 왔네요. 어찌 우리 책 보수팀들이 있다는 걸 듣고 연락을 해왔는데, 샘들은 시간 다 되는지, 그거 의논 함 해보이소."
도서관 쉬는 날이면 책 보수팀 자원봉사자 선생님들이 모여 찢어지고 얼룩진 책들을 고칩니다. 도서관에서 단순히 책을 빌려주고 받고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찢어지고 훼손돼 가치가 약해지는 책들을 다시 제 기능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렇게 책들을 고칠 수 있는 사람들이 도서관을 지켜나가야 한다는 제 생각과 자원봉사자들의 뜻이 합쳐져서 책 보수팀이 만들어졌죠.
책 보수팀은 다른 도서관으로 출장(?)을 나가기도 합니다. 훼손된 책을 고쳐주고 그곳의 자원봉사자들에게 책 보수 교육을 하는 거죠. 이번에는 인근 지역의 열악한 학교도서관에서 요청이 왔습니다.
자원봉사로 시작한 책 보수팀, 이제 '출장' 다녀요
▲ 도서관에는 이렇게 찢어지거나 훼손된 책들이 많습니다!아이들이 자주 보는 책들은 늘 이렇게 훼손되어 응급처치하지 않으면 그대로 도서관에서 사라지게 될 책들이 많아요~ ⓒ 김순희
▲ 아픈 책 치료중입니다!아픈 뒤엔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될 것 같아요~ ⓒ 김순희
▲ 최선을 다해 책을 보수하고 있어요~오랜 시간과 노력이 없다면 불가능하겠죠? ⓒ 김순희
▲ 새 생명을 얻은 책들입니다~아직도 치료해야 할 책들은 도서관마다 넘쳐나고 있어요~ ⓒ 김순희
"다른 샘들도 다 시간 된다고 하네요."
"그럼 다시 정확한 일정 잡을 테니, 샘들은 준비해주이소."
"네에. 이제야 학교로 나가네요. 몇 년 만에 저희 책 보수팀이 진짜 역할을 하게 됐네요. 기분 좋아요 샘."
"그러게요. 만날 도서관 자원봉사자 대상으로만 교육 나가다가 이제야 우리가 원했던 학교도서관으로 가네요. 암튼 자알 준비해주시고, 잘 해보입시더."
"근데 월요일은 샘 쉬는 날인데, 일부러 나오셔야겠네요?"
"우짜겠어요. 샘들의 뜻을 받들자면 제가 아끼지 않는 후원을 해드려야지요. 그나저나 은경샘은 멀리서 동구에 또 들어오셔야 하네요? 이사 가고도 발길을 못 끊고. 미안해서 우짜노."
"사서샘이 어디를 가든 도서관을 벗어나면 찾아온다기에 겁이 나서요. 집 앞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그런다면서요. 행여나 그럴까봐 아예 제가 도서관으로 나옵니다."
제가 입버릇처럼 하는 소리가 있습니다. "샘들 도서관 안 나오면 집 앞에 찾아가 북 치고 장구 치고 그럴 거니까 알아서들 하셔요." 이 말이 마음에 걸렸나봅니다. 사실 저희 도서관은 사서와 자원봉사자가 일심동체가 돼야 합니다. 제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이 사람들뿐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제가 하는 농담도 잘 받아주는 것 같아요.
사실 책 보수팀의 한 분은 올 봄에 저희 도서관이 있는 동구가 아닌 남구 지역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그러나 이사를 간 후에도 한 달에 두 번씩 꼬박꼬박 모임에 참석하고, 다른 지역 공공도서관 책 보수 교육에도 항상 함께해주었습니다. 함께하는 사람들이 좋아서, 하는 일이 보람된 일이라서 오게 된다고 말해주시는데, 사실 이런 분들이 있어서 제가 즐겁습니다.
"그나저나 사서샘, 교육 마치고 맛난 점심 사주나? 마치고 나면 점심시간 딱 걸리네. 하하하."
"그렇네. 점심시간 안 걸리게 시간 조정 못했네 하하. 알았심더. 맛난 거 뭐 묵을지 생각이나 해놓으소. 그날은 지갑 두둑하니 채워갈 테니까."
책 보수팀은 제가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무모하게 시작했습니다. 도서관에서 일하는 동안 '책 고치는 동아리'를 하나 만들어보는 게 꿈이었으니까요. 아이들과 함께 '아픈 책 치료해요!'라는 이름으로 책 보수를 시작했습니다.
대가 없어도 즐거운 사람들... 덕분에 여름이 시원합니다
▲ 다른 지역 작은도서관 책 보수 교육중!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는 든든한 <책 보수팀>샘들~ ⓒ 김순희
▲ 공공도서관 책 보수 강의!웬만한 공공도서관에선 책 보수 교육을 다할 정도로 자랑스러운 <도서보수팀>입니다! ⓒ 김순희
책 보수에 관한 제대로 된 교재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 뒤로 1년 동안 오로지 반복된 연습으로 꾸준하게 연구했습니다. 자원봉사자 선생님들이 꼼꼼하고 열정적으로 해주신 덕분에 여기저기 소문이 나고 연락을 받게 됐습니다.
작년 한 해는 정말 바쁘게 울산을 돌아다녔습니다. 도서관 담당자나 자원봉사자를 대상으로 책 보수 교육을 다니면서, 배우는 사람들보다 오히려 책 보수팀은 더 많은 것들을 얻었다고 합니다. 바로 무엇이든 노력하고 포기하지 않으면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간절히 바라는 무언가를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또 자부심을 갖게 됐다는 이야기도 자주 합니다. 이런 얘기를 듣는 저도 반성을 합니다. 그들이 행여나 힘들다고 느꼈을 그 순간, 제 부족함을 한번 더 탓해봅니다.
학교도서관 가는 날이 다가옵니다. 이틀간 책 보수 교육을 해야 하는 그야말로 '자원봉사'인데도 다들 얼굴이 밝습니다. 아무런 대가가 없는 일인데도 마냥 즐거운 모습으로 책 보수 도구들을 챙기는 자원봉사자들이 아름답기까지 하네요. 올 여름은 아마도 이런 분들 덕분에 좀 더 시원한 것 같습니다.
"모든 준비는 다 됐으니, 그날 봬요. 맛난 거 사줄 준비하고 나오셔요. 하하하."
"걱정 마이소. 샘들 고마워요. 그날 봐요~."
"아, 다음엔 어디로 갈지, 일정 짜셔야죠~. 매니저가 영 시원찮아요. 이참에 갈아 치울까나?"
"아이고, 나만 한 매니저가 어디 있다고. 마아 한번 봐주이소. 일거리 찾아올게요."
이번 학교도서관 책 보수교육이 끝나면, 또 다른 학교도서관이든 공공도서관이든 책 보수팀이 또 찾아갈 곳을 한번 눈 크게 뜨고 알아봐야 할 것 같네요. 도서관 자원봉사자들의 '매니저'가 돼버린 지금, 도서관을 운영하고 관리하면서 자원봉사자 동아리 운영 역시 이끌어가야 하는 부담감은 많습니다.
제가 도서관에서 지금까지 일하면서 힘들고 지친 적도 많았지만 한 번도 후회해본 적은 없습니다. 그렇듯이 마지막 날까지 제 곁에 함께해줄 이런 사람들이 있어 힘을 얻고 또 내일을 기약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여름방학 '아픈 책 치료해요!'특강중!방학을 맞은 아이들과 함께 아픈 책을 치료중인 모습이 참으로 예쁘네요~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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