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족 구함'이라고 적힌 어느 떡볶이집 구인광고. ⓒ 송준호
김유정이 쓴 단편소설 중에 <봄봄>이라는 작품이 있다. 주인공인 '나'는 점순이하고 혼인시켜준다는 약속을 믿고 3년 넘게 세경 한 푼 받지 않고 머슴살이를 하지만, 점순이의 키가 자라지 않았다는 구실로 그 아비인 봉필이 혼인을 시켜주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해학적으로 그린 소설이다.
소설에서 '나'는 비록 한 집에 살고 있지만, 봉필과 점순이 부녀에게 '남'으로 취급 받는다. 사전을 찾아보면 '나' 아닌 다른 모든 사람은 '남'이다. 자신과 특별한 관계에 있지 않은 사람을 가리키는 뜻으로 범위를 조금 넓혀 쓰기도 한다. 가족이나 친구나 연인은 '남'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이다. <도로남>이라는 대중가요의 노랫말이 그걸 증명한다.
"남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를 지우고 님이 되어 만난 사람도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찍으면 도로남이 되는 장난 같은 인생사 가슴 아픈 사연에 울고 있는 사람도 복에 겨워 웃는 사람도 점 하나에 울고 웃는다 점 하나에 울고 웃는다 아~~ 인생~"
<봄봄>의 주인공 '나' 또한 '점 하나' 차이에 불과한 점순이의 작은 키 때문에 '남'과 '님'을 넘나들고 있다. 그런 '장난 같은 인생사'에 애간장을 태운다. '나'가 바라는 건 오직 하나다. 점순이와 혼인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남'이 아닌 명실상부한 '식구'로 대접받는 '가족'이 되는 것이다. '나'가 봉필을 꼬박꼬박 '빙장어른'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가족'은 '부부를 중심으로 생겨난 아들, 딸, 손녀, 손자 등 가까운 혈육들로 이루어진 집단'을 가리키는 말이다. 비슷한 뜻을 가진 말이 '식구(食口)'다. '식구'는 한자말 그대로 '먹는 입'이다. '함께 모여서 밥을 먹는 이들의 공동체'다. '가족'의 다른 이름으로 쓰일 만하다.
사회의 기초 단위가 가족이다. 그게 위기를 맞고 있다고 한다. 기능과 효율을 우선시하는 사회 환경의 변화가 그 주된 까닭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인 것 같다. 타인을 배려할 줄 모르는 자기중심적 사고도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만 해도 하루 평균 840쌍이 결혼했다. 그 절반에 가까운 398쌍이 이혼했다. 이혼율이 세계 3위라고 한다. 1위도 멀지 않았다. 그뿐 아니다. 갈라서면서도 자식 양육은 상대방에게 떠넘기려고 하는 추세다.
아예 왕래조차 끊고 사는 부모형제도 적지 않다. 노부모를 서로 모시지 않으려는 다툼도 끊이질 않고 있다. 상속 재산의 분할을 놓고 형제들이 법정 소송을 벌이는 일쯤은 더 이상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얘기가 되어 버렸다. 하긴 세계 일류 기업을 이뤘다는 사람들도 그런 분쟁을 일으켰으니 말 다했다.
원인의 대부분은 돈이다. '사람 나고 돈 났다'는 말은 구시대 유물에 불과하다. 돈 나고 사람 나더니 이제는 가족조차 돈 나고 났다는 게 정설로 굳어가고 있다. 삶의 패턴 변화에 따른 개별화에 가속도가 붙으면서 공동체 개념이 약화된 탓이다.
가족 고유의 가치가 유지되고 있는 영역이 있긴 하다. 조직에 속해 있거나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끼리다. 그런 조직의 대부분은 피를 나눈 사이가 아닌 '남남'으로 이루어져 있다. 2차적 의미의 가족이다. 이때 주로 쓰는 말이 바로 '가족 같은'이고, '우리가 남이가'다. 한때는 어떤 기업광고의 카피로 '가족 경영'이니, '또 하나의 가족'이니 하는 말이 유행한 적도 있다.
그림 속에 있는 건 어느 대학가에서 발견한 떡볶이 집 '구인광고'다. 적힌 걸 보면 흔히들 쓰는 대로 '직원 모집'이나 '아줌마 구함'이 아니다. '가족 구함'이다. 형제자매처럼 믿고 일할 사람을 찾는다는 뜻이겠다. 이 또한 앞서 말했던 2차적 의미의 가족일 것이다.
거기 적힌 대로 '가족'이 되려면 몇 가지 조건을 갖춰야 한다. 우선 용모가 단정하고 성실해야 한다. 연령대도 40대에서 50대 초반으로 제한되어 있다. 떡볶이 가게에서 일을 거들어줄 사람을 '가족'으로 모신다면서 '용모단정'을 적었다.
용모가 단정하지 못한 사람은 가족이 될 수 없다는 말이겠다. 가족으로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이겠다. 용모를 따져가며 가족으로 삼고 말고를 결정하는 사람도 있나. 용모가 단정한지 여부는 누가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도 의문이다.
그뿐 아니다. '성실하신 분'이 아니어도 자격 미달이다. '한 성실' 하는 사람만 지원하라는 뜻이다. 둘 다 갖추었어도 나이가 50대 중반을 넘으면 역시 '가족'으로 함께하기는 곤란하다. 기운이 떨어져서 가족 역할을 제대로 못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가족도 가족 나름이라는 뜻이겠다.
못나도 부모고, 말썽꾸러기여도 내 자식이므로 서로 감싸주고 아픔을 나누는 게 진짜 가족 아닌가. 승진도 제때 못하고 돈벌이까지 시원찮다고 해서 부모로 인정 안 할 수 있는가.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충격을 이기지 못해 며칠씩 식음을 전폐하고 있는 자식을 길거리로 내모는 부모가 어디 있을까. '남'이라면 모를까.
한 나라의 국민 모두도 넓게 보면 하나의 가족이다. 세월호 희생자와 그 유가족들의 고통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국민 모두가 나눠 갖고자 하는 것도 '가족'의 유대감에서 출발한다. '남의 일'로 생각하지 않고 '내 일'이나 '내 가족의 일'로 여기는 것이다. 세상에는 '남' 같은 '가족'도 있고, '가족' 같은 '남'도 많다.
지구 반대편에서 태어났을 뿐 아니라 가톨릭 신자가 아니면 사실상 '남'이라고 할 수 있는 그 분은 가슴에 노란 리본까지 달고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에게 '가족'처럼 따뜻한 손을 내밀고 있는데, 나라 가족 구성원 중 하나로 가족이 대표로 뽑아준 이는 노란 리본은커녕 그들의 고통에 눈길조차 제대로 주지 않고 있다.
아, 앞서 언급했던 김유정의 <봄봄>은 마을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을 모티브로 해서 쓴 것이었다고 한다. 작중의 주인공인 '나'는 그 후 얼마 가지 않아 '점순이'와 혼인하고 한 가족이 되어서 아들딸 낳고 재미나게 살았다는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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