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화나게 한 '폭력 주동자'
[이 사람, 10만인] 송경동 시인
'희망버스 폭력 주동자가 물어낼 돈이 1500만원뿐인가'
지난 16일자 <조선>의 사설 제목이다. <조선>은 이날 <한진중 '희망버스' 폭력시위 부추긴 죄..."송경동, 국가·경찰에 1500만원 배상>이라는 기사도 썼다. 이래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18일 <조선닷컴>은 프리미엄 뉴스로 <법의 심판 받은 '희망버스 시위' 기획자 송경동은 누구?>라는 제목으로 3번째 글을 썼다. 손해배상 판결 기사를 향해 몇 번에 걸쳐서, 몇 날에 걸쳐서 화력을 집중했다.
"대단한 송경동 시인! <조선>이 연일 칼끝을 겨눴는데, 앞으로 어쩔 거요?"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회원 이기도 한 그를 만나 반가운 마음에 농반진반의 질문을 던졌다.
"항소해야죠. 오늘은 제가 막걸리 한 잔 살게요."
지난 18일 남부지방법원에서 과거 기륭전자와 용산참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막 나온 그를 만났다. 그는 여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길가, 술집 나무 테이블에서 도토리 전을 시켜 놓고 막걸리를 한 잔 걸치고 있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송 시인이 건넨 잔을 받아 목을 축이고 도토리 전을 한 입 배어먹은 뒤 테이블 한쪽에 노트북을 켰다.
노동자 죽인 '손배소송'이 이제는...
<조선>은 사설에서 "울산지법이 현대자동차가 울산공장을 불법 점거한 비정규직 노조원들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노조 간부-조합원 22명에게 90억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던 예를 들면서 법원이 이번에 송 시인에게 내린 배상금은 너무 적다고 날을 세웠다. 그날, <조선> 사설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냐고 물었다. <조선>을 구독하지 않는다는 그는 지인의 말을 듣고 인터넷으로 기사를 검색해 보았다고 했다.
"뭐, 섬뜩했죠."
그는 막걸리를 한 모금 들이켜고 입을 씻은 뒤에 말을 이었다.
"노동탄압의 빌미가 된 개인 손해배상 판결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어요. 이런 게 너무하다는 공분이 일어서 얼마 전에 '노란 봉투' 열풍이 불었지요.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모는 손배금을 시민들이 떠안겠다고 나선 거죠. 손배소송을 남발하는 기업과 자본의 손을 들어준 법원에 경고한 겁니다. 그런데 이제는 모든 집회 시위 현장에 손해배상을 적용하겠다? 이거 아닙니까. 정부에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입 다물고 가만히 있으라는 얘기죠. 안 그러면 삶을 송두리째 빼앗아야 한다고 <조선>이 사실상 지침을 내린 겁니다."
그의 말대로 지금까지 집회와 시위 때의 행위에 대해서는 대체로 형사법으로 처벌해왔다. 그런데 이번 판결은 기업이 파업을 한 노동자에게 민사소송으로 손해배상금을 물듯이 집회 시위를 주최한 단체나 개인에게도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내용이고, <조선>은 이 판결에 역성을 들면서 더 엄중하게 판결하라고 법원을 다그쳤다는 것이다. 송 시인은 헌법에 보장된 집회 시위와 표현의 자유가 크게 위축될 것으로 우려했다. 이번에 재판부가 문제를 삼은 2차 희망버스 때(2011년 7월9일)의 '불법 집회 권유 발언'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했다.
'과격분자'로 낙인찍힌 송경동 시인
"법원은 '막 갑시다. 잡혀봐야 1~2명입니다. 촛불행진을 진행합시다. 무슨 일이 있어도 김진숙 지도위원이 있는 85호 크레인으로 가야 합니다'는 발언을 문제 삼았어요."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14일 이 발언을 판결문에 구체적으로 적었다. 이 발언을 희망버스 집회를 기획해서 폭력 등 불법행위를 권유했다는 근거로 삼았다. 법원은 "집회 시위 참가자들에게 공동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을 지나치게 인정하면 집회 시위의 자유가 침해될 수 있기 때문에 일부 과격분자에 의한 일탈 행위는 그 과격분자만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법원이 '과격분자' 낙인을 찍은 송 시인은 "그 때 발언이 폭력행동을 지시한 것으로 보이나요?"라고 반문한 뒤 "당시 정황은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법원이 검찰 측의 일방적인 주장만을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송 시인이 말하는 당시 발언 상황은 이랬다.
"행사 마무리 때 연대 시낭송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어요. 김선우, 심보선 시인과 함께 시낭송을 했고 제가 마지막 순서였죠. 시낭송이 끝난 뒤에 '85호 크레인의 김진숙을 만나러 갑시다. 그 밑에 가서 손이라도 흔들어 줍시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니, 전국에서 자기 돈을 내고 멀리 부산까지 온 자발적인 시민들입니다. 그 사람들이 왜 왔습니까? 김진숙씨를 만나러 왔지요. 그런 분들에게 그 말을 한 것이 선동인가요?"
- 그럼에도 법원은 왜 이런 판결을 했다고 보나요?
"무엇보다 당시 정황을 잘 모른 상태에서 판결을 한 것이 문제였고요, 둘째는 권력과 자본의 손을 들어준 것입니다. 비정규직 정리해고는 우리 사회의 아픔입니다. 희망버스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적 과정이었습니다. 법원이 이걸 범죄화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노동 현장에서 노동3권 탄압의 수단으로 전락한 손배가압류를 사회운동에 적용하겠다는 판결입니다. 파업은 노동자의 권리입니다. 그럼에도 어느 순간부터 법이 사측 편을 들어서 김주익, 이해남, 이현중, 배달호 열사 등이 손배가압류 압박으로 죽었습니다. 이제 사회적인 집회시위의 사회자나 발언자에게도 개인 소송을 걸겠다는 협박입니다."
"폭력을 부른 건 경찰"
- 법원은 희망버스를 불법으로 규정했습니다. 당시 어디까지 허가받은 집회였죠?
"모든 프로그램은 언론에 공개했습니다. 이번 판결에서 문제 삼은 2차 희망버스의 경우도 국회의원들이 경찰청에 가서 협의도 했습니다. 합법적이고 평화적인 행사였어요. 금속노조 부양(부산양산)지부가 크레인 앞까지 행진신고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경찰이 갑자기 한진중공업 정문 300m 앞에서 행진을 막았습니다. 차벽을 세우고 마찰을 유도했습니다. 경찰이 싸움을 조장하지 않았다면 그날 행진은 평화롭게 끝났을 겁니다."
- 이번에 소송을 낸 경찰관들은 당시 방석모를 빼앗기고 전치 1~12주의 부상을 당했다고 합니다. 장비도 파손됐고요.
"경찰 10여 명이 경미한 부상을 당했다는데요, 그때 물대포에 최루 가스를 쏘면서 막았습니다. 50명의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연행됐습니다. 진압과정에서 얼굴에 화상을 입을 시민들도 많았습니다. 공권력이 충돌을 유도하지 않았으면 그런 일도 없었을 겁니다.
희망버스는 5차에 걸쳐 운행했는데, 참가자들이 물리적 충돌을 원한 적은 없어요.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에게 손 한번 흔들어주고 싶었죠. 새벽 4~5시까지 경찰이 막아도 가족끼리, 연인끼리 손잡고 85호 크레인에 갔던 사람들입니다. 그런 행사에 경찰은 수많은 병력을 투입했습니다. 1차 때는 37개 중대, 2차 때는 95개 중대, 3차 때는 100개 중대, 4차 때는 110개 중대가 평화 행사를 막아서 악의적으로 불법집회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 <조선>은 사설에서 어떤 근거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희망버스 때문에 부산 시민과 영도 상인들이 입은 피해도 수십억~수백억이 될 것이라고 추정했습니다.
"잠시 부산 구치소에 들어갔을 때 '부산 시민들도 희망버스를 지지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기업 이데올로기 전략이기는 한데요, 지역 기업들은 사회 봉헌기금이라는 걸 내왔어요. 지역에 있는 많은 기업들이 그렇게 해오고 있습니다.
한진은 어땠나요? 부산 지역의 주요 사업체인 한진중을 직장 폐쇄시키고 수주 물량을 필리핀 수빅으로 빼돌렸습니다. 한진은 법인세도 서울에 냅니다. 지역 경제에 도움이 안됐던 겁니다. 수구보수 단체들은 희망버스가 출발하면 부산시민 1만 명이 막을 거라고 윽박질렀는데, 막상 가보니 100여 명의 지역 보수단체 회원들뿐이었고 200여 명은 서울에서 내려간 어버이연합 어르신들이었어요. 부산 경제에 무엇이 손해인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식으로 걸면 시민들의 저항권 행사가 불가능합니다. 거리행진을 했을 때 상점들이 손해를 봤다고 손배소송을 걸면 집회를 열 수 있나요?"
<조선>은 송경동이 왜 불편했나?
- <조선>의 시선이 부담스럽지는 않았나요? 왜 송경동 시인에게 주목했다고 보시나요?
"최근에 제가 싸웠던 게, 세월호, 밀양 송전탑, 유성, 콜트콜텍, 삼성전자서비스 등입니다. 특히 대한민국 세월호 선장 박근혜 대통령이 구속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게 불편하지 않았을까요?"
- 최근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힘을 쏟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희망버스와 세월호 특별법은 어떻게 연결이 된 거죠?
"희망버스 운동은 비정규직 정리해고 등 신자유주의의 모순이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고 경종을 울린 것입니다. 밀양, 쌍용자동차, 유성 기업 등에서 세월호 이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이미 대한민국은 세월호였습니다. 참사로 인해 그런 모습이 극명하게 드러난 겁니다. 세월호의 평형수를 드러낼 때 얘들의 목숨이 빠져나갔습니다. 그 과정에서 노후선박을 더 연장하도록 법을 개정하고 세월호를 불법 개조해 돈방석에 앉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 피해는 사회적 약자, 노동자 민중이 짊어져야 합니다. 구조적 문제를 바로잡지 않으면 노동자 민중이 죽습니다."
- 프란치스코 교황이 돌아갔습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에게 많은 위안이 됐다고 하는데요, 그의 역할과 박근혜 대통령의 역할을 비교해 본다면?
"교황께서 마음을 내주셨어요. 미처 그런 생각까지 못했는데 유가족들의 손을 잡아 주면서 위로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찾아가서 만나자고 했는데도 손 한번 잡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교황 대변인도 말을 했듯이 교황이 할 수 있는 것은 위로와 껴안음뿐입니다. 그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인데, 실제 사회적 진전을 위해서는 당사자들이 나서야 합니다. 진실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평범한 시민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나에게 묻지 말고 미친 세상에 물어라"
인터뷰를 마무리할 즈음 송 시인에게 물었다.
- <조선> 기사의 댓글을 보니, 시인이 시는 안 쓰고 만날 시위만 한다는 비판이 있던데, 평소에도 자주 듣지 않나요?
"오해입니다.(웃음) 요 근래에 쓴 추모시만도 15편정도 됩니다. 오히려 추모시가 쓰기 힘든 시입니다. 죽은 사람 이야기이기 때문에 무척 부담이 됩니다. 밤을 꼬박 새워도 눈물만 흐릅니다. 그런데도 조만간 3번째 시집을 낼 계획입니다."
그가 최근에 쓴 추모시는 밀양 유한숙 어른, 삼성전자서비스 염호석 열사, 장애인 송국현 열사, 전북 신성여객 진기승 열사, 세월호 관련 3편 등이다. 송 시인은 "경찰은 과거 하중근 열사 때 내 시가 폭력을 선동했다면서 조사를 받으라고 했었는데, 최근 삼성전자 서비스 염호석 열사 장례식 때 추모시 낭송 과정에서 있었던 일로도 소환장을 발부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제는 추모시마저도 쓸 수 없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면서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함께 나누는 슬픔조차도 죄가 되는 시대 말이다.
인터뷰를 하면서 막걸리 3통을 비웠다. 비는 그새 그쳤다. 화장실에 갔다 오면서 계산을 하려고 했더니, 1500만 원 배상 판결을 받은 가난한 송 시인이 뭔 돈이 있다고 선수를 쳤다.또다시 추모시를 써야 하고, 경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아야 하고, 국가에 배상도 해야 하는 고단한 시인의 삶. 그는 막잔을 들면서 눅눅한 밤공기 속으로 혼잣말처럼 거친 시어를 밀어 넣었다.
"내가 왜 추모시 전문이 됐는지,
왜 이리 안타까운 죽음이 많은지,
내가 아니라
미친 세상에 물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지난 16일자 <조선>의 사설 제목이다. <조선>은 이날 <한진중 '희망버스' 폭력시위 부추긴 죄..."송경동, 국가·경찰에 1500만원 배상>이라는 기사도 썼다. 이래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18일 <조선닷컴>은 프리미엄 뉴스로 <법의 심판 받은 '희망버스 시위' 기획자 송경동은 누구?>라는 제목으로 3번째 글을 썼다. 손해배상 판결 기사를 향해 몇 번에 걸쳐서, 몇 날에 걸쳐서 화력을 집중했다.
"대단한 송경동 시인! <조선>이 연일 칼끝을 겨눴는데, 앞으로 어쩔 거요?"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회원 이기도 한 그를 만나 반가운 마음에 농반진반의 질문을 던졌다.
"항소해야죠. 오늘은 제가 막걸리 한 잔 살게요."
지난 18일 남부지방법원에서 과거 기륭전자와 용산참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막 나온 그를 만났다. 그는 여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길가, 술집 나무 테이블에서 도토리 전을 시켜 놓고 막걸리를 한 잔 걸치고 있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송 시인이 건넨 잔을 받아 목을 축이고 도토리 전을 한 입 배어먹은 뒤 테이블 한쪽에 노트북을 켰다.
노동자 죽인 '손배소송'이 이제는...
▲ 송경동 시인. ⓒ 권우성
<조선>은 사설에서 "울산지법이 현대자동차가 울산공장을 불법 점거한 비정규직 노조원들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노조 간부-조합원 22명에게 90억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던 예를 들면서 법원이 이번에 송 시인에게 내린 배상금은 너무 적다고 날을 세웠다. 그날, <조선> 사설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냐고 물었다. <조선>을 구독하지 않는다는 그는 지인의 말을 듣고 인터넷으로 기사를 검색해 보았다고 했다.
"뭐, 섬뜩했죠."
그는 막걸리를 한 모금 들이켜고 입을 씻은 뒤에 말을 이었다.
"노동탄압의 빌미가 된 개인 손해배상 판결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어요. 이런 게 너무하다는 공분이 일어서 얼마 전에 '노란 봉투' 열풍이 불었지요.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모는 손배금을 시민들이 떠안겠다고 나선 거죠. 손배소송을 남발하는 기업과 자본의 손을 들어준 법원에 경고한 겁니다. 그런데 이제는 모든 집회 시위 현장에 손해배상을 적용하겠다? 이거 아닙니까. 정부에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입 다물고 가만히 있으라는 얘기죠. 안 그러면 삶을 송두리째 빼앗아야 한다고 <조선>이 사실상 지침을 내린 겁니다."
그의 말대로 지금까지 집회와 시위 때의 행위에 대해서는 대체로 형사법으로 처벌해왔다. 그런데 이번 판결은 기업이 파업을 한 노동자에게 민사소송으로 손해배상금을 물듯이 집회 시위를 주최한 단체나 개인에게도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내용이고, <조선>은 이 판결에 역성을 들면서 더 엄중하게 판결하라고 법원을 다그쳤다는 것이다. 송 시인은 헌법에 보장된 집회 시위와 표현의 자유가 크게 위축될 것으로 우려했다. 이번에 재판부가 문제를 삼은 2차 희망버스 때(2011년 7월9일)의 '불법 집회 권유 발언'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했다.
'과격분자'로 낙인찍힌 송경동 시인
"법원은 '막 갑시다. 잡혀봐야 1~2명입니다. 촛불행진을 진행합시다. 무슨 일이 있어도 김진숙 지도위원이 있는 85호 크레인으로 가야 합니다'는 발언을 문제 삼았어요."
서울중앙지법은 지난 14일 이 발언을 판결문에 구체적으로 적었다. 이 발언을 희망버스 집회를 기획해서 폭력 등 불법행위를 권유했다는 근거로 삼았다. 법원은 "집회 시위 참가자들에게 공동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을 지나치게 인정하면 집회 시위의 자유가 침해될 수 있기 때문에 일부 과격분자에 의한 일탈 행위는 그 과격분자만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법원이 '과격분자' 낙인을 찍은 송 시인은 "그 때 발언이 폭력행동을 지시한 것으로 보이나요?"라고 반문한 뒤 "당시 정황은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법원이 검찰 측의 일방적인 주장만을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송 시인이 말하는 당시 발언 상황은 이랬다.
"행사 마무리 때 연대 시낭송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어요. 김선우, 심보선 시인과 함께 시낭송을 했고 제가 마지막 순서였죠. 시낭송이 끝난 뒤에 '85호 크레인의 김진숙을 만나러 갑시다. 그 밑에 가서 손이라도 흔들어 줍시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니, 전국에서 자기 돈을 내고 멀리 부산까지 온 자발적인 시민들입니다. 그 사람들이 왜 왔습니까? 김진숙씨를 만나러 왔지요. 그런 분들에게 그 말을 한 것이 선동인가요?"
- 그럼에도 법원은 왜 이런 판결을 했다고 보나요?
"무엇보다 당시 정황을 잘 모른 상태에서 판결을 한 것이 문제였고요, 둘째는 권력과 자본의 손을 들어준 것입니다. 비정규직 정리해고는 우리 사회의 아픔입니다. 희망버스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적 과정이었습니다. 법원이 이걸 범죄화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노동 현장에서 노동3권 탄압의 수단으로 전락한 손배가압류를 사회운동에 적용하겠다는 판결입니다. 파업은 노동자의 권리입니다. 그럼에도 어느 순간부터 법이 사측 편을 들어서 김주익, 이해남, 이현중, 배달호 열사 등이 손배가압류 압박으로 죽었습니다. 이제 사회적인 집회시위의 사회자나 발언자에게도 개인 소송을 걸겠다는 협박입니다."
"폭력을 부른 건 경찰"
▲ 2011년 7월 9일, 경찰이 '2차 희망버스'의 거리행진과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앞에서 열릴 집회를 불허한 가운데, 이날 오후 부산역광장에서 열린 '희망과 연대의 콘서트'에서 수많은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 등을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 법원은 희망버스를 불법으로 규정했습니다. 당시 어디까지 허가받은 집회였죠?
"모든 프로그램은 언론에 공개했습니다. 이번 판결에서 문제 삼은 2차 희망버스의 경우도 국회의원들이 경찰청에 가서 협의도 했습니다. 합법적이고 평화적인 행사였어요. 금속노조 부양(부산양산)지부가 크레인 앞까지 행진신고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경찰이 갑자기 한진중공업 정문 300m 앞에서 행진을 막았습니다. 차벽을 세우고 마찰을 유도했습니다. 경찰이 싸움을 조장하지 않았다면 그날 행진은 평화롭게 끝났을 겁니다."
- 이번에 소송을 낸 경찰관들은 당시 방석모를 빼앗기고 전치 1~12주의 부상을 당했다고 합니다. 장비도 파손됐고요.
"경찰 10여 명이 경미한 부상을 당했다는데요, 그때 물대포에 최루 가스를 쏘면서 막았습니다. 50명의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연행됐습니다. 진압과정에서 얼굴에 화상을 입을 시민들도 많았습니다. 공권력이 충돌을 유도하지 않았으면 그런 일도 없었을 겁니다.
희망버스는 5차에 걸쳐 운행했는데, 참가자들이 물리적 충돌을 원한 적은 없어요.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에게 손 한번 흔들어주고 싶었죠. 새벽 4~5시까지 경찰이 막아도 가족끼리, 연인끼리 손잡고 85호 크레인에 갔던 사람들입니다. 그런 행사에 경찰은 수많은 병력을 투입했습니다. 1차 때는 37개 중대, 2차 때는 95개 중대, 3차 때는 100개 중대, 4차 때는 110개 중대가 평화 행사를 막아서 악의적으로 불법집회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 <조선>은 사설에서 어떤 근거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희망버스 때문에 부산 시민과 영도 상인들이 입은 피해도 수십억~수백억이 될 것이라고 추정했습니다.
"잠시 부산 구치소에 들어갔을 때 '부산 시민들도 희망버스를 지지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기업 이데올로기 전략이기는 한데요, 지역 기업들은 사회 봉헌기금이라는 걸 내왔어요. 지역에 있는 많은 기업들이 그렇게 해오고 있습니다.
한진은 어땠나요? 부산 지역의 주요 사업체인 한진중을 직장 폐쇄시키고 수주 물량을 필리핀 수빅으로 빼돌렸습니다. 한진은 법인세도 서울에 냅니다. 지역 경제에 도움이 안됐던 겁니다. 수구보수 단체들은 희망버스가 출발하면 부산시민 1만 명이 막을 거라고 윽박질렀는데, 막상 가보니 100여 명의 지역 보수단체 회원들뿐이었고 200여 명은 서울에서 내려간 어버이연합 어르신들이었어요. 부산 경제에 무엇이 손해인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식으로 걸면 시민들의 저항권 행사가 불가능합니다. 거리행진을 했을 때 상점들이 손해를 봤다고 손배소송을 걸면 집회를 열 수 있나요?"
<조선>은 송경동이 왜 불편했나?
▲ 지난 5월 24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추모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종각 사거리로 행진하던 중 송경동 시인이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 연합뉴스
- <조선>의 시선이 부담스럽지는 않았나요? 왜 송경동 시인에게 주목했다고 보시나요?
"최근에 제가 싸웠던 게, 세월호, 밀양 송전탑, 유성, 콜트콜텍, 삼성전자서비스 등입니다. 특히 대한민국 세월호 선장 박근혜 대통령이 구속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게 불편하지 않았을까요?"
- 최근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힘을 쏟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희망버스와 세월호 특별법은 어떻게 연결이 된 거죠?
"희망버스 운동은 비정규직 정리해고 등 신자유주의의 모순이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고 경종을 울린 것입니다. 밀양, 쌍용자동차, 유성 기업 등에서 세월호 이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이미 대한민국은 세월호였습니다. 참사로 인해 그런 모습이 극명하게 드러난 겁니다. 세월호의 평형수를 드러낼 때 얘들의 목숨이 빠져나갔습니다. 그 과정에서 노후선박을 더 연장하도록 법을 개정하고 세월호를 불법 개조해 돈방석에 앉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 피해는 사회적 약자, 노동자 민중이 짊어져야 합니다. 구조적 문제를 바로잡지 않으면 노동자 민중이 죽습니다."
- 프란치스코 교황이 돌아갔습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에게 많은 위안이 됐다고 하는데요, 그의 역할과 박근혜 대통령의 역할을 비교해 본다면?
"교황께서 마음을 내주셨어요. 미처 그런 생각까지 못했는데 유가족들의 손을 잡아 주면서 위로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찾아가서 만나자고 했는데도 손 한번 잡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교황 대변인도 말을 했듯이 교황이 할 수 있는 것은 위로와 껴안음뿐입니다. 그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인데, 실제 사회적 진전을 위해서는 당사자들이 나서야 합니다. 진실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평범한 시민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나에게 묻지 말고 미친 세상에 물어라"
인터뷰를 마무리할 즈음 송 시인에게 물었다.
- <조선> 기사의 댓글을 보니, 시인이 시는 안 쓰고 만날 시위만 한다는 비판이 있던데, 평소에도 자주 듣지 않나요?
"오해입니다.(웃음) 요 근래에 쓴 추모시만도 15편정도 됩니다. 오히려 추모시가 쓰기 힘든 시입니다. 죽은 사람 이야기이기 때문에 무척 부담이 됩니다. 밤을 꼬박 새워도 눈물만 흐릅니다. 그런데도 조만간 3번째 시집을 낼 계획입니다."
그가 최근에 쓴 추모시는 밀양 유한숙 어른, 삼성전자서비스 염호석 열사, 장애인 송국현 열사, 전북 신성여객 진기승 열사, 세월호 관련 3편 등이다. 송 시인은 "경찰은 과거 하중근 열사 때 내 시가 폭력을 선동했다면서 조사를 받으라고 했었는데, 최근 삼성전자 서비스 염호석 열사 장례식 때 추모시 낭송 과정에서 있었던 일로도 소환장을 발부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제는 추모시마저도 쓸 수 없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면서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함께 나누는 슬픔조차도 죄가 되는 시대 말이다.
인터뷰를 하면서 막걸리 3통을 비웠다. 비는 그새 그쳤다. 화장실에 갔다 오면서 계산을 하려고 했더니, 1500만 원 배상 판결을 받은 가난한 송 시인이 뭔 돈이 있다고 선수를 쳤다.또다시 추모시를 써야 하고, 경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아야 하고, 국가에 배상도 해야 하는 고단한 시인의 삶. 그는 막잔을 들면서 눅눅한 밤공기 속으로 혼잣말처럼 거친 시어를 밀어 넣었다.
"내가 왜 추모시 전문이 됐는지,
왜 이리 안타까운 죽음이 많은지,
내가 아니라
미친 세상에 물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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