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남자의 침입... 여자 혼자 살기 불안해요
[세입자라 쓰고 생존자라 읽는다①] 비혼여성 세입자 릴레이 인터뷰 연재를 시작하며
"집은 나 자신인 것 같아요."
'당신에게 집이란?'이라고 물었을 때 진현(23·비혼여성·세입자 5년차)이 들려준 대답이다.
"집이 사는 사람의 생활과 사고방식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 같거든요. 만약 지금 사는 집이 무언가 취약하다면 그 사람은 거기에 민감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렇게 집이 나를 바꾸는 부분이 있어요. 그러니까 집은 나 자신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정말 그렇다. 예를 들어 해미(가명·34·비혼여성·세입자 10년차)는 안전에 유독 민감하다. 낯선 남자가 혼자 사는 집에 침입을 시도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해미의 2천만 원짜리 전셋집 현관문은 철문이 아니라 유리가 끼워진 문이었다.
유리만 깨도 무방비인 것을 침입자도 알고, 나도 아는 상태의 대치. 더군다나 집에서 일어난 일이 아닌가. 집 안에 있어도 안전하지 않다면 세상 어디에서 안전감을 느낄 수 있을까. 결국 집이라는 공간에서 겪는 감정은 나라는 인간 전체에 스며든다. 그만큼 내가 살고 있는 집은 중요하다.
"집은 나" 말처럼 중요하지만, 현실은...
집이 중요하다는 건 '상식'이기도 하다.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의식주는 인간 생활의 3대 요소'라고 명시되어 있지 않은가. 그래서 어느 사회든 구성원의 주거 문제를 지원하는 사회안전망이 있다. 한국 사회에는 결혼을 계기로 부모가 자식의 주거비를 지원하는 문화가 있다. 이른바 '비공식적' 사회안전망이다.
그런데 이를 뒤집어 말하면 부모가 없거나, 부모가 경제력이 없거나, 그 경제력을 결혼을 통해 자연스럽게 상속받을 수 없는 사람에겐 그러한 안전망이 없다는 뜻이 된다. 가난해도, 비혼이라도, 외국인이라도 혹은 어떤 이유에서든 가족이라는 비공식적 사회안전망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집은 '기본'이어야 할 텐데 말이다.
물론 그저 벽 있고 천장 있다고 다 집이 아니다. 외부인의 침입, 오염, 습기, 해충, 눈과 비, 더위와 추위 같은 외부 환경으로부터 거주자를 보호할 수 있는 집, 다시 말해 집으로서의 제 기능을 할 수 있는 집이어야 할 텐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저소득 세입자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반지하 침수의 서러움, 동파된 보일러를 볼모로 한 집주인과의 신경전, 곰팡이 전쟁, 모진 외풍을 버텨낸 혹한기, 억울하게 돈 떼인 사연이 있다. 그리고 생각하게 된다. 영어 공부해서 돈 더 주는 직장을 잡아야지, 더러워도 꾹 참고 이 직장에서 버텨야지, 결혼을 해야지, 부모님이 한 밑천 떼 주시진 않을까? 로또라도 됐으면….
답을 찾고 싶었다. 이런 생각들이 인생의 목줄을 틀어쥐는 걸 체념하듯 지켜보는 것 외엔 적정한 집에서 적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정말 없는 건지 알고 싶었다. 답을 찾기 위해서는 우선 무엇이 문제인지를 밝히는 게 수순.
그래서 한국여성민우회 성평등복지팀에서는 비공식적 안전망 밖에 있는 사람들, 비혼여성 세입자들의 집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위에서 인용한 진현과 해미도 이 릴레이 인터뷰에서 녹록지 않은 자신들의 '집 역사'를 들려주었던 인터뷰이들이다.
월세 30으로 살만한 집 구할 수 있을까?
지난 5월~8월에 걸쳐 10명의 비혼여성 세입자를 만났다. 인터뷰이들은 크게 세 그룹으로 소개할 수 있다. 첫 번째 그룹, 진헌, 규원, 새미(모두 가명)는 20대 초중반의 대학생이다. 이들은 수요가 공급을 항상 넘기 때문에 집의 질 대비 주거비가 높은 대학가에서 월수입 60~100만 원 정도의 아르바이트로 버티고 있다. 이 중 진헌과 규원은 LH의 대학생전세임대 제도를 이용하고 있다.
두 번째 그룹, 해미, 하윤, 신치, 재민(모두 가명)은 20대 후반~30대 초반의 비혼 여성이다. 월소득은 법정최저임금 수준인 100만 원~120만 원이고, 월소득에서 20%~60%까지를 주거비에 쓰고 있다. 이 중 재민은 SH의 국민임대주택에 살고 있다.
세 번째 그룹, 태영, 아름, 정희(모두 가명)는 30대 후반의 비혼여성이다. 사회생활 연차가 붙으면서 월소득도 180~300대이다. 20대~30대 초반까지 첫 번째, 두 번째 그룹과 비슷한 주거 환경을 거쳤다. 현재는 삶의 경로에 따라 은행 대출을 받거나 부모님께 돈을 빌려 전세금을 마련한 사람도 있고 적금을 불려가며 마련한 반전세에 사는 사람도 있다.
인터뷰이들은 매달 최소 20만 원~최대 60만 원 안에서 평균적으로 30~40만 원의 월세를 주거비로 쓰고 있었다. OECD는 가입국 국민들의 소득대비 주거비가 25%를 넘지 않을 것을 권고하는 가이드라인을 갖고 있다. 25%가 넘으면 식비를 줄이게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국의 법정최저임금은 108만8890원이다. 그러니까 OECD 기준에 따르면 한국에선 월세 30만 원 정도면 누구나 기본적인 생활에 무리가 없는 집을 구할 수 있어야 하겠다.
인터뷰이들이 내고 있는 평균 월세는 30~40만 원이니, 기본적인 생활에 지장이 없었느냐고? 예상되는 대답이지만 아니었다. 그래서 '세입자라고 쓰고 비적정주거 생존자'라고 읽는다. 그리고 그 비적정주거에서 생존하면서 겪어야 했던 그 많은 일들이 이들의 삶 전반에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집 같지 않은 집에 살고 있는 것도 서러운데 집주인은 그 집보다 한 술 더 뜨고, 세입자인 것도 서러운데 비혼 여성이라고 더 무시당하는 사람들. 이들의 이야기를 이제 시작하려 한다.
'당신에게 집이란?'이라고 물었을 때 진현(23·비혼여성·세입자 5년차)이 들려준 대답이다.
▲ 많은 집들이 방범 기능이 부족한 문을 달고 있다. ⓒ 한국여성민우회
정말 그렇다. 예를 들어 해미(가명·34·비혼여성·세입자 10년차)는 안전에 유독 민감하다. 낯선 남자가 혼자 사는 집에 침입을 시도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해미의 2천만 원짜리 전셋집 현관문은 철문이 아니라 유리가 끼워진 문이었다.
유리만 깨도 무방비인 것을 침입자도 알고, 나도 아는 상태의 대치. 더군다나 집에서 일어난 일이 아닌가. 집 안에 있어도 안전하지 않다면 세상 어디에서 안전감을 느낄 수 있을까. 결국 집이라는 공간에서 겪는 감정은 나라는 인간 전체에 스며든다. 그만큼 내가 살고 있는 집은 중요하다.
"집은 나" 말처럼 중요하지만, 현실은...
집이 중요하다는 건 '상식'이기도 하다.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의식주는 인간 생활의 3대 요소'라고 명시되어 있지 않은가. 그래서 어느 사회든 구성원의 주거 문제를 지원하는 사회안전망이 있다. 한국 사회에는 결혼을 계기로 부모가 자식의 주거비를 지원하는 문화가 있다. 이른바 '비공식적' 사회안전망이다.
그런데 이를 뒤집어 말하면 부모가 없거나, 부모가 경제력이 없거나, 그 경제력을 결혼을 통해 자연스럽게 상속받을 수 없는 사람에겐 그러한 안전망이 없다는 뜻이 된다. 가난해도, 비혼이라도, 외국인이라도 혹은 어떤 이유에서든 가족이라는 비공식적 사회안전망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집은 '기본'이어야 할 텐데 말이다.
▲ 외부인의 침입, 오염, 습기, 해충, 눈과 비, 더위와 추위 같은 외부 환경으로부터 거주자를 보호할 수 있는 집, 다시 말해 집으로서의 제 기능을 할 수 있는 집이어야 할 텐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 freeimages
물론 그저 벽 있고 천장 있다고 다 집이 아니다. 외부인의 침입, 오염, 습기, 해충, 눈과 비, 더위와 추위 같은 외부 환경으로부터 거주자를 보호할 수 있는 집, 다시 말해 집으로서의 제 기능을 할 수 있는 집이어야 할 텐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저소득 세입자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반지하 침수의 서러움, 동파된 보일러를 볼모로 한 집주인과의 신경전, 곰팡이 전쟁, 모진 외풍을 버텨낸 혹한기, 억울하게 돈 떼인 사연이 있다. 그리고 생각하게 된다. 영어 공부해서 돈 더 주는 직장을 잡아야지, 더러워도 꾹 참고 이 직장에서 버텨야지, 결혼을 해야지, 부모님이 한 밑천 떼 주시진 않을까? 로또라도 됐으면….
답을 찾고 싶었다. 이런 생각들이 인생의 목줄을 틀어쥐는 걸 체념하듯 지켜보는 것 외엔 적정한 집에서 적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정말 없는 건지 알고 싶었다. 답을 찾기 위해서는 우선 무엇이 문제인지를 밝히는 게 수순.
그래서 한국여성민우회 성평등복지팀에서는 비공식적 안전망 밖에 있는 사람들, 비혼여성 세입자들의 집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위에서 인용한 진현과 해미도 이 릴레이 인터뷰에서 녹록지 않은 자신들의 '집 역사'를 들려주었던 인터뷰이들이다.
월세 30으로 살만한 집 구할 수 있을까?
▲ 인터뷰이들이 그린 '집하면 떠오르는 것들' 그림 ⓒ 한국여성민우회
지난 5월~8월에 걸쳐 10명의 비혼여성 세입자를 만났다. 인터뷰이들은 크게 세 그룹으로 소개할 수 있다. 첫 번째 그룹, 진헌, 규원, 새미(모두 가명)는 20대 초중반의 대학생이다. 이들은 수요가 공급을 항상 넘기 때문에 집의 질 대비 주거비가 높은 대학가에서 월수입 60~100만 원 정도의 아르바이트로 버티고 있다. 이 중 진헌과 규원은 LH의 대학생전세임대 제도를 이용하고 있다.
두 번째 그룹, 해미, 하윤, 신치, 재민(모두 가명)은 20대 후반~30대 초반의 비혼 여성이다. 월소득은 법정최저임금 수준인 100만 원~120만 원이고, 월소득에서 20%~60%까지를 주거비에 쓰고 있다. 이 중 재민은 SH의 국민임대주택에 살고 있다.
세 번째 그룹, 태영, 아름, 정희(모두 가명)는 30대 후반의 비혼여성이다. 사회생활 연차가 붙으면서 월소득도 180~300대이다. 20대~30대 초반까지 첫 번째, 두 번째 그룹과 비슷한 주거 환경을 거쳤다. 현재는 삶의 경로에 따라 은행 대출을 받거나 부모님께 돈을 빌려 전세금을 마련한 사람도 있고 적금을 불려가며 마련한 반전세에 사는 사람도 있다.
인터뷰이들은 매달 최소 20만 원~최대 60만 원 안에서 평균적으로 30~40만 원의 월세를 주거비로 쓰고 있었다. OECD는 가입국 국민들의 소득대비 주거비가 25%를 넘지 않을 것을 권고하는 가이드라인을 갖고 있다. 25%가 넘으면 식비를 줄이게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국의 법정최저임금은 108만8890원이다. 그러니까 OECD 기준에 따르면 한국에선 월세 30만 원 정도면 누구나 기본적인 생활에 무리가 없는 집을 구할 수 있어야 하겠다.
인터뷰이들이 내고 있는 평균 월세는 30~40만 원이니, 기본적인 생활에 지장이 없었느냐고? 예상되는 대답이지만 아니었다. 그래서 '세입자라고 쓰고 비적정주거 생존자'라고 읽는다. 그리고 그 비적정주거에서 생존하면서 겪어야 했던 그 많은 일들이 이들의 삶 전반에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집 같지 않은 집에 살고 있는 것도 서러운데 집주인은 그 집보다 한 술 더 뜨고, 세입자인 것도 서러운데 비혼 여성이라고 더 무시당하는 사람들. 이들의 이야기를 이제 시작하려 한다.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한국여성민우회 블로그(http://womenlink1987.tistory.com)에 동시 연재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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