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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 선배! 내가 뚱뚱하고 예쁘지 않아서 웃겨요?

[창간 3주년 기획] 한국 개그 프로그램에 담긴 여성상② 날씬해야 하는 사회의 피로감

등록|2014.08.25 07:16 수정|2014.08.25 08:31
'도시와 농촌의 비만율 차이는 여성만 따로 떼어 놓고 보면, 2008년 0.1% 차이였던 도농간 여성 비만율 격차가 해마다 벌어져 2012년 10.7% 포인트까지 커졌다. (중략) 도시보다는 농촌에 상대적으로 소득이 적고 연령대가 높은 여성이 많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비만율은 소득이 적을수록, 나이가 많을수록 높은 게 일반적이다.'

8월 19일자 <한겨레>의 기사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단지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비만율의 차이만이 아니라, 그렇게 지역이나 나이에 따라 비만율의 차이가 드러날 정도로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몸에 대한 이데올로기가 내재화되고 있음을 수치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기사 중 '농촌에 사는 여성은 도시 여성보다 상대적으로 경쟁에 따른 스트레스가 자유로워 자기 관리 욕구가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는 표현이 있다. 즉, 우리 사회 여성의 날씬한 몸은 경쟁 사회에서 생존의 지표가 되었고, 그런 스트레스로 인해 여성들은 끊임없이 자기 몸을 '날씬하게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것을 기사는 통계를 통해 역설적으로 증명해 낸다.

이를 보고, 그런 날씬한 몸이 우리 사회의 경쟁 사회에서 성공의 지표가 되는 듯이, 그 반대로 날씬하지 않은 몸을 가지고 도시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이미 경쟁 사회의 표준화에서 벗어난 패배주의적 현현이요, 따라서 지탄받아도 변명할 가치가 없는 대상으로 전락한다고 해석한다면 과언일까.

그리고 여성의 몸이 경쟁력이 된 이데올로기가 내재화된 현상은 TV 속에서 자주 조우할 수 있다. 화면에서 가장 빈번하게 만날 수 있는 상대적으로 '뚱뚱한' 몸을 가진 여성들은 개그우먼들인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그 여성들은 TV 속에서 어떻게 다루어질까?

이국주에 호응하는 사람들, 하지만 이국주가 되라면?

▲ KBS 2TV <개그콘서트> 코너 '선배, 선배!'의 이수지. ⓒ KBS


KBS 2TV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 '선배, 선배!'에서 이런 의식들은 확연하게 드러난다. 콩트에서 대학교 신입생 이수지는 한 눈에 보기에도 그리 날씬하지 않은 통통한 몸매에 귀염성은 있지만 예쁘다고는 말할 수 없는 외모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세간의 평가(?)와 달리, 그녀는 자신이 뭇 남성들의 시선을 한 눈에 사로잡는 매력적인 여성이라 자부하고 있다.

이 코너의 기본적인 웃음기는 바로 이런 그녀의 아이러니한 자아인식에서부터 출발한다. 통통한 그녀가 자신을 한껏 자부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웃긴 것'이다. 그러니 그녀의 주변 사람들, 선배인 정명훈이나 류근지가 그녀를 '벌레 보듯' 피하는 상황이 당연한 듯이 전개된다.

정명훈이나 류근지는 코너가 진행되는 도중 이수지를 한 번도 제대로 보지 않는다. 심지어 그녀와 눈이 마주칠라 하면 허겁지겁 도망치기까지 한다. 그녀가 그의 말 한 마디에 삐져서 "선배! 마이너스 100점" 하면, "다행이다"로 대꾸하고. 그런 선배의 반응에 눈치가 없는 수지가 이 코너의 백미를 이룬다. 거기에 덧붙여, 수지와 비슷한 덩치를 지닌 조수연이 애인과 요즘 연인들이 하듯 오그라드는 행동을 벌이는 것을 '착각' 혹은, '어불성설'의 서사로 전개시킨다.

이 코너의 전제로 깔린 것은, 날씬하지도 않고, 성형을 거치지 않아 자연스러운 외모를 가진 그녀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 자부심을 가진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 정도의 여성들이라면, 한껏 다리가 드러난 옷을 입고 캠퍼스를 활보하며, 자신이 매력적인 여성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며, 그 코너를 보며 웃음을 참아내지 못하는 우리들은 그런 전제에 공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드립걸즈 시즌3' 이국즈, 위엄있는 뒤태 4일 오후 서울 상암동 CJ E&M센터에서 열린 코믹컬 <드립걸즈> 시즌3 제작발표회에서 이국주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코믹컬 <드립걸즈>는 2012년과 2013년 두 시즌에 걸쳐 개그와 노래, 퍼포먼스가 합쳐진 신개념 멀티쇼로 레드팀과 블루팀으로 나뉘어 공연이 열린다. 23일 개막. ⓒ 이정민


신입생 이수지의 당당함은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또 다른 퉁퉁한 개그우면 이국주의 당당함으로 이어진다. 사람들은 자신의 몸매를 당당하게 드러내고, 김보성의 '의리'를 코스프레하며, 대놓고 '식탐송'을 불러대는 이국주를 즐긴다. 당당한 이국주가 인기를 끄는 것은, 실제로 날씬함에도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몸매를 위해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 사회의 피로감의 표출이다. 자신들이 할 수 없는 것을 대놓고 선을 넘어 당당하게 즐기는 듯한 이국주에 대한 '선망'의 표현인 것.

'선배, 선배!'의 이수지를 보며 비웃는 그런 내재화된 몸매관을 가진 사람들이 가진 억눌려진 스트레스의 발현이랄까. 사실은 그들도 피곤한 것이다. 음식을 먹을 때마다 칼로리를 염두에 두고, 참다 참다 못해 폭식을 하게 되는 과정을 되풀이하며 살아가는 삶, 날씬한 몸매가 자기 관리의 상징이 되는 이 '도시'의 삶을 견디는 피로의 발산이 이국주에 대한 호응으로 나타난다.

이수지에 대한 웃음기가 이국주에 대한 호응으로 이어지는 과정에는 몸매에 대한 대중들의 분열된 인식이 투영되어 있다. 자본주의적으로 살아가기는 피곤하지만, 그래서 자신들이 할 수 없는 것을 마음껏 욕망하는 그녀를 보는 것만으로도 속이 시원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녀의 '자뻑'은 개그일 뿐, 진지한 인정은 아니다. 이국주는 웃기지만, 이국주가 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쟁력 있는 존재로 살아가기 위해서, 자신들은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다,

고전 명화 속 그녀들은 비만에 가까운 몸매를 자랑하며, 풍요를 상징한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지극히 경제적인 여성들의 몸매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한 꼬집의 살집조차 죄책감으로 받아들이는 사회, 퉁퉁한 몸매는 죄의식이 되어야 하는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들.

그래서 자신과 다른 몸매로 살아가는 여성들을 한껏 웃음의 소도구로 삼아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사회가 지향하는 것은 무엇일까? 혹시나 날씬한 몸매를 지향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떼어내고 있는 것은 우리의 푸근한 삶의 여유나 넉넉한 타인에 대한 아량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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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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