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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가우디를 '천재 건축가'라 하는지 알겠네

[모녀의 좌충우돌 배낭여행기] 스페인-포르투갈-모로코 열 여섯 번째 이야기

등록|2014.10.04 16:19 수정|2014.10.04 16:19
드디어 가우디 투어를 하는 날이다. 다행히도 딸이 많이 회복해서 함께 가우디 건축을 볼 수 있었다. 스페인에서 만난 이들 모두가 가이드와 함께 하는 가우디 투어 프로그램을 추천했지만 혼자만의 속도로 천천히 감상하고 싶었다. 고민 끝에 투어 신청을 하지 않았다. 딸은 인터넷에서 건물 설명을 찾아 옮겨 적으며 가이드보다 자세히 설명해 주겠단다.

람블라스 거리파란 하늘의 거리가 마치 우리네 가을날 같다. ⓒ 송진숙


유네스코 등재된 가우디 건축... 화려함 그 자체

첫 번째로 방문한 곳은 구엘 저택. 가우디의 친구이자 후원자인 구엘이 가우디에게 의뢰해서 지은 이 저택은 가우디의 초창기 건축물 중 하나다. 람블라스 거리에 있는 구엘 저택은 '구엘 궁전'이라고도 불릴 만큼 웅장했다. 주철로 장식한 아치형 문은 철에서 어떻게 이런 아름다움을 끌어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정교하고 아름다웠다.

주철 장식을 자세히 살펴보니 구엘의 이니셜인 G와 E가 화려하게 새겨져 있다. 가우디의 창의성은 철문뿐만 아니라 지붕 위 우뚝 솟은 독특한 형태의 굴뚝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다. 모두 다른 모양과 색을 지닌 굴뚝은 기능을 넘어선 하나의 예술적 조형물로 구엘 저택을 더욱 빛냈다.

저택 내부도 관람하고 싶었지만 월요일은 구엘 저택의 휴관일이었다. 외관을 본 것으로 만족하고 바르셀로나 중앙 우체국으로 향했다. 한국으로 엽서를 부치기 위해서였다. 딸은 친구들에게 엽서를 보내겠다며 주소를 적어 왔지만 바쁜 일정 때문에 여행 내내 가방에 넣어 놓기만 했다. 여행 막바지에 이르자 오늘은 반드시 부치겠다고 중앙우체국에 가잔다.

딸이 우표를 사서 하나하나 붙이는 동안 우체국을 둘러보았다. 건물은 전체적으로 고풍스러웠다. 특히 천장의 창과 주위를 장식하고 있는 벽화가 인상적이었다. 엽서를 모두 부치고 나온 딸은 밀린 숙제를 끝낸 듯 홀가분해 보였다.

이어 카테드랄 성당을 찾았다. 성당 안에는 몬세라트에서 본 검은 성모 마리아상과 작은 예배당들이 있었다. 지하에는 에우랄리아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 이 성당에는 성녀 에우랄리아의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기독교를 탄압하던 로마 제국 시대, 대부분의 신자들은 로마군의 탄압을 피해 몸을 숨겼다.

그러나 에우랄리아는 지역의 통치자 앞에 당당히 나서 기독교 신자임을 밝히고 그들의 폭력이 정당하지 않다고 주장하다 감옥에 갇혔다. 이때 그녀의 나이 겨우 13세였는데 이후 그녀에게는 13번의 잔인하고 혹독한 고문이 가해졌고 결국 순교했다. 카테드랄과 연결된 정원에는 신기하게도 하얀 거위들이 노닐고 있었다. 성당에 웬 거위? 거위는 모두 13마리인데, 그녀가 순교할 당시의 나이를 상징한다고 한다.

카탈루냐 음악당카탈루냐 음악당의 외관. 월요일 휴관이라 내부를 볼 수 없어 안타까웠다. ⓒ 송진숙


바르셀로나 카테드랄성당 내부에는 검은 성모 마리아상과 에우렐리아 성녀의 무덤이 있다. 성당에서 기르는 13마리의 거위는 에우렐리아 성녀가 13세 때 순교한 것을 상징한다. ⓒ 송진숙


바르셀로나 우체국바르셀로나 우체국 전경 ⓒ 송진숙


거무튀튀 먹물 빠에야... 맛은 최고!

다음 목적지로 가는 길, 한창 세일 중인 스페인의 거리 곳곳에는 여러 상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우리의 시선은 쇼윈도 속의 옷과 신발들로 향했다. 어제 산 초록색 원피스에 지금 신고 있는 운동화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구두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질 좋아 보이는 카멜색의 앵글 부츠를 가리키며 얼마냐고 물으니 70% 할인을 해서 19유로란다. 진짜 가죽이라는 주인의 말에 구매해서 운동화와 바꿔 신었다. 딸에게 신발이 잘 어울리냐고 물으니 패셔니스타 같다며 치켜세워 준다.

가게 앞의 60~70% 세일이라는 문구를 보고 들어갔더니 옷이 꽤 많다. 이 옷 저 옷 입어보다 저렴하고 괜찮은 가죽 재킷을 발견해 16.9유로에 구입했다. 계산대 위에는 반지를 비롯한 액세서리도 놓여 있었는데 2개에 8유로란다.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 4개를 집어 들었더니 딸은 이제 그만 사라며 말린다. 나중에 후회할 수도 있으니 2개만 사고 나왔다.

쇼핑을 오래 해서인지 배가 고팠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빠에야가 맛있다는 'El grop(엘 그롭)'으로 향했다. 관광객에게 유명한 맛집인지 한국인들이 많았다. 추천을 받아 먹물 빠에야와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먹물 빠에야는 밥과 모든 재료가 온통 까매서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한 숟갈 떠 넣었더니 고소한 맛이 입안에 확 퍼진다. 스페인에서 먹어본 빠에야 중 가장 맛이 좋았다. 집에 가면 오징어 먹물 요리를 시도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배부르게 먹고 나니 어느덧 3시.

남은 시간 동안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보기로 결정하고 걸음을 재촉했다. 입장을 위해 길게 늘어선 줄은 끝이 보이질 않았다. 오후 6시까지만 볼 수 있기에 일찍 올 걸 하고 후회했지만 늑장을 부린 결과니 누굴 탓할 수도 없다. 30여 분을 기다려 입장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가우디가 감독한 탄생의 파사드. 낮과 밤의 성당은 각각 다른 느낌을 준다. ⓒ 송진숙


성경 그대로 옮긴 사그라다 파밀리아

가우디의 최대 역작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1882년 공사를 시작해 오늘날까지 건설 중인 성당이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성 가족'이라는 뜻으로 성스러운 가족은 예수, 마리아, 요셉을 의미한다. 신앙심이 깊었던 가우디는 성경을 그대로 담은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설계했고 1962년까지 일생을 성당 건축에 바쳤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그리스도의 탄생과 수난, 영광을 주제로 한 3개의 파사드(건물의 출입구가 있는 정면부)와 열두 제자를 의미하는 열두 개의 첨탑,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중앙탑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가우디가 살아 있을 때 완성된 부분은 탄생의 파사드와 지하제실 정도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내부스테인드글라스의 화려함과 실내 장식이 현대적이어서 고전적인 느낌의 성당들과는 동떨어진 것 같다. 하얀 기둥은 나무가 우거진 정글같은 느낌이 든다. 왼쪽 아래는 스테인드 글라스가 아직 완성이 안되어 하얀 부분으로 남아 있다. ⓒ 송진숙


입장하자마자 수난의 파사드가 보였다. 수난의 파사드는 가우디의 뒤를 이어 건축가 수비라치가 완성한 부분으로, 수비라치만의 스타일이 녹아 있다. 직선적인 건축물은 간결하면서도 추상적인 느낌이 강했다. 그래서인지 성당이라기보다는 현대미술 작품을 보는 것 같았다.

내부는 더욱 놀라웠다. 어둡고 엄숙한 기존의 성당과는 달리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환하고 따뜻하며 신비로웠다. 천장에서 내려오는 빛은 밝고 환상적이어서 이승이 아닌 느낌이 들었다. 해가 질 무렵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온 저녁 노을은 형형색색의 빛으로 변해 하얀 기둥에 반사됐다. 나무를 형상화한 기둥은 각양각색의 빛으로 물들어 흡사 숲 속에 들어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타워로 올라갔다. 바르셀로나 시내가 한눈에 보인다. 얼마나 높은지 사람들이 개미만 하고 저 멀리 지중해도 보인다.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외관을 장식하고 있는 동식물 모양의 조형물이었다. 영원을 상징하는 녹색의 사이프러스 나무와 흰 새, 천사 장식은 밑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섬세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수난의 파사드는 가우디의 제자 수비라치가 건설한 부분으로 직선적이고 단순하게 표현되어 있다. ⓒ 송진숙


사그라다 파밀리아 타워의 계단위에서 내려다보면 바닥까지 보이는 나선형 계단. 난간을 꼭 잡고 내려오는데도 다리가 덜덜 떨린다. ⓒ 송진숙


타워를 내려와 마지막으로 본 것은 가우디가 직접 감독해 완성했다는 탄생의 파사드였다. 예수의 탄생을 담은 파사드에는 수태고지, 동방박사, 마구간에서 태어난 아기 예수의 모습들이 정교하게 표현돼 있었다. 가우디는 생생한 묘사를 위해 죽은 아이의 석고본을 떠서 조각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 완벽한 미완성의 건축물은 가우디가 만든 부분만 유네스코에 등재됐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좀 더 느껴보고 싶어 근처 패스트푸드점에서 커피를 마시며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 사방이 어두워지자,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보이는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 온몸이 덜덜 떨렸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불빛에 반사된 성당은 낮에 보던 모습과 달리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호수에 비친 성당의 모습은 호숫가에 서 있는 몇 그루의 나무와 어울려 더욱 운치를 자아냈다.

완공된 성당 모습은 얼마나 멋질까?

먹물빠에야먹물빠에야는 거부감이 드는 생김새와 달리 고소하고 달콤하다. ⓒ 송진숙


천재 건축가가 인생을 바쳐 건축한 성당. 오로지 기부금과 입장료로만 공사해 100년이 넘도록 건축되고 있는 성당. 가우디를 배출한 스페인이 부러워졌다. 크레인이 없는 완공된 성당의 모습은 얼마나 더 멋질까 생각하며 아쉬운 발걸음을 뒤로 했다.

낮의 성당과 밤의 성당을 모두 보고 나니 그제야 배고픔이 느껴졌다. 저녁은 타파스로 유명한 '끼멧끼멧(Quimet Quimet)'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번화가가 아닌 뒷골목에 위치해 있었다. 지나다니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아 보인다. 그러다 웬걸, 테이블은 3개뿐이고 의자도 없이 서서 마셔야 하는 좁은 가게 안에는 사람들로 북적북적했다.

벽면에는 와인이 가득하다. 딸은 샹그리아, 나는 흑맥주를 한 잔 시키고 인기 메뉴라는 연어, 요구르트와 꿀 몬타디토, 푸아그라, 몬타디토를 주문했다. 몬타디토는 빵 위에 재료를 올린 것으로 타파스의 일종이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고 먼저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켰다. 직접 만들었다는 흑맥주는 풍미가 깊고 진했다. 푸아그라는 처음 먹어보는 것이었는데 순대를 시키면 나오는 돼지 간처럼 뻑뻑했다. 특유의 향이 있어선지 생각보다 입맛에 맞지 않았다.

먹다 보니 입맛이 돌아 음식들을 더 시켰다. 한입에 먹을 정도로 작은 크기의 음식이었지만 맥주와 함께 먹으니 한 끼 식사로 적당하다. 먹는 동안 사람들은 계속해서 들어온다. 한국인도 상당히 많았는데 인터넷의 영향인 듯했다.

귀국하기 전 조금이라도 더 이 도시를 느껴보고자 밤길을 걸었다. 이제야 여행에 익숙해진 느낌인데 내일이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니... 숙소로 가는 길 위에 아쉬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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