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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이자 일심동체인 아내에게 받칩니다

자작시 <그대 있음에 내가 있으니>

등록|2014.08.24 17:49 수정|2014.08.24 17:49
교황님께서 우리나라에 오신 지난 8월 14일은 내 아내의 환갑생일이었습니다. 15일 대전 월드컵경기장에서 거행된 교황님 주례 성모승천대축일 장엄미사에 참례할 일로 가족 모두 몸도 마음도 바쁘고 해서 14일은 그냥 넘어가고 17일과 22일 조촐한 행사를 가졌습니다.

그 대신 14일 하루 동안 아내 몰래 축시 한 편을 지었습니다. 나는 이 축시를 17일과 22일 여러 친척과 친지들 앞에서 아내에게 들려줄 수 있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종과 함께 한 우리 가족15일 오전 대전 월드컵 경기장에서 거행된 프란치스코 교종 집전 성모승천대축일 장엄미사에 우리 가족도 참례했다. 새벽 3시 30분 태안에서 출발해야 했다. ⓒ 지요하


<그대 있음에 내가 있으니>라는 제목과 <화갑의 아내에게>라는 부제목을 가진 그 축시 내용 중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남편이 육필로 글을 쓰던 시절에는 / 컴퓨터로 옮겨주는 일도 도맡고 / 바쁜 생활 가운데서도 / 남편의 오만가지 글들을 알뜰히 읽어주며 / 세상에 대한 관심과 통증을 함께 나누는 동지 / 오롯한 일심동체가 되었지요"

아내는 글쓰기에는 소질이 없지만 읽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평소 책읽기를 좋아했기 때문에 내 소설들을 읽을 수 있었고, 그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 나와 인연을 맺을 수 있었습니다. 내가 아내에게 가장 감사하며 귀하게 여기는 것은 책읽기를 좋아하는 성품입니다. 환갑을 먹은 오늘에도 아내는 책읽기를 좋아합니다.

책읽기를 좋아하는 성품을 지녔음으로 아내는 과거 육필로 쓴 내 글들을 컴퓨터로 옮겨주는 일도 할 수 있었고, 내 수많은 글들의 최초 독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서로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또 그러다 보니 세상에 대한 관심과 '통증'을 함께 나누는 '동지'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아내는 "세상일에 대하여 십자가를 진 듯이 고뇌하며 / 건강치 못한 몸으로도 전국을 휘돌며 / 신념을 불태우는 남편에게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오롯이 공감해주고 응원만을∼"해줄 수 있었습니다. 또 그런 아내 덕분에 "어언 노년 세월로 접어든 남편이 / 정신만큼은 청년 시절을 구가∼"할 수 있을 터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이미 노인 연령으로 접어들었고 몸도 건강치 못하지만 여전히 청년 같은 정신을 지니고 삽니다. 불같은 열정으로 '진실과 양심, 정의와 평화,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노고하며 땀을 흘립니다. 그 모든 일이 아내 덕이기에 나는 진심으로 아내에게 감사합니다.

프란치스코 교종께서 방한하시는 동안 우리에게 남겨주신 선물—고귀한 메시지 내용들을 깊이 음미하곤 합니다. 교종께서 말씀하신 '평화는 정의의 결과'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또한 "정의롭고 인간다운 사회를 이룩하는 데에 그리스도인으로서 과연 얼마나 질적으로 기여했는가?"라고 물으시는 교종의 말씀을 가슴 깊이 새깁니다.

그리고 교종께서 로마로 돌아가시는 전세기 안에서 하신 "인간의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라는 말씀을 새롭게 내 인생의 지표로 삼습니다. 당신의 가슴에 달린 노란 리본배지와 관련하여 하신 말씀이기에, 나는 더욱 내 가슴에 달려 있는 리본과 배지를 소중히 여기며 오늘도 세월호 유족들과 몸과 마음으로 뜨겁게 연대합니다. 물론 내 아내의 가슴에도 노란 리본과 배지가 달려 있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그리스도 신앙인으로서 '정의롭고 인간다운 사회를 만드는 일'에 오늘도 힘껏 작은 힘을 보태고자 합니다. 내 삶과 정신, 내 모든 글들과 행동들은 한 가지로 그리스도 신앙인으로서 '정의롭고 인간다운 사회를 만드는 일'에 모아져 있습니다. 그 일에 있어서도 올해 환갑을 맞은 내 아내는 일심동체입니다. 실로 감사한 일입니다.

내가 지난 14일 아내의 환갑생일에 몰래 지어서 17일 친척들과 함께 한 축하연 자리에서, 그리고 22일 태안성당 형제자매들과 함께 한 축하연 자리에서 낭송했던 축시를 이 지면에 올립니다. 부끄러운 마음도 크지만…. 독자 여러분의 관용을 빕니다.

축시 전달아내의 조촐한 회갑연 자리에서 춗시를 낭송하고, 아내에게 전달했다. ⓒ 지요하


그대 있음에 내가 있으니
—화갑의 아내에게

서른넷에 마흔의 연분을 만나 신부가 되더니
어느새 27년이 굽이쳐 흘러서
2014년 중토막인 오늘
그대, 화갑을 맞았구려

시골 가난한 삼류문사의 아내가 되어
호구를 떠맡고
직장생활에 가정살림에
시모 병구완과 남편 병수발에
삭신 아픈 날도 많았지요

손재수도 겪는 허허로운 날들 가운데서도
두 아이를 얻어 기르는 기쁨들도 누리고
쪼들리는 허랑한 생활 속에서도
늘 하느님께 의지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았지요.

누구에게나 인생 기복은 있게 마련이지만
돌이켜보면 평탄치 못했던 세월
이런저런 눈물도 있었지요
억울하여 억장 무너지는 일들도 있었고
막막하고 아득하여 절룩거린 날들도 있었지만
하느님의 선물인 신앙심 하나로
오직 한곳만을 바라보며 올곧게 걸어왔으니
그게 보람이라면 보람이겠지요

남편이 육필로 글을 쓰던 시절에는
컴퓨터로 옮겨주는 일도 도맡고
바쁜 생활 가운데서도
남편의 오만가지 글들을 알뜰히 읽어주며
세상에 대한 관심과 통증을 함께 나누는 동지
오롯한 일심동체가 되었지요

세상일에 대하여 십자가를 진 듯이 고뇌하며
건강치 못한 몸으로도 전국을 휘돌며
신념을 불태우는 남편에게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오롯이 공감해주고 응원만을 해준 덕에
어언 노년 세월로 접어든 남편이
정신만큼은 청년 시절을 구가하니
고마운 마음 한량없구려

구순 시모 모시고
혼자 된 시동생도 챙기며
무난히 가정을 꾸려가는 것도
하느님을 향해 가지런히 발걸음 모을 수 있는 것도
진실과 양심과 정의의 길을 따라
남편이 땀을 흘릴 수 있는 것도
오로지 당신 덕이니
그대여, 그 고귀한 심덕을 올곧게 유지하며
남은 세월 서로 더욱 의지하고 동무하며
알콩달콩 도란도란 미쁘고 푸르게 살아갑시다
고마운 그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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