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상림 연밭 최치원 닮은 오리 한 마리
[디카詩로 여는 세상 36] <환생>
▲ 상림연밭 오리 ⓒ 이상옥
상림 연밭 눈빛 맑은 오리 한 마리
프란치스코, 아니 고운(孤雲) 최치원
-이상옥의 디카시 <환생>
우리나라 국토 자체가 박물관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곳곳에 아름다운 전설과 일화들이 숨 쉬고 있으니.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숲이라는 함양 상림숲에도 최치원 관련 일화가 많다.
신라 시대 함양 태수로 있던 최치원이 함양읍 중앙으로 흐르던 위천의 홍수로 피해가 심한 것을 보고 둑을 쌓아 물길을 돌리고 나무를 심어 조성한 인공림이 바로 함양상림이다. 예나 지금이나 리더가 누구냐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달라진다.
최치원이 조성한 최초의 인공숲 함양 상림
최치원이 신라를 경영할 만한 리더였으면 우리나라의 운명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신라 골품제의 벽에 막혀 그나마 함양 태수를 지낸 것은 함양으로 봐서는 축복인 듯하다. 최치원이 천년 전에 조성한 상림 덕택에 오늘 함양이 누리는 축복이 크다. 그러고 보면 신라시대 골품, 즉 혈통에 따라 관직, 혼인, 의복 등 사회생활 전반에 규제를 가하는 이 제도는 신라 최고 천재였던 최치원에게는 형극과 같았던 것.
▲ 상림숲 속을 흐르는 개울과 아치형 다리 ⓒ 이상옥
12세 때 당에 유학해 18세에 외국인으로 급제했으며, 25세에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으로 문명을 떨치고, 귀국하여서는 38세에 사회개혁안 '시무십여조(時務十餘條)'을 제시했으나 실패하고, 42세에 천하를 돌아다니다 52세 이후 신발만 남긴 채 가야산 신선이 되었다고 한다. 최치원의 호가 외로운 한 점의 구름이라는 뜻의 '고운(孤雲)'이 그의 운명을 잘 드러내는 것 같다.
고운이 죽어서 신선이 되었다고 하니, 당연 관련된 전설도 신비할 수밖에. 최치원이 어느 날 저녁 그의 어머니가 상림에서 뱀을 만나 매우 놀랐다는 얘기를 듣고서, 효성이 지극했던 최치원이 "모든 미물은 상림에 들지 말라"고 명령한 후 함양 상림에는 뱀이 없어졌다 한다.
또한 상림숲을 조성할 때 공사가 엄청 빠르게 진척되었는데, 밤에 한 인부가 보니, 최치원이 금으로 만든 인형들을 시켜 둑을 쌓는 일을 했다. 실제로 1993년 상림둑을 보수할 때 땅에서 금 인형들이 발견됐다고도.
▲ 여름 상림은 연밭과 한 몸처럼 어우러져 더욱 푸르고 싱그럽다 ⓒ 이상옥
함양상림과 조화를 이룬 여름날의 연밭
함양 상림공원에는 연밭도 조성되어 있어 상림과 조화를 잘 이룬다. 최치원을 떠올리면 상림숲만 생각하기 쉬우나 여름날 상림의 연밭 또한 장관이다. 상림 연밭을 따라 걷다보면 군데군데 연못이 나오는데, 유독 한 마리 오리가 눈에 띈다. 가까이 가도 전혀 경계조차 하지 않고 물질만 한다. 최치원의 환생 같다.
덧붙이는 글
디카시는 필자가 2004년 처음 사용한 신조어로, 이제는 채호석 교수가 쓴 <청소년을 위한 한국현대문학사>(두리미디어, 2009)에 새로운 시문학 장르로 소개될 만큼 대중화되었다. 디카시는 스마트폰으로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적 형상(날시)을 순간 포착(영상+문자)하여, SNS 등으로 실시간 순간 소통을 지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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